산딸기 이야기

Johnjeong bot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8월 8일 (화) 03: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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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ultronstallet 산딸기 관련자료:없음 [25008] 보낸이:정철 (zepelin ) 1999-06-06 02:12 조회:132

잉마르 베르히만의 영화는 제 7의 봉인과 화니와 알렉산더를 보았었다.
제 7의 봉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화니와 알렉산더의 경우 한 거장이 자신의 영화세계를 어떻게 마무리 짓는가를 알 수 있게 한 훌륭한 영화였다.
산딸기를 보고서야 그가 진정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가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관계를 다룬 한 노인의 회상기이다.
의사인 노인 이삭은 자신의 명예박사학위를 받기위해 수여장으로 간다. 그 는 분명 남에게 봉사하며 살았고 자신의 원칙에도 충실하게 살았다. 허나 그는 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인간적인 것을 종종 등한시했다.
그에겐 자신과 똑 닮은 아들, 자신을 이해하는 며느리, 자신을 꾸준히 돌 봐주던 가정부 등 여러 사람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 죽어버 린 아내 등 이젠 멀어져 간 사람들도 있다. 이삭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 이 무엇을 잘못했던가 무엇을 잘했던가를 반추한다. 여기서 대차대조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흔히 노인은 과거를 먹고산다고 하지 않는가.
이삭이 후회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미를 표출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이 영화의 핵심이며 이삭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찾아나간다.
인간관계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히 행복한 사람이다. 아마 그 사람은 인생에 달관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찬은 아닐것이 다. 종종 나는 학교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무엇을 했던가 하 는 생각에 화가난다. 나름대로 공부는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다양한 사 람을 접하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어울리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학 교에서 평가하듯 내 스스로에 대해 평가한다면 C+정도나 되려나.
이삭은 다른 이들에게 호의를 배풀려하나 종종 그것은 타인에게 위선으로 비친다. 게다가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 타인을 이해하려하나 자신을 드러내 지 않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 다. 혹시 호의로 한 행동이 잘못 전달되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아무 말도 안나오고 그저 눈물만 흐른다.
젠장, 애석하게도 내가 안고있는 가장 깊은 문제를 이 영화는 그대로 드러 내고있다. 나는 뭔가 잘해보려 하고 타인을 이해한다고 여기고 있는데 결과 는 전혀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다. 나의 원칙이 뭔가 잘못된 것인가. 나도 남들에게 투정도 부려보고싶고 그들에게 내 마음을 드러내놓고 의지해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그랬다가는 모두 내곁을 떠나버릴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버림받는것을 두려 워한다.
하지만 나 역시 종종 다른 사람에게 알게모르게 상처입힌다. 가끔 나를 필 요로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내 생활이나 내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포기했을 때 그들은 나에게서 상처입는다. 피할 수는 없는것인가.
베르히만은 아무 해답도 제시하진 않는다. 그저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를 좀 더 사랑하라고만 말한다.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대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내 이익을 위해, 무엇이 이익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날뛰는 이기심이 미워졌다.

P. S.
이삭의 배역을 맡은 스웨덴의 노배우는 정말 기가막히게 연기를 잘한다.
한 세월을 살아온 모습이 역력하게 녹아들어가 있는 얼굴이며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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