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러브

Jmnote bo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5일 (목) 22:36 판 (Pinkcrimson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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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거북이[ | ]

99년 10월. 후배녀석의 리포트로 대신 써주다.

일단 감독에 대하여.
스탠리 큐브릭은 기본적으로 현대인의 부조리와 불안감을 직시하는 감독이었다. 그가 연출한 주요작품들은 처음부터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던 스파르타쿠스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러했다. 그는 특히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주목하여 전쟁영화를 세편 찍었는데 군부 내부의 부조리와 그에 맞서는 장교의 이야기를 다룬 영광의길(57)Paths of Glory, 전쟁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시키는가를 다룬 풀메탈자켓(87)Full Metal Jacket, 그리고 그 사이에 찍었던 핵전쟁에 대한 블랙코미디인 닥터스트레인지러브;혹은 나는 어떻게 고민을 집어치우고 수소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63)Dr.Strangelove;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몇년전에 출시되었던 이 영화를 일찌기 보았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어렸었는지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제작사측에서 좀 더 깨끗하게 영화를 재출시했고 나는 다시한번 보았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자 시도했던것은 이전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오기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중압감때문이기도 했다. 영화를 작가별 시대적으로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정도로 훌륭한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큐브릭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영화의 주된 장면은 세가지인데 잘못된 망상에 사로잡혀 핵전쟁 명령을 내리는 장군과 그의 부관이 있는 곳, 그 명령을 충실히 지켜 열씸히 핵탄두를 달고 러시아를 향해 날아가는 폭격기, 그리고 대책없는 정부각료들이 모여있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그 세 장면이다.

이 장군은 자기 비서와 섹스를 하다가 순간적으로 외국의 나쁜 액체가 자신의 몸을 이루는 물을 대치하고 있다고 여기고는 그것을 막기위해 그들을 저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나선 재량으로 러시아에대한 핵전쟁 작전을 시행시킨다. 합리적으로 그것의 부당함을 호소하는부관에게 여러가지 황당한 논리를 전개하며 이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는 자신이 붙잡힐 운명이 되자 자살해버린다. 충실한 부관은 그로하여금 암호를 알아내려고 기를 쓰다가 간신히 대통령과 연결이 되는데 그 사이에 융통성없는 장교가 일을 방해하여 일분일초가 시급한 이 상황에서 간신히 전화가 가능해진다. 좌익혐오증과 망상에 사로잡힌 장군과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들을 묘사하며 큐브릭은 관료주의와 편협한 사고가 어떤식으로 일을 망치는가를 꼬집는데 이것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더욱 신랄하다.

폭격기 내부에서는 이들이 소집되어 러시아까지 날아가는 과정이 묘사되는데 이들은 비행기에서 뽀르노잡지를 보는가하면 옆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순간적으로 유치한 애국심에 호소하며 비행준비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비상상자속에 팬티스타킹과 콘돔이 들어있는 등 큐브릭의 냉소는 끝날줄을 모른다. 어떻든간에 이들은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며 저돌적으로 날아가는데 이는 기계문명의 무식함과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역시 이러한 것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더 잘 나타난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전쟁광인 또다른 장군과 퇴물 파시스트인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그리고 대통령과의 대화가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이 전쟁광은 무식하고 모든 위험을 러시아쪽에 돌리는 심각한 좌익혐오자로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계속 보여준다. 대통령은 비교적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이나 여기서 일을 긴밀하게 처리하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그 사이에 공격이 시작되면 바로 러시아의 파멸 기계(Doomsday Machine)이 작동해서 인류가 전멸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사태의 심각성은 부각된다. 충실한 부관이 간신히 대통령과의 연락에 성공해서 폭격기들을 회수하는데 성공하지만 고장난 폭격기하나에는 연락이 안되고 그 안의 지휘관은 맹목적 충성심을 발휘하여 폭격에 성공하여 파멸기계는 작동하고만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미쳐버린 과학자의 전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인데 이 파멸기계가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말에 땅파고 들어가 충실하게 번식을 하여 백년정도 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영화는 여기서 끝이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관료들이 보여주는 난상토론 뒤에 파멸기계가 작동해서 인간은 파멸한다.

큐브릭은 이 영화 전체를 통해서 각각의 대상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특히 맹목적인 전쟁광과 극우 파시즘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 영화는 십수년간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봉이 금지되었었다. 그리고 정신분열적인 장군은 대부분의 큐브릭 영화에 나오는 인물형으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파시스트이며 강박관념속에 사로잡힌 인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가장 신랄한 비판은 인류 전체에 대한 비판이다. 가상의 적을 설정해두고 모든 이를 파멸시켜버릴 수 있는 파멸 기계같은 것을 만드는 미친짓을 세계를 양분하는 나라들이 주도한다는 사실 자체가 미쳐버린 짓이 아닐 수 없다. 큐브릭은 인터뷰에서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내가 그린 것은 인간 특유의 부조리이다. 그것이 인간 자신을 멸망시키고만다. 오늘날 그 부조리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있다. 사실 한 장군의 광기나 부주의가 미소간에 핵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있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이 나로하여금 이러한 영화를 만들게 한 것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은 분명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다른 것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그전까지 죽음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소멸, 기껏해야 한 도시내지는 나라의 소멸이었지만 핵이 떨어지고 그것이 점차 발달하여 인류와 이 지구를 파멸시켜도 여러번 아작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전까지 없던 근원적인 공포심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이 영화를 만들게 한 것이다.

얼마전에 한 평론가는 [ 주유소 습격사건 ]에 대하여 풍자가 없어서 웃다가도 곧 공허해진다고 말했다. 웃음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그 안에 뼈가있는 풍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난 동의한다. 아마 큐브릭 역시 그것에 동의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큐브릭은 인류를 질겅질겅 씹는다. 버섯구름이 퍼지는 화면 속에서 '우린 다시 만나리'같은 낭만적인 노래가 흐르는 것이다. 난 이 화면을 보면서 입 끝이 조금 올라가다가 굳는 느낌을 받았다. 황당하게 풍자를 해두었지만 그것이 웃기에는 너무나 개연성이 큰 현실인 것이다.--거북이

2 # 이상복[ | ]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by Stanley Kubrick 원문 : 로긴 및 회원가입 필요

0. intro.

큐브릭 작품 중 내가 본 것은 수업시간에 본 영광의 길이나 비디오로 본 풀 메탈 쟈켓, 어딘가에서 구한 divx 샤이닝 정도. 큐브릭의 작품들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뭔가 특별히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내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동시에 부자연스럽다거나 불필요한, 즉 욕을 할 만한 부분이 그의 작품들 속에는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 장르에서 고전으로 추앙되고 있기에,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무특징성은 그가 추구하는 결벽적 완벽성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최소한 캐릭터에 있어서는 눈에 확 띠는 특징이 있었다.

1. 바깥

주지하다시피 이 영화는 쿠바 위기로 대표되는 미/소간 핵무기 경쟁이 진행되던 60년대의 냉전 체제하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물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후이자,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결정과도 비슷한 시기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큐브릭의 영화가 이른바 ‘높은’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았으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큐브릭은 핵폭탄에 관한 서적을 어립잡아 70권 가량을 읽고 핵전략가 등에게 자문을 구했고, 미 공군측에게도 협력 의사를 문의했었다고 한다. 물론 군은 큐브릭이 설정한 핵무기 관리체제의 허술함을 반박하며 일체의 지원도 하지 않았기에, 큐브릭은 결국 디자이너와 함께 B-52 폭격기 조종석은 물론, 그 존재 자체가 베일에 쌓여있는 펜타곤 지하의 전쟁 상황실도 혼자서 상상, 제작해야만 했다. B-52의 비행 장면은 북극해를 공중 촬영한 자료와 폭격기의 미니어처를 합쳐 매트 촬영한 결과물이다.1)(그러나 눈이 익숙해지면 이 비행 장면들은 조금 엉성해보이게 된다.)

또한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 전투 장면에서는 핸드 헬드를 이용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보여주다가 상황실에서는 전체적으로 로우 키의 조명으로 종말 앞에 선 인류의 암울한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살을 앞둔 리퍼 장군을 로우 앵글 클로스업으로 잡아서 장엄한 - 물론 이것은 블랙 코미디의 요소가 된다. 그의 뒤편으로 미국 성조기가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 분위기를 띠게 하는 등, 큐브릭의 눈부신 역량이 발휘되는 장면은 많다. 물론 마지막 엔딩 장면이 압권.

끝으로 리퍼 장군이 언급한 물의 fluoridation(자막에는 전분화라고 번역되어 있었지만 불소화가 맞지 않나 싶다.)은 1950년대 한창 논쟁거리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유익한 점보다는 위험 요인이 더 많다는게 최근에 밝혀져 있는 상태이다.2)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논란거리가 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어찌되었든 리퍼 장군의 인종주의에 가까운 공산주의 음모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2. 캐릭터

영화 외적 요인들을 빼고도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의의는 냉전을 희화화시킨 블랙 코미디라는 점에 있다. 일단 ‘미치광이’로 취급되는 Jack D. Ripper 장군의 경우 그 이름 자체가 19세기 영국의 희대의 연쇄 살인마 Jack, The Ripper로부터 거의 그대로 따온 것이다.3) 또한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신의 purity of essence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하는 독특한 결벽적 극단주의자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론을 들먹이는 그가 정작 케네디 대통령 암살 등을 비롯한 미국 내의 음모론에 대해서는 어째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지 아이러닉하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일종의 배타적 인종주의자이며, 쇼비니스트이다. 이것은 터지슨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벅 터지슨(‘Buck' Turgidson) 장군역의 조지 C. 스콧이야말로 이 영화의 블랙 코미디화를 주도하고 있다. 첫 등장장면부터 그는 여비서와 불륜을 나누고 전시하의 전쟁 상황실에서도 여비서와 직통 전화를 주고 받다가, 정작 소련 대사가 서기장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사생활이 있다는) 말에 소련 대사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그런가하면 미팅 중에 끊임없이 뭔가를 먹어대며 다른 장군에게 권하기도 하며, 매우 경박하게 껌을 씹어대기도 한다. 후반부에 자신의 파일럿들이 소련군을 피해 저공비행하는 것쯤은 쉽게 하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손수 날개짓 흉내까지 내며 장담하며 - 그것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행위인데도 말이다 - 뒤로 걷다가 실수로 넘어지는 등의 재미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러한 스콧의 과장된 연기에 대해 감독으로서 완벽주의자 큐브릭이 제재하지 않은 것은, 넘어지는 등의 실수를 포함한 그의 연기가 이미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스콧은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이름에 대해 조소를 보이다가, 그가 여성 10 대 남성 1의 가정 제도를 언급하자 이에 매우 관심을 보이는 등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4)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King’ Kong(이름이...-_-) 소령이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는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라는 것을 모른채 연기를 했다고 한다. 원래 이 역은 맨드레이크 대령, 미국 대통령,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1인 3역5)을 맡은 피터 셀러즈의 4번째 역할로 정해져 있었다는데, 피터 셀러즈가 카우보이 억양에 익숙치 않았기에 서부 영화 출연 경험이 많은 슬림 피큰즈로 배우가 바뀌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소련의 핵폭격을 지시받은 직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마지막에 핵폭탄위에 매달려 투하될 때 모자를 흔드는 모습에서 로데오 장면이 연상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억양에 대해서는 EBS에서 틀어줬던 것을 포함해 2번을 보았지만 주의 깊게 듣지 못해서인지, 확실히 카우보이 억양이 티가 나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카우보이 억양이 어떤 건지도 모른다.-_-) 어쨌든 그가 애국심에 가득 찬 연설을 하는 장면이나, 폭탄 투하구를 열기 위해 비장하게 직접 砲室로 내려가는 장면 등이 실제 진심에서 우러나는 연기였다고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 제목과 동명의 인물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있다. 놀랍게도 Strangelove라는 단어는 엣센스 등의 영한사전에도 ‘전면 핵전쟁 추진론자’라는 뜻으로 등장한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고 오른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는데, 이 오른손이 기계손인지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확실히 그 오른손은 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종말이 다가오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한 면모가 드러난다. “하이 히틀러”를 외치는 듯이 오른손이 번쩍 번쩍 올라가는가 하면, 비정상적인 자신의 주인이 원망스러운지 이 오른손은 주인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종말이 확정되는 순간 그는 어떤 기적이라도 경험한 인물처럼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서게 된다6). 그가 (핵)전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고를 확연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그것은 지하 속에서 선택된 인간들만이 여성 10 대 남성 1의 비율로 100년을 버텨야 한다는 실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이다. 이 주장 속에서, 나치가 남용했던 선민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녀의 평등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또 지하에서 고난의 100년을 버텨야 한다는 것을 확대 해석하면, 일종의 시오니즘을 주장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 인류의 생존은 전쟁이라는 행위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한 부차적인 방법론에 불과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가치 본말의 전도를 보여주는, 가히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최고의 꼬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상징

이번 숙제는 이 영화가 냉전에 대해 보이는 비판적 시각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이 섹션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사실 내 의견이라기보다는 남들의 의견이 많기도 하고 해서... 그냥 간단하게 넘어가기로 하겠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선생님은 이 장면이 性적인 것을 암시한다고 하셨다. 사실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게 되는 리퍼 장군의 假稱 P.O.E.설 자체도 매우 민감한 성적 암시이다. 리퍼 장군은 자신의 정액이 자신의 정수(essence)라는 사실을 첫 성교 이후 깨달았고 그 이후 아무에게도 주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한다. 이러한 리퍼 장군의 설을 큐브릭 자신이 주장하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큐브릭도 성적인 것을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듯, 공중 급유 장면도 성기의 결합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큐브릭의 장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변태 냄새가 나는 이름 그 자체도 그렇고, 그가 말하는 생식 기능 위주로 생존할 인간을 추첨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일부다처제 역시 마찬가지로 읽힌다. 그 외에 콜라 자판기를 총으로 쏘았을 때 뿜어져 나오는 콜라의 물줄기 역시 남성의 사정 혹은 배설 장면을 암시하는 장치라고 한다.7)

4. 냉전

이제부터가 숙제의 본론인 셈인데-_-a 사실 1.과 2.에서 이미 거의 쓴 셈이다. 절묘한 시대적 타이밍에 이 영화는 제작되었고, 관객과 평단이 이 영화에 보여준 관심과 호응은 이 영화로부터 충분한 공감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겨우 한 명의 ‘미치광이’ 공군 장군에 의해서도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핵공격을 당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통제 불가능한, 그야말로 자동적인 핵보복이 준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전쟁의 어리석음으로 귀결되긴 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공격과 보복이라는 냉전의 구도를 생각해보았다. 만약 전면전이나 국지전이라면 상황은 이 영화와 같은 희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평화를 외치고 뒤로는 군비 증강에 주력하는 냉전의 구도는 아이러닉할 뿐이다. 사실 터지슨 장군이 이 기회에 소련을 밀어버리자 따위의 발언을 할 때 우리는 냉전이란 단지 전면전을 위한 휴전 상태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여하튼 평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한 개인의 지시 아래 시행되는 핵공격을 인정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소련 대사를 전쟁 상황실 안으로 불러들인다.(소련 대사에 대해서는 2.에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역시 영화에 씁쓸함을 더해주는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 그는 미/소 양국의 평화를 주선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형 카메라로 상황판을 찍는 등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역시 냉전의 양면성을 답습하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한 미 대통령이 소련 서기장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피터 셀러즈의 의도된 무력한 캐릭터 연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국의 군사 시설을 공격하게 해준다는 보복을 인정하는 발상에서, 우리는 과연 이 대통령이 지키려고 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인지 의심하게 된다. 자국민의 살상을 용인하면서까지 그가 지키려 하는 평화란 결국 고위층끼리의 권력 나눠먹기는 아닌 것인지... 그런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대통령이 서기관에게 다분히 굽실굽실거리는 장면에서 마음 놓고 웃을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한편 그 이름부터 의미심장한 Doomsday Machine은 또 어떤가. 이름이 의미심장하다고는 했지만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 이 무기는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서운 핵무기이다. 그리고 이 무기가 더 무서운 이유는 ‘자동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우스운 일이다. 소련이 핵공격을 당하는 일 = 인류의 멸망의 등호가 성립한단 말인가. 이 무기는 어쩌면 냉전 체제하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평화’를 지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정당화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또 어디 있을까. 말로만 평화를 주장하면서 뒤돌아서 차츰차츰 쌓아온 핵무기의 도달점은 보복이 불가능한, 전인류를 멸망시키는 무기였다.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치자. 하지만 결국 그 전쟁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죽게 된다면 도대체 누가 그 이념을 이어갈 수나 있단 말인가. 엔딩 장면이 핵폭탄 직후 피어나는 버섯 구름들의 장면으로 대체된 채8), 그 위에 Vera Lynn의 「We’ll Meet Again」9)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이 엄청난 모순 앞에서 거의 망연자실해진다. 큐브릭이 전쟁 혹은 냉전에 대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앞서 3.에서 다루었던 섹슈얼리티와 연관지어서, 전쟁이 성적인 욕구 불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해석해볼 수도 있다.10) 리퍼 장군의 전쟁 발발 동기가 성적 욕구 불만이라고 생각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냉전이라는 상황은 ‘욕구 불만의 해소를 눈앞에 둔 채 지속’하는 상태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할 때 냉전이 띠는 긴장감은 욕구 불만 상태의 인간이 느끼는 긴장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 긴장감은 역시 이중성, 양면성을 야기한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겉으로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해결하는(물론 성과 관련되지 않은 방법으로 욕구를 풀 수도 있겠지만, 프로이트에 충실히 그 경우는 논외로 하자.) 이른바 변태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변태는 바로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색깔과 같다. 상상해 보라. 겉으로는 정상적인 페르소나를 갖춘(갖추려고 노력하는) 한 사회인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어두운 본성에 탐닉하는 아니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그는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결국 사회의 금기를 깨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파멸로 치닫게 된다. 영화 전체의 줄거리와 대충 들어맞지 않는가.

5. end

딴 얘기를 많이 해서 정작 본론은 산만하다. 자꾸 새벽에 숙제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냉전에 대한 큐브릭의 메시지가 과연 이 정도로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性과 관련한 해석은 좀 비약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소위 천재의 작품이니만큼 이미 나돌고 있는 해석들을 누르고 참신하게 분석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던 것 역시 사실이다. 다 쓰고 보니 남의 글 빌려온 부분이 꽤 있음을 발견했지만 빌려온 부분은 선생님이 주신 자료 외에는 모두 출처를 기재했다. 암튼 끄읏. (2002.4.15)


1) 여기까지 http://home.bawi.org/~sfwebzin/2000_05/mov_06.html 에서 상당수 참고했다. 매트 촬영에 대해서는 http://sfxmovie.hihome.com/sfxinfo/technique/camera/camera_2.html 등을 참고.

2) 간단히 참고할 곳. http://www.greenreview.co.kr/greenews/16EugeneAlbright.htm

3) 주1과 같은 곳. http://home.bawi.org/~sfwebzin/2000_05/mov_06.html

4) 이 단락과 다음 단락 일부는 http://www.suntimes.com/ebert/greatmovies/strang.html 에서 참고했다. 이 리뷰의 저자는 스콧의 연기를 극찬하고 있다.

5) 이러한 1인 多역이 가져오는 효과 - 여러 인물의 캐릭터들 사이의 모순성 같은 - 역시 영화의 희화화에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6) 여기서 그는 “Mein Fuhrer, I can walk!”라고 외친다. Mein Fuhrer러는 my leader로 번역되며 여기서는 히틀러를 칭하는 단어인 듯하다.

7) 콜라 자판기에까지도 그런 해석을 갖다 붙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http://www.britannica.co.kr/sam/video/vid01.htm

8) 원래는 상황실에서 파이를 던져대는 개판-_-으로 엔딩이 만들어질 뻔했다고 한다. 주4의 선타임즈 리뷰 등에서 알게 됐다.

9) 베라 린은 1919년 런던생이고 이 노래는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유행했던 노래라고 한다. 그 유명한 영국출신의 프로그레시브록그룹 Pink Floyd의 The Wall 앨범에 베라 린을 회상하는 노래가 들어있기도 하다.

10) 주7의 리뷰에서의 논의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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