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방법과 실험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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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과학적 방법과 실험 통제
  • 저자: Jjw
  • 2015-10-20

어제 누군가가 여러 회사 제품의 빵을 냉장고에 넣고 곰팡이가 피는 지 관찰하였다는 글을 읽고 이미 너무나 불충분한 실험이어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글을 썼지만, 애초에 그 글을 링크한 페친의 담벼락엔 내가 그 실험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런 실험을 했다는 선입관이 있어서 그런 평가를 한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려서 아연실색 하였다. 내가 워낙 뒤 끝 작렬인 관계로 이참에 꼼꼼히 씹고 넘어가기로 한다.

먼저 과학적 방법에 대해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 과학적 방법은 17세기 이후 자연과학에 의해 정형화된 계획적인 관찰, 측정, 실험, 일반화, 시험 및 가설의 변경 등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방법으로서 실험을 통해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여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방법이다. 과학적 방법을 따르는 실험은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재현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실험을 설계하고 통제하여 여러 가지 오류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실험을 한 인터넷 사이트의 글 ( 바이라인도 없는 걸 기사라고 내는 곳을 무슨 언론이라고 인정할 수 없어 그냥 인터넷 사이트로 간주한다 원본: http://www.factoll.com/page/news_view.php?Num=2296 )에 제시된 실험 방법을 간단히 요약하고 이것이 과학적 방법에 맞는 지 검토해 보자.

2 가설의 설정: 식빵의 실제 보존기간은 얼마나 될까?[ | ]

가설 설정은 모든 과학적 방법의 출발이다. 이 글이 제시하는 가설 설정은 물음형으로 되어 있으나 이어지는 글을 보면 식빵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첨가되어 있으면 변질되지 않고 오래간다는 암묵적 주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가설 설정은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이다. 가설은 이후 실험 과정을 통해 검증되거나 부정될 수 있도록 조작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어떠한 선입관을 전제로 하는 것은 이후 실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우생학자들은 백인이 흑인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 중에는 두개골의 용량으로 지능을 가늠할 수 있으며 측정 결과 평균적인 백인의 두개골 용량이 흑인의 그것보다 월등히 크므로 백인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는 논문이 있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그 논문의 실험 과정에서 설정된 가설에 들어있는 선입관이 실험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하고 있다. 두개골 용량의 측정 방식으로 겨자씨를 두개골에 다져 넣은 뒤 그 부피를 측정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는데, 이 방법은 백인의 두개골에 겨자씨를 넣을 때는 힘껏 눌러 다져 넣고 흑인의 것에 대해서는 헐겁게 넣는 방식으로 알게 모르게 선입관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위 링크의 실험 역시 마찬가지로 선입관을 합리화 하는 조작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데, 냉장고의 온도를 되도록 낮추거나 냉기가 나오는 쪽에 빵을 진열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되도록 식빵에 곰팡이가 피는 것을 억제하는 실험 조작( 造作 )이 가능하다. 애초에 실험의 가설에 선입관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심은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실험은 객관성 확보를 위해 고도의 조작적(操作的) 가설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여러 제조사의 식빵을 동일한 온습도 조건에 놓았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곰팡이의 번식 정도를 관찰하여 식빵의 실제 유통 가능 기간을 측정할 수 있다" 정도의 구체적인 조건 제시가 필요하다. 이 경우에도 식빵의 실제 유통 가능 기간을 곰팡이 번식 정도를 기준으로 책정할 수 있는 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긴 하는데, 왜냐하면 식빵의 유통 가능 기간이란 결국 먹을 수 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기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말라 비틀어져 버린다거나, 생물학적 요인 이외의 다른 요인에 의한 변형 예를 들어 광학적 변색이나 화학적 조성 변형에 의한 식방 특유의 식감 소멸(고소한 냄새가 사라져 버린 퍽퍽한 식빵을 즐겨 먹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과 같은 이유도 분명 유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곰팡이가 핀 빵을 먹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곰팡이 실험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여기고 넘어가 보자.

3 실험 설계: 통기가 되도록 구멍을 뚫고 냉장고에 보관하여 관찰한다[ | ]

이후에 이어질 실험의 통제 부분에서 보다 상세히 말하겠지만 실험 설계 자체에 매우 큰 오류가 있는데, 냉장고와 곰팡이의 관계를 너무나 무시한 실험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1927년 출시된 전기냉장고
(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냉장고는 음식이 상하지 말라고 만든 기계다. 당연히 실내의 일반적인 온습도 조건에 비해서 곰팡이의 번식이 극도로 억제되는 환경이다.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이 사나흘 만에 상해버린다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닌가? 각각의 식빵 제조사가 개봉 후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사나흘 안에 먹으라고 한 것은 당연히 상온 조건을 가정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실험 역시 이것에 맞추어야 정상이다.

그리고 통기가 되도록 구멍을 뚫었다는 것이 매우 치명적인 실수인데, 냉장고 안은 극도로 습도가 낮은 건조한 공간이기 때문에 통기가 되면 식빵의 습도 역시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 식빵을 냉장고 안에 두고 하루 이틀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다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경험 안했어도 그닥 권하지는 않는다.) 딱딱하게 말라비틀어져 버리는 게 당연하다. 온도가 낮은 공기는 수분을 포함할 수 있는 절대값이 워낙 낮은데다 계속하여 냉기를 환기시키며 성애 제거 기능을 구현하고 있는 요즘 냉장고는 내부에 담긴 촉촉한 빵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 곰팡이는 일정 이상의 습기가 없으면 제대로 번식하지 않는다. 무릇 곰팡이는 따듯하고 축축하고 어둑어둑한 곳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곰팡이를 되도록 죽어라 죽어라 해야 마땅한 공간에 식빵을 넣어두고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실험이라... 제발 무엇을 실험하건 이런 실험 설계는 하지 말자. 학부생이었으면 간단히 F 주고 과락이다.

4 실험의 통제: 충격적인데, 아무런 통제가 없다[ | ]

  • 통제 되지 않는 실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근 차근 살펴보자. 구입한 각각의 빵이 원래 곰팡이 포자가 있는 정도가 다르다면 어쩔 것인가? 어느 한 두 곳 매장은 매장 청결 상태가 불량하여 원래부터 곰팡이가 좀 핀 곳이었다면 식빵 자체의 실험으로는 매우 불공평하지 않은가? 냉장고는 어떤가? 냉장고의 모든 곳이 똑같은 온습도를 유지하는가?(당연히 아니지 야채칸 케이크 칸 음료칸 따로 따로 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실험을 하는 동안엔 어떠한 인위적인 조작도 하지 않았나?(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빵의 위치가 중간에 바뀐다.. 이런) 이런 식의 실험으로는 실험 결과가 뜻하는 바가 주장하는 것처럼 빵에 무언가 곰팡이 번식을 방해하는 물질이 들어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냉장고의 청결 상태나 온습도 상태가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애초에 사 온 빵 자체의 상태가 제각각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적절한 실험 통제가 제시 되지 않는 실험 보고서는... F도 못준다. 다시 해와..

그럼 보다 적절히 실험 통제 계획을 다시 세워보자.

  • 가) 우선 빵의 상태가 균일해야 한다. 실험 오류를 피하기 위해 관찰을 시작하기 전에 살균을 먼저 하는 것이 좋겠다. 자외선 소독기에 5-10분 정도 놓고 자외선을 조사하여 기존의 곰팡이나 세균을 죽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빵이 상태가 차이나서 결과가 달라졌다는 의심은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살균한 뒤 따로 준비한 곰팡이 포자를 빵에 발라주면 된다. 곰팡이가 퍼지는 정도를 보려면 빵의 중간에 아주 작은 양을 발라서 얼마나 퍼지는지 아니면 번식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지를 관찰하면 된다. 이 방법의 또다른 이점은 이렇게 준비한 곰팡이 포자가 번식하지 못하고 죽을 경우 확실하게 빵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나) 실험 장소도 반드시 소독해야 한다. 실험장소가 부분적으로 여기 저기 곰팡이 균이 서식하고 있었다면 하필 그 위치에 놓은 빵만 유독 곰팡이가 더 번식할 것이니까 락스로 전체를 빡빡 딱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실험장소가 오염되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다.
  • 다) 식빵 각각을 밀폐된 용기에 담아서 관찰해야 한다. 곰팡이 포자는 공기중에 퍼져 전달되므로 나란히 논 식빵이 통기가 된다면 당연히 이쪽 식빵이 곰팡이가 저쪽 식빵으로 날라가는 것을 차단할 수 없다. 하필 옆에 나란히 놓아서 그 두 빵만 곰팡이가 핀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 (동영상을 보면 중간에 냉기가 가장 약한 곳에 나란히 놓은 녀석들만 곰팡이가 피었다. 이 건 냉장고의 부위별 성능 실험은 될 수 있어도 목적한 식빵의 유통기한 실험은 될 수 없다)
  • 라) 상온 상습에서 실험해야 한다. 실험 설계에서도 밝혔듯이 곰팡이는 춥고 건조한 곳에선 잘 번식하지 못한다. 가장 곰팡이가 번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공간에 실험 재료를 갖다 놓고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다니 이건 해도 너무했다. 그리고 곰팡이의 번식에는 습도도 절대적이므로 적절한 습도또한 중요하다. 실험의 목적이 얼마나 두어야 곰팡이가 피어서 식빵이 못먹게 될 정도가 되는 가 하는 것에 있으므로 상온 상습(섭씨 20도 습도 60% 내외)이 적절한 실험 조건이 될 것이다. 실제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곰팡이가 식빵을 뒤덮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아래는 복숭아가 1주일만에 곰팡이로 뒤덮이는 사진이다.

 

5 결과의 해석: 니 멋대로 해석하지 마.[ | ]

위 링크의 싸이트는 이 실험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빵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가설 설정의 부적절성, 설계의 오류, 실험 통제가 전무한 점을 보았을 때 그건 니 주장일 뿐 그 주장에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곰팡이가 핀 빵이 원래 위생상태 불량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실험 장소가 부분적으로 오염되어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빵들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전혀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건 결코 과학이 아니다.

6 상식[ | ]

  • 식빵에 곰팡이 피어서 버린 경험이 없다면 모를까, 상온 상습에 몇일 간 방치하면 식빵에 곰팡이가 핀다는 건 상식이다. 유통기한을 몇 일로 제한하고 있는 건 이러한 상식적 결과를 가지고 무언가 크레임을 걸고 나올 진상 고객 예방 차원임이 명백하다. 온습도 조건에 따라 그보다 조금 더 보관하여 먹을 수 있다고 제조 유통사를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 롤케이크: 그거 설탕 덩어리다. 보통 식빵보다 더 오래 버티는 거 당연한 거다. 꿀을 오래 보관했다고 곰팡이 피디? 당함량을 높여 음식의 보존기간을 늘리는 지혜는 신석기 시대에 이미 사용되었다. 공부좀 하자.
  • 예전에 미국에서 햄버거를 가지고 똑같은 실험을 하여 정크 푸드 먹지 말자고 주장한 글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엄청 돌아다녔다. 그 결과는? 정크 푸드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개박살났다. 물론 아직도 소수의 사람들이 그 결과를 신봉한다. 그런다고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다.
  • 의심: 요즘 너도 나도 언론이라고 나선 인터넷 사이트들이 트레픽 상승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뒤지고 다닌다. 난 이 것도 그거라고 확신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기사라고 내보낸 글에 바이라인도 없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가기 때문이다. 쪽팔린 줄은 아는게지...

7 뱀발[ | ]

  • 내가 뒤끝 작렬인 것도 작렬인 거지만, 진짜 이런 걸로 먹고 살겠다는 녀석들도 참 진상들이다.
  • 이런 거 씹어주는 거 귀찮긴 한데, 간간히 너무 어이없으면 골라서 씹어줄 생각이다.

8 같이 보기[ | ]

9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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