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my Bolin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9일 (월) 18:12 판 (Pinkcrimson님이 TommyBolin 문서를 Tommy Bolin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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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 Bolin 이야기 (상) 12/02 01:41 104 line

  1. 12월 4일은 Tommy Bolin이 타계한 지 17주기 되는 날입니다.
  2.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그의 연주는 우리의 가슴에
  3. 생생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를, 그의 연주를 되돌아 보며..
  4. 월간 팝송 86년 10월호 민 숙희님의 글을 옮깁니다.

- ==== 메마른 영혼을 일깨우는 감성의 연주자 Tommy Bolin ====

              - 20세 혼혈 기타리스트의 데뷔

그는 대부분 음악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학교 때부터 음악에 관심 을 가졌는데, 처음 만져본 악기는 드럼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곧 올갠으로 바뀌었고 그뒤 기타에 손댔는데, 이 일은 후에 음악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간간이 그의 앨범에서 그의 Moog 연주나 퍼커션 솜씨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어려서 다루어본 때문이었다. 혼혈 아라는 이유로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웠던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룹에 가입하기로 결심, 첫 그룹은 Zephyr였으나 1년을 넘지 못했고, 이어 재즈-록 그룹인 Energy에 가입했으나 역시 곧 결렬되었다. 그러 나 그 뒤에는 예기치 못한 화려한 출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James Gang에 3번째 기타리스트로 초대된 일로써 당시 그의 나이 20세 였다.

James Gang은 66년에 결성된 3인조 록 그룹으로 68년 Joe Walsh가 2 기 기타리스트로 가입되면서 그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했 다. 그러나 71년 Joe Walsh가 솔로를 선언하고 Domenic Troiano가 대 신 그 자리를 맡았으나 2년 만에 다시 Guess Who로 가버리자 Joe Walsh의 추천으로 Tommy가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 때의 진용은 Roy Kemmer(리드보컬, 퍼커션), Jim Fox(드럼, 퍼커션), Dale Peters(베이 스, 휴즈 베이스, 퍼커션)의 4인조로 초기 명성을 되찾으려는 맹렬한 의욕의 정예부대였다. 곧 그들의 7번째 앨범인 'Bang'이 탄생되고 결 과는 Funky한 감각의 'Must Be Love'가 11주 동안 차트에 머무르는 호 조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종래의 James Gang 초기 사운드 특징인 블루스적 내음에 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Ride The Wind', 'The Devil Is Singing Our Song', 'Standin' In The Rain' 등 감칠 맛 나는 기타 연 주에 'Mystery' 처럼 현악을 가미한 우아한 곡도 들어 있다. 74년 James Gang의 8번째 앨범 (Tommy로서는 2번째) 'Miami' 발매 후 그는 James Gang을 탈퇴하였는데 독자적 활동을 모색하고자 함이었다. 때마침 관록있는 아티스트와 교류하는 중요한 계기가 그에게 찾아왔 다.

        - 'Spectrum'을 계기로 재즈와 록을 풍미

퍼커션 주자로서 재즈와 록의 한계를 초월하였다는 평을 듣는 Billy Cobham은 New York Jazz Sextet를 거쳐 Miles Davis, Mahavishnu Orchestra 등의 대형 그룹과 세션을 가지며 실력을 다져온 아티스트이 다. 74년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드는 단계에서, 키보드 는 이미 Mahavishnu에서 기량을 닦은 체코 출신의 Jan Hammer, 베이스 에 Ron Carter, Joe Farell이 색서폰을, 기타리스트는 Tommy로 각각 결정하였다. 이렇게 탄생된 'Spectrum'은 매니어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고, 이에 자연히 Tommy Bolin의 명성은 높아지게 되었다. Cobham을 중심으로 각 파트가 모자이크된 이 앨범에서 Hammer의 특징 인 기타 연주같은 키보드와 Tommy의 기타 연주가 두 갈래 물살처럼 주 고 받다 엉키곤 하는 이중주 'Quadrant', 'Stratus 2'는 기타가 전면 에 나서 Tommy의 기량을 마음껏 과시하였다. 그로써 이 대형 세션은 음악의 깊이로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미처 노출되지 못한 재즈 휠링이 무한히 잠재되어 있음을 알리게 되었다.

     - Deep Purple의 4기 멤버로 마지막 영혼을 태우다.

Deep Purple은 68년 데뷔 이래 '하드 록의 왕자' 및 '슈퍼 아티스트 의 산실'로 록계에 군림해 온 거대한 활화산 그룹으로 두뇌부인 Jon Lord와 Ritchie Blackmore는 7년동안 호흡을 같이하며 수많은 인재와 걸작품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3기 Deep Purple이 Glenn Hughes(베이 스)와 David Coverdale(보컬)을 맞으면서 내놓은 'Stormbringer'서부 터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Ritchie가 하드록 일 변도를 원하는 반면, 나머지 구성원들의 음악적 양상은 조금씩 달랐 다. 이에 점차적으로 마음이 멀어지던 Ritchie는 자신의 솔로 앨범 제 작을 위해 Ronnie James Dio가 재적한 Elf를 참여시켰고, 결과에 흡족 해 하며 이들을 흡수하여 Rainbow를 구성키 위해 그는 75년 6월 Deep Purple을 정식으로 탈퇴하였다.

이 때 오디션을 통해 Tommy가 Deep Purple에 가입함으로써 바야흐로 제 4기 Deep Purple이 탄생된 것이다. 곧 바로 앨범 제작에 착수한 이 들은 독일 공연에 이어 8월 뮌헨에서 13번째 앨범을 발매하였다. 비중 이 큰 그룹이었던 만큼 세인의 관심은 온통 새로운 기타리스트에게 집 중되었다. 그럴수록 Tommy는 무거운 중압감을 의식해야 했고, Ritchie 의 음악에 젖어온 Deep Purple 팬들에게 자신만의 색채로 그룹을 변신 시켜야 한다는 결의로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새 앨범 표지는 다섯 구성원 Tommy Bolin(기타, 보컬), Jon Lord(키 보드), Ian Paice(드럼), David Coverdale(보컬), Glenn Hughes(베이 스, 보컬) 얼굴이 술잔에 담겨있고 'Come Taste The Band'란 제목이 걸려있다. 새로운 Deep Purple을 맛보라는 뜻일까? 이 앨범 수록곡 중 7곡은 Tommy의 작품으로 10월에 미국 발매에 이어 순회 공연에 나섰 다. 그해 11월에는 하와이를 필두로 아시아를 돌았는데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이 때의 동경 공연은 2년 후 'Last Concert in Japan' 으로 발매되었다.

'Come Taste The Band'에서 Tommy와 동갑내기인 Glenn Hughes의 소울 풀한 감각과의 접선은 종래의 직선적이고 하드한 사운드에 비해 부드 러운 선율을 보였는데 'Coming Home'이나 'Getting Tighter', 'Drifter', 'Dealer'에서 들려주는 Tommy의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과 윤기넘치는 작곡 솜씨는 지극히 안정되어 초기에 비해 급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곧 이어 Deep Purple 가입 전부터 준비한 Tommy의 솔로 앨범이 12월 에 제작되었는데 전체 구성을 Glenn Hughes가 돕고, 호화 캐스트로 꾸 며진 'Teaser'는 Jan Hammer와 Davis Foster(피아노, 키보드), David Sanborn(색서폰), 드럼엔 Jeff Pocaro(Toto 출신 세션맨), Pratrie Prince(Tubes 출신), Phil Collins(Genesis 출신), 베이스는 Stanley Sheldon과 Paul Stathyorth가 맡았다. 록적인 요소가 강한 가운데 재 즈 풍이 가미되어 세련되었고, 구성력 또한 나무랄 데 없다.

이는 또하나의 솔로 앨범인 'Private Eyes'와도 맥을 같이 하는데, 레게 리듬의 'People, People', 보사노바의 감미로운 'Savabbah Woman', 어쿠스틱 취향의 밸러드 'Gipsy Soul', 'Hello Again'까지 폭 넓은 수용과 특히 빛나는 곡 'Marching Powder'와 'Post Toastee'에서 받는 정감과 격정의 교차는 그가 아니면 낼 수 없는 섬세한 Tone으로 서 곡의 매력을 더해 주고 있었다.

                - 심장을 꿰뚫은 죽음의 화살

76년 7월 Tommy Bolin이 솔로로 나서며 그룹을 탈퇴하자, Deep Purple도 8년 5개월이라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Jon Lord와 Ian Paice는 Paice, Ashton & Lord를 거쳐 David Coverdale과 합류하여 제 2기 Whitesnake가 되고 베이스의 Glenn Hughes는 다시 Trapeze로 각각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후 새 앨범을 위해 그들 밴드와 함께 마이애미 호 텔에 머물던 Tommy가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76년 12월 4일, 사 인은 약물중독이 원인으로 밝혀졌고, 이 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이 죽음을 애도한 Deep Purple 구성원들이 앞서 언급한 일본 공연을 앨범 으로 제작 'Last Concert In Japan'으로 발매, Deep Purple 에게서 뿐 아니라 Tommy가 남긴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Tommy가 죽은 지 1년후인 77년에 발매된 이 앨범에는 서문이 '이 앨범을 Tommy Bolin에게 바친 다'고 되어 있어 듣는 이를 숙연케 하였다. 이즈음 Tommy가 자신의 스 타일을 확고히 하고 있었던 사실이 실황 공연이기에 더욱 뚜렷이 나타 나는데 'Burn'을 필두로 한 앞서의 히트 곡과 새 앨범 'Come -' 수록 곡을 반반 섞어 짠 이 공연은 Tommy의 번뜩이는 기지가 곳곳에 배어 있다. 예를 든다면 'Highway Star'의 경우 우리가 생생히 익혀온 후반 부를 -쵸킹과 비브라토가 엇갈리며 긴박감을 자아내다 Ritchie의 특징 인 8비트의 격렬한 피킹이 이어지며 숨 쉴 새 없는 격정이 몰아쳐 오 던- Tommy가 연주할 때면 미묘하게 비틀리는 Phrase로 Ritchie처럼 상 향선이 아니라 오히려 하향선을 그리며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선다. 동 시에 그의 창의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 그는 기타리스트뿐 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진정한 음악인으로 손 꼽히 는데 충분했다.

이러한 Tommy의 죽음은 '미완성의 아름다움'으로 말하기엔 가혹한 나 이에 찾아왔고 또 그가 연주의 안정을 찾고 도약하려는 단계였기에 더 욱 아쉬움을 안겨준다. 금년은 그가 떠난 지 17년이 되는 해이다. 그 러나 오늘 밤 쯤엔 그가 보낸 사랑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 다.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한 언제나 그도 우리를 사랑할 것이기에... 'You Told Me That You Loved Me'.(앨범 'Private Eye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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