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Gabriel - (melt down)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27일 (금) 09:56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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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Peter Gabriel
Peter Gabriel (1980)

2 조영래[ | ]

  1. 앨범 : Peter Gabriel (1980)
  2. 아티스트 : Peter Gabriel
  3. 레이블 : EMI
  4. 장르 : 프로그레시브 록 (Progressive Rock)
  • REVIEW

연극적인 보컬과 분장, 드라마틱한 스테이지 매너로 제네시스(Genesis)를 이끌었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은 솔로 독립후 월드 뮤직(World Music)과 행동하는 팝 아티스트들의 선두 주자로 활동한다. 솔로 아티스트로 나선 후 피터 가브리엘은 모두 셀프 타이틀인 석 장의 앨범들을 발표했다. 제네시스 시절의 잔재가 남아 있던 데뷔 앨범, 프로듀서로 나선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두 번째 앨범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셀프 타이틀 앨범은 비로서 피터 가브리엘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세운 음반이다. U2와 XTC등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제작을 맡은 이 앨범에서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비트를 차용한 월드 뮤직으로의 접근이 본격화되었다. 본작에선 케이트 부쉬(Kate Bush)와 함께 부른 싱글 <Games Without Frontier>가 톱 40안에 드는 히트를 기록했고,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시인이자 인권 운동가인 스티븐 비코(Steven Biko)를 추모한 는 80년대의 대표적인 프로테스트 송으로 평가받고 있다.

  • Song Description

오프닝 트랙 의 살벌하고 위협적인 소리들로 앨범은 시작한다. 스토커에 대한 곡인 는 아방가르드 재즈(Jazz)와 인더스트리얼의 기계적인 비트가 뒤섞인 암담한 사운드와 종반부의 휘파람 소리와 고통섞인 코러스로 스산함과 긴장을 더 한다. 아프리칸적인 음계를 빚어내는 실로폰 연주가 인상적인 <No Self Control>, 케이트 부쉬와 함께 부른 세련된 뉴 웨이브 스타일의 히트곡 <Games Without Frontier>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앰비언트적인 정적인 곡 <Land a Normal Life>, 그리고 유명한 저항가 등에서 두드러지는 아프로 비트(Apro Beat)와 토속적인 스케일의 멜로디들은 이후 피터 가브리엘의 행보를 짐작케 한다. 특히 <Land a Normal Life>는 정적이고 짧지만 함축적으로 피터 가브리엘의 신비한 음악 세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스티븐 비코의 죽음을 추모한 는 비장미를 넘어서 숙연함까지 안겨준다. <Family Snapshot>은 닉슨(Nixon)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했던 아서 브라운(Arthur Brown)의 일기를 토대로 만든 곡이다. 암살을 계획하고 결행하기까지의 초조하고 흥분된 심정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낸 곡으로, 제네시스 시절 피터 가브리엘의 장기였던 연극적인 음악의 매력이 살아 있는 곡이다.

  • 감상 포인트 및 평가

80년대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양심가 피터 가브리엘은 신중한 음악의 구도자이기도 하다. 몇 차례의 방황끝에 피터 가브리엘은 본작을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이끌어 갈 방향을 잡아낸 것 같다. 아방가르드의 어둠과 아프로 비트의 토속적인 정서가 어우러진 본작은 팝 음악에 던져진 수수께끼와 같은 앨범이다. (조영래, 1999.8, 아일랜드) ★★★★★

  • 관련 추천 앨범
Robert Fripp 「Exposure」
David Bowie 「Heroes」
Brain Eno 「Another Green World」


3 허경[ | ]

2집의 상업적 실패는 게이브리얼을 무척이나 의기소침한 상태로 몰아갔다. 더욱이 그러는 사이에도 그는 유럽 등지의 공연을 위해 장기간 집을 떠나 있어야 했으며, 이러한 상황은 제너시스 시절부터 오랜 투어와 스튜디오 작업 등으로 좋지 않았던 아내 질 게이브리얼과의 불화를 더욱 깊은 '위기' 상태로 몰고 갔다. 더구나 시대는 바야흐로 레이건과 대처의 반동적인 '신보수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희망찬 기대로 시작되었던 솔로 활동 초기와 달리 게이브리얼은 모든 면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더구나 게이브리얼의 소속 레이블은 애틀랜틱은 그의 작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3집의 결과에 따라 그를 방출시킬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이브리얼은 방안에 틀어박혀 새로 구입한 60 파운드 짜리 소형 드럼 머신을 시험하며 3집의 곡들을 써나가고 있었다. 게이브리얼은 78년 4월 2집 출반 직전의 인터뷰에서 "2집에서는 신서사이저를 좀 더 많이, 하지만 1집과는 달리 좀 '덜 현악기적으로' 썼으며, 아마 앞으로 나올 3집 앨범에서는 완전히 신서사이저로 구성된 몇몇 곡들을 시도해 볼 작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게이브리얼은 3집 녹음 과정에서 위에서 말한 드럼 머신을 사용해 대부분의 곡들을 작곡했다. 이는 이전과는 다른 작곡 방식이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번에는 리듬 파트를 먼저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보통 먼저 코드를 잡고, 가사와 멜로디를 먼저 쓰는 방식이었지요 ... 이번엔 먼저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보고 그 위에 '랄라랄라'하는 식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려 보고 그 다음에 가사를 썼지요 ... 저한테는 작은 혁명이었어요 ... 더구나 그 사이에 제 음악적 취향도 조금은 변했고요."

게이브리얼은 새로운 앨범의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로 각기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와 휴 패점(Hugh Padgham)을 영입했다. 릴리화이트는 영국의 펑크·뉴 웨이브 그룹들인 밴시즈(The Banshees)·사이키델릭 퍼즈(The Psychedelic Furs)·XTC 등의 앨범을 제작한 인물이며, 이후 U2의 앨범 제작에도 참여했다. 3집의 수록곡은 모두 게이브리얼의 단독 작곡이며, 영국 배스 및 런던의 타운하우스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3집 세션의 기본 라이업은 드럼머 제리 마로타·필 콜린즈, 브랜드 X 출신의 베이시스트 존 기블린, 신서사이저에 래리 패스트, 스틱 베이스에 토니 레빈 등이며, 기타리스트로는 데이빗 로즈(David Rhodes), 잼(The Jam)의 리더 폴 웰러(Paul Weller), 로버트 프립 등이 참여했다. 게이브리얼은 퍼커션과 베이스 신서사이저, 피아노 등을 담당했다.

이들 중 특히 중요한 인물은 이후 현재까지 게이브리얼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데이빗 로즈의 등장이다. 앨범의 사운드는 놀랄 만큼 독창적이며 뛰어난데, 이는 기본적으로 심벌즈를 제거한 자연 드럼 소리를 일종의 이펙터인 '게이트 콤프레서'(gate compressor)에 넣어 변형·증폭시킨 게이브리얼의 아이디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제너시스 연대기 중 앨범 부분에서 충분히 상론했으므로 이 자리에서는 생략한다).

여러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79년 말 게이브리얼은 3집의 녹음을 완성했다. 앨범은 80년 2월로 발매 예정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했다. 앨범을 들어본 소속사 애틀랜틱 레이블이 전혀 3집 앨범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두비 브라더즈 스타일의 록앤록을 선호하던 애틀랜틱 레이블의 영업담당 존 캐로드너는 앨범을 '상업적 자살'(commercial suicide)이라 불렀으며, 특히 레이블의 사장인 아흐멧 에르테군은 경찰의 고문에 의해 사망한 남아프리카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스티븐 비코에게 바치는 추도곡인 'Biko' 같은 곡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피터 게이브리얼의 레이블 '방출'을 결정했다. 앨범의 소유권은 영국의 카리스마 레이블로 넘어갔으며, 3집은 결국 80년 6월에야 영국의 카리스마 레이블과 미국의 머큐리 레이블을 통해 간신히 발매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앨범은 놀랍게도 영국 차트 2주간 1위, 미국 차트 22위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거두며 25만장을 넘게 판매되었고, 이미 1월 발매되어 영국 차트 4위에 오른 첫 싱글 'Games Without Frontiers'에 이어 'No Self Control', 'Biko'도 각기 영국 33위, 38위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땅을 치며 후회한 애틀랜틱의 경영진은 카리스마로부터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거액을 제시했으나 물론 카리스마는 '이미 성공한 레코드의 소유권'을 되팔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음악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굳이 꼽아보자면 우리는 'Intruder', 'No Self Control', 'I Don't Remember', 'Games Without Frontiers', 그리고 역시 'Biko'를 꼽아야만 할 것이다.

앨범의 첫 곡을 여는 'Intruder'는 예의 단순하고 강력한 드럼 비트로 시작된다. 필 콜린즈의 드럼은 게이브리얼 탈퇴 이후 당시까지 제너시스의 어떤 앨범보다 뛰어난 템포와 박력을 보여준다. 드럼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삐꺽이는 소리'와 이어지는 기타·키보드의 참여는 그가 이전의 '방황'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명백히 알려준다. 그의 보컬은 개인으로서의 인간 내면 심리의 어두운 측면을 두려움 없이 탐색하고 있으며, 또 그가 이러한 '심연'을 완전히 자신의 몸으로 통과해내기 이전까지는 결코 제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기로 결심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앨범 전체에서 들려오는 신서사이저와 백 보컬의 적절한 사용은 이러한 내면 심리의 복잡성(複雜性, complex)과 중층성(重層性, over-determination)을 표현하는 특히 유효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이는 'Intruder'나 'Games Without Frontiers'에 삽입된 휘파람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제명인 '침입자'(intruder)는 사람이 아니라 '고립감'(isolation)의 의인화인데, 이 침입자는 나의 '창문으로, 문으로 기어들어 와, 나무 바닥 위에, 쟁반 위에, 장롱 속에, 전화선 속에 자신의 자국을 남긴다.' 나는 끔찍한 고독 속에 홀로 던져진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전의 '신화·동화적 세계'와 '유모어', '서정성'을 포기한 대신 그 자리에 - 인식에의 의지로서의 - '자신의 내면적 불안과 절망의 직시'를 대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신화·동화적인 환상 혹은 골계의 세계가 아니며 - 단지 예술적 방식으로 표현된 - 보다 직접적인 공격이며 비판이다.

그는 자신을 통해 인간 본질의, 보다 정확하게는 당시 80년대 초 서구 문명의 한 개인이 겪는 전쟁과 같은 내면적 불안과 절망의 직시를 지향하고 있다.

그가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물론 '꿈'(dream)이지만, 그것보다는 더욱 더 '사실'(fact)이다. 그가 지금 움켜쥔 것은 한 줌의 '절망적 진리'로서의 '사실'이다. 이 앨범에서 수록된 노래들의 '공간'은 심리적 감옥 혹은 지옥으로서의 개인의 내면 심리 세계라는 공간이다. 한편 이러한 개인적 불안의 공간과 나란히 앨범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정서는 반전·반독재·반인종주의·반파시즘의 '정치적 저항의 정서'이다.

70년의 제너시스 2집 의 'The Knife'로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던 '비폭력·반전'의 정서는 79년의 솔로 2집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다가 이 3집을 통해 폭발하게 된다. 앨범의 가사는 실로 보기 드문 강력한 적극적 '저항적 휴머니즘'의 메시지를 도처에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점은 'Games Without Frontiers', 'Not One Of Us', 'Biko'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이처럼 본 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노래에 있어 가사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높아졌다는 사실에 있다. 물론 제너시스 이래 게이브리얼에게 있어 가사는 언제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본 작 이후 게이브리얼 작업에 있어 우리는 실로 - 마치 제너시스 시기에 있어 '시각적 연극성'의 경우처럼 - '가사를 모르고는 그의 음악을 이해했다'고 전혀 말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와 같이 영어권이 아닌 국가의 팬들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상황인데, 이런 점에서도 역시 필자가 언제나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본과 같이 법적인 의무·강제 사항으로 준수되는 '노랫말의 완전 번역'이 절실히 요청되어야 할 당위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아쉬운 대로 필자의 미숙한 번역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두 번째 싱글 'No Self Control' 역시 콜린즈의 드럼이 돋보이는 곡이다. 실로 이 곡에서 들려오는 콜린즈의 드럼 사운드는 가히 앨범의 음악적 백미이며, 콜린즈의 캐리어 전체를 통해서도 보기 힘든 '명연'(名演)이라 할 수 있다. 볼륨을 크게 높여 놓고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들으면 이 곡은 1, 2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강력한 '카리스마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이 곡의 가사는 실로 절망적인 개인의 내면적 심리 상태를 꾸밈없이 잘 드러낸 명시(名詩)이다. 그의 보컬은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힘을 획득하고 있으며, 게스트 보컬의 케이트 부시(Kate Bush)도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곡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기타와 키보드, 신서사이저도 모두 이 앨범을 제외하고는 어느 곳에서도 듣기 힘든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특히 앨범 전체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 특히 'Lead A Normal Life'에서 - '실로폰 소리'는 그의 초조와 불안을 표상하는 하나의 기호로까지 격상된다.

게이브리얼은 'No Self Control'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맞아요, 이 노래는 정신적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곡이에요, 거의 우울증적 심리 상태 말이에요 ... 하지만 제가 항상 그런 건 물론 아니죠."

딕 모리세이(Dick Morrissey)의 멋진 색소폰 연주 'Start'에 이어지는 다음 곡 'I Don't Remember'에서 그는 "난 내가 누구인지 몰라, 난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서류가 없어, 넌 네게 보이는 그대로 날 받아들여야 해, 지나간 건 지나간 거야, 그리고 난 상관 안 해, 속도 비고 머리도 비었어, 난 기억이 안나, 난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 전혀 아무 것도"라고 노래한다. 이 곡 역시 제리 마로타의 드럼과 토니 레빈의 스틱 베이스가 빛나는 명곡이다.

LP의 뒷면을 여는 앨범의 첫 싱글 '국경 없는 게임'(Games Without Frontiers)는 80년대 초 새로운 피터 게이브리얼의 시대를 알렸던 중요한 곡이다. 마로타의 날카로운 드럼 머신과 프립의 시니컬한 기타, 패스트의 패러독시컬한 신서사이저가 리드하는 이 노래의 제목은 영국과 대륙을 포함한 유럽 지역에서 유명한 '국제적' TV 프로그램의 불어 제목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이 곡의 반복되는 후렴 '죄 상 프롱티에르'(Jeux Sans Fronti res)가 불어 원제이며, 다른 반복 후렴구 '잇츠 어 넉아웃'(It's A Knockout)이 영어 제목이다. 이는 유럽 각국에서 방영되는 인기 오락 프로로 유럽 각국의 참가 신청자들이 등장해 야외에서 게임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국경'을 넓혀 가는 게임이다. 쉽게 말해 예전 우리나라의 '열전 일요일!'을 생각하면 되는데, 다만 참가팀들이 국가별로 나누어 등장하는 것만이 다르다.

게이브리얼은 통렬한 가사로 이러한 '어리석은' 게임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는 가사에서 "한스는 로테와, 로테는 제인과, 제인은 윌리와 경기한다 ... 그리하여 윌리는 행복하다. 수키는 레오와, 사샤는 브릿과, 아돌프는 모닥불을 피우고, 엔리코는 그걸 가지고 놀고 ... 앙드레는 붉은 깃발을, 치앙 칭은 푸른 깃발을, 그들 모두는 깃대를 꼽을 고지를 가지고 있지, 린 타이 유만 빼고는, 제복을 입고, 어리석은 놀이를 하면서, 나무 꼭대기에 숨어, 무례한 이름을 부른다 ... 쳐다보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들은 그렇게 할거야, 이것이 국경 없는 게임 - 눈물 없는 전쟁"이라고 노래한다. 이는 물론 대부분의 경우 또 다른 종류의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한 '애국심'이라는 허명에 현혹되어 다른 국가와 인종의 땅을 빼앗는 '문명 세계' 현대에 보내는 반전(反戰) 운동가이다.

이 곡에서 음악적으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패스트의 신서사이저와 마로타의 드럼 머신이 들려주는 '전자 음악적' 혹은 '테크노적' 요소에 있다. 80년 당시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던 필자의 느낌은 아마도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정도를 제외한다면 당시의 대중 음악 신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와 급진성을 갖춘 '일렉트로닉' 음악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곡 'Not One Of Us' 역시 어리석은 인종차별과 자국 중심주의에 대한 역설적 비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사를 보자: "이방인의 눈물은 그냥 물이야, 눈이 사람을 속이긴 하지만 차이는 명백해, 외국인의 몸과 마음은 눈먼 사람들의 땅에선 환영 못 받아, 네가 우리하고 비슷하게 행동하고 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넌 차이를 잘 알잖아 - 넌 우리들의 하나가 아니야, 아냐, 아냐, 넌 우리들의 하나가 아냐." 이 곡에서 들려오는 마로타의 놀라운 드럼은 2집과도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며 'I Don't Remember', 'Games Without Frontiers', 'Biko' 등과 함께 훨씬 뛰어난 아우라를 획득하고 있다. 이 곡의 말미에서 제로타의 드러밍은 아직 완숙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나름의 '신명'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곡 'Biko'는 이미 80년대 반인종차별주의·반독재 운동 가요의 대명사격이 된 곡이다. 이 곡은 그의 라이브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으로 현재까지 종종 연주되고 있으며, 특히 그가 참여한 국제사면위원회 후원 콘서트 등의 단골 레파토리로 불리워지고 있다. 곡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인권 운동의 청년 지도자로 경찰에 의해 고문사당한 스티브 비코(Steve Biko)에게 바쳐진 곡이다(가사 참조). 마로타가 곡의 기본 드럼을, 콜린즈가 수르도(Surdo) 드럼을 연주했으며, 이에 덧붙여진 백 파이프와 게이브리얼의 보컬이 비장미를 불러일으킨다. 'Biko'는 - 'Games Without Frontiers'와 함께 - 80년대의 벽두에 게이브리얼의 '새로운' 그리고 '진정한' 전성기를 알린 걸작 싱글이다.

실로 1980년 3집 앨범 <Peter Gabriel>(Charisma)은 진정 그 자신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연 '기념비 걸작'이었다.

앨범은 아마도 1980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제작한 미국 뉴욕의 뉴 웨이브 그룹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4집 <Remain In Light>(Sire), 81년 새로운 킹 크림즌(King Crimson)의 재결성 '데뷔' 앨범 (EG)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연 걸작 앨범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우리는 여기에 핑크 플로이드의 79년 <The Wall>, 저팬(Japan)의 81년 <Tin Drum>(Virgin), 토킹 헤즈의 리더 데이빗 번(David Byrne)과 이노의 81년 조인트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Sire)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앨범의 공통점은 우선 70년 거물 그룹 출신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세 장의 앨범은 70년 프로그레시브·아방가르드·글램 록 신을 이끌었던 각기 제너시스·킹 크림즌·록시 뮤직(Roxy Music) 출신의 세 거물 아티스트들이 이루어 낸 글자 그대로 새로운 '르네상스'의 서막이었다.

둘째 이 세 매의 앨범은 여전히 '정통주의적·복고주의적' 60-70년대 식 '프로그레시브 록'의 문법에 고착되어 있던 일반 대중과 평론가들의 '회고적' 보수주의 정서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80년대의 새로운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셋째 앨범은 모두 기존의 그리스·로마 등 서구적 전통에만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던 기존 프로그레시브·아트 록의 문법 혹은 전형을 탈피하여, 부분적이나마 아프리카·중동·아시아 등 여타 문명권의 감수성에서 자신의 새로운 자양분을 취하고 있다.

그 예로 아프리카적 리듬의 응용은 의 'Biko', <Remain In Light>의 'The Great Curve', 의 'Thela Hun Ginjeet' 등 세 앨범 모두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이외에도 <Remain In Light>의 'Listening Wind'에서 보이는 중동 리듬, 의 'Matte Kudasai'에서 보이는 일본적 서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제명 '마테 쿠다사이'(待ってください)는 '기다려주세요'란 일본어의 영어 표기로 당시 국내 라이선스에서 '금지곡'으로 삭제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여 80년대 초 영미권 사상계에서 지배적 조류적 조류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중심적, 탈-서구적, 탈-합리주의적 경향의 예술적 징후로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순진하게 서구와 비서구가 대등한 위치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피터 게이브리얼은 탁월한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도움을 받아 에서 명실상부한 '독창적 작가·아티스트'의 지위를 획득했다. 은 이전 1·2집의 시행착오를 말끔히 털어 버린 실로 '게이브리얼의 작품'이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단번에 다섯 걸음, 열 걸음의 성취를 이룩한 것이다.

[조절이 안돼 No Self Control]

뭘 좀 먹어야 되겠어
난 항상 배가 고프거든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지

잠을 좀 자야 되겠어
근데 밤엔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지
싫어,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지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길 좀 하고 싶어
난 아무 번호나 돌려서
난 아무나와 이야길 해
난 내가 지나쳤다는 걸 알아
이번엔 정말 너무 했어
근데 난 내가 한 일들을 생각하기 싫어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지
싫어,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지

언제나 침묵이 숨어 있었어
내가 앉은 의자 뒤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것들은 기회만 노리다가 꼭 나타나곤 했어
그것들은 움직이는 건 뭐든지 다 잡아먹어
나는 무릎이 덜덜 떨려
불이라곤 하나도 없고, 별도 다 떨어졌어
마치 벌떼처럼 말이야

   조절이 안돼
   조절이 안돼
   조절이 안돼
   조절이 안돼
   조절이 안돼
   조절이 안돼

난 네가 상처받는 걸 보는 게 싫어
넌 알고 있지
난 네가 다치는 걸 보는 게 싫다는 걸
근데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지
싫어,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지

어떤 거리를 돌아 다녀도
밤이 가고 또 밤이 가도
난 항상 빗속을 걸어다녀
난 항상 빗속을 걸어다녀
난 멈출 수가 없어
난 멈출 수가 없어
안돼, 어떻게 해야 그만 둘 수가 있지
어떻게 해야 그만 둘 수가 있지

[비코 Biko]

1977년 구월
엘리자베스 항구 날씨 맑음
그건 그냥 일상적인 사무였다
경찰서 619호실에서

오 비코, 비코, 비코 때문에
오 비코, 비코, 비코 때문에
이흘라 모자, 이흘라 모자
- 그가 죽었다

내가 밤에 잠을 청하려 할 때
나는 오직 핏빛 꿈만을 꿀 뿐
바깥 세상은 흑과 백
그것은 오직 하나, 죽음의 색깔

넌 촛불을 불어 끌 수는 있지만
거대한 불길을 불어 끌 수는 없다
일단 불길이 잡히기 시작하면
바람은 그것을 더 높이 불어 올리리

그리고 세계의 모든 눈이
지금 보고 있다 지금 보고 있다

--사용자:허경, 2003

4 # 1980: <Peter Gabriel: Ein Deutsches Album> - 독어로 부른 3집 앨범[ | ]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필자의 글에 있어서 가사의 중요성이 항상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조차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마도 필자의 탐구 대상이 된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해 보자.

프로그레시브이든 재즈이든 또 무엇이든 영미 혹은 서구권의 '팝송' 가사는 영미권의 아티스트와 팬들이 모두 평상시에 쓰는 자기네들의 '모국어'로 되어 있다. 그러니 가사는 그들에게 '안 들으려고 해도 들리는' 지경이다 - 우리가 조성모, 유승준 혹은 핑클의 노래를 들을 때처럼 말이다. 더구나 그것이 정태춘, 안치환 혹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곡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여기에 더구나 우리가 본 잡지에서 다루는 거의 대부분 아티스트·그룹들의 가사는 단순 소박한 '사랑 타령'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정태춘의 노래에서 가사를 빼고 듣는다는 것은 '전부 다'는 아닐지라도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를 놓쳐버리는 결과를 본의 아니게 발생시킨다. 아마도 정태춘이나, 서태지,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즈, 피터 게이브리얼, 크라프트베르크의 랄프 휘터, 혹은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라면 필자의 생각에 공감해주리라 생각된다(심지어 데이빗 길모어나 필 콜린즈도 공감해줄 것 같다. 이는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글자 그대로 '여실히' 증명된다).

[물론 이상의 사항은 제반 음악적 요소에 대한 해설·비평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곧 에 게재하게 될 논문 <음악을 보는 눈, 음악을 듣는 귀 - 한국 (록) 음악 비평의 철학적 조건>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하튼 1980년 3집 앨범 녹음이 끝난 후 게이브리얼은 즉시 자신의 '새로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방금 발표된 자신의 3집 앨범을 다양한 외국어로 불러 출반하려는 소망이었다. 이는 그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인터뷰집 <Peter Gabriel - In His Own Words>(94)에 실린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전 제 앨범의 독일어 버전을 녹음했지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요, 우선 제 생각엔 만약 당신이 다른 나라에서 노래를 해보신다면 관객들은 당신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즉시 알게 되지요. 그래서 설령 당신이 이미지와 아이디어의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도, 아마 한 70%의 사람들은 단지 '소리'만을 듣게 뿐 당신의 '생각'을 전혀 모르지요. 한 마디로 실패, 즉 소통이 안 된 거지요.

두 번째로 지난 번 두 투어에서 전 독일하고 프랑스에서 동요 'Me And My Teddy Bear'를 독어랑 불어로 불러 봤는데 팬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물론 제 발음도 영 아니었고, 노래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팬들은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자기네의 말로 노래한다는 그 노력 자체를 높게 평가해 줬어요. 저의 성의를 높이 사준 거지요.

세 번째로 언어 그 자체의 문제예요. 독일을 예를 들면, 니나 하겐이나 우도 린덴베르크 정도를 제외하면 독어로 노래하는 그룹은 사실 별로 없어요. 물론 전 영국인이니까 제가 노래하는 걸 다는 이해 못 하죠. 그러니까 전 어떤 부분은 그냥 하나의 '소리'로만 발음하게 되고, 독일 사람들이 들을 때 이해하지 못 하게 되는 부분도 있지요 ...

전 포노그램 레코드사에 이런 생각을 말하고 각국에 제 의견을 타진해 보았는데 관심을 보여준 나라는 독일 하나밖에 없었어요. 프랑스에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또 일본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도 불러 볼 생각이었는데 모두 거절당했지요. 전 아직도 일본어로 한 번 불러 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아시다시피 전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니까 번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겠죠. 여하튼 하거나 못 하게 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겠죠 ... 또 하나는 제 음악이 약간 어려우니까 가사를 그 나라말로 부르면 노래의 느낌이 좀 더 잘 전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44-45쪽)

일본어 앨범은 발매되지 않았고, 2000년 현재까지도 발매된 외국어 버전은 독일어 하나밖에 없다. 독일어 버전의 제작 과정을 들어보자: "가사 번역은 거의 직역에 가깝게 했어요. 어떤 이미지들은 번역이 잘 안 되는 것도 있어요. 독일어 번역은 우도 린덴베르크와도 작업했던 호르스트 케니히슈타인(Horst K nigstein)이에요. 그는 왜 어떤 말이 독어로 옮기기 힘든지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 줬어요. 그는 심지어 적당한 각운까지 맞추어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의 설명을 제가 맘에 안 들어 하면 번역을 고치고 또 설명해 주곤 했지요. 여하튼 결과는 제가 바랐던 대로 만족스럽게 된 것 같아요."

의 독일어 버전은 80년 카리스마 레이블에서 LP로 발매되었고, 87년에는 버진 레이블에서 CD로 재발매 되었다. 물론 앨범에는 노래들의 독일어 제목과 가사가 실려 있다. 독어 앨범의 노래 제목들은 대부분 직역이지만, 다만 영어반의 3-4번 곡인 'Start/I Don't Remember'가 'Frag Mich Nicht Immer'(나에게 그만 좀 물어봐)의 한 곡으로 적혀 있다. 따라서 수록곡의 수는 영어반의 10곡과 달리 9곡이다. 게이브리얼은 독일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필자가 실제로 독일어 친구를 데려다 음반을 청취시켜 본 결과 "이 사람이 독일어를 못 한다는 게 안 믿어진다. 물론 발음이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가사 전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필자로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은 - 그냥 원 곡의 반주에 독어 보컬만 덧입히면 될 것 같은데 - 앨범의 믹싱과 연주가 곡에 따라 원 영어 앨범과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크레딧에 이에 관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다). 편곡이 다른 것은 이 희귀 음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니 상관없지만, 앨범의 소리와 선명도는 영어 앨범의 그것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어떤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모양이지만, 사실 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독어 버전 'Biko'는 8분 55초로 영어 버전의 7분 30초와 길이도 다를뿐더러 편곡도 조금 다른 그야말로 희귀 버전이다. --사용자:허경, 2003

5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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