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o Pelosi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7월 1일 (일) 01: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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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Mauro Pelosi
마우로 펠로시
  • 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 장르: 팝, 록
  • 활동시기: 1972년 ~ 1979년

 

 

2 음반 목록[ | ]

3 가사[ | ]

2년 전에 Al Mercato degli Uomini Piccoli의 가사를 번역해 업로드했는데요, 최근 마우로 펠로시의 모든 가사 번역을 완료하여 여기에 올리고자 합니다. 전곡의 가사를 올리면 문서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링크로 대체하겠습니다. 번역 과정에 고려대학교 교양과목 이탈리아의 언어와 문화 수업을 강의하신 이기철 교수님의 많은 도움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 Cielo 2018-06-30


고등학생때부터 취미로 아트록 가사를 한두개 번역해봤던 대학생입니다. 위의 93년도에 올라온 번역...(제가 태어나기도 전...)은 오역이 약간 있는 것 같아 제가 번역해본 가사를 올립니다. 영어 중역이긴 하지만 한글자씩 사전을 뒤지다시피 하며 번역했기 때문에 제법 정확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Cielo 2016-05-30

4 소개[ | ]

Mauro pelosi의 홈페이지인 mauropelosi.it에 올라와 있는 글 중 특기할 만한 내용 몇 가지를 간단히 간추려 보았습니다.

  • 1949년 로마 출생, 밀라노로 이주한 다음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 60년대 말 첫 공연 후 밀라노의 'Beldisc'라는 레이블과 계약을 맺지만 그 레이블에서는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시작은 좋았지만 새로 부임한 책임자가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함.
  • 69년도에 군대에 입대한다. 그는 이 시기를 "아무 죄도 없이 감옥에 집어넣어진 기분"이라고 회고한다.
  • 69년 12월 12일, 밀라노의 'Piazza Fontana'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당시 Mauro는 밀라노 북서쪽의 Bellinzago Novarese라는 도시에서 복무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있어 1970년대는 69년 12월 12일부터 시작한다. 이전의 내 삶은 여자, 여행, 몽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 날 이후 나는 현실 세계로 깨어난 기분이었다.”
  • 동시에 그는 군 복무 당시 새벽에 병영을 몰래 빠져나가 Joan Baez의 공연을 보러 갔던 일화를 언급하며 "아름다운 기억"이라고 말한다.
  • 우울하고 지친 상태로 전역한 Maruo는 1972년 Polydor과 계약해 1집을 발표하고 큰 인기를 거둔다. 그러나 이듬해 발매한 2집은 뚜렷한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 2집 발매 후 Polydor는 Mauro에게 음악 장르를 바꾸기를 요구하지만, 그는 그것이 '음악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기며 거부하고 수 년간의 휴지기를 갖는다. (훗날 그는 이 때 자신이 '유연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동양으로 여행도 다니며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77년 3집과 79년 4집을 발표하지만, 두 음반 모두 실패했으며 이후 음악계를 완전히 떠난다. 특히 4집은 Mauro 본인도 보잘것없는 작품이었다고 자평한다. 이후 Mauro는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소소한 작곡을 하는 것 외에는 음악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위의 내용으로 보아, 3집 'Mauro Pelosi'에 실린 'Alle 4 di Mattina'는 69년에 있었던 폭탄 테러를 소재로 만든 곡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제타위키의 본 페이지에서는 그가 허위 정치집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실망을 겪었던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는데,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의 일로 추정됩니다. 폭탄 테러를 목격해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고, Joan Baez 등에서 영감을 얻어 그런 사회를 개혁하고 싶었지만 그런 시도조차 좌절된 일련의 진행을 생각하면 1집에서 드러나는 그의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정서가 이해가 되는 듯도 합니다. 한편 Mauro의 홈페이지에서 그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1집 발매 이후 어떤 기자는 내가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는지를 물었지만, 그런 건 아니다. 내 노래가 우울한 것은 단지 내가 우울할 때 음악을 쓰기 때문이다. 우울하지 않을 땐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영화를 본다. 우울할 때 나는 음악을 만든다." Mauro의 작품에서 우울함의 색채가 점점 엷어지는 까닭은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사명감을 가진 것도,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서 노래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순간순간의 감정을 가감 없이 노래에 반영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집 당시 Mauro는 실패와 좌절감에 찌들어 있었기에 서늘하게 메마른 음반을 낼 수 있었습니다. 2집에서 그는 이런 정서에서 많이 벗어나, 오히려 좀더 미적으로 정제되고 승화된 음악을 들려 줍니다. 3집은 보다 대중적인 멜로디를 갖고 있지만 가사를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벼운 선율에 이렇게 배배 꼬인 내용을 담은 것을 보면 장르를 바꾸기를 요구했던 음반사를 조롱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집은, 솔직히 본인의 말대로 그저 의욕 없이 대충 만든 음반인 것 같아 별로 할 말은 없군요. -- Cielo 2018-06-30

5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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