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fer's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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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Good Time Warrior[ | ]

  1. 앨범 : Good Time Warrior (1978)
  2. 아티스트 : Lucifer's Friends
  3. 레이블 : Warner Music
  4. 장르 : 하드 록 (Hard Rock)
  • REVIEW

독일 밴드 루시퍼스 프렌즈(Lucifer's Friends)는 여러 차례 국제적인 명성을 노리며 미국 시장을 노크했던 밴드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공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고, 끝내 록음악의 역사에서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하나로 기록되고 말았다. 영국인 보컬리스트 존 로튼(John Lawton)과 4명의 독일인으로 구성된 루시퍼스 프렌즈(Lucifer's Friends)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여러 차례 밴드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존 로튼이 유라이어 힙(Uriah Heep)에 가입하게 위해 밴드를 떠난 이후, 루시퍼스 프렌즈는 콜로세움 2(Colosseum 2)의 마이크 스타즈(Mike Starrs)를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맞이하여 여섯 번째 앨범 「Good Time Warrior」를 발표하였다. 「Good Time Warrior」와 뒤이어 등장한 「Sneak In Me」등이 잇달아 히트하며 이들은 스콜피온즈(Scorpions), 반 헤일런(Van Halen)등의 빅 밴드들과 투어를 가지는 등, 밴드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보내게 되었지만 멤버들의 잇다른 탈퇴와 분열로 끝내 해산의 길을 겪고 말았다. 「Good Time Warrior」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국내에서 CD화가 되었을만큼 국내에서 컬트적인 지지를 얻었던 앨범으로, 수록곡 중 국내 모 CF에도 사용된 <My Love>는 한동안 FM의 집중적인 리퀘스트를 받았던 곡이기도 하다.

  • Song Description

밴드 활동과 더불어 행해진 여러 세션 활동과 스튜디오 밴드로서의 루시퍼스 프렌드의 집적된 경험은 본작을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My Love>는 눈에 띄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마이크 스타즈의 시원스러우면서도 애절한 보컬, 그리고 오밀조밀하게 잘 배치된 탄탄한 연주력이 결합된 록 발라드의 걸작이다. 이외에도 70년대 후반의 퀸(Queen)의 음악을 듣는 듯한 경쾌한 록큰롤 넘버들인 <I'll Meet You In LA>와 흥겨운 싱 얼롱 송 <Good Times>, 프로그레시브 록 적인 아기자기한 연주와 호쾌한 하드 록을 이상적으로 조화해 낸 <Sweet Little Lady>와 <Gamblin' Man>등의 매력적인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 감상 포인트 및 평가

한때 루시퍼스 프렌즈는 제임스 라스트 오케스트라(James Last Orchestra)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것과 같은 록 밴드로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경험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갖은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했던 밴드 생활에도 불구에도, 이들의 음악은 어두운 그림자가 없는 밝고 호탕한 소리를 내고 있다. 날렵한 록큰롤의 그루브와 수려한 발라드가 혼합된 향기 높은 칵테일 같은 앨범. (조영래, 1999.8, 아일랜드) ★★★★

  • 관련 추천 앨범
Journey 「Infinity」
Queen 「Jazz」
Kansas 「Best Of Kansas」

횡설 수설 감상기 --- Lucifer's Friend        09/10 00:13   63 line

Lucifer's Friend -
            Good Time Warrior


  중3때의 나의 열렬한 애청곡이라면 단연  Motley  Crue의  "Home  Sweet
Home"과 Lucifer's Friend의 "My Love"였다. 지금도 심야 방송중에선 거의
전무후무하디시피 장수하고 있는 모프로그램이 막 출범할 무렵  Lucifer's
Friend의 "My Love"는 그 프로그램의 청취자들에겐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
었고,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어렵사리 녹음한  테입으
로 "My Love"를 반복해서 듣던 시절이 어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독일의 아트록 그룹으로 흔히 소개되는 Lucifer's Friend.  그러나
그런식의 소개에 나로서는 저으기 회의적이다. 이들의 앨범은 딱  3장만을
들어보았는데 두번째 앨범 "Where the Groupies Killed the Blues"와 불멸
(?)의 히트곡 "My Love"가 담긴 "Good Time Warrior", 그리고  ㅎ레코드사
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라이센스 앨범 - 이 앨범의 자켓은 이들의 데뷔작과
동일한 것으로 봐서 데뷔 앨범이 아닌가 싶다. - 이 전부이다. 모두 8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들의 음악을 단지 3장의 청취 경험만으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짓이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Good
Time Warrior"만을 놓고 볼때, Lucifer's Friend를 아트록 그룹이라고  하
는 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생각된다.

  수록곡 - Side Ⅰ:1.Old Man Roller
                  2.I'll Meet You in LA
                  3.My Love
                  4.Good Times
                  5.Little Dancer
           Side Ⅱ:1.Sweet Little Lady
                  2.Gamblin' Man
                  3.Warriors

  line up - Mike Starrs; vocal
            Peter Hecht; keyboard
            Herbert Bornholdt; drum, percussion
            Peter Hesslein; guitar, sailor lead vocal on 'Warriors'
            Dieter Horns; bass

  처음 이 음반을 사서 턴 테이블에 올려 놓은 순간부터 나는 커다란 실망
에 빠지고 말았다. "Old Man Roller"에서 "I'll Meet You  in  LA"등  "My
Love"이전의 두 트랙은 모두 아트록과는 거리가 먼 흥겨운 미국 취향의 팝
록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스피커를  통해서
경쾌하고도 가벼운 이들의 음악이 쏟아질때는 실망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조금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 실망감은 본작이  '독일의
아트록 그룹' Lucifer's Friend의 '대표작'으로 잘못 선전되어 있는데  있
지 않나 싶다. 사실 이 앨범에서 아트록의 냄새가 조금 나는 트랙은  마지
막 곡인 10분대의 대곡 "Warriors"뿐이다. FM을 휘저었던  "My  Love"역시
단순한(?) 슬로우 넘버에 불과한 곡으로 다만 그 멜로디는 나의 감성을 자
극하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결국 이 앨범은 중급 이상의 팝 록 앨범으로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  '걸
작'도 아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 'X판'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
쩌면 일그러진 모습으로 주로 소개된 Lucifer's Friend에게 이런 평가들은
부당한것일런지도 모른다. 좌우간 록큰롤 앨범으로서의 본작은 "Warriors"
의 실험성과 "My Love"의 서정성을 감안할 때 들어볼 만한 앨범이라고  생
각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고가 - 이 앨범은 Bad Finger의 데뷔  앨범을
빼면 내가 산 앨범 중 가장 고가였다 - 에 거래될만큼 뛰어난 앨범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음악성이 뛰어나다고해서 고가에 거래될  필요도
없고, 또 실제로 그렇지만도 않긴 하지만, 이 앨범을 들을때마다 상인들의
상술에 넘어간 어리숙한 나의 모습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열도 받고  한
다.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374번 제 목:[감상] Luciper's Friend-타임 워리어스 올린이:eleh (김윤정 ) 97/03/04 00:01 읽음:128 E[7m관련자료 있음(TL)E[0m


[감상] Luciper's Friend - Time Warriors앨범... 루시퍼스 프랜드... 이름하여.. 악마의 친구.. 그러나.. 음악을 들어보면.. 이름에 비해서.. 차분하고... 지적이고.. 성숙한.. 곡들... 때로는 허스키하고.. 때로는 미성이고... 음.. 후배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되네요~ 침착한.. 곡들이 대부분이고... 곡들도 슬로우 넘버들이 많은... 하드락에 충실한.. 그룹임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어떤때는... 퀸의 브라이언 메이 같은 기타톤을 구사하고.. 음... 애드리안 반덴버그 앨범과 유사한.. 느낌... 차이점이라면... 굳이 쟝르를 붙이자면... 루시퍼스 프랜드는 Art Rock에 해당(?) 한다는 사실... 보컬도... 퀸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흠냐.. 이런곳도 있었다니 기쁘구요~ 자주 글을 적을수 있게 제게 많은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루시퍼스 프랜드의.. 국내 큰인기를 모았던 곡으로... My Love라는 곡이 있죠? 깔끔한.. 와우페달과..(변화를 주지 않아서.. 더욱 신선한 감이..) 약하게.. 건 코러스가.. 인상적인.... Warriors라는 곡은.. 서정적이고... 바닷가를 연상케 하는.. 약간의 변화를 준. 와우~페달 소리.. 바닷가의 느낌을 잘 표현했더군요~ 신디사이저도.. 휘리릭~ 하는 번득이는 속도의 전개가 아닌데도... 극적인 느낌을 주는.... 슬로우 넘버인데도... 너무나 좋았던것 같습니다. 요즘.. 멜로딕 파워 스피드 메틀이.. 붐이던데... 앙그라.. 스트라토 바리우스... 심포닉...이지만.. 심포니 X , Angra Royal Hunt라는 그룹도.. 있더군요~(곡의 스피드 감보다는.. 멜로딕.. 하드락에 충실한..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곡이 받쳐주는 밴드... 그래서 그런지.. 로얄 헌트는 기타의 소리는 좀 자제된 면이.. 많이 보입니다. 보컬도 위축되어 있고.. 실력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그룹을 듣는건.. 좋아서? 하여간 루시퍼스 프랜드... 음.. 곡이 좋아서 샀더니.. 나쁘진 않더군요~ 그럼... 신디 사이저가 많이 튀는 그룹으로 �씜 퍼플,드림 씨어터(키보드가 데렉 새비지로 바뀌기전.... 케빈 무어때....),로열 헌트등이 있죠~ 그럼........ J.D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46번 제 목:LUCIFER'S FRIEND - GOOD TIME WARRIOR 올린이:yesmania(전익재 ) 96/03/26 20:48 읽음:143 관련자료 없음


깊어가는 겨울과함께 있노라면 역시 예전 특히 겨울에 들었던 음악들이 생각나곤 한다.2년전 쯤이었나 이들이남긴 앨범중 단연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78년에 공개된 명반 '역전의 용사'
Good time warrior 전곡감상을 심야 음악방송에서 녹음했을때 어린 아이들처럼 기뻐했던 생각이 눈에 아른거린다.이들의 명 성은 이미 My love 와 Warriors 로 국내에 이미 알려진 상태였 고 저역시 본작을 구하려 했으나 어마어마한 가격에 국내 음반 유통현실을 원망한적이 있었음으로 거의포기 하다싶은 이앨범을 들을수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 아닐수 없었다.이 앨범을 얘기 한다는 자체가 다소 건방진 발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좁은식견으로 내린 주관적인 생각 임을 인지하시고 너그러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LUCIFER'S FRIEND

[]

A면 1.Old man roller 2.I'll meet you in LA 3.My love 4.Good times 5.Little dancer

B면 1.Sweet little lady 2.Gamblin' man 3.Warriors

75년 겨울에 모였던 불후의 명그룹 COLOSSEUM2 에서 감동적인 보컬 솜씨를 과시했던 (특히 Down to you 는 압권이다) 마이크 스타즈는 1집만 참여하고 LUCIFER'S FRIEND 에 가입한다.이 사실은 본작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수있는데 My love와 Warriors 을 들으신 분들은 아마 아실것이다.처절하리만큼 호소력있 는 보컬이 국내 정서에 맞았는지 My love는 국내 심야방송 최고 리 쾌스트를 받기도 하였다.마이크를 제외한 4인은 모두 독일인들로 구 성되었다고 하는데 여덟곡의 장단편들로 짜여진 '역전의 용사'에서 잊지못할 곡은 장장 10여분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안는 타이틀 트랙 Warriors이다. 긴박감있는 연주와 곡구성이 마이클의 처절한 목소리와 맞물려 연금술적인 마력을 발산하고있는데 개인적으로 재수시절 큰 힘 이되었던 곡이기도하다.앨범 전체적으로 볼때는 나뭐지 소품들이 My love 와 Warriors에 가려 빛을 전혀 못보고 있지만 나름대로 들을만한 곡이라고 생각한다.위 두곡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나다는 사실에도 기인하리라.저먼록의 우수성을 입증해준 본작은 이 그룹의 표현미학이 정점에 달했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이들의 경력과 소양을 뛰어넘은 록 역사상 몇 안되는 명반으로 평가될만한 뛰어난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깊어만가는 겨울밤! 왠지 허전하고 쓸쓸하다고 생각하시는분들..
Warriors 와 My love 를 들으시면서 힘을 내시는게 어떨지....

사족:이 앨범은 루씨앤 루카나 인천의 소리그림에서 한 3,4만원선에 거래되고 있습니다,필자와같이 주머니사정이 안좋으신 분들은 몰라도 꼭 소장할만한 컬렉터스 아이템이 아닌가하네요.
위의언급한 2곡이 나머지곡들의 부족함을 충분이 상쇄하고도 남 을듯 합니다.

yesmania

2 # 촌평[ | ]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160번 제 목:[소개] [LUCIFER'S FRIEND]그들은 누구인가?
올린이:uhyunsik(윤여성 ) 96/06/23 11:54 읽음:216 관련자료 없음


LUCIFER'S FRIEND

GROUP LUCIFER'S FRIEND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독일 ROCK계보의 중요한 부분이 눈에 띄게 시들었음을 알 수 있다.
PETER HESSLEIN(1947.1.26생)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GROUP GIANTS 에서 기타를 연주했던 인물이며 PETER HECHT(1944.3.9생)와 DIETER HORNS (1946.2.28생)는LUCIFER'S FRIEND의 전신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GERMAN BONDS에서 1965년부터 활동했던 인물들이었다.여기에 HESSLEIN이 1968년에 가입하고,1969년말경 DRUMER JOACHIM RIETENBACH도 GERMAN BONDS 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 그룹은 1970년초 해체되고,그 후 PETER HESSLEIN, DIETER HORNS와 그리고 PETER HECHT는 함부르크의 예술학교에 입학, 여러 학기동안 그래픽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1970년 늦가을,GERMAN BONDS의 중심멤버들이었던 RIETENBACH,HECHT, HORNS,그리고 HESSLEIN은 공동으로 앨범출반을 결심하고 여러 연주곡들을 만들어 내었고 그후 그들의 연주에 적합한 보컬리스트로서 JOHN LAWTON을 찾아냈다.
JOHN LAWTON(1946.7.11생)은 한때 영국의 그룹 STONEWALL과 함께 HAMBURG REEPERBAHN의 TOP TEN에 등장한 바 있다.이렇게 다시모인 네명의 멤버와 새로운 보컬리스트와 함께 만들어진 앨범 "LUCIFER'S FRIEND"
는 독일보다는 미국 시카고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미국 CHICAGO EXPRESS 지는 "SUPER ENERGY를 지닌 독일 5인조 ROCK그룹의 앨범으로서 다소 LED ZEPPLIN과 닮은점이 있다"라고 그들을 평했다.이 앨범이 호평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야 이들 5명은 무대에 올랐다.특히 "BEATCLUB"의 카메라앞에도 등장할 수 있었다.
1972년1월 LUCIFER'S FRIEND는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WHERE THE GROUPIES KILLED THE BLUES"를 녹음한다.이 앨범에 대하여 CHICAGO SUN TIMES는 "흔치않는 상징적인 가사와 또한 흔치 않은 음악으로된 대작"
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이 앨범은 1974년 빌보드지가 집계한 가장 많이 방송된 POCK들에 속함).1972년 봄 이 "FREUNDE DES TEUFELS(악마의 친구들)"는 더이상 라이브 출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게된다. 그 이유를 PETER HESSLEIN은 "우리는 좋은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굉장히 많은 빚을 지고 있다"라고 밝혔다.LUCIFER'S FRIEND의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져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PETER HESSLEIN은 RATTLES와 LES HUMPHRIES SINGERS의 뒤에서 간주곡 연주자로 일하다가 JAMES LAST ORCHESTRA에서 자신의 생활비를 벌였으며,JOHN LAWTON은 LES HUMPHRIES SINGERS에서 노래를 불렀고,PETER HECHT는 자유 편곡가로써 고용되었고,DIETER HORNS는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일했다.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모인 LUCIFER'S FRIEND는 세번째 앨범 "I'M JUST A ROCK 'N ROLL SINGER"를 만들어 내었다. 이 앨범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도시 CLEVELAND의 가장 인기좋은 RADIO방송국 WMMS에서 "그해에 가장 많이 신청된 앨범"으로 선정되었다.CHICAGO에있는 BILLINGSGATE RECORDS 사가 "가장 격렬한 유럽 그룹들중의 하나(CASH BOX지)"인 이 그룹을 지속적 으로 소개하면서 그들의 앨범을 수입하려고 했는데 이때가 LUCIFER'S FRIEND 가 가장 갈채를 받았을 때였다.당시 CHICAGO SUN TIMES는 그들의 리포터인 AL RUDIS를 함부르크로 파견,무명상태의 독일 ROCK그룹을 취재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그러나 이 그룹이 미국에서 어떠한 독일그룹보다도 그때까지 가장 많은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한푼의 이익배당금도 독일로 넘어오지 않았다.
1973년 여름,세번째 앨범이 발매된 직후 LUCIFER'S FRIEND의 멤버 교체가 이루어졌다.JOACHIM RIETENBACH대신 HERBERT BOMHOLDT(그도 역시 독일 ROCK계에서 인정받고있는 인물로써 그룹 TONICS에 속해 있었으며, 1970-1973년까지 그룹 RATTLES에서 활동했다.또한 HESSLEIN과 마찬가지로 BOMHOLDT도 JAMES LAST에 의해 고용되었다)가 드럼스틱을 잡았다.
1974년초,이들 5명은 또다시 그들의 직장을 떠나,네번째 앨범 "BANQUET"를 녹음하는데만 전념하였다.이 앨범을 위해서 그들은 30명의 뮤지션들(특히 취주자 와 현악기주자들을)을 스튜디오로 초청했다.무었보다도 미국의 음악시장을 겨냥한 이 앨범은 고향땅인 독일에서도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POP지는"음악적인 미식가를 위한 ORCHESTRA-ROCK의 향연니다"라고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평가했다.
1976년초체 제작된 앨범 "MIND EXPLODING"과 함께 스튜디오 그룹인 LUCIFER'S FRIEND는 대중의 취향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음반회사인 PHONOGRAM은 이 앨범을 발매한지 1년후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앨범을 시장에서 회수해가 버렸다.그동안 그들은 MARIUS MULLER-WESTERNHAN- GEN을 위해서 연주를 했으나 그들은 곧 그일에 식상해 버린다.PETER HESSLEIN 은"결국 우리는 ROCK뮤지션들이고 그렇게 남을것이다."라고 단언하고 ROCK 무대로 귀환할것을 결심한다.1976년 가을 보컬리스트 JOHN LAWTON이 URIAH HEEP에 참가함으로서 LUCIFER'S FRIEND는 보컬없는 그룹이 되었다.
IAN CUSSICK을 섭외하는데 실패한 이들 네명은 1977년 가을,영국음악신문에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통해 MIKE STARRS(1947.
11.10생,그는 스코틀랜드인으로써 자수성가한 뮤지션이었다.1960년대말 런던에서 SPINNING WHEEL이라는 그룹을 조직-이 그룹에 RICK WAKEMAN도 속해 있었다-그리고 STRAWBS를 거쳐 1975년에는 COLLOSEUM II의 멤버가 되었다)가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가담했다.MIKE STARRS와 함께 LUCIFER'S FRIEND는 "GOOD TIME WARRIOR"앨범을 녹음했는데 이 앨범으로 그들은 1970년대초의 그들 최고의 시절과 맥을 이을 수 있었다.100,000MARK를 들여 제작된 이 작품으로서 그들은 LAKE(독일그룹)과 비교될 수 있는 그룹이 되었다.
앨범커버는 LUCIFER의 상징적인 인물로써-이전의 앨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함부르크인인 HANS HELBERG(1951년생)가 묘지에 묘사되어 있다.LUCIFER'S FRIEND는 스튜디오에서 구상된 소리들을 무대에서도 재현할 수 있도록 제2의 키보드 주자로써 ADRIAN ASKEW를 고용하게 된다.
ADRIAN ASKEW(1947.3.13생,그는 14세때 TONY AND KINGTONES밴드에서 연주했었고 1970년부터 EDISON LIGHTHOUSE에서 연주,1974년 ATLANTIS의 멤버가 되었고,그 후 NEIL LANDON을 위해서 연주했다.)와 여러차례 리허설을 갖은 LUCIFER'S FRIEND는 ROCKPOP에 출연(1978.10.14)한후 함부르크의 뮤직홀에서 공개적인 COMEBACK연주회를 개최(10월의 마지막날)했다.그러나 거대한 조명과 사운드 장치에도 불구하고 이 그룹은 그들의 복잡하고 또 부분적으로 명료하지않은 ROCK리듬으로서 관객들을 감격시킬 수가 없었다.
1978년도가 지날무렵 "SOUND&MUSIC FESTIVAL '78"(도르트문트의 WESTFALEN홀)에 나타나,VIA TV쇼로 중계된 "ROCKPALAST-FESTIVAL"
에서 연주했다. 1979년 봄,LUCIFER'S FRIEND는 대륙순회공연중 MANFRED MANN의 OPENNING그룹으로 등장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 그룹에게 가장 좋은 앨범 판매고를 올려준 앨범은 1980년쯤에 발표되었던 "SNEAK ME IN"이었다.미국 시장에서 WAVAW(WAMEN AGAINST VIOLENCE AGAINST WAMEN)가 이 앨범의 커버를 바꾸도록 한의하는 등 이 앨범은 화제에 올랐다.일직선의 리듬과 다듬어진 하모니가 훌륭하게 담겨있었으나,다른 HARD ROCK그룹의 판매고를 앞지를 수 없었다.독일의 SCORPIONS와 미국의 HARD ROCK그룹 VAN HALEN과 함께 순회공연을 가진 그들은 NURBURGRING의 FESTIVAL(1980.5.31)과 "ROCKPALAST"
방송에 출연(7.19)했으나 앨범 판매고에는 이렇다할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LUCIFER'S FRIEND는(CURT CRESS가 HERBERT BORNHOLT대신 드러머로 참가)1980년 가을 JOHN LAWTON의 솔로앨범 "HARDBEAT"에서 연주를 했는데,이 앨범은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사장되었다."BEAT CLUB"
에 출연(1980.10.31)한후 MIKE STARRS와 ADRIAN ASKEW는 그룹을 떠났다.(1981년초).MIKE STARRS대신에 옛 멤버 JOHN LAWTON이 다시 그룹으로 돌아왔다.)"그는 새로운 앨범의 제작에 있어서 더 훌륭한 HEAVY- ROCK SINGER였기 때문이다"라고 PETER HESSLEIN은 말한다).
ADRIAN ASKEW대신에 역시 옛 멤버였던 PETER HECHT가 키보드를 맡았다.옛 멤버들로 새롭게 이루어진 LUCIFER'S FRIEND는 1981년 봄,영국의 FARMYARD스튜디오에서 앨범 "MEAN MACHINE"을 녹음한다.이 앨범의 제작에 대하여 RECORD WORLD지는 "네명의 악마같은 독일인들과 한 영국인이 잠깐동안의 HEAVY METAL경향의 음악을 행했다"라고 보도했다.
마지막 앨멈인 "MEAN MACHINE"을 녹음한 후 LUCIFER'S FRIEND는 새로운 베이스주자 ANDRESS DICKE(DIETER HORNS는 그의 밴드 NEW COMIX로 전향했음)과 함께 독일 순회공연(1981.9-10)을 떠난다.그들의 인기 하락과 더불어 모든 공연은 클러과 작은 홀에서 이루어졌으며,비평가들도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이 5인조 그룹은 ,모두 뛰어난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을 그들의 무대로 불러들이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다.이로써, 계속해서 그룹활동을 해야될 필요성을 느끼지못한 LUCIFER'S FRIEND는 1982년도를 끝으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된다.

COPY FROM UNDERGROUND PAPYRUS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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