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병일기0316

1.1.1.3 (토론)님의 2015년 1월 2일 (금) 22: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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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6 (금)

몸은 나아졌다.
어제는 사격을 끝내고 오늘은 12km행군을 했다.
휴지를 잘 대면 50km도 할 수 있을듯.

나도 작은것에 기뻐하는 삶을 살고있다.
오늘 짱박혀있던 청주를 발견하여 상점을 받았는데 기뻤다.
이 기쁨은 안도감이다.(벌점이 쌓이면 주말 휴식 반납이다.) 인간은 관계속에서 규정된다.

정훈이라는 이름의 꼬마가 같은 내무실에 있는데 이상하게 내 말을 재미있어한다.
귀염성도 있는 친구라 나도 잘해주고있다.
나와는 좀 다른 삶을 살아온 녀석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것이 재미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아직 나에겐 허기진 것이다.
이 허기는 너무 감성이 예민할 때 형성된 것이라 평생 갈지도 모르겠다.

군대는 효율적인듯 하면서 관성에 젖어있다.
최강의 복지부동을 자랑하는 조직이라고나 할까.
대신 아랫사람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다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낸다.
그 짜증은 후임에게 전이되고 전이되고 전이된다. 확대되며.

건빵이 왔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너희들보다 군생활 오래했고 이 프로세스가 형성되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렸다고.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타성에 젖은것도 많은데 그것들은 결코 고치려하지 않는다.
총대를 메기 싫기때문이다.
남들 하는만큼만 하자, 줄을 잘서자, 튀지말아라가 그들의 모토이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

  • 해설

4주짜리 훈련병에게는 새것이라곤 팬티 두장, 러닝 두장, 양말 두개가 고작이다.
나머지는 모두 앞선 기수의 훈련병들이 쓰던 것을 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이즈가 맞고 자기발에 편한 전투화를 고르는 것이다.
왼쪽은 괜찮았는데 오른쪽 뒤축이 접혀 아킬레스건을 자꾸 누르는 바람에 너무 아팠다.
나중에는 우유곽을 접어서 넣고 휴지를 대는 등 별짓을 다 했지만 결국 그 부분에 물집이 잡혀 행군할 때는 활동화[운동화]를 신고가게 되었다.

수양록을 쓰는 도중에 건빵이 왔다.
군대 건빵은 의외로 맛있다.
특히 우유와 함께먹으면 상당히 좋다.
그런데 퇴소하고 난 뒤에 사먹은 건빵은 그런 맛이 아니었다.
그 환경속에 있어야 그런 맛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과 한달간의 군생활[=인생의 작은 구멍]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던 가장 큰 압력은 바로 '탁류에 몸을 섞어라.'라는 것이었다.
밤낮 술먹으면서 되도않는 얘기를 해야하고...
종종 단란주점이나 미시클럽같은 곳으로 가서 껄쭉하게 놀아야하고...
사원들의 업무부하를 낮추기 위해 남의 돈을 받고 하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떨어뜨려야 하고...
이런 압력들이 좀더 단순하고 강압적으로 존재하던 곳이 군대였다.

뭐 나도 지금 조금은 그렇게 섞여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나는 아저씨가 되지않기로 마음먹었고...
그 안에 속하지 않기위해 나름대로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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