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꿈

1.1.1.3 (토론)님의 2015년 1월 2일 (금) 22: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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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두통,꿈

 

몇일동안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두통이 찾아올때 마다 나를 구원해 주곤 하던,
기다랗고 하얀 알약 두개를
보리차와 함께 연달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두통이 가실거라 기대를 했었지만,
트림할 때 마다 올라오는 약 냄새를 참으며,
충분하다 못해 과도할 정도의 수면을 일부러 취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편두통은 내 머리에 전기 충격을 가하듯
약간씩 고통의 잔상을 남기며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

오늘 아침
꿈에서 현실의 문으로
막 첫발을 내딛을 때도
나에게
현실에 대한 인지를
맨 처음 느끼게 해줬던 감각은
사물의 뿌연 잔상과 함께
머리를 강타하기 시작하는
편두통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편두통 말고도
뭔가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사.랑.하.고.있.다'라는 지나칠 정도의 확신..

당황스러울 정도로
꿈속에서 생생했던 그 확신은
해가 중천에 떠올라
다시 지구 반대편을 비추러
하늘에서 사라져 버릴때까지도
현실의 느낌과 이어져
나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다.

왜였을까...
그를 6년 넘게 만나면서도 한번도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고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왜였을까...

그가
고양이 털이 잔뜩 묻은 담요 위에서 누워서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자신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달라고 부탁하던 그 순간부터,
그와의 시간에서 느꼈던
성마르고 결핍된 감정의 응어리들이
한 순간에 증발해 버린 것처럼,
그 남자가
내가 처음 접하는
미지의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화가 날때도 눈을 감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던
긴 속눈썹 아래의 그늘이
세상 무엇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껴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그의 몸이
그가 더이상 소년이 아닌
남자임을 내게 각인시켜주어서?

그와 만난지 6년만에야 그를 사랑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꿈을 꾸다니..

새삼스러움과 놀라움..
아쉬움과 슬픔..
기쁨과 의아함등이 뒤범벅된 감정들이
편두통의 고통과 더해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와 보냈던 시간들을 되짚어보면서,
오늘 나는 문득 나라는 존재가
그를
아프게 만들어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에게는
불쑥 찾아오는
편두통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잊어버리고 있으면
어느날엔가
불쑥 다시 찾아와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지만,
그럼으로써
그 사람이
'살아있다'라는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비를 기다리는 사막의 베드윈처럼
나를 원하고 있었다.

그를 만났던 그날의 지하철역이 나에게는 커다란 인생의 전환점이 됐었다는걸,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더 이상 부정할수가 없어졌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사랑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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