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뒤지기

1.1.1.3 (토론)님의 2015년 1월 2일 (금) 22: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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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LP뒤지는 짓은 차마 못하겠다.
힘들다.
늙었나부다...T_T

제 목:판뒤지기 관련자료:없음 [ 4034 ] 보낸이:정철 (zepelin ) 1999-08-15 00:33 조회:74

마음의 허전함을 달랠길 없어 오늘도 없는 돈 싸들고 친구놈이랑 판사러 나갔다. 오늘의 목적은 라이센스 판과 가요판을 싸그리 뒤져서 쓸만한 판을 물어오는 것이었다.

회현 지하상가에 가서 원판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그전에 몇장 집어가서 그랬는지 별로 살만한 것이 없었다. Doors의 Morrison Hotel이 아주 깨끗한 판이 있어서 살까하던 참에 아줌마가 그건 만원이라고 해서 놨다. 참고로 여기는 할아버님 한분과 딸내지는 며느리로 보이는 여인 한명이 운영하는데 (그리고 누군가 조력자가 또 있는듯) 할아버지는 인심이 후한 반면 아줌마는 짜다. 따라서 계산할 때는 할아버지 계실때 하는 것이 이익이다. 할아버지는 기분내키는대로 깎아준다. 말만 잘하면 한두장은 더 껴준다. 애석하게도 며느리 있을때 계산하는 바람에 도어스도 못집고 나머지도 제값 다 쳐주고 샀다.

재미있는 판이 좀 있었는데 가요중에는 심형래 캐롤과 황기순 캐롤이 있었고... 김지애, 심수봉, 노사연 젊었을때 판이 있었다. 김흥국이 생각보다 다양한 음반을 내었다. 내가 본것이 3종. 고대 응원가 모음판(친구놈=SonDon이 샀다)이 있었고 별표 전축(?) 샘플러가 있었는데 아주 엽기적인 재킷이었고. 심지어는 왠 고고가요 경연대회 음반도 하나 있었다. 내가 사온것 중엔 '電子 Organ 연주의 鬼才 심 성 락 의 스테레오 전자 경음악 특선집 Vol.3' 이 인상적이었는데 70년에 발매된 것으로 신세기 레코드사에서 찍은 것이다. 전형적인 조선 뽕짝 리듬 음반으로 누군가가 한극 일렉트로닉스의 효시처 럼 말하던 것이 생각나서 사왔다. 만족스럽다...-_-

팝에도 황당한 판이 많이 있었는데... 황야의 무법자라고 크게 찍힌 라이센스판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얼굴을 구기고 있었고... 잡다한 옴니버스 뽀록판이 많이 있었다. 러시아 판이 한 서너장 있어서 한번 미친척하고 사볼까 하다가 아줌마가 시비걸까봐 관뒀다. 이러구러 한 열장 집어들고 나오는데 부루의 뜨락이라는 판가게에서도 판을 좀 내놓았길래 들여다보았다.

라이센스, 가요-4장 천원, 원판-장당 2천원

어디서 이상 야리꾸리한 독일판이 잔뜩 있어서 실망하던 차에 그린피스 자선음반이 개끗하길래 집어들었고... 라이센스에는 2 Unlimited가 있어서 그거 한장을 집었다. 과연 한장만 팔까...팔면 얼마나 받을까...생각했는데... 라이센스판은 한장밖에 없다고 그래서 나는 250원을 챙겨주려는 찰나였는데 점원이 '한장씩은 삼백원인데요'해서 나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뭐 넉장에 천원이면 한장에 삼백원인것두 부당한 것은 아니나... 사실 웃겼다.

판 뒤지는 행위는 사실 미친짓에 가깝다. 먼지 잔뜩 쌓이고 온갖 상태가 안좋은 판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뒤져보기 좋게 배열된 것두 아니고 오늘은 날씨마저 더웠다. 그런데 판을 뒤지다보면 철지난 판들... 지금 이녀석은 뭐할까 싶은 아티스트의 판들이 꽤 눈에 띈다. 그런거보고 낄낄대는것두 그런대로 재미있고. 종종 비싼돈주고 안살 음반이 라이센스로 싸게 깔려서 사는 경우도 있다. 오늘 나는 무디 블루스, 닐 세다카, 폴리스, 홀 앤 오츠 등을 사왔다. 이중 쌩돈주고 살 판이 있었다면 홀 앤 오츠 하나 뿐이었다.

아니면 목적없는 행위에 몰입하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무의미한 행위를 하면서 다른 잡다한 것을 잊을 수 있다. 그러다가 안뵈던 판이 보이면 기분 좋은거지 뭐. 여튼 판 뒤지는 행위는 경제성과는 좀 무관한 행위지만 가끔 경제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기쁨을 주기도 한다.

거북이, August 14, 20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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