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1.1.3 (토론)님의 2015년 1월 2일 (금) 19:01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ISBN:8932904197 ISBN:8908071040
신역 구역
  • 저자 :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Fyodor Mikhaylovich Dostoevsky, 1821-1881)
  • 원제 : 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The Brothers Karamazov, 1880)
  • 역자 : 이대우(신역, 직역, 2001), 김학수(구역, 중역, 1986)

1 # 거북이

1월 한달을 거의 까라마조프와 함께 보냈다는 느낌이 드는데 뭐 사실 지하철에서 만날 디비 자고 여러가지 다른 것들에 신경쓰다보니 그닥 열심히 읽진 못했다. 그리하여 겨우 전체 소설의 절반정도를 읽었다. 그리고 잠시 쉬기 위해 이렇게 중간정리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3부부터 이어서 읽으려면 내가 뭘 어떻게 읽었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처음 읽어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다. 그동안 분량이 너무 길어서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중고책을 구매하던 중 묻어서 사게되었고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드디어 책을 연 것이다. 까라마조프를 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드는 생각은 그가 '근대인'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나에게 근대와 현대는 그다지 구분이 되지 않는 개념이며 현대라는 말은 근대와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현시대인들의 오만함이 반영된 말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이 근대인과 다른 점이라고는 원폭을 경험했기 때문에 한방에 이 세상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점 외엔 별로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도 매우 이중적이었던 사람이라고 하며 이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그 이중성을 다양한 양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일부 모델이 되었다는 개망나니 아버지 '표도르'의 거침없는 행동들은 작가의 억압된 리비도의 발현으로 보이는 것이다. 특히 표도르가 가지고있는 무분별한 행동들을 '굳이'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특유의 세밀함으로 하나의 일체감을 지닌 변태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사회주의자였다가 나중에는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던 자신의 체험을 이반과 알료샤라는 두 아들들에게 나누어 그들로 하여금 표현하게 하는 것 역시 작가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작가의 가장 빛나는 문학적 성취라고 알려진 '대심문관' 부분은 이반의 입을 통하여 분출한 것이니 그가 진짜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는지는 역시 의심스럽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끝까지 부유한 환경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그의 인생, 농노들에게 맞아죽은 아버지, 행동가는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이념에 탐닉해 사형장까지 끌려갔다가 드라마틱하게 받은 사면, 그리고 이어진 시베리아 유형생활, 평생 함께한 간질병(넷째아들 스메르쟈꼬프가 괜히 간질병 환자가 아니다) 등 그의 인생은 그를 병적인 근대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근대인에게 스토리라인 따위는 이미 무의미한듯 하다. 이 긴 소설에서 스토리를 알려주기 위해 할당된 페이지는 극히 적다. 나머지 페이지는 인물들이 흑인 래퍼(?)처럼 쏟아내는 논변들에 의해 메워져있다. 가장 망나니인 아버지 표도르조차 자신이 뱉어내는 기이한 헛소리들의 의미를 의도 혹은 인식하면서 뱉어낼 정도이니 적어도 내 눈에 이 책의 인물들은 모두 이지적인 래퍼들이다.
작가는 책을 쓸 것은 많고 손으로 긁적이자니 끝도 없고 해서 훗날 (헌신적인 아내가 되는) 속기사를 고용해 그 앞에서 말로 쏟아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광기에 찬 노인이 흥분해서 떠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하다.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흥분 잘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그건 그나마 점잖은 이반과 알료샤에게도 해당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숱하게 등장하는 감탄사와 부연설명, 과장된 묘사 등은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한다. (원고료때문에 굳이 글을 길게 썼다는 혐의를 받고있기도 하다.)

스토리라고 할것도 없지만 간단하게 따라가본다.

  1. 1부






일반적으로 라키친은 스메르쟈꼬프와 함께 매우 비열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듯 한데 내 보기에 작가는 그 둘에게도 꽤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 나 또한 그들은 드미트리나 다른 까라마조프들과 같은 정도로 사랑받고 또 미움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라키친은 알료샤조차 까라마조프적이라는 것을 지적할 정도로 통찰력이 있다.





  1. 2부








이 소설을 보면서 느낀 희한한 점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정약용과그의형제들'과 꽤나 유사하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표를 그려보자.

- 정丁 까라마조프
배다른 형제 첫째와 나머지 세형제가 다름 첫째, 두셋째, 넷째(?)가 각기 다름
美 : 삶에 대한 열정가 정약전(둘째) 드미트리(첫째)
眞 : 이지적 사상가 정약용(셋째) 이반(둘째)
善 : 종교적 순교자 정약종(넷째) 알료샤(셋째)

물론 까라마조프보다야 정씨형제들 쪽이 시대를 잘 투영시키고 있으며 또 긍정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훨씬 바람직한 인물들이지만 어쨌든 이런 공통점 아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신역은 안들여다봐서 모르겠는데 구역은 중역이라고 들었다. 좀 어이없는 일이지만 중역인 구역이 신역보다 낫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 이건 둘 다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고, 한번 읽기도 힘든 소설을 두번 읽는다는 것은 매우 무리한 일이므로 나는 결코 무엇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을듯 하다.
좀 깨는 사실은 구역에 담긴 해설인데 하나는 역자가 직접 번역한 얀코 라브린이라는 사람의 해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역자가 쓴 해설이다. 그런데 이 두개의 해설 내용이 대차없다. 즉 역자는 얀코 라브린이라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듯 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개의 해설을 하나의 책 뒤에 함께 실어둔 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지적 결벽성이라고 하긴 좀 우습고...어쩌다보니 아무 생각없이 포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_-a
서점에서 신역에 담긴 해설이나 읽어야겠다. -- 거북이 2005-1-30 10:42 pm

2 # 촌평

까라마조프 형제들하면 일단 한문장이 한면을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게 무지하게 긴 문장들(실제로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과 그 알쏭달쏭한 이름들이 헛갈려서 정신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혹은 며칠 쉬었다 다시 보면 누가누군지 알수 없게되리지 않았나하는데 이글도 만만찮게 기네요^^
그런데 최근변경내역에 나타나지 않은 글들이 종종 있네요 어찌된건지 -- 몽마르요 2005-2-2 11:38 pm

일설에 의하면 러시아는 춥고 밤이 길어서 사람이 밖에 나갈 기회가 많지 않기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이 말이 많고 러시아 소설들이 미치게 길어졌다고 합니다. -_-a -- 거북이 2006-6-9 11:37 am

학술분류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