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춘아옥단춘아

1.1.1.3 (토론)님의 2015년 1월 2일 (금) 22: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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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37424762

  • 저자 : 이윤기 외
  • 원제 :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2001)

팍팍한 일상속에 있을수록 뭔가 소소한 기쁨에 메달리게 된다.
요즘 나는 인생에서 가장 팍팍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런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안부전화 혹은 문자메시지 하나, 만화책 읽기, 팬레터(?) 읽기, 내가 속한 모임의 홈페이지 만들기, 내 글이 실린 잡지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서점가기, 단순하기 짝이없는 기관총 게임하기 등등이 요즘의 나를 달래주는 것들이다.

이 와중에 접한 좋은 책 한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대담집 '춘아, 춘아...'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대담자 13쌍이 나와서 대화를 나누는데 이중 몇몇은 인상깊었고 나머지는 그저 그랬다.
어쨌거나 이 기획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지금 2001년을 살아가는 교양인들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여기서 굳이 교양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여기 나와있는 글들이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조금 무리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중 나에게 인상적인 커플에 대해 내 생각을 적겠다.

신화와 유럽문화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다룬 이윤기/이다희 부녀의 얘기는 사실 크게 인상깊지는 않았지만 이런 대화를 나눌수 있는 아버지를 둔 이다희라는 아가씨가 부러웠다.
사실 이윤기는 매우 부지런한 번역가이자 신화연구가로 알려져있는데 번역가로서의 그를 나는 잘 모르지만 신화연구가로서는 아마추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책들중 최근에 5권으로 나온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시리즈-나에게는 애틋한 기억이 서린 책들...T_T-를 보면 신화적 인물들과의 관계가 치밀하게 정리되어있지 못하다. 듣기로는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자체가 그렇게 혼재되어있고 벌핀치의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신화 자체에 대해 이성과 합리성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있는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화연구를 한다라고 말한다면 다르다. 최소한 각각의 고유명사들이 갖는 관계, 예를들면 쥬피터와 제우스,에 대해 도식화하고 신들의 계보도 정도는 그려놓고 접근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런지. 그리고 각각의 신화들이 현재 유럽인들의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있는지 그는 설득력있게 말하지 않았다(못했다?).
어쨌거나 그의 태도에는 매우 의미있는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를 알아가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서구를 극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공법으로 뚫고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 첨단에 직면하지 않으면 실체를 알 수 없다. 이윤기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그것에 대해 알고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풍수에 대해 얘기를 나는 최창조/탁석산의 대담은 사실 두리뭉실했다. 아무래도 최창조라는 인물이 풍수의 대가라고 불리어지는것에 비해 학문으로 정립하는데는 아직 미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탁석산의 태도에 인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 우리에게 디딜 발판이 없다면 욕만하지 말고 발판을 만들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가 최창조에게 요구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고 그가 '한국의 주체성'과 '한국의 정체성'에서 주장한 한국적인것을 옛것에서만 찾으려하지 말고 지금 우리에게서 찾아라라는 주장이나 인프라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 모두 그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그의 책들을 읽지 못했지만 읽어봐야겠다. 매우 시의적절한 발상이다.

최인호/윤윤수같은 쌍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편협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에 대해 얘기한 이 두사람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같은 조금은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하기보다는 공정한 게임을 해야한다는 것에 논의를 맞추고 있다. 천민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들의 얘기는 긍정적이지만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는 조금 어렵다.
난 어떻게 자본에게 인간의 얼굴을 붙여줄 수 있는가에 대해 알고싶다.

김화영/이문열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은 없지만 내가 이문열에 대해 가진 편견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말은 잘하지만 싸가지가 없다고나 할까. 잘은 몰라도 편협한 인간일거라는 억측을 하게 만들었다.

조유식/노동환의 조합 역시 이 기획이 어설프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유식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사장인데 내 생각에 조선땅의 인터넷 기업들 중에서 가장 인터넷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내 삶의 방법론을 데이터베이스와 네트워크로 잡게 되었는데 알라딘은 그런 요소들이 현재까지 가장 탁월하게 구현된 현실태이다.
그는 인터넷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있다고 믿으며, 나도 그러하다.
참고로 조유식은 월간 말지의 기자였으며 기자로서의 분석력을 십분 활용하여 조선의 진정한 건국자였던 삼봉 정도전의 평전을 썼다. 내 짧은 조선사 지식 중에서 정도전은 정약용, 정조 등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어있으며 이는 조유식의 정도전 평전을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환은 헌책방 주인인데 그는 그저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삶을 살려하는듯 하다. 나는 그의 태도 역시 긍정한다.

김우창/김상환의 얘기에서 나는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했지만 한가지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김상환의 선생님이 겪은 이야기라는데 그가 미군부대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다음날 미군이 가져다준 유리잔에 담긴 노란 오렌지 쥬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마치 하늘나라의 음식을 먹는듯했다고.
이것이 우리가 겪은 근대화일 것이다.
요즘 나는 마루야마마사오와 가토 슈이치가 지은 '번역과일본의근대'라는 책을 읽고있는데 일본이 근대를 이루기 위해 치루었던 대가들을 넘어간 채 우리는 날로 먹고있으며 당연히 우리는 만성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우리에게 서구식 근대화가 무엇인지 먼저 묻지 않는한 우리는 우리의 근대화 혹은 내적 혁신을 이룰 수가 없다. 꼭 선후관계인 것은 아니지만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닌것이다.

이 대담을 다 읽고 느낀 점은,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후학들에게 등을 대준 선배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나는 출연(?)한 26명 중에서 5명이 채 안된다고 본다.

나는?
아직 나는 면죄대상이다...-_-
잘하려고 공부하는 중이라서...^^;

September 19, 2001 (10:28)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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