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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1864년부터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후원으로 뮌헨에서 오페라를 상연하던 중에 그의 조수이자 명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였던 한스 폰 뷜로의 아내 코지마 리스트(1837 ~ 1930)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결국 코지마는 뷜로와 별거하고 바그너와의 사이에서 2명의 딸을 출산한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때 바그너는 지크프리트를 작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56세가 되어 처음 얻은 아들의 이름을 지크프리트라고 지었다. 이 곡은 지크프리트가 태어난 다음 해인 1870년 12월 25일에 아내 코지마의 생일 선물로 주기 위해 만든 소품으로, 소규모 관현악용으로 쓰여졌다. 소품이기는 하지만 이 곡은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가정의 기쁨을 느낄 수 있으므로 바그너의 걸작 중의 하나로 자주 연주되는 명곡이다. | 바그너는 1864년부터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후원으로 뮌헨에서 오페라를 상연하던 중에 그의 조수이자 명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였던 한스 폰 뷜로의 아내 코지마 리스트(1837 ~ 1930)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결국 코지마는 뷜로와 별거하고 바그너와의 사이에서 2명의 딸을 출산한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때 바그너는 지크프리트를 작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56세가 되어 처음 얻은 아들의 이름을 지크프리트라고 지었다. 이 곡은 지크프리트가 태어난 다음 해인 1870년 12월 25일에 아내 코지마의 생일 선물로 주기 위해 만든 소품으로, 소규모 관현악용으로 쓰여졌다. 소품이기는 하지만 이 곡은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가정의 기쁨을 느낄 수 있으므로 바그너의 걸작 중의 하나로 자주 연주되는 명곡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