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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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7337575X

1 # 자일리톨

조정래의 한강을 읽었다. 그의 소설 중에 처음 읽은 소설이었다. 평소 그의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그리 탐탁지 않은 눈길로 봐온 나였기에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그 분량에 있어서도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한강을 읽게 되었던 이유는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이루어진 6-70년대를 어떻게 조망할 것인가라는 내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이문열의 변경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문열을 싫어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채 먼지에 싸여 중대본부에 나란히 꽂혀있던 그 12권의 책들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그때는 시간을 어떻게든 흘러가게 만들어야 했던 군대의 말년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문열의 변경은 6-70년대를 조망하는 나름의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보다는 작가가 왜 수구반동세력의 돌격대가 되는 길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지리한 변명을 풀어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끔 만들었다. 또한, 그 시절을 살아갔던 인물 군상들을 바라보는 이문열의 시각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은 감정수준에서 끝났을 뿐, 그에 대해 객관적인 비판을 날카롭게 가할만큼 정리된 생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정래의 한강을 읽게 되었던 것이다.

한강에서 작가 조정래는 4.19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군상들이 세상과 맞부딪치며 살아가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그 중에는 권력과 가진자들에 빌붙어 서서히 정신적으로 몰락해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발악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조선팔도와 세계 각지에서 스러져갔던 더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통해, 근대화, 산업화, 공업화라고 일컬어지는 6-70년대의 경제개발의 주역은 저 수구꼴통들이 들먹이는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아니라 농토에서 내몰리며 서울의 공장에서, 그것도 부족해 베트남의 밀림, 독일의 광산, 사우디의 사막에까지 보내져 저임금과 고단한 노동에 혹사당해야 했던 이름없는 민초들이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천두만, 천칠성, 나삼득, 나복남, 나복녀, 박보금, 김광자, 문태복, 전묘숙,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는 전태일...

대학교 1학년 때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의 남한의 역사를 다룬 개설서인데, 그때는 각 학회나 동아리에서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는 했었다. 그 책의 표지에는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인 사진작가가 찍은 4.19혁명 5주년 기념시위 사진이 실려 있었다. 빗속에서 대학생처럼 보이는 일군의 남루한 사람들이 연출하는 우울하고도 경건한 침묵시위장면이 흑백의 스틸사진에 담겨있고, 그 뒷면을 넘기면 “지금 50대에 이르는 이들은 재벌 기업의 간부나 고위 공무원이 되는 등,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라고 씌여 있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한강을 읽은 뒤 바라보는 그 사진은 의미심장하다. 유일민, 유일표, 이규백, 허진, 이상재, 원병균, 박준서 등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현실과 부딪치게 되면서 날개를 하나씩 꺾여 버린 채 삶의 무게와 개인적, 사회적 욕망 속에 하나씩 허물어져가던 나의 아버지 세대들. 그들에게 품게 되는 나의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동정심, 측은함, 배신감, 허무함 그리고 경이로움. 이들에 대한 평가는 두고두고 우리 그리고 후세의 몫이 될 것이다.

조정래의 한강을 통해 정말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인물들을 만났고,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역사책에 나오는 딱딱함과 건조함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나름의 삶의 무게를 지닌 향기가 나기도 하며, 때론 악취가 나는 주체로 다가왔다. 그것만 하더라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혹자는 조정래의 한강이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에 비해 너무 도식적이고 짜임새가 없는 것 같다고 비판을 하는가 하면, 지면상의 한계로 유신 이후의 소설의 결말부분이 너무 설익게 끝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포항제철의 박태준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일견 국가주의적인 시각인 엿보인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20여년간의 삶을 이토록 짧은 분량에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조정래는 실로 큰 일을 해 낸 것이고, 우리는 나름의 시각을 통해 독해해볼만한, 우리시대를 조망해 볼 기회를 주는 중요한 텍스트를 손에 넣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 자일리톨 2004-4-20 11:02 pm

2 # 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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