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남 롯데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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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아이디어로 통한다"[ | ]

직장생활 40년 중 CEO로 25년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

출처:중앙일보 2003.6.17

요즈음 아파트건설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건설의 임승남(林勝男.65)사장은 '대도(大盜)'다.

남들은 '사오정(45세면 정년)'이니 '오륙도(50~60세까지 월급을 받으면 도둑)'이니 하는 판에 40년 직장생활에 최고경영자(CEO)만 25년째이니 말이다. 그에겐 전공도 따로 없다. 오로지 목표달성을 위한 아이디어와 정열만으로 살아온 승부사일 뿐이다.

"경영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디어 싸움입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아이디어 없이 되겠습니까."

자칭 '신격호 사관학교 1기생'인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이디어 맨'이다. 1998년 사장 취임 당시 도급순위 20위 안팎이던 회사를 불과 4년여 만인 지난해 11위까지 끌어올린 데 이어 올해 안으로 10위 이내 진입을 자신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특히 재건축 부문에선 '빅3'에 든 지 이미 오래다. 환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오히려 '캐슬'이란 최고급형아파트를 비롯, '낙천대골드로즈'등의 브랜드로 주택시장의 고급화, 차별화를 선도한 그의 혜안이 맺은 결과이다.

적어도 그에겐 불가능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밀어붙이는 힘은 영락없는 40대다. 그래서 그룹 내 별명이 '불도저'요 '해결사'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하루가 48시간쯤 됐으면 좋겠어요. 수주하랴, 현장에 가랴 하다보면 어찌나 시간이 빠른지…."

사실 임사장의 이같은 억척은 신입사원 시절 일본에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연세대 화공과 졸업반이던 64년 일본 롯데에 공채 1기로 입사하면서다. 껌장사로 시작, 한창 뻗어나가던 청년기업에 취업한 그는 일본인 동료들이 자기 집안 일하듯 업무를 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물성(物性)을 알아야 한다"며 매일 껌 70개씩을 씹도록 시키는 당시 신격호사장의 명(命)도 당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67년 롯데가 이 땅에 상륙하면서 귀국한 임사장은 이후 롯데왕국을 차리는 데 감초역할을 담당했다. 껌 공장 건설에서부터 롯데칠성.롯데삼강.호남석유화학.부산은행.후지필름 등의 인수는 물론 롯데햄.우유와 롯데리아 등 신규업종 진출 때마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도 가동 중인 시흥공장을 증축할 때는 자신이 직접 설계를 했을 정도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비서실장을 거쳐 75년 롯데칠성의 이사로 임원진에 진입한 뒤 79년 드디어 롯데리아, 롯데햄.우유, 마산크리스탈호텔의 대표이사로 'CEO 행진'을 시작했다. 이후 롯데 잠실건설본부장.부산롯데월드건설본부장.부산롯데호텔사장.롯데쇼핑 신규사업부문.롯데물산사장에 이어 지금의 롯데건설사장까지 두루두루 경영을 책임져왔다.

"최고경영자에겐 전공이 따로 없는 법입니다. 인적.물전 자원을 총동원해 최선의 목표를 이뤄낼 수 있도록 하는 정열과 지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장수(長壽)사장이라고 해서 '무골(無骨)'로 보면 큰 오산. 중동사업본부장 시절 적자 확대를 막기위해 수주를 중단했다가 "자전거가 페달을 멈추면 쓰러진다"고 야단하는 회장에게 "더 이상 밟았다간 벽을 들이받는다"며 끝내 소신을 관철시켰던 일화는 유명하다.

임사장은 지금까지 객지 생활만 15년을 했을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오늘이 있는 건 순전히 동료들 덕분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동료는 부하직원들을 일컫지만 그는 절대 부하란 말을 사용치 않을 만큼 그들을 신뢰하고 사랑한다. 토론은 할지언정 한번도 나무라본 적이 없고, 결재 때도 1백% 믿고 사인을 한다. 심지어 결과가 잘못됐을 경우에도 최선을 다했다면 오히려 격려를 해준다.

"어차피 '진짜' 일은 후배들이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자기 일처럼 권리와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미래'가 있다는 걸 가르쳐야죠."

실제로 롯데제과 시절 함께 일했던 후배들이 모두 CEO로 성장했는데, 그의 영향이라는 게 주위의 평가다.

임사장이 철저하게 현장을 중시하는 것도 어쩌면 이 같은 후배사랑과 맥이 통한다. 주당 최소 이틀씩 매년 1백60여 곳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일일이 소줏잔을 나눈다. '화이팅'을 살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 전남.북 현장직원 1백30여명과 내장산에서 가진 단합대회에선 인근 소주를 바닥내기도 했다.

'사업상'이라면 이처럼 주량이 무량(無量)이다 보니 자정 전 귀가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이지만 그에겐 요즘 남몰래 키워가는 꿈이 하나 있다. 내년 안에 중국어로 삼국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속내를 알고 보면 회사의 중국진출을 위한 개인적인 준비다. 손자를 둘씩이나 두고서도 '할아버지'이기를 거부하는 임사장. 그의 욕심과 투지가 부럽고도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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