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시인의마을

1 # 호명[ | ]

그대는 바람 불고 그대는 비 내릴 때,
나는 그대를 부를 것이다 단 하나의
가지 끝으로부터 단 하나의
꽃잎이 조용히 멀어지는 순간,
멀어지는 꽃잎이 일생을 다해 긋는
부드러운 선과 더불어
그대가 바람 불고 그대가 비 내릴 때,
나는 그대를 부를 것이다.

그대의 위태로운 자세를 위해 문득
텅 빈 배후를 제공하는 하늘,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청계천 육교 아래의 저 기나긴
밤, 거리, 가로등, 약국,
그리고 약국, 가로등, 거리, 밤,
생후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그대가
이제야 겨우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나는 가장 건조한 음색으로 그대를 부를 것이다

누군가 그대를 불렀다고 생각하여
그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단 하나의 이미지로 정화되는 생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밤, 거리, 가로등, 약국,
약국, 가로등, 거리, 밤
그대는 바람 불고 그대는 비 내리는
어느 순간,
그대는 가볍게 웃으며,

2 # 객관적인 아침[ | ]

객관적인 아침
나와 무관하게 당신이 깨어나고
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
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
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
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
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
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
구름을 통과하는 종이 비행기와
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
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
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
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
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1994년 으로 등단
2002년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간행 ||


시인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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