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데쓰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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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noue Tetsujirō ( 1855 ~ 1944 )
井上 哲次郎(いのうえ てつじろう)
이노우에 테츠지로, 이노우에 데쓰지로
  • 일본의 철학자
  • 그는 도쿄대학이 개교한 해인 1877년 당시 문학부 제1과 즉 `사학·철학·정치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정치학을 전공한다. 즉 이때는 철학과가 과로 독립하기 전이었다. 철학과는 1881년에 과로 독립한다.

INOUE Tetsujiro.jpg

2 철학과 국가

동시에 출간된 오스기 사카에의 생의 철학과 이노우에 데쓰지로의 철학과 국가는 대비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책 모두 1910년대에 발표된 글들 다수를 담고있으며 철학이라는 단어로 자기 행위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했다. 서양 철학과 과학을 끌어와 자신의 논리를 강화했으며 이노우에는 독일 유학파였고 오스기는 프랑스어에 강점이 있는 인텔리였다. 언어에 강점이 있어 유럽 언어를 직접 읽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미 당시에 상당히 많은 저작물이 번역되어 있었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활용했다. 지금은 과학과 철학이 완전히 분리되어 이해되고 있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철학은 과학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소화하여 철학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

또 몇가지 차이도 보인다. 이노우에는 국가와 국민 만들기를 위해 철학을 수단으로 활용했고 그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지금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의 논리는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들지만 그 논리를 쌓아 국가에 헌신하는 체계로 만들어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노우에와 30년의 나이 차가 나는 오스기에게 일본 제국은 민중의 억압자였고 근대국가는 이미 파산이 선고된 구체제일 뿐이었다. 그는 국제적 연대를 꾀한 아나키스트였고 국가라는 틀을 벗어난 자유를 꿈꿨다. 그는 다른 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아나키즘을 녹여내어 자신만의 철학으로 세우려고 했다.

국가라는 신체에 헌신하며 정신을 제공하려고 했던 이노우에는 평생 대접받으며 학계에 군림했고, 노동자들을 깨어나 연대시키려 했던 오스기는 가난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군인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것이 제국 일본의 선택이지만 사실 한국을 포함한 현대 국가들 대부분이 역사에서 이런 선택을 했다. 백년 전의 책들을 읽으며 지금 시기는 그 때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게 된다.

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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