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본 한국의 인권 상황

1 외국인이 본 한국의 인권 상황[ | ]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코노프, 경희대 전임)

1.1 # 머리말을 대신하여[ | ]

19세기 초반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입국하여 조선에 대한 정보를 밖으로 전달하기 시작할 때 전까지는, 조선에 대한 유럽인의 유일한 참고서는 1653-1666 년간에 표류의 관계로 본의 아니게 조선에서 머물렀던 화란인 하멜의 그 유명한 이었다. 유럽에서 이 자료가 지금도 상당히 중요시되지만, 한국에서는 일찍 (1954년) 이병도 박사의 국역본이 있고, 뒤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국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은 것 같다. 언문도, 한문도 잘 몰랐던 나이 어린 이방인이 썼기에 때로는 잘못된 관찰이나 사실적 오류도 있지만, 이미 자본화.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화란의 국민이었기에 때로는 상당히 흥미로운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의 사법 제도에 대한 하멜의 기록을 읽을 때, 과 같이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술된 국내의 자료를 읽을 때의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그 제도를 보고 경악하였던 하멜 자신의 좌절과 분노는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본의 아니게 하멜의 일행들이 제주도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발생된 사건이었다. 파멸된 하멜의 배의 파잔물 몇 개를 가져가려던 몇 명의 주민들이 붙잡혀 현감 앞으로 끌려 왔다. 표류해 온 화란인들 앞에서 현감은, 파잔물을 가져가는 것이 범죄임을 몰랐던 이 도둑이 아닌 "도둑"들에게 족장 (足掌) 30-40대의 곤장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그 다음의 광경을 하멜은 이렇게 묘사한다:

"곤장의 굵기는 팔뚝만하고 길이는 사람의 키만 하였다. 이 형벌이 어찌나 준혹하든지 ["도둑"들 중에서] 발가락이 빠져나간 자도 있었다." 산 사람의 발가락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는 순간, 하멜과 그 일행은 무엇을 느꼈을까?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도 그 때 제대로 몰랐던 그들은, 그들에게도 언젠가 그 무서운 면을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아마도 그 때 처음으로 했을 것이다. 제주도의 목사가 교체됨과 같이 신임 목사는 표류인들을 각종 방법으로 구박하기 시작 하였다. 압박과 멸시 속에서 여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가는 편 이 낫다고 판단한 6 명의 표류인들이 한 주민의 배를 탈취하여 도주를 시도하였지만, 실 패하였다. 그들이 목사에게 끌려 가 체형을 당하는 일을 하멜은 이렇게 기술한다: "각 사람이 25대씩 곤장으로 볼기를 맞았는데, 곤장의 길이는 한 발쯤 되고, 그 넓이 는 네 손가락 폭이나 되고, 두께는 엄지손가락 두께만 하였고, 때리는 쪽은 판판하되 딴 쪽은 둥글었다. 이 곤장의 형이 어떻게 무자비하게 혹독하였던지 그 맞은 사람들은 한 달이나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 밖의 우리들도 외출의 자유를 빼앗기는 동시 에 밤낮으로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체형으로 발가락이 빠지는 것을 이미 본 바 있는 화란인들이 이제 양반 지배자들이 백성들에게 내리는 "곤장형"이 무엇인지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일찍부터 이렇게 체험한 바가 있어서 그런지 하멜의 일기의 곳곳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체형의 잔학성과 위협성은 매우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하멜이 쓴 에서도 사법 제도에 대한 장 (章)이 따로 있다. 거기에서 강빈 (姜嬪)의 옥사 사건으로 김홍욱 (金弘郁)이라는 곧은 선비가 맞아서 죽은 일 (鞫殺事件), 남편을 살해한 여자나 주인을 살해한 노비를 우리 상상 이상의 고문으로 죽이는 일, 정절을 지키지 못한다는 죄목으로 유부녀를 "조리돌리는" 일, 사형을 독단으로 내리지 못하면서도 약 100대의 곤장으로 "상놈"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었던 지방관들의 무서운 폭력 등 양반 지배 체제의 폭력적 면들을 샅샅이 파헤쳤다. 조선을 가혹하기 짝이 없는 "체형의 전제 왕권"으로 규정한 것은 하멜 관찰의 결론이었다 (헨드릭 하멜 著, 李丙燾 譯註, <하멜漂流記 附 朝鮮國記>, 一潮閣, 1954. 29, 37, 76-80). 30년 전쟁 (1618-1648년간)의 광기가 아직 다 가라앉지도 않은, 이단인이나 소위 "마녀"를 가끔 화형에까지 처하게 할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유럽도 그다지 자유롭거 나 자비스럽지 않았지만, 그 배경에서도 조선의 지배 방식은 하멜에게 상당히 가혹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상놈"의 신체적 자유나 재산, 목숨까지도 관료의 명령의 한 마 디에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조선의 현실은 하멜에게 너무나도 딱하게 보였 다. 19세기 이전의 조선을 찾아가 기록을 남긴 유일한 유럽인인 그의 저술을 보고 당대 의 현실을 재구성하면, "목민관"들의 애민 (愛民)사상이나 도덕적 규범, 주민으로부터의 수취에 있어서의 자제 (自制) 등이 엄연히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태생적이고 보편적이 고 신성불가침한 개개인의 인권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인권의 개념이 차차 발생될 수 있는 토양인 피치자의 권리 의식, 치자의 준법 개념 등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상당히 미약해 보인다.

하멜이 조선을 찾아온지 이미 거의 350년이 지난 현재. 그 동안 조선 민중이 자기 권리 확립과 법치, 그리고 나아가서 정치적.사회적인 자유를 향해서 힘센 몸부림을 치면서 엄청난 희생을 부단히 치렀다. 하멜이 묘사한 조선의 전근대적인 지배 구조가 비합리적이고 가혹한 만큼, "위로부터"의 폭력과 무분별한 수취에 저항하는 민중의 투지도 강인하였다. 1862년의 대대적인 농민 저항과 1894년의 동학의 의거, 일제시대의 다양한 독립 운동과 분단 이후의 남한 진보계의 희생적인 투쟁, 4.19의 학생 혁명과 민주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1987년의 전국적인 대대적 투쟁... "상놈"의 발가락이 빠져나갈 정도로 그를 손쉽게 폭행할 수 있는 수취자를 향한 조선 민중의 분노는 다른 나라에서 가히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이 땅에서 사는 서민들이 경찰서에 가서 괄시나 언어적인 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있어도 하멜의 시대처럼 생각도 하기 무서운 "태형"에 처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끈질긴 투쟁의 소득이다. 전근대적인 지배자들이 그 기득권의 만분의 일이라도 절대로 자의로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선 민중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원님 앞에서 "상놈"의 발가락이 쉽게 빠져나가는 인권 부재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기술을 보면, 폭력적인 지배 방식과 특정 계층에 대한 인권의 박탈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 바로 여기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번 체육 시간 때 나는 무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떤 아이가 어색한 행동 이나 말대꾸로 체육 선생의 진노를 산 셈이었다. 그 선생이 아이를 자기 앞에 세워 놓고 발로 차기 시작하였다. 그 선생의 눈에 광기가 어려서 차마 옆에서 보기도 무서웠다. 그 선생은 불행한 아이를 축구공처럼 계속 발로 차고 또 찼다. 아이는 통증으로 꿈틀거리면 서도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아이가 완전히 무너진 뒤에 선생은 그를 이제 밟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이를 구출하고 싶었는데 그 선생의 광기 어린 눈이 너무 무서워 나까지 얻어맞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파시스트 수용소와 같은 학교도 아닌 학교로 나의 아들이 다니지 않으니 정말 다행이다"

위의 내용은 건국 대학교 러시아어과 초빙 교수이었던 러시아인 츠베토브박사가 그가 러어를 가르치게 된 한 외국어 고등 학교에서 1996년에 직접 목격한 일을 필자에게 구술한 것이다. "태형이 워낙 일반적이라 조선인들이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는다"고 말한 하멜이 조선을 떠난 지 이미 350년이 거의 다 된 현재. 이제 양반도 아닌 교육 공무원에게 "상놈"도 아닌 한 학생이, 조선 시대의 그것과 본질적인 차이도 없는 무분별하고 비합법적인 폭력에 묵묵히 당하였다. 그것도 한적한 곳이 아닌 일체 급우와 외국인 선생 까지 보는 앞에서이었다. 지금도 현대판의 "태형"이 별로 부끄러운 것이 아닌 것인가? 현재와 하멜 때의 차이라면, 현대적인 교육 공무원과 달리 문치를 숭상하였던 조선 시대 양반들이 보통 "상놈"에 대한 폭력을 직접 집행하지 않았던 점 이외에 별로 없어 보인 다. 조선 시대와 달리, 현대판의 학교의 "목민관"들이 사서삼경을 외우면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들이 현대판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절대적인 복종과 자기 존엄성 포기, 군대적인 규율과, 개성이 결여되는 "질서"는, 조선 시대의 목민관들의 요구 에 비해서 오히려 훨씬 심한 편이다. 조선 시대보다 더 근거 없고 명분이 없는 "위로부 터"의 폭력은 명색이 근대 국가인 대한 민국에서 대낮에 외국인까지 보는 데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이 문제를 화두로 삼아 그 다음의 이야기를 전개해 보자.

1.2 # "위대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일상적인 폭력성[ | ]

대한 민국의 헌법 11조에 의하면, 일체의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아무런 차별을 받 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법제는 구미의 그 것을 본보기로 삼아 만 들어진 만큼, "국가보안법"과 같은 특정 악법이나 사립학교법, 초중등교육법, 선거법, 노 동법 등 구체적 법률의 일부 독소 조항을 제외하고는, 현대적인 국제적 규범을 크게 벗 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광의의 사회 통념과 각종 기관들의 운영상 관례로 한국민의 상당 부분이 많은 기본적인 인권을 전혀 향유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다. 이 들 각종의 소외 계층은 형식상으로 시민권을 갖고 있는 자가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대부분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에는 법적인 보호와 권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그들은 사회의 주변부에 밀려 주류층의 성공과 안정된 생활의 발판 정도의 역할만 한다. 특히 이 현대판 "양민"과 "천민" 중에서 초중고교생들과 대학생, 대 학원.박사과정생, 윤락녀.미혼모.이혼녀.가정폭력피해자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 지식산업 의 일용 잡직 노동자 (소위 "시간 강사"), 소위 "철거민"과 노점상, 실업자를 비롯한 도시 최빈층과 중소기업의 고용자, 그리고 외국 노동자 (특히 불법 근로자)의 상황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 이들 각종 소외 계층 중에서 대표적으로 일상적인 비인 간적 대우를 받고 있는 초중고교생들과 외국인 노동자 등의 상황에 대한 나의 간단한 인 상들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ㄱ) 초중고교생. 90년대의 긍정적인 사회 변화가 가장 가시적으로 느껴지는 곳은 바로 초중고교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학생들의 목을 졸랐던 파쇼적 궤변의 극치인 소위 "국민교육헌장"이 드디어 1994년에 사실상 폐지됨으로써, 수백만 명의 학도들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인 사명"따위를 달달 외우는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하라"는식의 군대적 굴종을 체내화 (體內化)시켰던 그 무섭디 무서운 체벌들은 마침내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 되어 실제로 상당히 합리화.완화되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측, 또는 개개인 교육공무원의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문제로 삼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등 권리 주장하는 것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UN의 Economic and Social Council까지 요구했던 전교조의 합법화가 이루어짐으로써 교단 사회 내의 진보계가 이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기본적인 인권인 학생의 자기발전권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 소위 "대학 입학시험"제도의 개선 노력이 가시화된다는 사실은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위에서 말한 긍정적인 변화들로, 한국의 초중고교들은, 관제 "궐기 대회"와 "반공 교육", 교련 등의 아동의 인간성을 원천적으로 말살해 버리는 집단적 광기가 어린 행사만이 반 복되는 70-80년대의 지옥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었다. "선생"이라고 부르기 도 어려운 교육공무원이 화풀이하고 싶을 때 "동네북"의 역할을 하는 가난한 가정 출신 의 아이를 자로 마구 때려 불구자로 만들 수 있었던 시대는 확실히 지났다. 그러나 과연 지금은 재학 연령의 아동들이 태생적이고 보편적인 모든 인권을 다 향유할 수 있는가? 과연 지금은 아동은 학교에서 처음부터 연령.사회 신분과 무관하게 남을 평등한 인간으 로서 존중해 주는 것을 배울 수 있는가?

필자가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질문에 대해서 전적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학교가 과도기 중인 것 같은데, 권위주의적인 과거의 유제 (遺制)들이 그 해독을 완전히 끼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새로 발전되어 나가는 방향은 민주와 인권만을 지향하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첫째, 아동들을 폭력에 대한 무감각증, 힘에 대한 굴종 등의 체제에의 굴복으로 유도해 왔던 파쇼적인 체벌 제도는 완화되었을 뿐 근절되지 않았다. 교육법에서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처벌.징계권만 언급되고 "체벌"이라는 용어 자체도 빠져 있다는 점은, 오래된 통념과 관례상으로는 체벌의 묵시적인 허용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하여 UN의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가 1996년부터 요구해 왔듯이, 체벌을 명시적으로 법적으로 엄금하는 것은,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안이다. 그러나 처음에 체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의지를 나타났던 "국민 정부"는, 근래에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보수표를 의식하여 보수 언론들의 체벌 옹호론에 많은 양보를 한 것 같다. 체벌 교사에 무죄를 선고한 최근의 헌재의 판결을 바로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보적 목표와 현실주의적인 단기적 정책 간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 혼선은, 사실상의 체벌의 존속을 가능케 하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어떤 학교의 교장은 일선 교사들에게 체벌을 의무화시켜 체벌에 대한 기록부 작성의 지시하는 등 국제 인권 관념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체벌들을 "제도화", "법률화"시키는 자세를 취하였다.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모 초등 학교의 교사들이 체벌에 대한 부모의 항의에 부딪치자 이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인간성 모독형의 체벌 (강제적인 옷벗기기, 서로 뺨치게 강요하기, 귀 잡아당기기 등)을 선호한다. 아동에게 신체적 피해를 덜 입히는 만큼 정신적 피해를 보다 많이 끼치는 셈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거의 폭력으로 인식되지도 않지만, 아이들에게 폭언들 퍼붓고 언어적인 모욕을 가하는 것은 여전히 학교의 관습으로 남아 있다. 즉, 현 정부의 단호하지도, 일관적이지도 못한 체벌 정책은, 신체적 피해.육체적 통증 위주의 기존의 체벌로부터 정신적 모독 위주의 "신세대형" 체벌로의 이동을 초래했을 뿐, 학교 안의 파시즘의 뿌리를 뽑지 못하였다.

둘째,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움직임들이 많이 보이지만, 일방적인 훈육과 통제, 권위 강요형의 지식 전달 위주의 "상명하복적"인 학교 분위기가 인격 도야, 창조력 발휘, 아동 참여 유도 식의 교육으로 바뀐 것 같지 않다. 교육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일선 교실에서 "어른으로서의 권위"의 상징인 반말이 계속 사용된다. 한국 사회와 한국어 화계법 (話階法)의 특징을 고려하면, 사제지간에 사적인 대화에서 반말 사용이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의 평등과 공 (公).사 (私) 분별, 상대 존중법을 가르쳐야 할 민주적인 학교에서, 위계 질서를 공식화.절대화시키는 교실에서의 반말 사용이 적절치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국민 정부"의 교육부의 교실에서의 존댓말 사용 권고의 노력은 매우 고무적으로 보였는데, 이 노력이 사실상 별다른 결실을 맺지 않은 것은 "국민 정부" 개혁 정책 추진력의 취약성과 학교의 고질적 보수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상습적인 반말 사용과 함께, 현재에 많이 완화되었지만, 머리 검사.풍 기 통제.정기적 조회 등의 군대식 통제 장치들은 아직까지 학교를 "엄하고 전능한" 현대 판 목민관들이 "어린 백성들"을 "계도"하고 "통치"하는 "작은 왕국"으로 만들고 있다. 과 연, "어른"의 권력이 절대적인 만큼 이에 거역하는 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어 릴 때부터 체험해 가면서 체득한 사람은, 커서 약자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윗사 람 (교사 등의 교육 공무원)이 아랫사람 (학생)의 앞길을 열어 줄 수도, 막을 수도 있는, 절대적인 권력과 복종을 위주로 하는 학교 사회에서 자란 청년들은, 연령.직장상의 상하 관계가 상대적인 반면에 태생적인 만민 평등이 절대적이라는 현대 인권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셋째, 학교에서 폭압적인 굴종 강요의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사라진 뒤에 심리적인 공백을 메꾼 것은 민주와 인권, 학리 탐구보다 무분별한 소비주의.상업주의다. "입시"의 악몽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식 취득이 아이들에게 하나의 "부역 노동" 정도로 인식되고, 그들의 진정한 생활이 저질 대중 문화와 유행품의 경쟁적인 소비에 있는 것 같다. 돈을 비교적으로 쉽게, 그리고 부회뇌동적으로 쓰는 10대들이 재벌 그룹들의 "효자 시장"이 되어 민주적인 타인 인권 존중의 절대성 등보다 시장의 원색적인 법칙들을 더 빨리 배운다. 시장이라는 스승이 기본적인 사회 의식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아동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인간의 가치가 태생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돈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있는 후천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현대적 소비주의의 기본 원칙, 남보다 소비 감각이 뒤지거나 소비 능력이 떨어지면 동류 소비자 집단으로부터 소외되어 "왕따"신세가 된다는 소비주의적 부화뇌동의 원칙, 집단 내의 위치를 확립하고 남의 추종과 부러움을 받으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최종적인 인생의 방침 등이다. 현대적 소비주의는 "개성"과 "개별성", "개인 차별화"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보편화된 소비는 소비자 집단의 각 구성원에게 거의 의무화되어 소외 공포 심리에 의해서 부추겨진다. 요즘 최신 전자 게임들을 화제로 삼아 동류들과 이야기할 줄을 모른다면 "왕따"된다면서 피시실들에 북적거리는 아이들은 과연 개성과 독립심으로 사는가? 소비 수준이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좌우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절감하는 청년들이, 학교에서 복종과 질서를 배우면서 결국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어 소비를 잘 하기 위해서 처신을 잘하고 타협을 잘해야 한다"는 인생의 방침을 굳힐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학교에서 배우는 권위주의적인 타율성과, 시장에서 배우는 소비주의적 타율성은 결국 개인적 신념도 이념도, 철학도 없는 철저한 타협주의자.기회주의자를 배양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보수 언론들이 강조하는 선생의 권위 저하, 아동 일탈 증가, 아동 도덕 불감증, 학생간의 폭력 빈발 등의 "흔들리는 학교"의 현상들은 파쇼적 권위주의의 돌연한 부분적 와해에서 비롯된 "전도된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진정된 도덕과 선생님의 권위는 "위로부터의" 폭력과 타율적 굴종의 옛날 학교에서도 없었을 것이고, 권위주의의 완화 이후에 생긴 현상들이 이 사실들을 드러냈을 뿐이다. 선생님에 대해서 존경스러운 자세를 갖추도록 강요를 받은 학생들이 더 이상 강요를 옛날만큼 받지 않아 흉내도 덜 낼뿐이다. 그리고 "공인된" 수직적인 폭력이 억제된 만큼, 이미 폭력에 길들여져 폭력을 당연시하는 학생들이 수평적인 폭력을 통해서 반 내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 1995년부터 "학교 폭력 근절"을 외쳤지만, 별 성과는 당연히도 없었다. 수십 년의 파쇼적 정권에 의해서 만들어진 학교 안의 폭력적인 분위기가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지금 전혀 보이지 않는 집중적인 노력과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복종의 타성과 소비의 원색적이고 기만적인 쾌락에 중독되어 창조력과 혁신적 의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 그리고 최소한의 순수성도 잃어버렸 다는 것은 나라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된다. 최신 일본 만화를 보지 못하였다는 친구와 대화조차 거부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인권 의식 가르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ㄴ)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인권 침해.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수없이 많이 거론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소위 "산업 연수생"과 한국 일반 근로자들이 같은 시간과 강도의 노동에 대해서 비교도 안될 만큼 서로 다른 월급을 받는다는 임금 착취 문제, 직장에서의 학대와 구타, 산재 보상의 미흡,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월급 체불의 악습은 주요 문제로 꼽힌지 오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합법적인 산업 연수생과 불법 근로자 등의 외국인 노동의 형태도 다양하고, 노동 대가의 미달.각종의 학대.법적 신분의 결여 등의 외국인 노동과 관련된 문제들도 그만큼 다양한데, 사실은 일체의 문제들은 한국 사회의 몇 개의 구조적인 결점에 귀결된다.

첫째, 중세 사회에서 백정과 사당패들이 천인 대접을 받았듯이, 현대 한국 사회는 중소기업에서의 막노동을 철저하게 천시한다. 흔히 "3D직종 기피 현상"으로 불리는 사회적 중세는, "권력"과 "안정"을 의미하는 지식.전문.고소득 직종에 대한 비정상적인 과열 경쟁과, "피지배"와 "불안정"을 상징하는 저임금 육체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무시와 맹목적인 기피를 뜻한다. 즉, 고소득의 "지식"이 저임금의 "노동"을 지배하고 "노동" 위에 군림하는 반봉건적 후발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갈망하는 체제 순응적인 주민들은, "노동"을 해방시키고 "노동"에 존엄성을 부여하기보다는 "노동"을 무조건 포기하고 전문적.행정적 기능을 맡으려고 개인간의 비인간적인 경쟁을 벌인다. 노동이 실제로 경제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저임금 노동력 위주의 대량 생산 사회에서, 체제 순응적인 인구가 "노동"과 "낮은 신분"을 동일시하여 "노동"을 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단 노동자인 만큼 사회로부터의 응분의 존경과 대우를 기대할 수 없다. "노동자"를 "공돌이"."공순이"로 아는 사회에서, 외국 노동자의 입장이 국내 노동자의 입장보다 더 유리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

둘째, 한반도의 독특한 지정학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다른 주변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 미국에 대한 종속성이 심하고, 구미 계통의 종교인 기독교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만큼, 한국인의 인종관 (人種觀)도 철저하게 구미.백인종 위주로 짜여져 있다. 백인과의 신체적인 흡사성까지 갖추려고 머리염색.성형수술을 대량으로 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봐도 "백인 흠모"현상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고유 문화에 대한 무시와 파괴를 의미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논외로 하고, 백인들이 유색 민족들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세계 질서 하에서 백인에 대한 무분별한 흠모가 기타 인종에 대한 무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백인 (주로 구미인)에 대한 "과잉 친절"로 핀잔까지 맞는 한국인들의 동남아인.흑인에 대한 태도가 인종주의.인종 차별의 최악의 형태라 봐야 한다. "원숭이", "원시인", "깜둥이"와 같은 노골적인 언어적 폭력, 흑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에 대한 극단적인 학대, 동남아의 오래된 역사.문화에 대한 완전한 무시 등은 이 근본적인 인종주의적 태도를 잘 보여 준다. 그리하여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출신의 경우에는, 비록 그는 노동자가 아니다 해도 신체적 특징으로 인한 가장 원색적인 차별을 면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셋째, 독재가 이미 와해되었지만, 민주적 법치보다 독재 국가 특유의 초법적 인치와 정경 유착의 문화가 아직까지 더 보편적인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교육도, 명성도, 인격도 아닌 경제적 "부" (富)와 이 "부"에 의한 "인맥"일 뿐이다. "부"의 중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대학교 교직도, 초중고교의 성적도, 대학교 입학도, "신성"한 병역 의무에 대한 면제도, 정당의 공천도 다 거의 공공연하게 매매.거래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이 독특한 현상은 오랜 독재로 인한 "적법", "합법" 개념에 대한 대중적 인식.존중의 결여와, 다른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 훨씬 더 빨리 얻어진 훨씬 더 많은 풍요의 혼합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부자의 만능, 부에 대한 갈망의 이면에 빈자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와 빈자에 대한 절대적 무시가 감추어져 있다. "부자 집안"을 흔히 "좋은 집안"으로 부르고, "풍요 롭게 산다"는 말 대신에 "잘 산다"고 표현하는 언어적인 현실은 사회 인식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출신은 한국에 와서 인간적 존엄성 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위에서 보이듯이, "노동", "非백인 계 인종", '가난"에 대한 한국인의 일상적 태도를 감안하면, 아시아.아프리카 빈국들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일체의 인권을 향유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 진다. "노동하는 가난뱅이"와 "까만 인종"들이 천시를 받는 사회에서, 제3세계 노동자의 인간 존엄성부터 잘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등"과 "차별로부터의 자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사회 인식 문제에 그쳤으면 몰라도, 설상가상 격으로 구조적인 임금 착취와 불법 체류.법적 신분의 박탈 등의 보다 어려운 문제들이 겹치니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 살이"가 지옥의 축소판으로 보이기만 한다. 우선, 한국의 "산업 연수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저임금 지역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모집.투입하여 "합법적인" 임금 착취한다는 것은, 대만.홍콩.말레이지아 등의 아시아 대부분의 신흥 산업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의 경우에는, 어떨 때 4-5십만원 선에 그치는 "월급도 아닌 월급"과 주택.급식.문화 환경의 열악성 때문에 "산업 연수생"들이 보다 많은 고통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탈하여 불법 노동을 하면서라도 다른 곳에서 보다 나은 노동.생활 환경과 월급을 얻으려는 의지는 "산업 연수생" 대부분에게 생기는 마음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불법 노동의 유혹을 보다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조건적인 법 집행"보다 "정치적 필요성"에 더 쏠리는 한국의 외국인 인구 통제 정책이다. 즉, 한국인과의 결혼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대학교 공부를 통한 신분 상승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 불법 노동자들을 "현대판 천민 계급"으로 묶어 둔 한편, 불법 외국인 노동자 없이 이미 공장을 가동시킬 수 없는 중소기업인들의 "표"들을 의식해서 단속.강제 추방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는 것은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탈을 해도 강제 송환 정도의 절대적 불이익이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산업 연수생"들은 이탈을 매우 손쉽게 결정한다. 이탈한 뒤에 실제 수입이 증가되는 경우도 많지만, 일단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서 각종의 학대와 임금 체불의 전횡 등을 막아 낼 길은 없다. 저항할 힘도, 호소할 곳도, 자구할 방법도 없는 불법 노동자들이 문화.인종.신분적으로 한국 사회로부터 이중.삼중으로 소외되어 반한적 (反韓的) 감정들을 품고 있는 것은 다반사다.

결론적으로는, 지배층에 의해서 조장되는 "반 (反)노동.반 (反)제3세계"식의 왜곡된 의식과, 산업연수제도의 내재적인 결함, 그리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의 애매성 등은 외국인 근로자 노동의 무제한적인 착취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들을 만들어 주고, 외국 노동자들의 문화.사회적 체제 편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고등 교육을 계속 받아 한국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가질 기회도, 한국 노조와 연대하여 공동 투쟁을 통해서 권리들을 쟁취할 기회도, 언론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도 철저하게 빼앗긴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은, 착취와 동정의 대상이 될지언정 지식 획득.권리 투쟁의 주체는 되지 못한다. 철두철미하게 소외된 외국인 불법 노동자의 집단을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일부 중소기업인들이 막대한 이득을 벌어들인 반면에, 많은 피해자들에게 한국에서의 체류는 백해 무익의 고충과 개인적인 파탄을 의미할 뿐이다. 한국 관광 비자 등의 필수 서류들을 불 법으로 획득하기 위해서 사채업자들에게 미화 5-6천불 정도의 빚을 내서 한국에 온 뒤 에 월급 체불 등으로 빚을 상환치 못하여 귀국을 포기하거나 채권자들의 폭력에 의한 근 친들의 희생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들을 필자는 적지 않게 본 적이 있다. 산 재에 의한 노동력 완전/부분 상실, 학대로 인한 정신 이상 발생 등의 비극적인 경우들도 허다하다. 결국, 잘못된 대중 의식으로 주류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경제 구조의 하부에 서, 그리고 법의 사각 지대에서 존재하는 현대판 "천민"집단이, 대부분의 인구의 완전한 무관심, 그리고 일부 기업인의 과다한 착취로만 막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초중고교생들과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은 인권적 차원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그들은 "어른" (교사나 공장 주인, 현장 책임자) 한 사람의 판단으로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신체적 자유의 박탈 (즉, 구타), 인간 존엄성의 박탈 (즉, 폭언), 사회.경제적 불이익 (불리한 내신 정보; 월급 체불) 등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천민적" 위치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양쪽의 경우에는 억압의 외형이 비슷하나 그 의미와 방향은 판이하다. 어린이에 대한 "학교"의 테러적인 지배와 그들에 대한 소비주의 공세는, 장차 그들을 권력에 무조건 굴복하면서 "성공", 소비 분야에 있어서 남들과 살인적인 경쟁을 벌일 줄을 아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 시민"으로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권위 도전"으로 간주되어 선생으로부터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곤 한 경험, "포케몬"과 같은 최신 만화를 모르면 "인기 없는" 죄로 동급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곤 한 경험 등으로 "윗사람"과 다수에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터득한 사람은, 아예 낙오자로 전락하지 않은 한 직장에서의 "충성 경쟁"과 소비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즉, 어린이에 대한 "공권력"의 상습적인 폭력은 "훈육"적인 의미가 우선적인 반면에, 한국 사회와 어차피 동화되지 않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각종의 인권 박탈은 주로 경제적 수탈과 문화.인종.경제적 서열 질서의 확인에 따른 심적 만족을 뜻한다. 한국 근로자 월급의 절반 이하를 받으면서 보다 열악한 여건 하에서 일하는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의 경우에는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경제적 수탈의 의미가 분명하지만, 임금 체불이나 산재에 따른 정당한 보상의 거부 등도 결국 비정기적이고 과도한 수탈을 뜻한다. 그리고 구미와 일본에 대한 심한 집단적 열등감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는, 한국보다 세계 질서에서 더 불리한 주변적 위치에 처해 있는 동남아.아프리카 등지의 출신들을 박대하면서 "선진 지역"에 대한 열등감을 "후진 지역"에 대한 우월감으로 달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바 있다. 무제한적인 경제적 수탈과 "야만인", "외부인"으로서의 비하를 수반하였다는 것은 고대 희랍.로마의 노예소유제의 경우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아동들을 "예비 구성원"으로 폭력에 길들이는 사회, 외국인 노동자들을 "영원한 비(非)구성원"으로 폭력으로 다스리면서 무제한적으로 수탈하는 사회, 이 사회는 어떤 내부적 구도를 가졌길래 이 만큼 폭력을 만병통치약으로 아는가? 이 사회 내부의 "정식 구성원"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졌길래 외부인 (한시적 외부인인 아동, 영구한 외부인인 외국 노동자)에 대한 폭력의 사용은 이 정도로 보편적인가? 여기에서 지면의 제한으로 한국 사회 전체의 내부 관계 분석을 시도할 수 없고, 외부에 대한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요인에 관한 간단한 지적을 하도록 하겠다.

보통 한국 사회의 상식으로는 이 사회의 현실은 "유교적 권위주의" 내지 "유교적 권위주의의 잔존"으로 규정된다. 즉, 위계 서열의 강조, 특정 직종 (교수 등)에 대한 특수한 존경, "어른"에 대한 "가신"들의 추종적 관계, 충효와 보은 (報恩)을 내세우는 가치관 등 이 순전히 전통 사회와 그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유제 (遺制)이고, 언젠가 현대화.세계화 의 급류에 못이겨 차차 사라지겠다는 논리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유교적인 구호 ("효 도", "존장사상", "애국", "보국", "충성" 등)로 많이 치장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전시 대의 유교적 상식이 현대 상식의 집단 무의식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것도 사실이지 만, 현대 한국 사회 내부의 관계 체계는 전통적인 유교와는 구조적으로 판이한 면들이 많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통 유교의 축소와 단순화, 왜곡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왜 냐하면, 전통 유교가 원칙적으로나마 "도덕"과 "대의 명분", "구도" (求道)를 추구하였지 만, 현재 한국의 미시적 사회 조직들이 "권력"과 "돈", 종합적으로 말하면 "영향력으로" 결속되어 있다. 예외도 없지 않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임원이 재벌 총수를, 정치 지망생 이 정당 당수를, 그리고 박사과정생이 지도 교수를 각각 "인격의 모범"이나 "덕망이 높 은 오른"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밥그릇"을 보장해 줄 마피아적 "보스"로 냉소적으로 보면서도 이해 타산에 따라서 각계의 "보스"들에게 "조건부" 충성심을 다짐하는 것이다. "철새 같은" 정치인들이 몇 번씩이나 당적을 바꾸어 가면서 자기 이득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매일 보면서, "교수가 정년 퇴직으로 영향력을 잃으면 그 논문의 인용 빈도도 뚝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현대 각종의 "패거리"들의 "충성심"과 유교적인 가치 들이 같다고 볼 수 있겠는가? 도덕적 합리화의 구실을 갖고 있는 "유교적 유산"의 괴설 을 제거하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질 광경은, 수많은 작은 "권력의 피라밋"으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커다란 "전국가적 피라밋"이다. 보통 한 사람의 "우두머리"를 절정으로 하는 이들 "작은 피라밋"들의 구성 원칙은, "우두머리"가 전체 구성원들에 대해서 일종의 "생 사여탈권" (추방권, 강등권, 승진권 등)을 쥐고 있고, 하부 구성원들이 상부 구성원들, 그 리고 무엇보다도 "우두머리"에 대해서 복종과 추종을 충실히 하는 만큼 갖가지 이득을 "하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견제와 중앙집권과 분권의 균형, 다수 의 사에 의한 합리적인 결정 과정이 잘 되어 있는 것이 흔치 않은 예외에 불과하고, 대부분 의 사회 조직들이 유교적 도덕과 신권 (臣權)이 완전히 결여되는 마피아적 색채의 "전제 (專制) 왕국"들로 보인다. "밑으로부터"의 충성과 "위로부터"의 각종의 "시혜" (施惠)가 맞교환되는 커다란 "인신 장터"인 현대 한국, 이를 "전근대적 집단주의가 강한 왜곡된 후발 자본주의"나 "집단적 추종주의에 기반한 유사 자본주의"로 볼 수 있어도, "유교적 사회"로 보기가 힘들 것이다.

상하 추종 관계가 절대적 비중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의 "정식 구성원" 사이에서도 태생적이고 보편적인 인권들이 잘 지켜질 리는 만무하다. 신체적 자유의 박탈인 구타 행위가 이미 드물어졌지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반말투로 면박을 주고 호통을 치는 등의 인간 존엄성의 박탈 행위는 아직은 "직장 생활의 기본"으로 남아 있다. 지도 교수가 제자에게 취직의 가능성을 미끼로 내걸고 논문 대필 (代筆)을 강요하는 등의 일종의 "무급 잔업 강요 행위", 학과나 단과대학 차원에서 결정되어야 할 인사 문제를 대학 본부에서 대신 결정한 뒤에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는 등의 "하부 직원 결정권 침해 행위 등은 지금도 다반사다. 한 마디로, 권력의 극단적인 집중과 "밑으로부터"의 희생과 맹종을 강요하는 "상명하달"식의 마피아적 일상의 문화는, 개인의 존엄성과 사생활 향유권, 자주적 판단 등의 현대 인권적 가치들에게 전혀 설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밥그릇"이 빼앗길까 해서 평생을 "눈칫밥"으로 살아야 하는 한국의 "위대한 보통 사람"에게는 인간 존엄성의 보편성을 생각할 여유가 있겠는가?

이 "위대한 보통 사람"이 외부인.타자 (他者)인 어린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그토록 가혹하고 인권 침해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은 이유를, 바로 이 "권력과 맹종의 절대화 "에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각종의 "윗사람"들에 대한 예속적인 관계들에 대해서 한시도 잊을 수 없는 일반 한국인이, 인본주의의 보편적인 가치들보다 각 인간의 위계 서열 내 의 특수적 위치와 권력층 소속 여부를 우선 인식한다는 것은 과연 놀랄 일인가? 그리고 전사회적인 위계 서열 내의 "막내" 위치에 있고 (혹은, 그 서열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 고), 권력은커녕 기본권조차도 보장이 안되어 있는 아동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일 반 한국인들이 툭하면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체제.인식 상으로 당연한 일 이 아닌가? 내부인들이 최상의 가치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 권력과 돈 ("영향력")을 인식 한다면, 이러한 가치가 결여되는 외부인들은 내부인 집단으로부터 동등한 대접을 받을 리 만무하다. 공장의 중간 책임자가 자신보다 서열이 낮고 자신에게 달려 있으면서도 적 어도 법적인 신분이 있는 한국 노동자에게조차도 반말투와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는다면, 서열에서의 위치도 법적인 신분도 없는 외국 불법 노동자에게 못할 것이 있겠는가? 내부 인 간의 일상적인 관계가 절대적 상하 서열과 예속성, 일상화된 정신적 폭력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한, 외부인 (한시적 외부인인 아동, 영구적 외부인인 외국 노동자)에 대한 물 리적인 폭력과 횡포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1.3 # 결론을 대신하여: 폭력병의 치료법[ | ]

위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외부적 소외 집단인 재학 아동이나 해외 노동자 (특히 불 법 체류자)에 대한 각종의 인권 침해 (특히 일상적인 물리적 폭력) 현상은, 맹목적인 복 종과 "위로부터"의 시혜 (施惠) 위주의 비(非)인권적이고 반(反)인권적인 사회 전체의 일 상적인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위에서 한 예로 든 체육 교사에 의한 학생 구타 (소 위 "체벌") 행위의 경우에는, 이 일선 교사가 교장으로부터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지시" 가 아닌 "권고"나 "충고"를 받고, 학교 운영 문제들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게 되면, 학생들에 대한 조금 더 민주적이고 인권 친화적인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 아 닌가 싶다. 그리고 중소 기업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주인의 전횡과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푸대접 등이 일소되어야 외국 노동자의 인권 보호도 가능해 질 것이다. 한 마디로, 직장 마다 일선 근로자들이 어느 정도 운영 참여권을 획득하여 상부와의 평등하고 상호 존중 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서열 사회가 현대적 평등 사회로 변신하여 주변부에 밀린 사람들 의 인권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서열과 그 서열에 따른 "하향" 폭력이 지배 하는 반(半)중세적 사회에서 소외 계층들의 인권이란 가망이 없다.

그러나 서열 사회의 평등화 과정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고, 한국 내의 인권 상황이 이미 국제적으로 문제화된 오늘에는 급한 대책이 절실하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우선 각급 학교에서 학생에 대한 교사의 물리적 폭력 (소위 "체벌")과 비하적 태도 (교실 안의 반말투 사용), 언어적 폭력 등을 명시적으로 엄금하여 위반자들에게 교사 자격을 시범적으로 박탈하여야 한다. 학교의 교사 폭력 문제는 사회적 통념의 영역이자 법적인 "사각 지대"로 남아 있는 한, 본질적인 진척을 기대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법은 사회적인 통념을 앞질러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구 시대의 학교의 무수한 권위주의적인 폐습들 (교사의 불심 검사, 학생의 신체.모발에 대한 통제 등)은 정부의 해당 부서의 명시적인 엄금으로 근절되어야 한다. 이 문제들을 권위주의에 젖은 교사들의 재량에 맡겨 두면, 앞으로도 학생들의 몇 세대가 또 권위주의의 유행병에 감염될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가장 효율적이고 영향이 크지만, 이 경우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자발적이고 산발적인 "체벌" 반대 운동은 반드시 법이라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체계화.조직화될 것이다.

외국 노동자의 경우에는, 이탈만 조장하는 저임금.단체 모집.강제적 직장 배정 위주의 소위 "산업연수제"보다, "취업 허락제"는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즉, 중소기업들이 일단 외국 인력 없이 가동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산업 노동력 수입 정책"을 명시적으로 발표하여 해외의 국내 취업 지망자들에게 공공연하게 취업 허가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방식으로 취업 이민이 법제화되면, 이제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합법적 이민자가 직장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임금 액수도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적 보호와 직장 선택권, 자율적 협상권이 있는 해외 노동자를 임금 차별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고, 노골적으로 멸시.학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비(非)구미권 주민, 빈민, 노동자 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의식은 당장 없어질 수 없지만, 해외 근로자 착취를 가능케 하는 법적 허점들을 일단 일소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근 학교 교사 폭력 ("체벌")의 가시적인 감소와 해외 노동 자에 대한 동감 여론 등의 현상으로 봐서는, 소외 계층의 인권 보호가 가까운 시일 내에 강화되리라 믿어진다. 다만, 부분적 개선에 자족하여 서열 사회에 대한 평등 지향적 현대 화적 개혁의 필요성을 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1.4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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