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기계가 일상을 지배할 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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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8시 5분이 되면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한다. 대개는 층간 소음 문제이고 그 외에 밤늦은 세탁기 사용 문제, 흡연 문제 등을 당부하고, 간혹 날이 추우면 동파 방지 안내를 한다. 아주 드물게는 제발 화장실 변기에 이물질 좀 넣지 말라는 소리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안내 방송은 사람이 직접 읽었는데, 나이든 남성의 웅얼 거리는 소리가 민원이 많았는 지, 아니면 관리 업체가 일괄 변경을 한 것인지. 요즘은 미리 녹음된 안내 방송이 나온다. 딱 부러지는 발음으로 낭랑하게 읽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그런데 이것도 한 두 번이지 매일 매일 똑같은 음성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방송되는 건 솔직히... 고문에 가깝다 ㅠㅠ
유튜브에서 뉴스를 본다. 대개는 바이라인 담당한 기자가 직접 나와서 아나운싱도 하거나 아니면 인간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하지만, 점점 기계가 대신하는 뉴스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음성을 조합하는 방식이란 점이다. "오늘뭐뭐당비대위장__아무개_씨는___대전을__방문하여지지자__들을만난_자리에서다음과___같이_말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과학 관련 뉴스는 아예 들어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판독불가인 경우도 많다. 점점 뉴스 제목에 "자막"이란 말이 들어가면 일단 스킵하고 보는 습관만 는다.
발전 단계의 기술이 일정 정도 성과가 나온 상태에서 여전히 자연스럽지는 않아 생기는 "불쾌한 골짜기"일까? 아니면 기계가 가진 본질적 한계인가? 모르겠다. 어쩌면 기술적 부족함보다는 사용의 의도가 더 문제일 지도 모른다. 은행에서 걸려온 무려 "안내" 전화는 내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줄 때까지 무한히 반복하며 같은 메세지를 기계가 전한다. 내가 필요해서 전화를 건 경우도 마찬가지. 나는 기계가 알아들을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또박또박 말하기를 반복하거나, 그냥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가까운 은행 지점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언어에 결합된 기계의 사용이 "전문직"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 하지만, 내가 실제 겪는 현상은 그다지 인건비 안나가는 직무들이 빠르게 기계로 대치되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 조금있으면 텔레마케터 업무의 상당수가 기계로 대치되지 않을까? 사업자 입장에서 이 경우의 가장 큰 장점은 더 이상 전화 받는 업무를 하는 "사람"의 "감정 노동"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닐까 싶지만, 지금 당장은 그 덕분에 내가 종종 울화가 터질 지경이다.
아직은 사태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갈 지 유동적이지만, 일상을 지배할 정도의 기계적 언어 사용엔 분명 그걸 몸소 매일 매일 지긋지긋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도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이 보기==
* [[기계]]


[[분류:2024년 jjw 수필]]
[[분류:2024년 jjw 수필]]

2024년 3월 23일 (토) 12:26 판

1 개요

오늘의 잡생각 - 기계가 일상을 지배할 때
  • 2024-03-20 jjw

매일 저녁 8시 5분이 되면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한다. 대개는 층간 소음 문제이고 그 외에 밤늦은 세탁기 사용 문제, 흡연 문제 등을 당부하고, 간혹 날이 추우면 동파 방지 안내를 한다. 아주 드물게는 제발 화장실 변기에 이물질 좀 넣지 말라는 소리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안내 방송은 사람이 직접 읽었는데, 나이든 남성의 웅얼 거리는 소리가 민원이 많았는 지, 아니면 관리 업체가 일괄 변경을 한 것인지. 요즘은 미리 녹음된 안내 방송이 나온다. 딱 부러지는 발음으로 낭랑하게 읽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그런데 이것도 한 두 번이지 매일 매일 똑같은 음성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방송되는 건 솔직히... 고문에 가깝다 ㅠㅠ

유튜브에서 뉴스를 본다. 대개는 바이라인 담당한 기자가 직접 나와서 아나운싱도 하거나 아니면 인간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하지만, 점점 기계가 대신하는 뉴스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음성을 조합하는 방식이란 점이다. "오늘뭐뭐당비대위장__아무개_씨는___대전을__방문하여지지자__들을만난_자리에서다음과___같이_말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과학 관련 뉴스는 아예 들어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판독불가인 경우도 많다. 점점 뉴스 제목에 "자막"이란 말이 들어가면 일단 스킵하고 보는 습관만 는다.

발전 단계의 기술이 일정 정도 성과가 나온 상태에서 여전히 자연스럽지는 않아 생기는 "불쾌한 골짜기"일까? 아니면 기계가 가진 본질적 한계인가? 모르겠다. 어쩌면 기술적 부족함보다는 사용의 의도가 더 문제일 지도 모른다. 은행에서 걸려온 무려 "안내" 전화는 내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줄 때까지 무한히 반복하며 같은 메세지를 기계가 전한다. 내가 필요해서 전화를 건 경우도 마찬가지. 나는 기계가 알아들을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또박또박 말하기를 반복하거나, 그냥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가까운 은행 지점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언어에 결합된 기계의 사용이 "전문직"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 하지만, 내가 실제 겪는 현상은 그다지 인건비 안나가는 직무들이 빠르게 기계로 대치되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 조금있으면 텔레마케터 업무의 상당수가 기계로 대치되지 않을까? 사업자 입장에서 이 경우의 가장 큰 장점은 더 이상 전화 받는 업무를 하는 "사람"의 "감정 노동"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닐까 싶지만, 지금 당장은 그 덕분에 내가 종종 울화가 터질 지경이다.

아직은 사태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갈 지 유동적이지만, 일상을 지배할 정도의 기계적 언어 사용엔 분명 그걸 몸소 매일 매일 지긋지긋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도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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