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그들에게 기회가 있었는가?

Jmnote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23일 (토) 12:33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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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생각 - 그들에게 기회가 있었는가?

연말 연시를 거치며 위정척사파를 덕질하는 중이다. 외세가 밀려오는 조선 말 스스로를 나라의 기둥이라 믿던 유학자들은 조선 중화를 침범하는 금수같은 양이를 배격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기회가 있었는가?

먼저, 위정척사파라는 말은 해방 이후 정립된 개념이다. 개화파라는 명칭이 이미 대한제국 시기 사용된 것과는 달리 위정척사파는 이전에 수구파라고 불리던 것을 빼면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 이면엔 당연히 민족주의적 평가가 있다. 그들이라고 나라를 망하게 할 작정으로 그렇게 쇄국을 외치던 건 당연히 아니니까.

실은 경술국치 즈음이 되면 개화파의 상당 수는 이미 친일파가 되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완용이다. 오히려 수구파라는 욕을 먹던 위정척사파 가운데 일부가 끝까지 남아 의병을 거쳐 독립군까지 합류한다. 애국과 매국의 개념에서 보자면 위정척사파가 더 욕먹을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어쩌다 조선은 식민자가 그것도 하필이면 옆나라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는 아직도 설왕설래가 많은 주제이고, 위정척사파는 개화에 반대한 기득권층으로 그려진다. 실은 개화에 반대한 기득권층 맞다. 대부분 지방 유지였고 서원을 끼고 학맥을 형성하여 정치적 입지를 다졌으며 조선 특유의 산림 문화에 기대어 국왕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권위를 자랑했다.

문제는 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다. 병인양요와 신민양요까지야 적이 침공해 왔는데 싸우는 것이야 당연하다 치고, 그 뒤로 이어진 국제 정세에 그들은 왜 그토록 어두웠는가? 두번의 아편전쟁으로 청의 황제가 몽진을 가야하는 일을 겪고, 일본이 메이지 유신이후 청나라와 "동등한" 국가로서 외교를 수립할 때 조선은 여전히 자신이 중화요 일본과 서양은 오랑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들고오자 위정척사파는 만인소를 올리며 저항한다. 일종의 백러시인데, 그 내용이 참 뭐랄까 거시기 하다. 조선책략은 일본의 입장이 아니라 사실 청나라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었다. 얘기인 즉 러시아 엄청 쌘데 자꾸 동해안을 찝쩍대고 여러 열강도 겁나 쎈데 쇄국이 능사가 아니니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서 일본-조선-청-미국이 연대할 빌미를 만들면 조선도 이득이지 않겠음? 하는 내용이다.

내용이 어째 청나라가 손 안대고 코 풀려 그런다 싶기는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도 그리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위정척사파가 여기서 빡친건 어떻게 오랑캐랑 군신지간도 아니고 "동등"하게 외교하냐는 거였다... 아 이런, 하여간 꼴통..읍읍읍...

나는 위정척사파의 충절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온고지신의 입장에서도 그 꽉막힌 세계인식이라면 기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죽고 여후가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자 흉노의 묵돌선우가 편지를 보낸다. "그대도 과부고 나도 홀아비인데 우리 잘해 봄이?" 조정이 발칵 뒤집히고 당장 전쟁을 하자고 난리가 나지만 여후는 꾹 참는다. 왜? 깨질 게 뻔한 싸움은 하는 게 아니다.

위정척사파는 나라가 망한 게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민씨 세도 때문이라는 인식이었지만, 내 생각엔 민씨 아니었어도 그들에게 별 다른 기회란 없었을 것 같다. 최소한 지피지기는 해 줘야 그 다음을 논할 것 아닌가.

개화파의 어리숙 + 순진무구함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위정척사파의 꼰대 기질은 여러모로 되새겨 볼 만 하다.

오늘의 결론: 꼰대에게 기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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