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박물관

Jmnote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2월 17일 (일) 16:45 판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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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 10 16 水 : 에로 박물관[편집]

일어나서 짐싸들고 나왔다. 먼저 그라나다행 티켓을 끊고 짐은 코인 락커에 짱박았다가 기차 탈 때 가져가기로 했다. 표를 끊는데 역시 이 사람들이라고 영어가 통할 리 없다. 한참 어물어물 대다가 나에게 1 room 2 people? 이러더라. 나는 두명 침대칸을 끊는 거여서 OK이랬다. 내가 알고있던 것보다 15E이상 비싸길래 살펴봤더니 끊어준 것은 2인실이었다. 4인실도 있는데 그게 더 싸다. 난데없이 당한거다. 역시 이럴 때는 친절한 스코틀랜드 기차가 조금 그립다. 나중에 보니 그래도 침대칸이 아늑해서 괜찮았다. 남자들끼리 있기는 결코 쿨하지 않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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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블라 거리의 연기자들, 람블라 거리.

바르셀로나에 와서 우리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이곳의 이용 방식은 간단하다. 구간별 요금은 없고 한번 타고 내릴 때 카운트가 된다. 따라서 오자마자 5E쯤 하는 10회권을 끊고 돌아다니면 좋다. 우리는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 10회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돈을 따로 냈었다. 아 그때도 아저씨랑 말이 안통해서 어지간히 헤맸었지...-_- 여기도 런던처럼 버스까지 탈 수 있다.
이곳의 지하철은 화끈하다. 런던처럼 오종종하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큼직하다. 하지만 지하철 역 자체는 우리나라가 훨씬 좋다. 지하철사회학에서도 적어둔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하철이라는 꽤 좋은 문화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런던이나 바르셀로나는 하고싶어도 못한다. 그리고 생긴 것도 우리나라가 훨씬 이쁘장하다. 하여간 난 유럽에 나오기 전에도 조선의 지하철만큼은 맘에 들었었는데 더욱 맘에 들기 시작했다. 여기는 의자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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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헤드스핀중인 스페인 양아치들.

지하철 안내방송이 있는데 남녀가 번갈아가며 한다.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리는 것이 들을 때마다 재미있다.

구분 아마도 원래 뜻 내 귀에 들리는 뉘앙스
곧 다음 역에 도착합니다. (침닦으며) 이 역이 어디지? -_-
까딸루냐 까딸루냐
내리실때는 승강장이 넓으니... 그럼 내려야겠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서울 지하철의 2호선처럼 순환선이 없어서 좀 불편하다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도 6호선과 8호선은 좀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텅텅 비기는 해도 나머지 라인들은 비교적 합리적으로 잘 깔려있다. 바르셀로나 지하철 기획한 녀석은 격자모양으로 팍팍 도시구획을 한 녀석처럼 똑똑하진 않았나부다. 하여간 밖에만 나오면 정말 누구나 애국자 된다.

애국자 된 김에 조선이 좋은 점 몇가지만 더 말해보자.

  1. 일상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은 반경 500미터 안에서 왠만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유럽은 대체로 5시가 넘으면 얄짤없다. 평소에도 몇개 없어서 한참 헤매야 한다.
  2. 환상의 배달 서비스가 구축되어있다. 새벽 네시에도 양념치킨 주문이 가능하다. 여기? 택도없다. 먹고 죽을라고 해도 없다.
  3. 물가가 싸다. 서울은 집값이 환상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나머지 물가도 그것과 동반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래.도. 여기보단 싸다.
  4. 고개만 돌리면 편의점과 PC방이 있다. 여기? 내가 정보 하나를 찾을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는가? 서울에 전화해서 확인해달라고 한 다음 다시 전화해서 답을 들었다. 그게 빠르다 -_-

이 외에도 조금만 지내다보면 조선이 아쉬울 때가 수도없이 많다. 이러니 애국자가 안될 수 있나.

기차표를 끊은 다음 우리는 까딸루냐 광장으로 다시 왔다. 확실히 바르셀로나의 중심지답게 일단 여기 나온 다음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좋다.

까딸루냐 광장에서 현대미술관MACBA를 찾아들어가는데 영 쉽지 않다. 길을 물어보았다. 또 서로 스페인어로 얘기하다가 웃다가 하면서 의견 교환한 다음에 말도 안되는 손짓 발짓 영어로 설명한다. 결국 전달 안된다. 앞으로 물어보지 말아야지...-_- 간신히 찾았다. 그나마 가는 길에 판가게들이 보여서 차마 지나가지 못하고 들리는 바람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네. 니나노~ 도대체 왜 미술관과 박물관이 주택가에 있는 것이며 안내판도 잘 안되어있는거야? 여튼 찾아서 3E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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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못이기고 또 판떼기를 사서 케이스를 버리고 있는 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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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속에서 헤매다.

오오 이렇게 거지같을 수가 있나. 이거야 말로 현대미술의 사기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사례가 아닌가 말이다. 남미쪽과 스페인의 현대미술작품들이 방들에 널부러져있는데 거 참 돈이 아까워 미칠 정도다. 이중 가장 쓰레기같진 않았지만 택도없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뭐냐하면 스페인 근처의 지도를 하나 가져다두고 바다와 호수 부분에 찰흙을 붙여놓은 것이 있었다. 이런 같잖은 것도 작품이라고 참 내. 하여간에 현대미술의 이런 작위성과 자기기만성은 정말 구역질이 난다. 가끔 아우라가 있는 현대미술품도 분명히 있는데 어째 여기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구린가 놀랍다. 짜증나서 우람과 나는 똥이나 걸쭉하게 싸주고 왔다. 역시 화장실은 미술관이 최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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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대만 좋은 현대미술관

나와서 다시 까딸루냐 광장쪽으로 가는 길을 찾는데 오오 여기 그려진 그래피티들은 상당한 수준작들 아닌가. 특히 마이너리티리포트를 패러디한 마이너리티 피플은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이런게 진짜 현대미술인 거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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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수준의 그래피티 작품들

배도 출출하여 어딜 갈까 하다가 짜장면 집이 보여서 들어갔다. 아일랜드, 영국에 이어 스페인의 중국집까지 오다니 중국집 순례를 하나의 테마라고 봐도 되겠다. 여튼 1인당 4.7E짜리인 싸구려 '코스'를 시켰는데 스프 or 샐러드 + 밥 or 면 + 요리 + 와인 or 청량음료 + 아이스크림 이렇게 나오는거다. 커허. 이런 훌륭한 식사가 있다니 감동 만땅이다. 이거 안달루시아나 모로코는 여기보다도 더 싸다는데 '매우' 기대된다. 런던에서 불쌍하게 살았으니 여기서라도 호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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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짱께집. 입구는 좁지만 안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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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AFC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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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활속의 미술이 훨씬 이쁘다.

피카소 박물관에 왔다. 여기도 현대미술관처럼 주택가에 짱박혀있어 한참 찾았다. 여기는 여러 시대의 그림들을 모아두긴 했지만 이 인간이 남긴 수많은 숫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만큼 있다. 이곳은 피카소의 어린 시절 그림들이 남아있다. 나머지 대작들은 이 인간이 살아있을때 거의 팔아먹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있고 특히 미국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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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짱박힌 피카소 미술관.

여기서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모방한 그림들이다. 이것은 피카소에게 창작 욕구가 잘 안생길 때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 그린 것인데 여기서 그려댄 그 수많은 습작들을 보면 가우디가 말한

'세상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수를 적게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시험작들을 그려대면서 단순하게 습작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실험들을 했다. 여기서 그가 어떤 식으로 입체를 2차원에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했던 것들을 보면 그에게 입체파의 시조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결코 부당하지 않다.

그가 잡지 사진을 오려낸 다음 그 여백에 자기의 캐리커쳐들을 그려넣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보면 그는 참 솔직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는 자신의 욕정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도 될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이미 차지한 다음이었긴 하다만 말이다. 이 꼴라쥬+캐리커쳐에는 쭉쭉빠진 여인네들의 사진에 그들에게 가고싶어하는 스스로의 이미지가 그려져있다. 여전히 젊은 여체가 그립다는 표현이다. 실제로 그는 죽을때까지 계속 여자를 갈아치운 난봉꾼이기도 하다.

여기엔 피카소가 13살때인가 그린 그림들이 있는데 이미 프로의 수준이다. 피카소는 거만하게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이처럼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이번에는 에로 박물관[1][2]에 가봤다. 런던에서 섹스샵에 한번 가볼까 했는데 이차저차해서 못갔으니 이번에는 한번 들려본 것이다. 여기는 매년 포르노 영화제를 하는 당혹스러운 도시다.

alice-2.jpg alice-3.jpg butterd.jpg\\ Alice Egoyan의 작품들이라는군.

여튼 여기는 사설로 운영하는 모양인데 부스스한 2층건물에 어디서 주워다 놓았는지 각종 남근상과 섹스를 다룬 조각들 옛날의 야한 만화들, 사진, 그림, SM도구 따위를 긁어다 놓았다. 스페인답게 당연히 별로 정리되어있지는 않다. 하지만 꽤 열심히 모아둔 점은 가상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도 박물관이라고 학생할인이 된다는거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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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도구.

Tep:trio.jpg triopaint.jpg\\ 오래전에도 이런 것에 대한 욕망은 강렬했나부다.

일본이나 인도, 중국의 이런 것들이야 뻔하지만 서양의 춘화들은 꽤 독특했다. 조악하고 지저분한 것부터 꽤 앤띠끄한 스타일까지 다양하게 있을 뿐 아니라 작가들 이름까지 분명한 작가주의 작품들이 있었던게다. 페미니스트들이라면 흑인 여자가 정면을 보고 자위하는 그림같은 것을 억눌린 자들의 자의식 회복을 다룬 그림으로 볼 수도 있을것이고. 여튼 금기된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란 정말 강렬하다. 에로틱한 것들을 에로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 금기이다. 나는 섹스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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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 정신을 발휘한 춘화작가 Fendi씨.

여기서 시간을 좀 두고 보았던 것은 적어도 베트남 전쟁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포르노였다. 뚱뚱한 여자와 뚱뚱한 남자가 나와서 서로 만져주고 섹스하는 것인데 남자는 열심히 하는 반면 여자는 뚱 하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고 오히려 보기에 추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눈을 떼기 어려웠던 것은 그 남자의 행위라는 것이 내가 여자들에게 껄떡대면서 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 수컷들이 하는 것들은 대체로 구차하다. 한줌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는 것들 말이다. 이 추하지만 진지한 섹스를 조금 보다보니 슬퍼졌다.

나와서 재래시장으로 갔다. 주로 야채와 고기를 파는데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다. 아 시장통 하나도 역시 조선만한게 없다. 여튼 여기서 파파야를 보았다. 안먹어봐서 한번 시도해봤는데 아따 겁나게 맛없어부러요. 평소에 안먹어 본 것을 먹는 것은 가끔 멋진 쾌감을 선사하지만 대체로 이렇게 화를 입힌다. -_- 입가심으로 얼른 바나나를 사먹었다. 역시 익숙한게 최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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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로 입가심중

우리는 성 가족 성당앞에서 사먹었던 꿈틀이를 발견했다. 이거 얼마나 바가지를 씌운건지 알아보기 위해 또 사봤다. 그런데 여기도 역시 비싸다. 그게 그리 큰 바가지는 아니었던게다. 스페인은 불량식품군이 비싼가부다. 그런데 희한하게 엄청 큼직한 견과류들이 많다. 동네가 더워서 그런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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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와 꿈틀이를 사다.

무거워서 미루어두었던 LluisLlach의 박스셋을 사들고 기차를 탔다. 코인락커에서 짱박아두었던 가방을 찾아가지고 나오는데 일본 젊은애들처럼 한 여자 둘(앞으로 일본인 처자라고 부르기로 하자)이 왔다. 알고보니 우리의 코인락커 바로 밑의 코인락커를 이용했나보다. 우리는 일본애들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둘이 일본애들인가부다 이러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껄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더군. 헉. 조심해야겠다.

까딸루냐를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 아시다시피 스페인은 영국처럼 여러 나라들이 통합된 연합 왕국 형태의 국가이다. 본토는 까스띠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 그리고 포르투갈과 바스크, 까딸루냐 왕국들이 다 국가였던거다. 그런데 까스띠야와 아라곤이 결혼(1492)으로 합쳐지고 이 통합 왕국이 다른 나라들을 병합해서 스페인 왕국이 건설되었다. 이 때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발견을 위해 출항했던 대항해시대의 초기였고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아랍세력을 몰아내던 국토 수복운동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포르투갈은 독립전쟁을 해서 독자적인 국가가 되었는데(1643) 까딸루냐는 독립에 실패했다. 이후 스페인 내전(1936)때 까딸루냐 사람들은 반프랑코 쪽에서 싸웠지만 패배했다. 즉 까딸루냐는 바스크 지방과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독자성이 강한 동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까딸루냐어가 따로 있지만 사실 이것은 스페인 표준어인 까스띠야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j발음을 ㅎ로 하지 않고 ㅈ로 한다거나 하는 점들과 철자가 조금 다르다는 점인데 그것은 까딸루냐가 스페인 본토와 프랑스 사이에 끼어있는 지역이라서 그렇다. 즉 읽는데는 본토사람이나 까딸루냐 사람들이나 크게 차이가 없는데 말하기 듣기를 빨리 하면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하네. 서울과 제주도 말의 차이정도로 보면 무난하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딸루냐 사람들은 까딸루냐 어로 표지판도 쓰고 출판도 한다. 쫀심 하나는 끝내주는 동네라고 하겠다.

저 위에 적었던 LluisLlach의 박스셋이 무거울거 같아서 마드리드에서 사려했다. 그래서 점원에게 이거 마드리드에서도 살 수 있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 친구 답하길 '까딸라 음악은 까딸루냐에 있지 스페인에는 없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샀다. 하지만 나중에 마드리드에서 확인해본 결과 있었다...-_-++

우람군이 바르셀로나 출신 친구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너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울린) 한국팀이 싫어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가 싫어?
당연히 마드리드가 싫지.

이정도다. 스코틀랜드도 어지간했는데 이놈들은 한술 더 뜨는것 같다.

아웅 바르셀로나에서 내가 판떼기 때문에 놓친 것을 생각해보자. 옆 도시 어디엔가에 있는 달리 미술관을 놓쳤고, 몬쥬익에 있던 미로 미술관도 놓쳤고, 몬쥬익에서의 뒹굴뒹굴도 놓쳤고, 지중해쪽 바닷가에서의 산책도 못했고...못한것 투성이다. 런던 나올때는 행복했는데 여길 떠나려니 서운하다. 안달루시아에 뭔가 좋은게 있겠거니 하고 기간을 잡았으니 할수 없다.(아 이번 여행 최대의 패착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아까 기차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렸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 하는데 할아버지 한 분도 들어가려 하시길래 나는 먼저 가시라고 자리를 비켜드렸다. 그 할아버지는 정확한 발음으로 '그라시아스~'라고 했고 나 역시 웃음으로 답했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마지막 인상까지 나에겐 이랬다.


판돌이 <= 에로 박물관 => 궁전의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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