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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없음)

2018년 5월 19일 (토) 00:28 판

1 개요

양병집 (1951-)
楊柄集
  • 한국의 포크 가수, 음반제작자
  • 한대수, 김민기와 함께 언급되는 저항포크의 상징적 인물

2 기본 자료

3 공연기

양병집의 공연이 있어서 봤다. 그가 다시 활동 시작한 것은 알았지만 공연정보가 안보여서 잊고있다가 얼마전에 공연소식이 나왔길래 메모해두었다. 지금까지 괜히 회자되는 인물일리가 없으므로 일단 보고싶었다.

중간에 시간이 좀 비어서 공연장 위치나 파악할겸 세시간쯤 일찍 들렀다. 혜화동의 마리안느라는 갤러리겸 공연장은 혜화동 한복판의 묘한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다들 번잡한데 그 주변만 여유가 있어 상당히 좋은 위치에 자리잡았구나 싶었다.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두리번거렸더니 바로 양병집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여 들어오소. 이거 들어봐요. 이따가 공연도 하니까 그것도 와서 보고. 직설적인 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사람과의 거리감을 단숨에 좁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없으니 지금 한가할때 싸인이나 받자싶어 음반을 꺼냈다. 공연보러온 것 맞구요. 지금 뵌 김에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흔쾌히 싸인을 해주셨다. 옛날 LP보다도 최근 CD를 보시더니 더 고마워하셨다. 이거 많이 안팔린건데 하시며.

리허설하는 모습을 조금 보고있자니 양병집이라는 사람이 조금 더 보였다. 아 좋아 그 소리 아주 싸이키해. 그만큼만 해. 아냐 그거 아냐 무대에 있으면 관객은 절대 의식하지 말아. 어떤 지시도 애매하게 돌리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 바쁘게 오가며 의견을 내시곤 합주자들과 함께 식사하러 나가셨다. 나도 밥을 먹으러 나갔다.

돌아와도 아직 시간이 남았으므로 다른 팀의 리허설을 들으며 책을 봤다. 오늘은 16년 차이라는 팀이 양병집 트리오와 함께 공연을 한다. 몰랐는데 16년 차이 역시 내공있는 포크 듀오였다. 형 김용덕이 16살 어린 동생 김용수와 함께 기타와 노래를 한다. 공연 준비중이던 다른 스텝들도 리허설 무대 앞에서 책이나 펴든 내가 좀 이상해보였던건지 말을 걸어서 몇마디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양병집을 아느냐 해서 가요쪽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이름이라 종종 듣고있다고 했다.

공연 시작할 때부터 양병집은 거침없었다. 음악가가 자기를 소개하는건 이상하다며 방금 평론가 신현준씨에게 부탁을 했다 하시더니 정작 신현준님은 무대에 올라와서 2분전에 자기소개를 부탁받았다는 말로 양병집 소개를 했다. 이후 공연이 지연되지 않도록 앞서서 이것저것 챙기는 스타일, 적어도 뒷방영감처럼 앉아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쿨한척 하셨지만 공연에서도 후배 연주자들을 챙기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다정한 면이 있었다.

본인이 이미 공언했듯 번안곡들을 다수 불렀고 한국어와 영어 가사를 번갈아가며 불렀다. 자신은 작곡에 재능이 별로 없다, 좋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중요한데 그게 누구 노래인지 무슨 상관이냐, 조영남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그 역시도 자기 노래는 거의 없다 등의 얘기들을 섞어가며 공연을 진행했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50대였고 다수가 양병집의 노래를 알았기 때문에 공연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내가 공연장에서 느낀 것은 5-6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가진 힘이었다. 양병집은 김민기와 동갑인 51년생이었고 관객과 동료들은 65년 이전 출생인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내가 76년생이니 딱 한세대정도 앞이다. 별로 문화적 수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긴 어렵지만 대신 그 세대는 한정된 문화적 자산을 꽤 능동적으로 즐기며 살았다. 그것은 참여도의 문제이며 그 세대들은 다들 통기타로 코드 정도 잡거나 두드릴 정도의 적극성은 있었다. 내 세대 이후로는 연주자와 청자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보통이다. 양병집은 데뷔앨범부터 발매 3개월만에 판금되고 전량수거되었던, 사실상 언더그라운드 음악가에 가깝다. 국내에서 음악활동이 힘들어 호주로 이민까지 갔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소규모 카페 공연을 다들 꽉 채워주었다. 관객들의 푸근한 호응은 무대 위와 아래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피터 폴 앤 메리의 곡이 나오자 함께 따라할 정도로 관객들은 청년문화를 충분히 경험한 이들이었다.

일본의 메이지이전부터 전공투세대까지의 노인들이 보여준 문화적 역량에 비해 한국 386 이전세대의 힘은 좀 약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며 살았다. 부동산 버블과 과도한 교육열로 나라를 들어먹는 그들을 보며 종종 혐오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종종 보여주는 힘이 있다. 그래도 나라를 선진국 문턱에까지 올려놓은 세대라서 절대 만만하게 볼 사람들은 아니다. 오늘은 그런 힘을 슬쩍 구경한 느낌이 들었다. --Pinkcrimson (토론) 2018년 5월 19일 (토) 00:2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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