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인의마을

1 # 귀촉도(歸蜀途, 1947)[ | ]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三萬里).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三萬里).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2 # 화사(花蛇, 1936)[ | ]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내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에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3 # 저는 시방...[ | ]

저는 시방 꼭 텡 븨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븨인 들녁 같기도 하옵니다.
주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든지 날르는 몇 마리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지와 같이 하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여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시라서 이런 웃기는 촌평들이 잔뜩 있더군요.

http://gugeo.netian.com/poem/seojeongju.htm
http://ipcp.edunet4u.net/~koreannote/2/2-%ED%99%94%EC%82%AC.htm

사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알고보면 좋은게 많은 것 같습디다. 그중에서 가장 섹시하다고 느꼈던 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디. 이 시에서는 왠지 일제때 느껴지는 퇴폐적인 냄새가 강하게 나거든요. 20세기 초반은 퇴폐의 시대였는데 우리나라에서의 퇴폐주의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남아있습니다. 거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도 있대요. "인간은 금지된 것의 존재를 알면 저지르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거북이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수료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고, 김광균·김달진·김동인과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
1959∼1979년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 역임
1971년 현대시인협회 이사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년 《문학정신》 발행인 겸 편집인
저작: 《한국의 현대시》 《시문학원론》 《세계민화집》 등이 있으며, 시·가사시집으로 《노래》 《안 잊히는 일들》 《80 소년 떠돌이의 시》 《조선 민들레꽃의 노래》 《산시(山詩)》 등이 있음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5·16 민족상 등을 받았으며, 사망 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음
한국 근대시의 거목이나 친일 활동과 어용 행각으로 인한 악영향 또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인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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