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과 전도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3월 10일 (화) 23:03 판

무협(武俠)과 전도(傳道)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제2회 --허경, 2001

1 <멜로디 메이커>·<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와의 만남

1980년 고1이 된 나는 노상 AFKN 라디오를 틀어놓고 공부를 했다. 물론 곁에는 지에 전재된 <빌보드 팝 차트 100>을 펼쳐 놓고서. 이런 식으로 한참 음악을 열심히 듣던 당시의 어느 달인가는 100곡 중 96곡에 (나만의 ★표까지 매겨가며!) 체크 표시를 하기도 했다(나머지 네 곡은 결국 끝까지 못 들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영어 공부를 겸한다는 '명분'이 있긴 했지만, 완전히 '미친 짓'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를 몇 달 계속하다 보니 이내 미국 차트는 내게 좀 시들해졌고 이제는 역시 의 말미에 실리는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 일본 등 다른 나라 차트들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쪽 차트 순위는 대개 미국과 비슷했지만 히트곡과 그 시기 등은 확실히 좀 달랐다. 이 중 특히 영국의 잡지들인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 MM) 혹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 NME) 차트들을 혼자 열심히 '분석'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영국 노래가 괜히 좋았다). 이 중 기억나는 것은 영국 차트에는 노래가 좋으면 등장하는 그 첫 주에 그냥 1위로 등장(New Entry)하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폴리스의 'Message In A Bottle', 'Walking On The Moon', 애덤 앤 디 앤츠(Adam And The Ants)의 'Prince Charming', 심지어는 바브라 스트라이전드의 'Woman In Love', 같은 곡들이 그랬던 것 같다 - 참 화끈한 '민족성'이다. 당시 이들 차트에서 한참 '뜨던' 그룹들은 더 폴리스와 애덤 앤 디 앤츠 이외에도 대략 더 잼(The Jam), 더 클래시(The Clash), U2, 데페시 모드(Depeche Mode),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o), 셰이킹 스티븐스(Shakin' Stevens), XTC, 더 휴먼 리그(The Human League),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 더 스페셜스(The Specials), 매드니스(Madness) 그리고 소프트 셀(Soft Cell) 등이었다. 이들은 거의 모두 당시 데뷔 2-3년 정도 된, 뉴 웨이브, 뉴 로맨틱스, 신(新) 복고파, 네오 스카 등의 선두 주자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AFKN에서조차 더 폴리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런 노래들은 전혀 들어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음반들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앞서가는 선각자의 프로 정신과 육감'(?)만으로 구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육감'이 적중한 부분도 상당히 있긴 하지만, 당시 80년대 초의 영국 음악이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과 함께) 세계 록 음악의 주류를 선도해 나가고 있었던 부분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이 때부터 나는 당시 용돈을 모아 광화문에 있는 - '박지영 레코드사'(!) 길 건너 맞은 편 - <예음 튼튼 레코드사>에 가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맡았던 원판 냄새며, 당시 막 발매된 밥 딜런의 <Slow Train Coming>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The Final Cut> 같은 판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좌석버스 뒷좌석에서 조심조심 뜯어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던 친절한 누나는 지금 뭘 하는지 궁금하다 ...

2 아버지의 미국 연수

그러던 어느 날, 아마 80-81년 정도로 기억하는데, 퇴근하신 아버님께서 나에게 꿈같은 말씀을 하셨다: "경아, 나 다음 달쯤에 미국에 연수 간다. 아마 두세 달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 아버지가 뭐 사왔으면 하는 것 없니?" 왜 없겠는가! 당연히 '판'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나는 그 날로 아버님께 '리스트'를 만들어 드렸다 - 어쩌면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별 것 아닌 것으로 들리겠지만, 이 일이 년 벌써 20년 전의 일이니, 당시만 해도 외국 원반 구하기가 정말 '하늘에 별 따기'였다. '도장이 한 말'이라든가 ... 뭐 꼭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만큼 외국에 나가는 사람이 적었다. 나는 아버님이 돌아오시길 정말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덧 두 달 가량이 지나고 아버님이 귀국하셨다. 집에 들어오신 아버님은 트렁크에서 보자기에 싸인 LP 10여 장을 꺼내셨다. 보자기를 푸는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왜 안 그랬겠는가!!! 아버님이 사오신 판들은 예스(Yes)의 <Close To The Edge>, 울트라복스(Ultravox)의 ,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Remain In Light>,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의 2집 LP 등과 저팬(Japan)의 <European Son/Alien> EP 등 모두 당시 한국에서 원반은 커녕 '빽판'으로도 거의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판들이었다(물론 당시는 CD라는 게 나오기도 전이다). 물론 아버님이 저팬의 <Tin Drum>을 사셨다가 마오 쩌똥(毛澤東)의 사진이 담긴 앨범 커버를 보시고 그냥 두고 왔다는 말씀에 땅을 치기는 했지만(당시 '대통령'이 전두환 씨였으니 말 다했다), 나는 그날 밤을 새워 스무 장 가량이나 되는 그 판들을 전부 다 듣고 잤다(이미 고등학생이던 나는 이제 국산 '독수리표 이글 전축'이 아니라 아버지를 졸라 마란츠 앰프와 AR 스피커로 '시스템'을 '개비'한 이후였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3 무협과 전도

나는 다음 날로 학교의 음악 듣는 친구들 사이에서 '스타'로 등극했다. 지금도 그런 줄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음악을 좀 듣는다'는 친구들 사이에는 묘한 '경쟁 심리'(?) 같은 것이 있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얼마 전 재미로 내가 아는 그 '묘한 심리' 중 두 가지에 이름을 붙여 보았다. 나는 그것을 음악 듣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협'(武俠)과 '전도'(傳道)의 심리라고 불러본다. 뭐 그렇다고 그리 어렵거나 고상한 이론은 아니고 대강 음악을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다음과 같은 경험들을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 '무협의 속성'은 글자 그대로 음악을 누구 더 많이 알고 있는가를 따지는 '고수(高手)들 사이의 진검승부'(眞劍勝負)다. 나는 당시 2학년 3반이었는데, 물론 우리 반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고수'로서 앨범 콜렉션의 양과 질, 정보량 등등의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즉 노래는 좋은데 가수를 모른다던가, 앞으로 퀸 혹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듣고 싶은데 어떤 판을 먼저 듣는 게 좋으냐 ... 등등의 문제를 가진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다른 반에서도 일단 누군가가 자기 반을 '평정'하고 나면, 그 '고수'에게 옆 반의 소문이 살살 들려 온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여서 어느 날 나의 '수제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야, 2학년 6반의 김○○가 핑크 플로이드 도사라는데, 너 아냐?" 물론 상대도 내 소문을 듣고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덧 '진검승부'를 피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오전 쉬는 시간에 미리 밥을 먹고, 점심 시간에 내 '휘하'의 친구들을 데리고 2학년 6반으로 '원정'을 갔다. 처음에는 우선 "야, 너 음악 무지하게 많이 안다며?" "아냐, 뭘 난 잘 몰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만 듣는 거지 뭐. 너도 음악 많이 안다고 소문 났더라" 등등 우선 점잖게 덕담(?)을 주고받는다. 물론 녀석의 수제자들도 이미 우리 주위에 모여 '고수들'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기울이고 있다. 자, 드디어 ... 웃음 뒤에 날카로운 비수를 감춘 채 본격적인 탐색전에 나선다. "근데 너 누구 좋아하니?"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령 내가 퀸이나 아바 혹은 비지스 등등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해도 나와 녀석의 '수제자들'이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아, 나 퀸 좋아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수준 낮게 말이야 ...
최소한의 '격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핑크 플로이드나 킹 크림즌, 아니면 적어도 젠틀 자이언트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무척이나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그 때는 무척이나 심각했다. 뭐 난 그때나 지금이나 킹 크림즌 골수이므로 아마 킹 크림즌을 댔던 것 같고, 녀석은 핑크 플로이드를 댔던 것 같다. 게임의 규칙은 아주 간단하다. 대화 중 한 사람이 상대가 모르는 그룹 혹은 음악을 제시하면 끝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모르는 그룹이 나올 경우 나는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녀석의 아래로 들어간다 - 물론 나의 '휘하'도 녀석의 아래로 자동적으로 편입된다. 한 마디로 영화 <장군의 아들>을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면 상대가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도 "어 그래, 너도 핑크 플로이드 좋아하는구나, (재빨리) 나도 아주 좋아하지. 허허허." 뭐 이렇게 나가다가 어느 한 편이 모르는 그룹이 나와 말문이 막히면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대답이 위에서처럼 '단답형'으로 끝나면 안되고 "아, 핑크 플로이드는 역시 뭐니뭐니 해도 '다크'가 명반인 거 같애" 하는 식으로 상대가 말하지 않은 정보를 제시해야 하고, 상대 역시 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지, 야 너 음악 좀 듣는구나. 그 판은 앨런 파슨스의 엔지니어링이 죽이지 않니? 특히 '타임' 같은 곡 말이야. 거의 예술이잖아"하는 식으로 받아야 한다. 물론 핑크 플로이드 정도에서 게임이 끝나는 경우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핑플' 정도는 기본이니까. 본격 진검승부는 보통 자기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그룹(실상 대부분은 자기도 거의 좋아하지 않는 그룹들), 즉 당시 80년대 초의 예를 들면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구루 구루(Guru Guru)나 오르가니자치온(Organisation) 정도는 되야 승패가 갈렸다. 그런데 그날의 결과는? 내가 졌다. 아니, 녀석이 내가 당시 몰랐던 올먼 브라더즈 밴드의 앨범을 들먹이는 게 아닌가! 나는 무릎을 꿇고(?) 패배를 인정한 후 내 밑의 애들을 데리고 녀석의 휘하로 들어갔다 ... 다음날 당장 시내에 나가 그들의 명반 <Fillmore East Live>를 구입한 나는 'In Memories Of Elizabeth Reads'(앨범명/곡명의 스펠링이 불확실하다. 찾아주세요. 근영)에서 들려오는 듀언 올먼의 아름다운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 좋은 걸' 몰랐던 나 자신의 무지에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
이 무협의 속성은 음악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면서 또 한편 아이들 사이의 괜한 우월감 혹은 치기(稚氣) 같은 것을 조장했던 것 같다. 퀸을 좋아하면 솔직하게 그냥 퀸을 좋아한다고 하면 될 껄 ... 물론 나 자신이 고등학교 때 런던에 있는 '공식 국제 퀸 팬 클럽'(The Official International Queen Fan Club)에 가입하기도 했지만(82년에 가입했다. 아마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회원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퀸과 그 멤버들의 앨범들을 제대로 차근차근 다 들어 본 사람은 그리 드물지 않을까? 사실은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도 마찬가지이다. 또 음악을 많이 알고 레코드를 많이 모으는 것이야 음악을 좋아하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실상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악을 정말 좋아하며 듣는 것이 아닐까? 그 대상이 핑크 플로이드든, 아니면 H.O.T. 혹은 머라이어 캐리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얘기하게 될 두 번째의 '전도'는 어쩌면 이 '무협'의 뒷면이 될 것 같다. 전도(傳道)의 '도'(道)라는 말에서 우리가 잘 알 수 있듯, 만약 어떤 크리스챤이 - 다른 종교라도 상관없다 - 누군가에게 '전도'를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가 그 사람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어서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너도 영접해서 너도 은혜 받고 우리 다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일 것이다. 참다운 크리스챤이라면 '내가 예수님을 이렇게 신실하게 믿는데 뭐 그걸 너도 믿어? 말도 안 돼. 당장 그만 둬! 아니면 내가 안 믿는다 ...' 뭐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음악 듣는 사람들도 '사람'이다 보니, 내가 좋아하던 그룹이 좀 대중적으로 '뜨면' 거의 자존심 차원에서 '더 이상 안 좋아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그 '맛', '매력'을 아는 어떤 음악을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게 되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도 뛸 듯이 기쁘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친구나 애인에게 열심히 녹음해주고 다음에 만났을 때 그 반응을 기다려 본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럴 경우 만나자마자 "어이 그 음악 어땠어? 야, 진짜 좋지?"하고 묻고 싶지만, 상대가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묻기도 좀 뭣한, 그런 상황이 된다. 만약 그 때 그 친구가 먼저 '야 그 음악 좋더라, 그거 어디서 살 수 있냐?' 뭐 이렇게 나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서 우쭐해진다. 물론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나도 개인적으로 애인(현재의 내 아내)에게 테이프를 몇 개나 녹음해준 경험이 있는데, 테이프에 대한 '좋다, 나쁘다'의 반응이 전혀 없어서 어느 날은 기다리다 못해 내가 먼저 물어 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어, 그 테이프 ... 그거 ... 테이프들이 밀려서 저번 것도 아직 못 들었어. 미안해."

4 # 나의 두 가지 선택 - 누구를 위하여 음악을 듣는가?

나에게는 '무협'이나 '전도'나 모두 소중한 기억들이다. 음악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즐기며 듣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는 두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른바 '아바, 즉 팝에서 시작해서 하드 록,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재즈를 지나 드디어 클래식에 골인하는' 단계 혹은 수준의 구분에 맞추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어떤 클래식 곡을 듣다가 '야 이건 정말 괴롭다. 너무 지겹고 안 좋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아바도 좋은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다. 물론 나는 클래식도 좋아했지만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또 하나는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로 나온 킹 크림즌의 앨범을 집으로 가져와 들으며 괴로워했던(?) 기억이다. 그날 컨디션도 별로 안 좋았지만, 나는 그 앨범이 '위대한 3대 프로그레시브 그룹 킹 크림즌의 신보였기 때문에'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야, 그 앨범 명반이더라. 죽이던데' 뭐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 그 앨범을 '좋아하려고', 아니 '좋아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나는 그 판이 안 좋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다.' 나는 그 음악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난 해에 나왔던 그들의 「Discipline」을 과장없이 정말 수백 번도 더 들었고 진짜로 좋아했지만, 그 때 앨범은 내게 정말 너무 어려웠다. 나는 내가 '이 앨범이 좋아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 앨범을 좋아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은 두 번 다시 않기로 했다. 그냥 내 느낌과 생각에 보다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그러기 위해선 내 느낌과 마음을 보다 정확히 알아야 했다).

5 # 음악을 싫어지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

한 동안 나는 그 판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떤 기회에선가 우연히 그 판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 나는 그 판에서 더 할 나위 없이 '내 취향에 꼭 맞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 지금도 내가 모든 음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판 서너 장 중 하나가 바로 이고, 내가 '지구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이 판의 첫곡 'Neal And Jack And Me'이다 - 이 노래에 실려오는 그 압축된 광기! 만약 내가 그 날 어거지로 그 음악을 듣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어쩌구 저쩌구 하며 '위선'을 떨었다면, 나는 이 판을 오늘도 여전히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판을 아주 싫어하거나, 아니면 아예 음악 자체를 안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야말로 '음악을 싫어지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클래식을 그렇게 많이 안 듣는다. 그렇다고 내가 클래식을 '일부러' 안 듣거나, 아예 내가 싫어하는 음악으로 '규정지어' 놓은 것도 아니다. 나는 많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직 팝이나 록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마음을 열어 놓고서 킹 크림즌의 가 어느 날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바하나 모차르트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참 기쁠 것 같고, 그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것도 그 나름대로 또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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