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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잉그마르베르히만]]
* 감독 : [[잉그마르베르히만]]

2017년 8월 8일 (화) 03:15 기준 최신판

  다른 뜻에 대해서는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1961)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 거북이[ | ]

Sasom i en Spegel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관련자료:없음 [25177] 보낸이:정철 (zepelin ) 1999-06-21 00:44 조회:64

등장인물은 단 네명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표현하 는데 미숙하다. 그동안 너무 이성적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 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글쓰는 일밖에 모른다. 모든 면을 분석적으로 바라 보아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려한다.
남편 역시 이성적인 사람이나 남편은 어떻해서든지 사랑을 표현하려 노 력한다. 남편은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아버지와 남편은 남성적 인간의 다른 면을 반영하고 있다.
남동생은 아직 풋내기다. 자기를 둘러싸고있는 성적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 한다. 착하고 순수하지만 아직 뭘 모른다. 왜 우리 주위에 그런 고뇌들이 놓여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유일한 여성인 카린은 병에 시달린다. 종종 알수없는 내적 충동에 시달려 다른 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 번민에 지쳐 그녀는 차라리 죽어서라도 신에게 가까이 가고싶어한다.

그다지 즐거운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에 감정이입을 하며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남편과 아버지의 대화나 행동패턴이 나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항상 이성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나 그것은 자신들의 방식이다. 다른 이들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 는 한 그것은 대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한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가지고 올 때 나는 번민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방식이 었다. 나만의 이기적인 사랑이다.

영화의 흐름은 카린의 병과 그것에 대처하는 남자들의 대처방식이 이끈다.
카린은 몇몇 사건들을 통해서 남편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남동생의 마음 을 엿본다. 특히 아버지의 분석적인 면모에 카린은 크게 상처입는데 그것을 남편에게서 위안받고자 하나, 남편의 태도는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역시 이해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대로 받아주는 남동생에게서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허나 남동생을 사랑하기도 하고 남동생의 성적 욕구를 잘 알고있던 카린은 그만 남동생의 호의속에서 같이 자고만다. 금기를 깬 그녀는 더욱 번민하게 되고 발작까지 하게된다.
남자들은 그래도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남동생에게 자신이 가지고있는 사랑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지만 남동생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애기를 하는것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 을 이미 깨닫고있다.

사실 영화 자체만으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분명치 않다.
그래서 내가 읽어낸 것은 아버지와 남편의 행동 정도였다.
다른 이들이라면 사랑과 절대자의 의미에 대해서 읽을 수 있을듯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이 'All you need is Love!'라고 받아들이 기는 영화 전체가 주는 느낌이 너무 무겁다.

베르히만은 자신의 이성적인 면을 혐오했던 모양이다. 산딸기에 나오는 박 사도 이성적인 면을 회의하게되는 인물로 묘사되어있다. 다른 영화들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그의 영화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것 도 이성에서 벗이나고자하는 욕구의 발현일지 모른다.

재미있는것은 북유럽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성적 개방성이다. 꽤나 오래된 영화임에도 근친상간의 금기가 깨지는 것을 덤덤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에 본 덴마크 영화 셀레브레이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소재가 영화화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꽤나 이질적인 것이며 따라서 공감도 잘 안된다. 하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반드시 백안시하지 않는 관용성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이미 그들은 동성결혼도 인정하고 있으니까.
그러한 성향은 이성이 발현된 것이다. 다른 이를 이해하려하는 마음, 자기 가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남에게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에 어느정 도 녹아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쪽에서 출시해서 그런지 친절하게도 이 영화 제목의 출처를 소개해 놓았다. 원제의 번역은 '어두운 유리를 통해'라니 아마도 바이블의 번역과정 에서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생겼나보다. 그리고 이 번역도 개역 한글판 번역과는 다르다.

지금은 거울을 통해서 어렴풋이 보이지만
그 때가되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
지금은 단편적으로 알지만
그 때가되면 온전히 알려진 그대로,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3장 12절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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