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2006)

Jmnote bo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5일 (목) 22:36 판 (Pinkcrimson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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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물 (The Host)
  • 2006
  • 봉준호

1 # 거북이

예술가로 사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가로 살기란 쉽지가 않다. 예술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호구지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아빠를 두지 못한 모든 예술가는 예술과 포도청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사실 호구지책이 해결된 예술가도 고민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예술을 하는데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지향했던 것은 아니지만) 루쉰이 혁명의 무기로 영화가 아니라 소설을 택한 여러 이유중 하나가 바로 돈이었다. 가난한 일본유학생에게는 펜값과 원고지값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욕망과 예술을 할 수 있는 환경(=돈!)과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영화와 같이 돈이 억수로 들어가는 예술에서 예술가 노릇을 하고싶다면 흔히 영화판이라고 부르는 그 시스템 내에서 온갖 더러운 꼴을 보아야 한다. 그걸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키워 자기의 예술을 끊임없이 영화에 반영시킬 수 있는 자 만이 '작가'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조감독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영화판에서는 오래 살아 남는 것 자체가 실력이에요.'

'살인의추억'에서 봉준호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감동은 서민의 분노를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그 영화를 히트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괴물'에서 봉준호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감동은 서민의 분노를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반미반제 양키고홈'이라는 주제까지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이 영화를 메가 히트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시사회를 마련해준 덕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개봉 1주일쯤 전에 영화를 보았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동료가 자기 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괴물 너무너무 재미있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 동료는 제국주의를 비판하거나, 시스템에 저항해가며 시민이 무언가와 싸우는 영화를 능동적으로 볼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괴물'은 재미있다는 평가를 이끌어내었다. 이것은 봉준호가 재미없을 수도 있는 내용에 재미라는 '당의'를 제대로 입혔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동료는 '당의'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알게모르게 그 동료에게 들어갔을 것이고 그것으로 나는 성공이라고 본다. 봉준호는 시스템에 짓눌리지 않고 시스템을 훌륭하게 이용한 것이다. 백억 이상이 들어가는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그렇기때문에 내 관점에서 '반지의 제왕'은 피터 잭슨의 영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괴물'은 봉준호의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놀라운 성취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한반도'의 흥행을 저지하면서 만든 결과이기에 그 성취는 더 빛나보인다.

영화의 스토리를 들여다본다면 '괴물'은 꽤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현서가 괴물의 아지트에서 살아남는 부분이 그러하고 국제단체에 의해 괴물이 진압되는 과정이 그러하며 가족들에 의해 괴물의 숨통이 끊어진다는 것들이 그러하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과정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세부적인 허점을 모두 덮고 넘어갈 수 있게끔 장면장면이 연결되어 있다. 이미 한강에서 괴물이 뛰쳐나온다는 설정 자체가 판타지이니만큼 세부묘사의 사실성은 과감하게 넘어가도 상관없는 상황이었으며 봉준호는 그것을 적절히 이용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실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괴물'은 '살인의 추억'을 한참 따라가지 못한다.

요즘 송강호가 서민의 이미지를 팔아서 도저히 서민이라고는 볼 수 없을만큼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뉴스를 접했다. 그건 봉준호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Rage against the Machine)이라는 락그룹의 성공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듯 종종 있는 일인데, 나도 그러한 면이 썩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는 쪽이 어이없는 부자들만 넘실거리는 드라마의 성공이나 말도 안되는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영화의 성공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나는 김진명이 새로운 소설을 써서 홍보하는걸 볼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그러니 계속해서 서민의 분노를 담은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제국주의의 기만을 폭로하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기왕이면 과도하게 계몽적이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주면 좋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요즈음 가장 주목할만한 감독들 둘을 꼽는다면 봉준호와 김기덕이 떠오른다. 봉준호는 자본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예술성을 꺾지않는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고 김기덕은 자본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하다. (얼마전의 발언으로 보아 김기덕은 봉준호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듯 싶지만) 내겐 둘 다 예술가로서 훌륭하고 그중 나는 봉준호같은 작가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김기덕보다는 봉준호가 대중들에게 더 많이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자본에 의해 자신의 기질을 꺾거나 불필요하게 탕진하면 그것은 가장 나쁜 결과가 되고만다. 하지만 자본을 이용할 수 있는 작가가 되어보는 것은 한번쯤 해볼만한 시도가 아닐까 한다. 자본주의는 뭔가 괘씸하다라고 느끼는 서민의 소박한 바램이다. -- 거북이 2006-8-14 8:22 pm

2 # 장신고

장편 데뷰작 '플란다스의개'는 보지 못했으므로 과감하게 생략하고, 전작 '살인의 추억'으로 나름대로 힛트작품을 만드는 감독으로 자리매김을 한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영화다. 영화 개봉전에 티져도 엄청 많았고, 영화가 좋다 나쁘다 말도 많았다.

역시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개인적으로 영화 '괴물'은 '살인의 추억'을 뛰어 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영화를 기점으로 봉준호 감독은 본격적인 자신의 작품활동을 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그러다가 '나 감독 안해'이러면 나만 민망해 지겠지만...-_-;;;)

그럼 무엇이 좋았냐? 글쎄... 그냥 생각나는데로 정리를 해보면, 일단, 영화전체에서 '배우의 존재감'보다 '영화자체의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왔고,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건 절대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다. (나의 글을 읽을때는 언제나 그것을 염두해 두시기 바랍니다.) '살인의 추억'과 같은 배우의 개인기나 눈에 띄는 장면이나, 영화이후 회자 될만한 유행어도 없다. (나는 이런것이 영화자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내가 인식하지 못할 만큼 감독의 연출력이 향상되었다는 이야기가 맞다.

두번째는 요즘 힛트한 몇몇 한국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적(?)인 정치성에 비해 '괴물'은 가장 온전하고 제대로된 정치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연상케 했던 '월컴 투 동막골'이나, 요즘 네티즌의 집중타격을 받고 무관심속에 방치된 '한반도'는 못봐서 생략하고, 봉준호 자신의 전작이었던 '살인의 추억'에서 발부했던 '암묵적 면죄부'같은 성향을 뛰어 넘었다고 본다.

현재 인터넷에 온갖종류의 스포일러가 난무하고 있으니, 스토리는 그것을 참조하시거나, 직접 보시거나 하시기 바란다.

어려운 이야기를 다 집어 치우고서라도, '현재 한강에 '괴물'이 나타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감없이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이영화가 '프로파간다'적 의도(부정적의미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르게 말해 영화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그 삶이 정치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이영화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감독의 방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2006년 만들어진 한국영화중에 현재로는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싶다.

-- 장신고 2006-8-7 11:19 am

3 # 촌평

괴물이 관객 7백만을 돌파했다.
이는 개봉 12일만으로 역대 최단기간 기록. 그 이외에도 최고, 최단, 기록이란 기록들은 죄다 경신하고 있다.


박수쳐야만 하는 일일까?


나도 이 영화에 담긴 사회풍자적인 요소들에 많은 점수를 주고, 영화와 관련된 리뷰들을 하나씩 검색해 볼 정도로 팬이 되었지만, 이와 같은 흥행몰이는 찜찝한 구석이 있다.


언론은 괴물이 칸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이후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일단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개봉 후엔 한 목소리로 호평 일색의 보도로 괴물을 보지 않으면 왕따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니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우리나라의 떼거리 문화, 냄비 문화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조선일보는 이를 불세출의 집단 발작이라고 까지 표현하였다 ㅋ)


영화인들이 목청높여 주장하던 스크린쿼터 사수의 전제가 문화의 다양성 확보임을 생각해 보면,
괴물의 이 괴물같은 흥행몰이는 참으로 아이러니 한 구석이 있다.


실제로 지금 영화관에 가면 괴물 말고는 별로 볼게 없다.
영화관 보면 볼게 없는데 이 정도의 흥행이 나올만도 하지.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상황이다.


괴물을 재미있게 본 나도 이런 괴물같은 극장 싹쓸이는 불편하다.


한 해 제작되는 한국영화는 200편에 달한다.
괴물 처럼 배급을 독식하는 영화가 나오면 그 영화들은 극장에 걸릴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사라질수 밖에 없다.


영화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스크린쿼터 사수를 주장했는가?
괴물을 보고 나면 다른 영화를 볼 수 없어 극장에 갈 필요가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주장하다니 어이상실이다.


헐리우드 영화까지 갈 것 도 없다.
한국영화 한 편 때문에 관객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권리를 모두 박탈해 놓은 상황을 보고 영화인들은 좀 깨달았으면 한다.


오죽했으면 이문식이나 김기덕이 이건 너무해! 라고 괴물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을까. -- 붕어 2006-8-18 2:36 pm

실내 온도를 빨리 올리고 싶다면 가습기를 튼다

외출 후 돌아와서 집이 추울 때 보일러 온도를 무작정 높이지 말고 적당한 온도로 맞춘다.


대신 가습기를 틀어 집에 습기를 더한다.


보일러를 작동시키면 바닥이 덥혀지면서 집이 따뜻해지는데,


습도가 높으면 공기 순환이 빨라져 집이 빨리 데워지는 효과가 있다.


출처:다음카페 생활의지혜! -- 생활지혜 2009-1-16 6:48 am

붕어님 말씀에 한표입니다. 하지만 그건 봉준호의 잘못은 아닐거구요, 올 오어 나씽을 추구하는 배급시스템의 문제인 것 같아요. 멀티플렉스를 이용해 상영관 융단폭격을 하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 거북이 2006-8-19 1:2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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