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Coltrane

1 소개[ | ]

유소희 (rain70) About John Coltrane. 05/20 23:02 265 line

안녕하세요.
언제나 빌린 아이디로 뵙는 김석젭니다.
다음글은 타BBS의 음악동호회에서 개최했던 재즈감상회의 팜플렛중 일부분입니다. 주제는 John Coltrane이었고요.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나 참고가 될까하고 감히 올립니다.


재즈 정기감상회팜플렛 [John Coltrane]

My goal is to live the truly religious life and express it through my music. If you live it, when you play there's no problem about the music because it's part of the whole thing. When you begin to see the possibilities of music, you desire to do something really good for people, to help humanity free itself from its hang-ups. I think music can make the world better and, if I'm qualified, I want to do it. I'd like to point out to people the divine in a musical language that transcends words. I want to speak to their souls.
-- John Coltrane, 1967

John Coltrane 감상회에 들어가며- 그가 '67년 7월 17일 40세의 젊은 나이에간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벌써 30년 이나 지났습니다. 하지만그는 재즈의 역사에 전설적인 인물로아직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즈사에 서 그를 위대한 뮤지션으로꼽기에 정당한 이유를 봅시다. 첫째, 그 는 탁월한 연주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째, 작곡과 편곡 능력에서 도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그는 어느정도의 경지에 이른 후에도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 을 추구하였으며, 그로인해 많은 뮤지션들에게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떠남으로써 생긴 커다란 빈자리는아직까지도 어느 누구에 의 해서도채워지지 않는 듯 합니다.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보였던 1950년대 중반부터 Trane의 발자취를따라가 보면서 그 의 음악과 생애에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하겠습니다. 팜플 렛의 다음 글부터는 편의를 위해 반말을 사용함을 용서해 주십시요.

Coltrane의 초년기에서 무명시절까지 (1926-1954)-

그는 1926년 9월23일 North Carolina주남부의 Hamlet이라는 도시 에서 태어난 후 High Point라는 도시에서 자라났다.그 곳에서 그는 E-flat horn과 클라리넷 등을 배웠으며 15세경에 알토 색스폰을 배웠 다.1944년 필라델피아로 옮긴 그는 Ornstein School of Music과 Granoff Studio에서 수학하다가 1945년부터46년까지는 하와이의해 군밴드에 근무하느라 공부를중단 했다. 그는해군밴드에서 알토 색 스폰을 연주하였으며 Eddie "Clean Head" Vinson과 함께 밴드 생활을 하며 테너색스폰을 손에 잡는다.그후 그는 Jimmy Heath,Howard McGhee, Dizzy Gillespie등이 이끄는밴드에서 연주를하였다. 그는 첫 앨범 레코딩을 1949년Dizzy 빅밴드의 일원으로 알토색스폰을 맡아 캐피털 레코드에서 가졌으며 1953년부터 54년까지는Johnny Hodges's septet에서 활동하면서테너색스폰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후 1년여간 여러 밴드를 부정기적으로 드나들다가 드디어 1955년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Miles Davis의 퀸텟에 참여하면서 재즈신 의 주목을 받기시작한다.그당시까지그에게영향을 끼친뮤지션 은LesterYoung과 Dexter Gordon, Sonny Stitt등을 우선적으 로꼽을수 있겠다.

-MilesDavis,TheloniousMonk와의 교류와스타일 확립기-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난 Miles Davis는 1955년 새로운 퀸텟을 조직하 면서 당시로는 무명이었던 존콜트레인을 색스폰 주자로 영입한다. 사 실마일스 데이비스의 퀸텟에 참여하기전까지 콜트레인의 레코딩은 별로 남아있지않다. 마일스의 퀸텟은 콜트레인과 피아노에 텍사스 출신의 Red Galand, 베이스에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Paul Chambers, 드럼 에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Philly JoeJones의 라인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퀸텟에서 마일스와 함께 활동을 하면서부터그는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가 첫 등장부터 좋은 평을 받은것 만은 아닌듯 하다. 초반기에 그의연주를 이해하지 못한 청중들이,그가 솔로연주 를 할 때면 객석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전해지 며, 비평가들이 색스폰 주자를 왜 바꾸지 않냐고 마일스에게 묻는 경우 도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존의 역량을 간파하고 있었다. 콜트레인은마일스와 활동하면서 부터 자신의 스타일을정립 하기 시작한다. 차분히주제를 제시하고 차가운음색으로여백을 잘 이용하며 결코 서두르지않는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는 마일스와 비 교했을 때 콜트레인은 어떤면에서 보면 정반대의 성격의연주를 들려 주었다. 그의 음색은 격렬하고열정적이었으며 복잡한 리듬구조를 가진 즉흥 연주를 들려 주었다. 놀랍게도 이런 두 사람의 상반된스타일이 한데 어울려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콜트레인의 음색을 확인할수있는 마일스 퀸텟의 앨범들을 대충 살펴 보면1955년의 _The New MilesDavis Quintet_앨범과 동년 녹음한 마일스 퀸텟의 콜롬 비아레이블 데뷰앨범 _'Round about midnight_, 그리고,56년에발 표된 유명한마라톤세션 4부작인_cookin'_, _Relaxin'_, _Workin'_, _steamin', 등을 꼽을수있겠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밴드생활을하다 헤로인과 알콜중독에 빠진 콜트레인은 드러머였던 필리 조 존스와함께 '57년 4월 밴드를 떠나게 된다.(해고 되었는지 스스로 떠났는지는 확실치 않음)그후, 필라델피아의 어머니 집에서 칩거하며 1주일만에불가사의하게도 ( 영화 Trainspotting을보셨는지요?) 스스로 술과 약물을끊은 콜 트레인은(그 당시영적인깨어남을 체험했다고64년 발매된 _Love Supreme_앨범 라이너 노트에서 고백함) 몽크와의 교류를 갖게 된다.

Working with Monk brought me close to a musical architect of the highest order. I felt learned from him in every way - through the senses,theoretically,technically. I would talk to Monk about musical problems and he would sit at the piano and show me the answers by playing them. I could watch him play and find out the things I wanted to know. Also, I could see a lot of things that I didn't Know about at all.
-John Coltrane-(from the 'Down Beat' article:Sep.1960)

He plays with a whole range of chords. I had never heard anything like it before and I've learned a lot from him.
-Thelonious Monk-

뉴욕의 Five Spot이란 재즈바에서57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함께 연주 활동을 하는 동안 콜트레인은 몽크와 서로의 음악적인 면 에서 많은걸 주고 받는다. 몽크는콜트레인이 좀더 긴즉흥연주를 하도록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False fingering과입모양의 미 묘한 변화를 이용한멀티포닉의 개념을 잡는데도도움을 주었다고 한다.많은새로운 음악적 소양을 흡수하면서 트레인은그 기간 동안새로운 시도를 통해자신만의 독특한 cut-down 코드 작업에 의한 즉흥연주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다.그것은바로, 화음에 집중 적으로 파고들어서 한 코드내에서 가능한 모든 음들을 개개의음을 분별할수 없을 정도로 잘게 쪼개서모두 나열해 연주함으로써 독특한 느낌을 주는 즉흥연주스타일 이었다.이런 연주 법은 재즈 평론가인 Ira Gitler가 Down Beat지에58년 기고한 글 "Trane on theTrack"에서'Sheets of Sound'라는 용어로 표현되 었다. 이 때부터Trane은 자신감을 얻고 자립을 도모하기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후부터 그는자신의 리더작 앨범들을 녹음하기 시작하면서명성을 한층 높이게 된다. 이 당시그의 리더작앨범 들중 대표적인것들을대충꼽아보면 Prestige레이블에서발매된 _Lush Life_,_Soultrane_, _Settin' thepace_과 BlueNote 레이 블에서 발표된 _Blue Train_ 등을 들수 있다. '58년부터는 다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룹에참여해서 앨범작 업을 가지면서 자신의 리더작앨범녹음도 병행한다.이때 마일스의 사이드맨으로 참여한앨범들 중 중요한 앨범을 살펴보면'58년의 _Milestones_와59년에 발표된 명반_Kind of Blue_, 그리고 마일 스의 사이드맨으로 마지막참여작인 61년작 _Someday my Prince will come_등을 꼽을수 있다.그리고 59년에 Atlantic레이블로 이적해서 발표한 그의자작곡들로만 채워진 첫 앨범인_Giants step_은 그의 코드변환에 의한 즉흥연주의 극을 추구한 명반으로 언제나 꼽히곤 한 다.

-- Modal Improvisation의 탐구--- Mode라는 개념을 음악을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C장조의[도-레-미-파-솔-라-시]의 각음을기본음으로 하는C-Ionian,D Dorian, E-Phrygian, F-Lydian등의 7개의모드가 있으며 , 각 모드는 나름 대로의 음계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D-Dorian 은 #나 b가 붙지 않은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계로 구성 되어 있다. 이 음계를 자세히 보면D장조와 비교해 볼때 3음(파)와 7음(도)가반음 내려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모드의 음계를 이용해서 ,만약 곡의 진행이 C-Dm-F-C 의 코드 진행으로이루어진다면, 즉흥연주시각 코드의 기본음의 모드음계를이용해서 ,즉,C-Ionian -> D-Dorian-> F-Lydian->C-Ionian의 모드음계를 이용해서연주를 한다고 보면 된다. 말로 설명하는건 이렇듯이 복잡 하지만, 머리 뽀개 지며 애써 이해하는것 보다는 음악을 들으며 감을 잡는게 더 중요하다 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전에일반적인 밥 재즈곡들은코드진행에 따라 즉흥연주 를하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이런 방식은 연주자에게 주로코드 내의 음만으로 연주해야 하는 제한이뒤따르게 된다.이런 연주에서 벗어나기위해 마일스데이비스는 _Milestones_앨범부터 기미를 보 이다가59년에 녹음된 _Kind of blue_에서 Bill Evans의 아이디어 제공에힘입어 모드에 의한 즉흥연주방법을 제시하게 된다. 모달 재즈곡에서는 훨씬단순화된 적은 수의 코드만이 사용되며, 그럼으로써 뮤지션이 즉흥연주를 행함에 있어 보다자유로움과 느슨 한 여유를 얻을수 있게 된다.

콜트레인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기존의 코드진행 방식에 의한 즉흥연주 방식을 제쳐두고 모드 주법을 시도한 것에 커다란 영향을받아, 차츰 모드 주법을 그의 음악적 이상추구의방법의 일환으로 사용한다.
이후 콜트레인은60년 발매된 앨범 _My favorite things_에서부터 60년대 중반까지의 일련의 작품들에서모드형식을 이용한 즉흥연주를 추구하며 많은 음악적인 성과를얻게 된다. 하지만 그의 연주의 모든 틀이mode내의 음만을 사용하는 modal jazz라는 형식에 얽매이 지는 않았다.그는 모드 외의 음도사용하였으며, 정확히 말하자 면 코드변환이 적은 mode 형식을 응용해서즉흥연주에 있어서 많은 자유로움과 공간감을 얻었다고 말할수 있겠다.이러한모드 형식을 응용한 즉흥연주 방식은많은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 Classic Quartet의 결성과계속적 음악적 변화 추구--- 55년부터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를드나들던 존 콜트레인은 1961년 드디어 자신의쿼텟을 결성하종종일컬어 지게된다.
Atlantic레이블에서발매된_Myfavorite things_앨범부터 선보이기시작한 쿼텟의정규멤버를 살펴보면피아노에 McCoy Tyner,드럼에 Elvin Jones, 그리고베이스에는 초반에는 SteveDavis, Reggie Workman 등의 멤버들도 가끔 참여 했으나 주로 Jimmy Garrison과 가장 많은 앨범 작업을 하였다.이 외에도 60년대 초반에는 여러 가지관악기를 능란 하게 다루는 Eric Dolphy 가비정규적으로 앨범녹음과 공연에 사이드맨으로 참여하여 콜트레 인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콜트레인은 클래식 쿼텟의 결성과 더불어자신만의 음악을 좀더 깊이 있게 추구할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 쿼텟의 주요 멤버였던 맥코이 타이너와 엘빈 존스는 콜트레인 이 추구하는 음악에 충실한 동반자 역할을 해준다.엘빈 존스는 드럼 부문에 있어서, 색소폰의 찰리 파커나 콜트레인에 비교할수 있을만큼 혁신적인 뮤지션이었다.그의 Polyrhythmical한 연주 스타일과정력 적이고 스윙감 넘치는 드러밍은 콜트레인이자유로운 솔로를 할수 있도 록 뒤를완벽히 받쳐주고 고무 시켜주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 냈다.
또한 맥코이 타이너는 Modal Jazz 형식에 바탕을 두고 특징적으로 4th음을 사용한 voicingchords를 비롯해서 펜타토닉 패턴을 이용한 반주, 빠른 솔로연주 능력들을발휘하여 콜트레인 쿼텟 사운드의 구성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으며, 후에많은 피아노 연주자들 에게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60년대 초반에 가끔 참여 했던 Eric Dolphy는 새가 지저귀는듯한 음색의 여러 가지 관악 기 연주로 콜트레인에게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쿼텟의 후반기에 참여했던 Pharoah Sanders의 울부짖는 듯한 테너음색은 콜트레인의 음악이 독특한 색깔을 가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

--Soprano Sax의 사용과 Free Jazz에의 경도- '60년 아틀란틱레이블에서 발매된 _Avant-Garde_앨범에서 부터콜트레인은 테너 색스폰 이외에 소프라노 색스폰을 입에 대기 시작한다.소프라노 색스폰은 그 이전에도 Sidney Bechet같은 뮤지션에의해 사용 되었으나 재즈에 있어서 standard한 악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콜트레인이 소프라노를 들고나와 _My Favorite Things_ 앨범으로커다란성공을거둔후에 그의영향에의해 Cannonball Adderly나 Sonny Rollins 같은많은 알토나 테너 연주자 들도 소프라노를 불기 시작했다.60년대 초반 소프라노를 이용해서 콜트레인은조금씩 새로운 색스폰 음색을 만들기 시작한다.그는 절규하는 사람의목소리 같은 음색을 내기도 하며 한 번에여러음 을 내는 mulitiphonic형식의 블로잉을 이용해서 독특한 음색을 즉흥 연주시 많이 사용한다. 어떨때는 매우 명상적이고 느린음색으로 멜 로디를 연주하기도 하며 (Alabama,1963),그의 종교적인색채가 뚜렷히 나 있는 _Love Supreme_앨범에서는 나레이션과 더불어 마치 기도와 같은 음색으로 멜로디 라인을 연주하기도 한다.

65년경부터 그는 음악적영역을 점점 더 넓히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프리재즈형식의 추구로이어졌다. 60년에아틀란 틱 레이블에서녹음한 _The Avant-Garde_앨범에서 이런 전조를 눈치챌수 있다. 언제나 극단적인 찬반양론의 대상이 되는 앨범 _Ascension_(65년)에서 그는 쿼텟의 멤버로 만족하지 않고 알토 색스로 만족하지 않고 알토 색스폰 둘과, 테너색스폰 셋, 트럼펫셋,피아노 하나, 베이스 둘, 드럼하나의 대규모의 멤버들과함께 40여분에 달하는 곡을 녹음한다. 이 곡은 완전한무조(atonal)의 곡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 무조로 들리며느슨한구조의 곡 형식을 지녔으며, 대부분의 즉흥연주는 극단을 향해 치닫는 듯한, 치밀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이후의 _Om_과 _Meditations_(65년)과 _Sun Ship_, _Interstellar Space_,등등 그이후의 여러 앨범들에서는그가 마지막으로 추구했던 우주적인 사운드로 충만한 프리재즈 성향의 음악적 시도를 많이들을수 있다. 음악을 종교적인 구원의수단 으로 여겼던 콜트레인의마지막 귀결은 프리재즈였다.당연한 결과 였일까?만약 그가 10년이라도더 늦게 죽었더라면, 프리재 즈라는영역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더욱더 재즈계에 큰 비중을 차지했을것임에 틀림 없을것이리라.

References 1.New Grove Dictionary of Jazz 2.Rough Guides (Penguin) 3.Jazz Styles :4th Edition 4.'John Coltrane' by Nat Hentoff (page 620 - 628, "Reading Jazz"by Gottlieb) 5.'What Coltrane wanted' by Edward Strickland

김 석제 http://www.chollian.net/~molars

2 아틀랜틱 에서의 시간들 (By Lewis Porter)[ | ]

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106/25 02:45 77 line

안녕하세요. 진짜 오랫만에 다시 글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번글은 존 콜 트레인에 관한 연대기 비슷 한건데,아마 그의1950년대말렵부터60년대 초반까지 아틀랜틱 레코드에 몸 담고 있을 시절에 관한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이미 원본은 돌려준 상태라서 확인도 못하겠지만, 까만BOX에5장의 씨디가 들어있던(보너스 씨디도 있었음) 박스 세트였는데, 아틀랜틱 /리노 에서 발매 되었습니다. 대전에 어떤 재즈 애호가 한분이이 박스세트의 북넷 번역을 부 탁해서투병 생활(?) 중에 한번 해 보았는데, 사실 재즈를 알지도 못하고- 재즈동 에서의 경험으로는 초보니 왕 초보니 하는 말도 가당찬쵸.. 또 콜트레 인 은 지금껏 들어본적도 없어서 - 이정돕니다.많이 고생 했습니다. 번역도 충분하지 않겠 지만 그래도 한번 섯불리 올려보겠습니다. 쿨럭~


나는 항상 이런 식의 레코딩을 좋아했다.그것들로 신선함을발견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매우 밝고 우아하다. - 경쾌하나, 동시에 불같이 과격하며 정열적 이고 심오하다. 그것은 존 콜트레인의 연주 뿐만이 아니라 멕코이 터너 와 엘빈 존스 가 같이 작업 해 주었기때문에 가능했다. 그들 스스로를 발견 했으며 연 주를 흥미롭게 만들어갔다. 바삭바삭 했으며 리드믹컬 하게 빛났는데,그것은 예 전에 보였던 그의연주처럼 드라마틱한 것은 아니었으나,그 자신의 영역에서 유연하게 진행 되었다.

이 레코딩은 콜트레인을 작곡가이자 편곡자의 위치로 올려 놓았던 것이다. 그가 전 시대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섹소포니스트 이자, 임프로바이져의 한사람 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레코딩이 있기까지 아마도 명확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작곡가로써 델로니어스 몽크나웨인 쇼터, 혹은 그밖의 다른 인물들 처럼 소규모 악단을 이끌 수 있을까 였다. 몇의 콜트레인의 오리지날 곡들은 신 전(?)안에서녹음 되어졌으나 Giant Step,Namia, Cursin Mary, 그리고 Mr.PC 같은 곡들 가운데 콜트레인의 작품에 대한 접근방법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선 율 즉, 소규모 악단의 재즈 사운드에 전체적으로 영향 받은 편곡적 접근 이었다. (마치, 마일즈데이비스 그룹이 1963~68년까지 그랬던 것 처럼.) My Favorite Thing의 그의 버전은 전혀그렇지 않지만, -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오리지날이 며,혁명적인 것이었다. Body and Soul 이나 Summertime에서 보여준 익숙한 멜 로디의 재결합과 그의영감을 주입했던 GiantStep - ButNot For Me와 Ho w High The Moon속으로 코드 시퀀스를 쳐넣은, (Satelite는 그것을 위해 지어진 이름 이다.) 은 모든 재즈 작곡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예전에 Nita와Just for the love 같은 그의 오리지날로 1956년 폴 챔버스와 함께 세션으로 행하였으며, 1957년10월에는 그의블루노트앨범을 위해Blue Train,LazyBird, Moments Notice 등의 그의 오리지날 곡을 쓰기 도 하였다.

그가 그의 아내 Juanita를 위해 쓴 첫 번째 작품인 Nita는 또한 콜트레인 의 오리지날로 처음 녹음되었는데,그곡에는 적어도 악절 법에 있어서 삼분의 일 이상이 진행 변화에 의한 코드를 사용하였다.

Moments Notice에서 그는 멜로디에 있어서 반복노트 하 에서 변화하는 하 모니를 위치 시키는데 성공 하였다. (혹은몰두 하였다.)그것은 같은해 디지 길레스피가 ConAlma에서 같은 방식을 행했다는 것, 그리고 콜트레인의 연주적 형성기를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보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 이었다. 이렇한 같은 음율에서 조화로움을 간직한 다른 코드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어떤 한 비 상용적인코드 접속을 찾도록 유도 되었으며,나는 그들이 Giant step에서 부 분적으로 코드의 연속 지점이 불일치 되도록, 그러나멜로디는 1피치에서 머물 지 않게 이끌도록 제안 했었다. Con Alma에서 각음정 및의 첫 번째 두 코드는 장 3도 떨어져, Giantstep에서 3도에 의한 원음 변화에 관한 콜트레인의 연구 방법론 으로 포석 되었다.

1961년 발간된 1962년 연감Down Beat Music의 바브라 가드너에 의한 기 사에따르면, 콜트레인은 작곡에 대하여 토론 하면서 그것이 마치 강요에 마지 못해 하는 귀찬은 일인양말했다. " 나는 단지 나 스스로의 곡을 써야만 한다. 나는 정말이지 내 시간들을 나의 혼(Horn) 으로부터 빼앗기고 싶지않다. 나에 게 있어 작곡은 항상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들어 오히려 그것에 더많은 시간들을빼앗기고 있는 것을 알았는데, 그 이유는내가 아직 나 자신 의 곡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이었다." 같은 기사에서베이시스트 도날드 가렛트는 "그는 좀 소심한 뮤지션이다. 그는 그가어떤 곡을 어떻게 연주할 것 인가 결정하기 바로전에 7개내지 8개의 조를 튜닝 하기도 할 것이다." 라고 평했다.

콜트레인의 초기 영향은 일찌기 잘 알려져 왔는데, - 그가 알토 섹소폰에 입문한 것은 13세 그러니까 1939년에서 1940년 사이 레스터 영과 조니 호지스를 접하고 나서이다. 그리고 그가 챨리파커를 알게 되었을때는 즉시 Bird의 문하생 이 되었다.이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최근에새롭게 발견된 1946년 7월어느날선상에서 레코딩된 일련의 세션 연주들 이다.그곳에서 여덟곡중 네곡이 파커의 1978년발매된 작품을 카피 한 곡 이었다. (콜트레인의 HotHo -use가 수록된 버드에 의해 녹음된 A Tadd Dameron은 이전에콜트레인이나의 도움을 받아 리노/아틀랜틱 재즈 겔러리에서 발매했었다. - The Last Giant : TheJohn Coltrane Antholodge.)콜트레인이테너 섹소폰으로 바꾼 약 2년후 에 그는 덱스터고든, 워렌 그레이 소니 스티트를 듣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계속하시겠습니까? (Y/n) >>

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206/25 15:37 73 line

가드너의 같은 기사에서 콜트레인은 비록 당시 스티트의 연주가 고든의 음량을 많은부분 닮아있다 하더라도 그의 연주를꽤 좋아 했었다고 말하였 다. 그런 다음 콜트레인은 1949년부터 1951년까지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활동 한다. 트럼페터 로써 길레스피는 콜트레인의 섹소폰 연주에 거의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을 른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당시 디지 길레스피 로부터 콜트 레인이 배운것은 디지의 혁신적인 작곡아이디어 였다고 믿는다. LastGiant에 길레스피의 곡 으로써 "GoodGroove"라는 제목이 붙여진 작품 이있는데, 그곡에는 길레스피의 흥미로운 코드진행 이외에 또다른 콜트레인 만의 것을 보여 주었다.

콜트레인은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했던 1955년에서 1960년사이 그리고 몽크와 함께 했던 1957년의 6개월 동안 그가진정으로 꽃 피울 수 있는 방법 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몽크와의 라이브 실황은 1992년 블루노트 에서 발매 된 바 있었다. 나는 그 해설지를맡았으나, 1958년 10월에 테입으로 발 매된 몽크와콜트레인의 재결합 레코딩이 있다고 알고 있다.콜트레인은 몽 크의 고유한 위상에 대한증명과 그의 음악적 감흥에 대한 자극을 들어 그를 신뢰 하였다. 그가 적기를; "몽크와함께하는 작업은 가장 높은 위상의 음악 적 건축 으로의 접근을 가능케 해준다. 나는 모든 면에서 그에게 배웠음을 알 고 있다. - 감각을 통해 기술적으로 이론적으로,내가 음악적 문제점에 관해 서그에게 말하자 그는 즉시 피아노에 앉아서, 그것들을 연주해보여주면서 내게 답을 주었다." (1960년 Down Beat 內, 돈 디마이클 "Coltrane On Coltrane의 부연 설명 으로부터) 1957년 한해 동안콜트레인은 마약을 복용했다.그것은 그의건강을 증진시켜 주었으며, 아마도 약간의 뮤지션적정신 세계를 개선 증진시키는 데 기여 하였다. 섹소포니스트 재키 밀란이 1991년 8월 재즈 타임즈에서 밝히 길 ; 콜트레인은 이미마일즈와 함께 있을동안마약을 상용하고 있었다. 고 밝혔으며, 콜트레인이약 5~6일 동안 매우 비참했었으며, 그런 후 갑자기 건 강 해지기 시작했고,더 이상 음주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약물도 복용하지 않았고, 알고있던 바 보다 더 경이로운 섹소폰 연주를들려 주었다고 이야기 했다.

1958년 초, 콜트레인은 마일즈 데이비스 그룹에재 참가하여그의 첫 번째 레코딩을 그들과 함께 4월에 진행 중 이었다. 그가 Coltrane On Coltrane에 쓰기를 ; "우리는 마일즈 데이비스를 그의 또다른 음악적 무대위에서 재 발견 했다. 그의 과거에 한 시기가 있었으니, 그것은멀티 코드로 구성된 작 품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 자신의편의를 위해 코드진행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그 러나 지금에 와서의 그는 노래에 될 수 있는한 적은 코드 변화를 추구하는 반 대경향 으로 옮겨진 듯 했다. 그는 라인과 코드 경향에서 자유로운 흐름을 지 닌 음율을 사용했다. 그의 연주는 솔로이스트의 코드적(수직적) 이거나, 멜로 디적 (조화로운)인 연주의 선택폭을 허용했다." 삽입부의 언어에서는 재즈 작 곡가 조지 러셀의 음악과 용어에 노출되어 있던 콜트레인을 반영 하였다. (어 떤 형식에 민감했다는 의미 일까?)

"사실..."콜트레인은 계속 말하였다. "그의 음악의 자유로운 흐름과 방 향 때문에,나는 아주 쉽게 내가 가진나의 하모닉 아이디어를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나는 나의 코드들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 말하건데, C7에서 나는 종종 E-flat 7 을, F-Sharp 7위로,F아래로 포개 놓곤 하는데,그것은 한 곡에서 단지 세 코드로만 연주할 수있게 해준다.마일즈의 음악은 내게 풍부한 자유를 선사해 주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접근 이었다."

"대략 이시기에 나는 스윕핑 사운드를 시도하고 있었다.나는 더욱 더 개인적인 향상에 힘 쓰고 있었기에 경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나는당시 아 이라 기틀러가 제시해 준, 사운드 시트의급격한 선율에 관해 오랬동안 공부 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미 Three-On-One 코드 접근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당시의경향이란, 각 코드의 전체 스케일을 연주하는것 이었다. 그 러므로 그들은 종종 섬광과도 같이 빠르게 연주를 끝마치기도 했다.나는 주 어진 시간 내에 연주 하는데, 어떤 숫자의 코드진행이 있었는지 발견했다. 그 리고 종종 내가 연주하고 있는 것이8음절이 아니고, 16음절이거나 트리플렛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는 그들을 모두 안으로 끄집어 넣기 위해 5와 7 같은비정상적인 음율을 내 주어야만 했다.나는 이것으로 음절의그룹 내 에는 항상 한 음절 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그 룹들을 강한 비트로써 강조 하거나 악센트를 주려는 시도를 행하였는데, - 아 마도 여기의2박 에서 그리고 끝의 4박 에서 종종 내가 연주 한 것은 피아노와 함께한 조화로운 파괴였다. - 매우 오랬동안 나는 베이스와 드럼과 함께 떠돌 았다."

위 인용문의 흥미로운 점은 콜트레인이 음의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그 는 조화의 관점에서복잡한 리듬적 결합 만큼사운드 시트를잘 설명한다. 또, 그는 각 코드 위로 몇 개의 스케일 들을 급격히 뒤덮는 것 으로부터 불가 피하게 결과된 곡을 썼다. (코드에 있어서 스케일과의 매칭은 1950년 대 초반 동안 레니 트리스타노 와 조지 러셀에 의해 주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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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306/25 15:39 79 line

리듬과 함께 하모니를 강조하자는 이 제안은 거의우연히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같은 제안 부분 으로 부터의 다른 인용은 정확한 것이다. :"나는리 듬과 관련하여 좀더 유연해지고 싶다. 나는 조금더 리듬에 대해 공부 해야 한 다고 느낀다.나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가지고 리듬을실험해 보지 못했다.
나의 대부분의 실험들은 하모닉 형태의것이었다.나는 과거에 한쪽 구석에 다 시간과 리듬을 방치해 두었다."그러나 명확하게도 콜트레인이 리듬을 경 시한 것이 아니다.그는강한 비트로강조와 중점을 음률에 부각 시켰다고 말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들이 재즈에서 강조된 이후로 강박자로써 2와 4가 참고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음악에서는 1과 3이가장 강한 박이 다.

자신의 진전에 관해서, 그 스스로는 비판적이다. 콜트레인은;" 지금 사 운드 시트는 아름다운 것 이거나 유일한 방법이아니다. 만약 그것이 그렇게 되려면 증명 되어졌어야만 했다. 만약 내가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난 실 패할 것이다. (1958년 Down Beat의 Trane On Track에서 아이라 기틀러의 기사 를 인용함) 콜트레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 하였다. "데이비스는 한 번 즉흥된 곡 위 로 배경을 단순화 하는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1959년 3월 2일과 4월 6일, 마일즈 데이비스는그 단순화에대한 실험으로써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와그 와 별 관계없는 길 에반스와 함께 앨범 AKind of Blue를 기획하게 된다. 모 든 재즈에 있어서 그 코드는 한 소절에 한 번 변한다.그 모드(스케일 형태) 는 코드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데이비스의새로운 음악은 같은 코드 위에서 머물러 - 그러므로 모드는, 한 번에 16소절 만큼동안 오래 머물렀다. 모달 재즈의 자유로움은 또한 도전적인 자세였다. -최소한의 조화와의 경계선 에서 흥미롭고 조리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So What의 오프닝 선정에 있어서 콜트레인은자발적으로 그가 개발한 원리적 아이디어와 그것의 멜로딕모티 브의 추상적 질감에 대해, 둘다에주목하여타이트하게 통합된 솔로로 작곡 되었다.

So What에서의 솔로 부분은 1960년대 동안Giant Step이후의 콜트레인 이 취해나갈 음악적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후 더욱더 임프로바이 제이션의 구조적 관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그가 그랬던 만큼그는 좀더 배타적인 양식론적 배경에 집중하였으며 그것은 콜트레인에게아이디어를 개 발 하는데 필요한 시간들을 제공했다.

이 기간 동안, 1959년 3월 26일 콜트레인은 아틀랜틱에서 자신의 첫 작 품들을 레코딩한다. (레코딩 당시 마일즈가 없이는 콜럼비아 레이블에서 레코 딩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콜트레인과 아틀랜틱의 동반 관계는 2월 15일 밀트 잭슨과의퀸텟 세션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그 레코딩은1974년 까 지발매되지 않은채 로 잇었다.그러나그레코딩들에는 GiantStep과 Namia, Like Sonny의 첫 번째 버전이수록되어 있었으므로우리에게 그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의 라이너 노트에는 존 도엘 에의해 어떻게 이 앨범 의 재발매가 준비 되었나 설명하고 있는데,그가우연히 메이져를 만나 3월 26일 세션의 완벽한 릴 테이프를 발견했다고 하였다.

손으로 또는 귀로써 전해진 이 릴테이프로 지금, 우리는 당시 콜트레인 의 작업습관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리듬 섹션을 맡았던 모든 멤버들은 연주 에 있어서 완벽한 파트진행을 해주었다. Like Sonny에서 그는쎄달 윈튼에게 섹소폰이 테마로 들어가기 까지 베이스로 유니즌플레이를 하도록 지시했다. 콜트레인이몇주간 작업 하는동안, 완벽한 라틴 리듬을 익힐 수 있었는데,그 리듬은 테마를 지지해 주며, 스윙감 넘치는 스텐다드 재즈로부터 변화를 만들 어 준다.그 라틴 리듬들은콜트레인의 초기 부터의 아프리카와 라틴쪽의 근본에 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것은 콜트레인 천재성의 구성에 대한 지시와 도 같았다. 그 구성의 전체 조각 들은 작은 튜닝의 형태로 진전 되었다. 그것 은 그의 친구인 소니 롤린스가 좋아해즐겨 사용하기도 하였다. - 그래서 제 목이 Like Sonny였다.(조 골드버그는 소니 롤린스가아마도 이 장식악절의 연주를 들었을 한 장소를 지적했다. ; 1957년 5월 케니 도햄의 Jazz Contrast 앨범에 수록된 My Old Flame의 솔로 부분.)콜트레인 자신의연주와 그밖의 것에대한 음악원고들은 -12페이지 전체에걸쳐 - Coltrane:C.O 심킨스에 의한 연대기,에 수록되어졌다. (1975년, 1989년, Black Classic Press에 의해 재발간 되어짐.) 이 중요한 자료는 보관되어 심층깊게 연구되어진다.
Like Sonny는 지속적으로 발전 되어간다. 1959년 12월에는 그것이 구체 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보사노바의 리듬으로 들려지게 된다.세 번째 버전은 룰렛 레코드를 통해1960년 9월에 드러머 빌리 히킨스와 함께 레코딩 되었다.

이곳에서의 연주의 구체화는 이곡을 Simple Like라 불리웠으며, - 아마 이것은 Simple Like Sonny의 줄임말 일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은 보다 더 프 리해 지고 있었다. ( 한번은 그곡이 Simple Life 라고 표기되어 발매된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사촌 메리가 사용하기 좋아했다는 설명 때문에 설득력 을지녔다.) Namia는 또한, 평소보다 베이스 파트에매우 신중을 기한 곡이 었다.마음에 깊은 감흥을 안기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 발라드는 전형적인 로맨틱한 사랑노래 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놓여졌다.

그것은 Giant Step의역사적인 첫 번째 레코딩의 진전과정으로 듣는 것 만 으로도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기본 악장에 있는 8음절과 ii­V­I 진행 형식의 8음절과 함께, 16음절 코드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것 은 재즈 교육 프로그램에서의 필수 조건이 되었으며,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적 시험 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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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406/25 15:41 81 line

콜트레인은 각코드에 맞추어질 수 있도록 손쉽게 이동되는 네가지 음절 패턴을 그의 솔로 구축에 대거 도입 하기를 선택한다.한 개의 기본 패턴으로, 각 키의 1도, 2도, 3도, 5도를 이끌어 연계 시키고 그것은몇 차례에 걸쳐 표현한다. 이 렇한 팬타토닉 패턴의 사용은 그들이 부르듯이, (생략된 6번째 스케일이그것을 팬타토닉 스케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빠르 게움직이는 코드진행 만큼 느리게움직일 수 있도록,즉흥연주 만큼기술적 인 숙련을 이루도록, 이런, 그리고다른패턴의 적용에 기여한 완벽한 책이 있 었다.콜트레인은이렇한 팬타토닉 패턴과 다른 연주 방식들을 선택적, 교호적 으로 연주 하였고, 그것의 대부분의 것들은 팬타토닉 으로부터 유도되었다. 또 다른 종류의 4개의 음절 패턴 에서는각 코러스의첫 번째 8음절동안 단순한 아르페지오 선율이 종종 나타난다.이렇한 아르페지오는 모두 한 음절이 생략된 5음절 스케일과관련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 있어 이것은, 만약 스케일이반복 적 이거나, 그것이 다른음원 위에 세워져 있다면,코드에서보다 좀 더 쉽게 보여질수 있을 것이다.예를들어올림 C단조 아르페지오의 시작부분에서 (그 의토미 플래네건과 세션에서의 솔로 부분에서..)B로 반복된E팬타토닉 스케 일의 음절을 채택한다.콜트레인은 특별히 각 코러스의 첫 번째4음절 동안 다 양성을 기할 수 있는 상향과 하향 모션의 대비법을 채택한다.그는 자주 스케일의 연결을 사용하곤 했는데, 그것은 마치 팬타토닉 스케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여졌 다. 짧은 기간 이었지만,콜트레인은 특별히 하나가 팬타토닉 스케일 로부터 유 도되면, 이 코드진행의 첫번째 여덟 악절을 결정하는데 공식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그의 공식의 레파토리는 그가 솔로의 흥미를 지켜갈 수 있을 만큼 광범위 했다.

Giant step의 더 초기 버전은 초당 253박의 속도를 가지는데, 그것은 발매 된 오리지날 보다 조금 느린 것 이었다. 그런 느린 템포로 좀더 느슨하고 좀더 서정적인 사운드를 내었다. 아직 이 난해한 부분에 솔로로Cedar Walton을 초대 하지 않았다.(월튼은 정확히 콜트레인과 함께 연주하기를 매우 갈망하고 있었다.) 월튼은 스튜디오에서 연주 되어진그 테마의 사분의 일을 연주 하였다. 두 번째 음절을 연주 하기전, 콜트레인이 윌튼에게 그러한 연주를 지시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5월 5일 콜트레인은 오리지날로 발매된Giant Step을 리더로써 그의 첫 번째 아틀랜틱 앨범이라고 소제목을 붙여레코딩 한다.여기에 Dorn은 앞서 발 표된 테이크(곡제목)와 뒤이어 만들어진테이크를 트랙에 위치시키기 위해 조 정한다. 토니 플래너건은 뛰어난 뮤지션 이었다.그리고 그가 이런 위압적인 연 주부분에서 솔로를 연주 하기란 어려운 일 이란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일 이었 다.(마지막 미발매 테이크에서 콜트레인은 코드로만 단지 솔로로 연주 했다.) 명 백한 사실로 콜트레인은 레코딩 세션이 있기 이전 토미 플래네건에게 리더 /자리 (멜로디 라인과 코드 에서.)를양보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콜트레인 은 그 스타일에대해 언급하지않았고 그래서 플래네건은 중간 템포나 아니면 느 린 템포로 연주해 주어야 한다고 추측했었다.(뉴저지의 윌리암피터슨 대학의 데이빗 딤세이 교수는새롭게 발매된연주들리 수록된 콜트레인의Giant Step의 모든 솔로의 복사본 책을 기획했다.)

Giant Step의 반복적인 하모니 패턴에 매혹 되어, 콜트레인은 1959년과 1960년 몇 개의 다른 연주에서도 비슷한진행양식을 사용하는데, 특히 그 중에도, Countdown, Centrel Park West (멋진 발라드),그리 고Exotica, FifthHouse (Whatis thisthing calllove? 를기초로 만들 어진것이 Hot House였고 Fifth House는 이것을 기초로만들어짐.) 26-2 (버드의 Confirmation을 기초로 만들어짐, 이 이름없었던 아이템은 아마도두 번째 레코 딩 연주가 행해진 후 8월 26일에이름 붙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초기에 언급했던 Satelite와 But Not For Me (이 연주에대한 데이빗 딤세이의 완전 분석 은 1991년 5월 에 발간된 TheAnual Review Of Jazz Studies에 수록되어 있다.) Giant Step에서 보여진 Countdown의 연주는 콜트레인이 아주 극단적으로 빠른 템 포로 연주 하였으며, 시작해서 끝까지의테마를 실랄한 즉흥연주속으로 곧장 밀 어 넣듯한 연주를 했다.

이 레코딩은 지금에 와서 콜트레인의 주된 연구의전형이 되었다.그것은 그의 능력을 성공적으로 개발시키는 것으로 코드 진행의 가장 빠른 움직임을 결정한다.
콜트레인은 이 당시에 물론 마일즈 데이비스 그룹의 정규 멤버였다.1959 년 봄과여름 동안 데이비스 그룹은 할름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을 행 한다. - 루스 브라운과 몽크와 함께 지분을 나누어- 3월 13일 한 주가 시작되는 동안에는 센프란시스코의 블랙호크에서,그리고 다음에는 맨하탄의 버드랜드로 돌아가 공 연 하였다. 8월 23일 그들은 랜달섬 페스티발에서 연주한다.(맨하탄 외곽) ;10월 4일에는 헌터 대학에서 NAACP 기금마련 행사에서 ;10월 23일에서 29일 까지는 브 루클린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카운트 베이지 밴드와 그밖의 사람들과 지분을 나 누어공연 하였다. 그러나 콜트레인 밴드구성원들은 나가서 그들 스스로가 리 더가 되었다.빌 에반스가 이미 떠났고 쥴리안 캐논볼 에들 리가 부루클린 콘써트 를 전후해서 떠났다.

아주 오랬동안, 콜트레인은그의 밴드를 시작할 방법에 대해 고심 하였다. 데이비스가 작업하지 않을 때,콜트레인은거의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그룹을 선정해 연주 하였다.1959년 5월이나 6월의 어떤 지점에서콜트레인은 일주일 만 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New House OfJazz에서 쿼텟을 결성한다.1959년 콜트레인 은 맨하탄의 타운홀에서 쿼텟을 리드하여다른 그룹과함께 연주한다. 반면 마 일즈의 그룹은 이제 퀸텟으로 조정되어 11월 27일 맨하탄의 성 니콜라스아레나 에서 한 댄스 콘써트를 연주한다. (티토 플랜츠 밴드 또한 여기에 있었다.) 그들 은 1959년 크리스마스 주간에 시카고에서 연주 하였다. 그 퀸텟은 1960년 1월 15 일을 시작으로 한주동안 아폴로로 돌아왔다. 그리고 끝내는 3월 21일부터 4월 10 일 까지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 하였다.

콜트레인은 이 투어 에서장엄한 연주를보여 주었다. (부트랙에 기록된 것 처럼.) 그리고, So What, On GreenDolphin Street, All Bluse 등을 오래 연 주 하는동안 야성적이고 산만하며 자유분방하게 연주를 진전 시켰기 때문에 사 실 데이비스와의 여분의 시간들은 아마도가치있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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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506/25 15:43 82 line

4월 16일에는 맨하탄타운 홀에서, 디지 길레스피 밴드와 오스카 피터슨 밴드, 또 그밖의그룹들과 나뉘어 연주한다. 5월의 시작에서 콜트레인은"마 일즈 데이비스와이전에" Jazz gallery (1번가 근처8번째 거리- 성 마크 라 는 곳)라고불리운 클럽을 열었다. 피아노에는 스티브 쿤, 스티브 데이비스의 베이스, 그리고 드럼에 피터 라 로카 였다. 새롭게 조직된 존 콜트레인 쿼텟은 그들의 데뷰 첫날 밤 연주 하면서 청중들은콜트레인! 콜트레인! 이라고 반복 해서 외치며 발을 구르며 환호하였다.그가 무대를 떠나자, 청중들은 그의 손 에 키스하기위해 그에게로 몰려갔다.청중들 중한사람은 거의 입지 않고 있 었는데, 무대로 뛰어들더니 섹소포니스트의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며 갑자기 춤 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참가한 텔로니어스 몽크였는데, 그는 콜 트레인의저녁 음악에 동의를 표시 하기위해 별난 춤을 추어보였던 것이다. 5월 15일 일요일뉴욕 일간 뉴스에는"걷지말고 뛰어라 그렇지 않으면, 재즈 겔러리로 가는 당신은 늦어질 것이다. 라는 기사문이 실렸다.그 이유는 테너 섹소포니스트 로써 그의 섹소폰 속에 미래를 닮고있는 존 콜트레인 이었다. 콜트레인의 시대가 열였다.

재즈 겔러리에서 처음몇 주간은 치코 해밀톤의 퀸텟과 자리를바꾸어 가며 연주 하는데, 그러다가 다음에는 싱어 알 히블러와 함께 바꾸어가며 연주 했다. 6월의 재즈 겔러리에서는 두 번째 행사가 연주된다. 콜트레인의두명의 좋은 조언자 - 길레스피는 6월 초, 몽크는 6월 말에, 와 함께. 콜트레인은 6월 30일 뉴 포트재즈 페스티발에 모습을 나타내며, 그후 그의 그룹과 함께 투어 를 시작한다. 1960년 9월 24일 그들은 켈리포니아의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연주한다.

1960년 여름 동안 콜트레인은 소프라노 섹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일 년여 동안 그의 테너가 가진 음계보다 더 높은 음계를 눌렀으며,마치 영역의 확장과 더 얇고 이국적인 톤을 냈던 한해 같았다. 소프라노 전문가 모더니스트 스티브 레씨를 듣고 그는 시드니 베켓의 더 오래된 작업을 알았다.베켓과 그 는 아프리카의 갈대피리 연주와 중동의 사운드를 느끼게하는 연주를 발견했다. 콜트레인은 그의 소프라노 섹소폰을사용한 첫 레코딩을 1960년 6월 28 일 7월 8일양일간 수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과업은 그의 아틀란틱 동 료 뮤지션인오네트 콜맨의 음모(?)에 의해콜맨과 협력하여콜맨의 음색을 녹음하게된 것이다. (몽크과 돈 체리가 합세했다.)그 세션은 1966년 까지 발 매되지 않았다. 밝혀진 바 로는 아마도 오넷 콜맨이 코드진행 양식을 사용한 콜맨의 가장 초기 작품중 어떤 세션에 대해 콜트레인이 선택했던자유 즉흥 연주를 위한 준비가 없었다는 느낌 이었다.

더 나아가 그 세션에서의 즉흥연주는 그기간의 콜트레인멜로디 안에서 연주된 것처럼 풍부해 특별히 눈에띄지 않았다. 콜맨의 섹소폰 스타일을 지원해 주기에는 콜트레인의 음악적 개성이 너무 잘, 너무 견고히 확립되어 있 었다.대신 그것은 콜맨의 콜트레인 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써 주제와 영감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당연히다음 몇 년 동안콜트레인의 음악은 정통 으로 부터 더 많은 모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7월 8일의 세션은 그가 녹음을 위해 가졌던 그자신의 쿼텟과 함 께 활동의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재즈 겔러리에서 첫 번째 몇주후에콜트레인 은 스티브 쿤 대신에 멕코이 타이너를 맡이한다.메코이 타이너는 그후다음 오년동안 그와 함께 머문다.스티브 쿤은훌륭한 뮤지션 이었으며오리지날 스타일리스트 였지만.- 자주 빌에반스와 함께 취급되어진, 그러나 이유야 어 쨌든, 그는 콜트레인과 맟지 않았다. 그는 시작부터 큰 사운드로 연주했으며 힘있고 리드믹한 흐름을 유지해 가면서 따뜻하고 신선한 연주를 해주었다.

그는 또한 다운 비트의 스탠리 댄스에게 설명 했듯이침묵으로 떨어져 있을때 를 알고 있었다.(1963년 10월24일) 리듬 파트는 솔로이스트를 고무하고 지원 하기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매우 민감한 것이다.가끔존이 솔로를 연주 할 때, 나는 완벽하게 배경을 연주해 주었다.내 생각으로는 가끔은 매우 중요한 것이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솔로이스트가 아는 코드를 연주하는피아니스트 는 어쨌든 Coming up.보통 모든 피아니스트 들이 하는 것은 약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협력과 가능성 속에 약간의 연분의 건반을 그에게 주도록 애쓰는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거기 있지 않다면, 솔로이스트는 그의 한계나 경 계를 느낄 수 없는영감을 갖게되어 순수하게 연주에 집중 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그의순수한 자신의 생각 으로부터 그의 주의를 유인해낼 것이다.그래서 그것은 솔로이스트에게 조화롭게 폭발시키는 더큰 자유를 주는 모든 방법이 된다. (아마 이것은 너무 멀리 본 시각일른지도 모른 다. - 말하여 지기를, 타이너의 그룹과함께한 마지막해 동안은 그의 연주 차 례가 돌아올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해 버렸기 때문에 좌절해 버렸다.) 타이너의연주는레드 가렌드의 어떤 신선한 목소리 윈튼 켈리의 강한 스윙감의 어떤 충격적임, 그리고빌 에반스 스타일의 약간이 영향력으로 작용 했다. 콜트레인과 그의 첫 번째레코딩 으로부터타이너는 밝게 울리는 열린 사운드로 그에게 공헌해 왔다.(이 부분에서 내가 확신 하건데 피아노는 특유 의 사운드와 아틀랜틱 스튜디오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

다음 이년이 넘도 록 그는 쿼텟 사운드의 특성화에 특이한 형태를 개발시켜 갔다. (a Fourth란 네 개의 스케일 노트 에 마다 걸려진 간격이다.예를들어C-D-E-F는 네 개의 스케일 노트이고, C와 F가 A Fourth를 이루기 위해, D와 G처럼, 그리고 E와 A, G와 C,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짝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 그는 또한 적은 저항 의 그의 왼손에 수천개의 폭탄 같은럼블링 페달의 포인트를 개발해 냈다. 칙 코리아와 그외 많은 뮤지션들이 타이너의 방법을모방했다. 그리고 그는 아마 도, 비평가들 에게 과소평가 된듯한데,에반스와 함께모던재즈 스타일의 영 향력으로 인식 되어질 만 하다. 타이너는 콜트레인 쿼텟에서 중요인 이었다.
콜트레인의 막역한 동료이자 음악적인 같은 영감의 소유자였던 드러머 엘빈 존 스는그룹의 핵 이었다. 존스의 막내 동생은 피아니스트 행크였으며, 피터 라 로카에서 교체된 테드 존스는 트럼페터였다.

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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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606/25 15:46 80 line

존스는 놀라웠던 콜트레인의 육체적 스테미너를 나누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섹소포니스트와 복잡한 리듬에 대한 강력한 흥미를 나눈점 이다."나는 특 별히 그의 리듬을 섞고조작하는데 대한 능력을 좋아했다." 콜트레인이 존 스에 대해 말한다. "그는 항상 연주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이 말 할 것을 짐작컨데, 그는 같은 시간에 세장소에서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콜트레인" 라이브 앳 더 빌리지 뱅가드 내의 라이너 노트에서넷 핸토 프에 의해 인용됨.임플스)존스는 그의 고도의 타원적 방법의 기본 리듬 에 감명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미친듯한 스윙감을 항상 지녔었다. 그는 콜트레인과 타이너의임프로바이징의 리듬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어떤때는 그들과 함께연주 하기도 했다. 1960년 10월 동안 놀라운 한주간에 새로 운 쿼텟인 타이너,존스, 그리고 베이시스트 스티브데이비스 (거의 알려 지지 않은,)는 이미 발매된 Coltrane play the bluse,와 Coltranw's sound,My favorite thing,의 사실상 모든곡을 녹음한다.

후자는 콜트레인의 세 번째 힛트 앨범이었다.SideOne에는 콜트레 인의 소프라노 섹소폰이 수록되었고, 커버에는 그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당시에는 매우 적은 재즈팬들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져스와 해머스테인의 왈츠인 Myfavorate thing은 1965년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 에서 쥴리 앤드류스와 일단의 꼬마 들이 부른 것으로 인해 잘알려졌지만, 그러나 1960년 메리 마틴이 주연한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성공한 작품이었다. 콜트레인은 이 작고 아름다운 노래를 몇 개의 외관상 작지만 뚜렸한 변화를 주어, 장엄한 심포닉 도입부 속으로 녹여 들인다. 잡지 Critical inquirery 에서 그밖의 주목할만한 한 작품 으로 (1994 겨울) 인그리드 몬슨은 콜트 레인이 이 음율이 별볼일 없다는 생각을 가졌음이틀림 없었기 때문에, 이 노래가 덧 입혀 지기를 원했다는 가정을 하는 실수를 범한다. 절대 반대 로 써: 그는 신중히그 노래를 취했고 그 안 에서 작곡자가 갖지 못한 무엇을 보았다.

곡의 구조는 A-A-B 로 되어 있었다.A의 양쪽 섹션은 Rain Drop과 Rose의 음조를사용 하며, 행복한것을 강조한다. B파트는 음성적 경험 의 첫 번째 언급이다. - "When the dog bites.그러나 이곡의 요점은 나쁜 상황을 극복 하게 하는좋은 어떤 것 이란 것이다.콜트레인은 그의 버전 도입부에서두 개의 A파트를 연주한다.연주 바로끝부분에서 오직 B 파 트를 연주했다. 반면에 그는 몇몇 방법으로 시간의감각을 초월해 버렸다. 그는 리듬 섹션에서 E 단조 뱀프를 연주 했고,곧 여유롭게 돌아갔다.첫 번째 A 연주 후 그들은 E 장조 뱀프로 바꾸었다.

그의 연주는 여기에 요약되어 있다. 그다음 두 번째로는 E 단조로 되 돌아 온다. 이것이한 번 끝나고 나면, E 단조 뱀프가 돌아오고 솔로가 시 작된다. 각 솔로는 계획에 따른다.: 솔로이스트인 콜트레인이나 타이너는 그가 원하는 만큼 오랬동안E 단조 뱀프를 연주한다. 그리고 E장조 뱀프로 갈 것을 암시하고 이동해간다.그 암시란 테마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신 은 타이너가 솔로의 중간 부분에서 테마로 돌아가는 연주를 들을 수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대한 암시이고, 그 다음에뱀프는 장조롤 바뀐다. 콜트 레인도 솔로동안 같은 방법으로 연주한다.그리고 그의 각 솔로이스트의 이 연주에 있어서의모든 라이브 버전은 에릭돌피를 포함해서 같은 방식 이다. B섹션이 마침내 끝으로 치달을 때, 우리는 음악의 지수를 경험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언급 했듯이 그의 첫 번째 아틀랜틱 레코딩에서, 콜트레 인은 리듬섹션을 위해 주의깊은 작업을 하였다. 지금 그는 앨빈존스의 도움 을 받아 자발성을 제공 받거나, 조직감각을 유지하는 방법을 발견 하였다. 극단적으로 연주되는소프라노와 드럼이 탐구적 감각과 변화의 반대효과를 개발한 반면, 단순화된형식(모달) 구조에 베이스와 피아노의 흔들리는 리 듬은균형의 감각을 개발 하였다.그것은 콜트레인이 반복해서 사용한 창 조적인 경향 이었다.

콜트레인의 재즈 역사에 있어서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다른 문화로 부터의음악적 아이디어를 협력 시키는 것 이었다. 콜트레인의개 인 소장음반에는 인디안 출신의 귀재 라비 샹카와 아프리카음악의 올라튠 지의 버전이 포함되어있다. (콜트레인은 그를위해 Tunji를 썼다.) 그의 노트에는 다른 나라의 스케일 형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어떻한 페이지 는Simpkins Book의 113 페이지에재구성 된다.) 의심 할것도 없이길레 스피와 관련된라틴뮤직은 콜트레인에게는 그 자신의 레코딩에 중동음악 을 그려넣은 몽크의 베이시스트 아미드-압둘 말리크 처럼 한 예로써 받아 들여졌다.

콜트레인, 라이브 앳 더빌리지 뱅가드의 넷 핸토프의 기사에서, 콜 트레인은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나는 정말 일과 곡 쓰기 공부를 할 수 있 었다. 나는 이미 음악에 그렇한 접근을 고찰할 수 있었는데, 인디아의 독특 한 음체계와 스케일은 명확한감정적 의미를 제공 할 의도였다. 나는 프로 빙을 계속했다.해야 할 더 많은 일이 있었다." 이렇한 영향력은 아틀랜틱 시절 동안에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리고 그것은 아마 My favorate thing 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그들의 효과 일 것이다.이곡과 다른 곡들 에서 의 단조로운 베이스 저음(Drone)의 사용 인디안 뮤직에서 사용된 저음(드론 )에 영향받은 것이다. 멜로디 즉흥연주에서 인디안의 영향을 들을 수있는 데,그가 즉흥연주에서 개발시킨 연주적 모티브는재즈적인 임프로바이징 이라기 보다는 인디언 방식의 인프로바이징이었다. 재즈 아티스트들은 대개 오래도록자유롭게 흐르듯한멜로디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콜트레인 음악에 대한 비평은 어떤 청취자들이 그의 서정적인 음악을 듣고,그가 그가 챨리 파커라고 말하려는 비슷한멜로디를 삼가는 이래로 그 문제를 반영해 왔다.)공간적인 그리고 리듬적 반복에 의한 아프리카 컨셉트는 또한 여기 기본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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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706/25 15:48 82 line

사실 서 아프리카의 타악기 밴드는 콜트레인이 My favorate thing에서 그랬던 것 처럼, 그의리더가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라는 신호를 할 때까지 한악장을 계속 반복 할 것이다.

또한 콜트레인은 그가 새로이 조직한 쿼텟과 스튜디오 세션으로 첫 번 째 연주를 하는동안 브루스 Equinox를 녹음한다. 콜트레인은진지한 브루 스 연주자 였고 그의 브루스 연주는 브루스의 원초적 모습으로 그리고, 빛으 로부터 떨어지려는, 조화롭고, 좀더 복잡한형태로 돌아가려는 선구자적 의 지를반영한다.12 소절의 단조 테마는 기본적으로D플랫 단조의 첫 번째 네 마디 스케일로 구성된다.(연주는 자주 C단조로 쓰여졌으나, 심킨스북 에서 콜트레인의 요점은 D플랫 이었다. ) 전통적인 보컬브루스로써, 그 첫 번째 2, 4소절은 같은 리듬과 같은 멜로디에 기본을 두고 있다. 마지막 악절 은 10소절 안에서 예상된 V코드로 이동 하기전,A 플랫VI코드에 시작되는 테마의 웅장하고 조화로운 활동을 볼 수 있다. 이것은 Kind of blue앨범의 All Blues를 상기 시킨다.

라틴 리듬의 6소절은 콜트레인의 개요를보여준 것으로써, 그 연주가 소개 되었다. 그 다음 그 리듬 섹션은 오스티나토의8소절로 연주 된다. 그 것은 테마 아래에서 계속된다.피아노와 베이스의 무자비한오스티나토 리 듬 바침목은 불길함을예견하는 원시적인 분위기를창조하는느슨하고 단 순한 멜로디와 대칭을 이룬다.엘빈 존스는테마와 솔로 섹션의 강도와 드 라마에공헌한심벌 연타 와 롤링으로 확고한자리를 선점 했던 인물이다. 그는 말렛(스틱의 일종으로 가늘지 낳고 두꺼운 것.) 과 그의 스네어를 가지 고, 때로는 부드럽게때로는 어둡게,좀더 레카토적인 효과를 성취 하면서 연주 하였다.베이시스트인 스티브 데이비스는 곡을 통하여 그의 패턴 으로 부터 약간의 변주를 허가 받았었다.멕코이 타이너에 의해 피아노가 연주될 때, 베이스의 옥타브로 시작한다.같은 리듬을 유지 하면서, 콜트레인의 멜 로디에 대칭으로 회답 하면서,테마의 5,6음절 밑의 코드를 개방한다. 즉흥 연주된 코러스를 통하여, 타이너는변주 없이 원래의 오스티나토 코드 버전 을 연주한다. 타이너가 이 리듬에 매어 있다 할 지라도, 그의 코드음원을 통 해 매우 광범위한 음을 창조해 낸다. 그것은콜트레인의긴장감을 고조 시 키는 임프로바이징을 효과적으로 돕기위해각 코드에대한 새로운 음원 제공 과 음원을 복제 시키는 것이다.

이렇한 배경위로 콜트레인은 놀라운 임프로바이징을 발명한다. 그것은 타이너의솔로 전에 반복적인 짜 맟추기를 통해 바람이 다시 불어내려온다. 그는 단순하고 자극적으로 각 코러스 부분에서 더욱 빠른 더욱 높은음계를 추구하면서, 연주를 시작했다. 각 코러스는 그것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가진 다.. : 더 나아가 한 코러스로부터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논리적 동기의 발전이다.

이 세션들 로부터 나온 결과들은 대부분 분실하였다. 그러나 Coltrane Plays The Bluse에서 발표된 작품 Bluse to Elvin은생존 할 수 있었다. 흥 미롭게도 표준이 점점 빨라지는 반면,이 느린 다운 홈 블루스는 각 부분마 다 점점 더느려진다.이 느린 페이스를 스윙에 맟추어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러나명백하게도 콜트레인은 그것에 대하여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콜트레인은 그가 연주해야 할 마지막 악절 전에 키를 바꿨다.

아틀랜틱에서레코딩된모든곡은 이야기를 가지고있고, 그 특유의 음악적 운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의 Giant Step에서사용된 코드 접근법 몇 개에 관해서 언급 했었다.그들중 하나인 CentralPark West는 콜 트레인이 존경해 마지않는호레이스 실버에 의한 Peace의 막연한 회상 이었 다.우리가 동경에 빠져 있는 동안 Liveria는 길레스피와 그의작품 A Night in Tunisia를 바친다.1960년 10월의 주간은콜트레인의 아틀랜틱 에서의 활동에 있어 중요한 주간 이었다.그후로 그는 7달 동안 스튜디오에 들어가지않았다.1961년 초 콜트레인은그의 동료 섹소포니스트 에릭 돌피 와 함께 연주를 시작한다. 1962년을 통털어 콜트레인은 몇명의 베이시스트 와 함께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데, 때때로 한 번의 연주마다 두명을 고용하기 도 했다.(1935년과 1938년 듀크앨링턴에의해 이미 투 베이시스트 시스템은 사용 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그 실제자료는 알려진 바 없었다.)그가 고용 한 베이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스티브 데이비스는 레기 워크맨,아트 데이 비스, 그리고도날드 가렛트가 되었다. 시카고에 거주하던 가레트는 어떻게 투 베이시스트 개념이 생겼는지 바브라 가드너에게 설명 하였다.

"우리는 1955년 부터 친구였다.그리고, 그가 도시에 있을때면, 언제나나 의 집으로 찾아와서,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었다. 나는 다른 베이스 플레이어 와 연주한 테입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리드미컬한 연주를 했고 콜트레 인은 그 사운드에 도취 되었다.우리는동 인도해의 드럼소리 로부터 같은 소리를 찾았다. 더 낮은 저음역의 한 베이스가 고정되어 둥둥거리고 있을 동 안 다른 베이스는 마치 오른쪽 손이 드럼이된것처럼 자유롭게 즉흥연주 한 다. 콜트레인은 그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그들은 대부분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연주 했다. 그들은 1961년 3월 17일부터 일주일간 아폴로에 있었고, Mariam makeba, Oscar Brown Jr., 그리 고 Machito밴드와 함께 나누어 연주하였다.
이 주간에 콜트레인은 마일즈의"Someday my prince will come앨범에 초대 받는다.이것이 마일즈와 같이 연주한 마지막앨범 이었다. 4월 25일 부터 5월 7일 까지 콜트레인의 밴드는 샌프란시스코의 재즈 워크ㅅ에서 공연 한다.

1961년 5월 23일콜트레인은 Africa/brass 의 레코딩을 갖는데, 이것 이임펄스 레코드에서의 첫 세션 이었다. 그러나그는 아틀랜틱에 아직 레 코딩 의무가 남아 있었고, 그래서5월 25일 그의 쿼텟과게스트로 참여한, 트럼펫에 프레디 허바드,알토 섹소폰과 플륫에 에일돌피 등 과 앨범 Ole를 녹음한다.(그 당시 돌피가프레스티지 레코드와 계약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조지 레린이라고 명명되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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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806/25 15:51 78 line

돌피가 콜트레인의 음악적 삶에 결정적인 기본 이었다 할 지라도, 콜 트레인의생애동안 발표된 앨범에서는 거의 앙상블 연주에만 등장한다. 예 를들어 임펄스 시절 발표한라이브 앳 더 빌리지 뱅가드 앨범에서 에릭 돌 피의 솔로는 꼭 한 번 나온다.

( 콜트레인 사후 돌피의 많은 솔로를 라이브로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많은 부틀랙 이거나 임펄스 에의해 발표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Ole는돌피와 콜 트레인 사이의 영매(영적인 교신)를 듣기위한 중요한 기회이다.) 돌피(1928 - 1964) 는그의연주에 예외적으로기술적인 민첩함과 명확함 독특한톤의 음색을 가진 교과서적인 연주자 였다. 그의 멜로디 라 인은자주 방향을바뀌어 예측할 수 없게 튀어 올랐다.그는 코드진행에 있어 매우 자유스러웠으며, 불협화음의 순간들이 자주 보여졌다.돌피의 코드 진행에 대한연대감은 말한것과 자주동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표준 코드변화의 아웃라인 안에서 작업하기를좋아했다. 그래서 그 자신의 레코 딩에서 그는콜트레인이 하고 있던 모달 뱀프 위로 잡아 당기기를 하지 않 았다. 그러나 굴레를 벋어나 자유를 얻은 그의 하모닉 접근법은 콜트레인에 게 강한 충격을 만들어 주었다. 의심할것 없이 돌피의 영향력은 콜트레인 자신의 주어진 키로 부터의 외도가 증가적으로 자주 일어났다는 것이다. 가 드너의 기사에서 콜트레인은 다시 언급한다." 에릭 돌피는 끝내주는 뮤지션 이다. 그는많은 나팔류를 연주 할 줄 안다. 탐구와 실험이 있는곳에 그가 있다.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아직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이 무엇인지는 찾지 못했다.

Ole의 오프닝 타이틀트랙 에서는, 그룹이 Myfavorate thing 이후 로 많이바뀌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반복되는 피아노, 베이스 뱀프의 기본 적인 아이디어는 존과 콜트레인이자유롭게 짖밟아, 아직 거기 있지만, 모 두 상실자였다.

타이너는 피아노의가장 저음부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두 대의 베이 스는 그 상황에서 츄닝(Churning)을 연주했고, 이 연주는 한사람 이라도 지 루해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될것 같았다. 임프로바이징 섹션은 뱀프로 대체 되었다. - 두 번째 연주 파트도 없었고 신호도 필요 없었다. 콜트레인 은 스페인 음악에 흥미를 갖는다. - 그래서그 타이틀은, 1959년과 1960년 마일즈 데이비스와 길 에반스가 레코딩하여 제목 붙여진, Sketch of the Sp -ain 이후로 흥미로운 것이다.스페인 음악은 클래시컬한분야에 큰 충격 을 가져왔다. 또한- 디버시와 라벨의혁신은 부분적으로 스페인 민속 음 악에의한 영감을 제공했다.아프리카쪽으로 커져가는 콜트레인의 흥미를 반영한Dahomey Dance같은 절대 기본으로 블루스에 맟추어진 다른타이틀 또한 큰 충격 이었다. (다른 타이너의 음율은 피아노로 1958년 레드 가렌드 와 연주한 The Believer였다. )

우리는 이 작품집의 음악을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콜트레인의 섹소폰 연주에 관한일반적인 관찰을 할 수있다.그의 소프라노 섹소폰 에대한 접근은 테너 연주음악에 제공한 여덟 번째 마디가 운영되는 좀더 화려하고, 오래도록 충만하며, 찰랑이는 레카토 라인이 있는 테너 연주 와는 달랐다. 두 연주에 있어,보통 악장의 시작에서 그들의 순수한 강도로 높은 음율을 유지했다.

콜트레인은 빠른 템포에서는 조리개를 막아나오는 울부짖는 소리를 좋아했다.빠른 템포의저음부 에서는 거친 효과를 얻기위해 그는 Honked 하고 Overblew했다. (강제로 불어대기와 관 입구 주둥이에 접합시켜,운지 된 노트에 더해져 몇개의 동시음을 얻을 수 있다.재즈 섹소포니스트 들은 이것을 Overblowing이라고 부른다.) 그는 종종 명확히두 노트의 인터벌을 얻기 위해 하모니크의 테마에서 멀티포닉스(한번에 한 노트 이상)를 사용했 다.(다운 비트의 Coltrane On Coltrane작품에서, 어떻게 멀티포닉스를 연 주하는지보여주는 것으로 델로니오스몽크와 존 글렌을 지적했다.)

콜트레인은 발라드에 관하여 매우 다른접근법을 가지고 있었다. 발 라드에서 그는 비브라토나 에이리네스를 많이 건낮은 음계의 따뜻한 소리 를 내 주었다. 그는 쓰여진 멜로디 라인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멜로디를 우아한 장식과 개성을 가진 멜로디로 꾸며 넣었다. 콜트레인의발라드 멜로디에 대한 변주는 장식이 더해진 상태나 명확한 위 치에서도 작곡자로부터 다른사람 에게의 전달이많이 다르지(다양하지) 않 았다. 그의 경향성이라 생각 되어지는 것은 매번 그가 연주할 때 같은 방법 으로 멜로디를 듣기 위해 진행해온 주어진 멜로디를 명확히 부연 하자는 제 안 이었다. 빌리 홀리데이 같은 가수는 이렇한 방법으로 작업했다.콜트래 인의 발라드 멜로디에대한정중한 접근법은 밥 이전의 전통을반영한다.

파커의 방법은 많은 Doble-tiime 선율을 임프로바이징 하며 발라드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사실 콜트레인과 1954년에 같이 연주한알토 섹소포니스트 쟈니 호지는 매번 같은 방법을 적용시킨 그의 뚜렷한장식법으로 감각적인 발라드 변주로 유명한 인물이다.그것은 극단적으로, 비록 그가 분명히 비 밥 이전 시대의 존경하는 인물 이었던벤 웹스터, 레스터 영, 그밖의 다른 인물들로부터 배웠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호지스 로부터 발라드에 대하 여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뜻한다.콜트레인은 재즈에 있어서 가장 위대 한 작곡 정신을 소유했다. 그리고 그의 재즈에 관한 공헌이 좀더 널리 알려 지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 이다.구조적 감각은그의 작곡과 편곡 능력 뿐 아니라 그의 즉흥연주에서도 뛰어나다. 이것을 아틀랜틱 시절 동안 증명 되기 시작 했었다. 그의 음색적 적응은 천천히 움직이거나 정체되어 있었다. 모달재즈 연주는그 자신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의 구조에 대한 좀더 깊은 탐 구에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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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 (Rosndubh) 콜..콜트레인 연대기..콜록~ 0906/25 15:53 65 line

드디어 마지막 인지라 성의를 보여서, 알트-쉬프트를 눌렀습니다.
그럼 주욱~ 내려 보겠습니다.

콘써트에서 콜트레인은 단숨에30분 이상을 임프로바이징 하기를 좋아 했는데,그의 모함자들이 성내어 언급하듯이 대부분 재즈를 위한 새로운레 코드의 확실한 맟춤 이었다.그러나이렇한 표면상의 비범한 길이는 좋은 이유가 있었다. 그 순간뒤따르는 그의 작곡적 아이디어와 관계가 있었으며, 이미 정해진 진행상의 악보에서 줄이려고 하지 않았다.그가 한 인터뷰 기사 에서 설명하듯이,저녁때 연주를시작하려는 시간, 실현될 좋은 연주에대한 가능성에 대해 예감하고 영감 받는다.그것이 우리에게솔로를 줄이게 하는 데 비 논리 이고 불 합리이다.... 나의 아이디어는 그것들 스스로 자연스럽 게 긴 솔로를 통해 개발 되어져야 한다.(1963년 프랑스의 Lea cahiers du Jazz 에서 발간된 Michel Delorme와J. Clouzet 에 의한 인터뷰 로부터 번역 됨.) 그의 동료로써케논볼 에들리가그의솔로 후에 단순히 요청 하기를, "그 모든것을 얻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다."라고말했다.

(Coltrane's Sound의 라이너 노트에서 랠프그리슨이 인용함.)솔로를 확장 하는 연주에 있어서, 콜트레인은 그가 종종 너무 오래 연주했던 Ole의 음율들 을 인식하고 그의 아이디어들이 바닥나 버릴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말했다. " 존 콜트레인과 에릭 돌피가 재즈평론에서 대답 하길"(Down Beat 1962) ; "만약 내가 단지 음율을 연주만 한다고 느낀다면... 나는 리듬을 느낄 수 없거나 연주할 때 마다 만들려고 하는최상의 모양새를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솔로의 중간에서 무언가 인식 했을 때, 영감이 다시 발생한그 지점에 그것을 세우려 노력 할 것이다.세워진 그것은 동시 적인 것이며, 계획된 것이 아니다.만약 그 지점에 다시다달을 수 있다면, 다시 계속 연주 할 수 있게 된다.- 생생하게, 그러나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면, 끝내 닫혀 버리는 것이다."

1960년 10월부터 1961년을 통털은아틀랜틱 시절, 다운 비트는 1961년 의 그들의리뷰지 에서 Jazzman of The Year 로 콜트레인을 수상 하였다. 그 들의 국제 비평가 투표에서 콜트레인은 테너 섹소폰을 수상 하였고, 다방면적 연주(소프라노섹소폰)와 뉴 스타 콤보를 수상 하였다. 투표자들에의해 그는 테너와 다 장르상 두가지를 수상한 것이다. 바브라 가드너가 적기를 ; 다른 뮤지션들에게 있어서의 그의 영향력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많은 테너리 스트들이 맹목적으로 그를 모방하기를 계속했다...1961년 콜트레인은 그 자신 에게로 돌아갔다.

콜트레인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그 자신에 게 압력을 가했다. 그는 가드너에게 말했다. "나는 느낌만으로 많은 일을하 고 있다. 나는 그것을느껴야만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노력 할 것이다. ... 나는 아직찾지 못했다. 나는 늘 듣고 있지만 찾을 수 없다. ... 내가 무엇을 찾는지 조차도 모르겠다.종종은전에연주한 것 조차 잘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것을 얻을 때 나의 감정을 찾을 수있을 것이다. 나는 계속 찾아다닐 것이다."

가드너는 콜트레인을 회상하면서말했다.1959년 또는 1960년 연주하 기 두려운,어떤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람들(비평가들?) 이 그를 떠날 것 이라는 두려움 때문 이었다.그는 대답했다.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명확하 게 기억 할 수 없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시도 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하기를 원하곤 했던 모든 것을 성취했다. 어떤 것은 내가 좋아하고 아직 진행중 이기 도 하다. 한쪽 옆으로 쌓아놓은 다른것들은 좋은 곡으로 발견되지 못할 것 같 다. 나는 어디에서 든 듣고 있다.나는 다른 그룹들과 레코드들과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내 가 찾고자 했던 것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모든사람들을 경청하고 있다. 나 는 그룹 안에서동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그 완벽주의, 인본주의, 그폭발적인 연주는 그의 아틀랜틱 시절 이후 의 콜트레인을 정의하였다.영국에서발행된 1965년 8월 14일자멜로디 메 이커스지에서 마이크 헤네시는그에게, 만약 그의 연주 중에 실수가있었다 면? 이라고 물었다. 콜트레인이 대답했다.당신이 완벽한 뮤지션이 될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콜트레인 이 완벽한 연주자가될때까지..)나의 연주로부터 무엇이 실수인지 내가 알 수있으리라고 생각치 않는다."일련의 아틀랜틱 레코딩은그 연구의 중대 하고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The End

3 Blue Trane[ | ]

최재민 (NSR500RR) [재동이] John Coltrane / BLUE TRAIN..12/29 04:30 133 line

이 곳에는 처음 올리는 글인데...약간 비장한 각오도 드는군요.. 괜히 잘 쓰지도 못해서 다시는 암 것두 못쓰게 되는 건 아닐까.. (이상한 문장이다..)

콜트레인은 다른 테너 아티스트와 달리 인간적인 연주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다른 사람보다 인간적인지 아닌지는 알아내기 힘 들죠. (^^) 하지만 연주를 듣는다면 이야기는 틀려집니다. 콜트레인의 톤은 거칠고 중후한 느낌을 강조하는데 어떤 음역에서 도 밀도를 잃지 않는 콜트레인의 연주는 심각함마저 느끼게 합니 다. 물론 거친 톤을 내는 데는 소니 롤린스도 일가견이 있지만 콜 트레인 만큼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죠.

이런 점에서 콜트레인의 연주는 인간적인 냄새를 유달리 깊게 풍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넉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고 와일드하고 갓 뽑아낸 듯(?)하고 하드밥답게 하드하고(?) 대단히 격정적이죠. 이런 호쾌함이 다른 어감의 인간미를 풍기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올리는 앨범은 BLUE TRAIN 입니다. 블루노트에서 추천 앨범으로도 선정된 앨범인데 하드밥의 팬이시 라면 꼭 들어보셔야 할 레코딩입니다. 혼섹션이 특히 빼어나죠.. BLUE TRAIN은 콜트레인의 앨범 중에서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앨범 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SIDEWINDER'로 유명한 트럼페터 리 모건과 하드밥 트롬본을 대표하는 커티스 풀러, 그리고 피아노의 케니 드 루, 베이스는 풍부한 음량을 자랑하는 폴 챔버스, 드럼의 필리 조 존스등 짱짱한 멤버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앨범의 레코딩 상태도 아주 좋아서 모건 특유의 건조한 음색이나 챔버스의 베이스도 흡족할 정도로 분명하게 들립니다. (난 왜 이퀄라이저를 잘 못 맞출까? 지금은 아빠가 맞춰준 상태) 서두가 쓰잘 데 없이 길었는데 수록곡 입니다..

1. BLUE TRAIN 2. MOMENT'S NOTICE 3. LOCOMOTION 4. I'M OLD FASHIONED 5. LAZY BIRD

요렇게 다섯 곡입니다.

앨범의 타이틀이기도한 첫 곡 BLUE TRAIN은 콜트레인 특유의 하드 드라이빙한 테크닉이 여실히 드러나는 곡입니다. 처음에는 혼섹션 의 묵직한 블로잉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콜트레인은 다른 멤버들 에게 음량을 많이 양보하고 있죠...얼핏 들으면 트롬본만 나오는 거 같습니다..(내가 귀가 나빠서 그런가..)

트롬본이 점잖게 빠지자 마자 섹소폰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느낌으 로 콜트레인 특유의 격렬한 연주를 펼칩니다. 스케일을 질주하는 듯 하다가 급상승 곡선을 그리며 업템포...이건 열차가 아니라 비행기에 어울릴 듯한 격렬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중에 꼽사리끼는 트롬본 중심의 코러스는 능청스러울 정도로 넉살맞죠..곧이어 리모 건의 솔로가 시작되는데 그의 음색은 뭐랄까..건조하면서도 얇은 톤입니다. 그러면서도 무척 견고한 음을 뿜죠. 여기서의 솔로는 상당히 고음역 위주인데 당시 젊은이었던 리모건답게 정력적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피아노 케니 드루의 솔로가 오히려 곡명에 어울립 니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스윙감도 풍부하고.. (갑자기 레이 브라이언트가 듣고 싶네요..) 챔버스의 여유로운 솔로가 이어지고 다시 코러스가 나옵니다.. 그러다가 약간 소란한 듯한 엔딩과 함께 존스가 라이드 심벌을 뚜들기는(?) 걸로 끝을 맺죠..

두번째 곡, MOMENT'S NOTICE는 콜트레인의 무척 행복한 듯한 솔로 로 시작되는데 전 곡 시푸르딩딩 칙칙폭폭과는 판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곡입니다. 시종일관 전 멤버들이 행복한(?) 솔로를 주고 받습니다. 여기서 들을 만한 부분은 리모건의 타이트한 솔로 가 끝난 후의 챔버스의 베이스 솔로입니다. 활로 켜는 연주를 하 는데 같은 저음이라도 활로 켜는 쪽이 더 매력적이네요. (전에 영은 누이한테 이 테크닉을 뭐라고 하는지 들은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아니, 치는 테크닉이었나?)

세번째 곡은 LOCOMOTION. 스네어와 탐탐을 이리저리 두드리며 시작하는 이 곡은 바로 메인 테마가 나옴과 동시에 콜트레인의 솔로로 진입합니다. 이 솔로에서 콜트레인은 약간 빠워를 자제하 는 듯이 보이는데 이어지는 다른 멤버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다가 리모건이 지 젊다고 고음역에 파워풀한 블로잉으로 뛰쳐듭니다. 리모건의 솔로는 저도 모르게 높은 천장이 생각나게 할 정도로 상승감이 넘칩니다. 또 이어지는 피아노의 구르는 듯한 응답과 필리 조 존스의 드러밍은 일품이죠. 스네어를 하염없이 때리다 탐탐과 심벌을 쉴새없이 오고가는데..멋집니다. 역시 드럼은.. (라이브가면 드럼 밖에 안 보이잖습니까?) 역시 이 곡도 BLUE TRAIN처럼 약간 소란하면서도 여운있는 엔 딩으로 끝납니다.

네번째 곡, I'M OLD FASHIONED.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 하는 곡입니다. 로코모션이 끝나고 시작되는 이 곡은 갑작스런 차분함으로 듣는 사람을 놀라게 만들죠. 콜트레인이 발라드에서 얼마나 멋진 연주를 보여주는지 감탄하게 되는 곡입니다. 전 곡 들에 비해 억제하는 듯한 음감은 중간에 잠깐씩 나오늘 테크니컬 한 프레이징과 더불어서 이 곡에 애착을 가지게 만듭니다. 여름 에 인천에서 해지는 광경을 보며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그 벅찬 느낌이 잊혀지질 않네요.. (이런 걸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이라고 하죠.) 조용한 하이햇 터치와 잔잔하게 이어지는 피아노는 노곤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러다가 또 리모건이 잠 깨우죠..^^ 하지만 리 모건의 트럼펫도 여기서는 무척 억제되어 있습니다. 고음역에서도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으로 피아노에게 화답하는 데에 신경쓰고 있죠..전 곡들에서는 막 나가는 거 같더니만.. (그래도 실력은 출중합니다.)

다섯 번째 곡, LAZY BIRD입니다. 짧지만 다소 풍부한 피아노의 인트로가 나오다가 리 모건의 연주가 나옵니다. 중간에 다른 혼섹션이 받쳐주는데 아무래도 여럿같은....환청이겠죠.. 중간에 가볍게 얹혀져서 시작되는 커티스 풀러의 솔로는 콜트 레인과는 자못 다른 중후함을 줍니다. 그것도 흥겨운 중후감(?)이죠. 어께가 가만 있지를 못하네요.. (전 저음 악기의 솔로를 좋아합니당..감칠 맛이 나죠~ ^^) 오른 손을 집중적으로 뛰어다니게 하는 피아노의 솔로가 나오고 두번 째 곡 MOMENT'S NOTICE에서 나왔던 활로 켜는 베이스 솔로 가 나옵니다. 잼있죠.. 이곡은 엔딩곡 다운 엔딩으로 끝납니다.(??) 리 모건이 처음의 스타일로 반복해서 들어온 다음 혼섹션들이 사이좋게 메인 테마 를 연주하다 끝을 맺습니다. 후아아...이것으로 블루 트레인(후에..영어로 바꿔쓰기도 귀찮다.) 의 앨범 감상을 마칩니다..쓰고나니 되게 기네요...다들 읽다가 따분해 할 듯.. 그래도 뿌듯~ 어쨋든 흐뭇~

PS...엄마~ 아빠~ 나 해내버렸지 모야~~ 이뻐해주세요~ PS2..엄마 나 어땠어? 흐~ 엄마 좋아하는 콜트레인이야~ 겨울엔 쿨이든 밥이든 뭘 틀든 간에 그냥 자는게 최고예요. 재즈와 함께...

4 시기구분[ | ]

  1. Earliest period - as sideman
    1. Miles Davis - Relaxin', Steamin', Workin', Cookin' (all recorded in 2 sessions, 1956)
    2. Miles Davis - Round About Midnight (debut for Columbia Records, concurrent with the above sessions for Prestige Records, 1956)
    3. Thelonious Monk - Monk's Music (1957, with Coleman Hawkins); Thelonious Monk Quartet with John Coltrane at Carnegie Hall (2005; recorded 1957)
    4. Miles Davis - Miles & Monk at Newport (1958, released, 1963); Jazz at the Plaza (1958, released, 1975)
    5. Miles Davis - Milestones; Kind of Blue; Someday My Prince Will Come (1958-1960)
  2. Early solo period, at Prestige and Blue Note
    1. Coltrane (debut solo LP, 1957)
    2. Lush Life (1957)(includes "I Hear a Rhapsody", his first recording as sole leader, plus three tracks with a pianoless trio)
    3. Blue Train (1957)
    4. Soultrane (1958)
  3. Middle period - Atlantic Records
    1. Giant Steps (1959)
    2. My Favorite Things, Coltrane Plays the Blues, Coltrane's Sound (recorded simultaneously in 1960; first albums to feature Elvin Jones and McCoy Tyner.)
  4. The classic quartet on Impulse! Records
    1. Africa/Brass (brass arranged by Tyner & Eric Dolphy, 1961. A second volume was released in 1974.)
    2.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featuring Eric Dolphy, first appearance by Jimmy Garrison - 1961)
    3. Coltrane (first album to solely feature the "classic quartet" -1960)
    4. Duke Ellington & John Coltrane (1962, with Duke Ellington)
    5. Ballads (1962)
    6. John Coltrane and Johnny Hartman (1962, with Johnny Hartman)
    7. Impressions (1963, featuring two more Village Vanguard tracks from 1961, and two studio tracks from '62 and '63)
    8. Crescent (1964)
    9. A Love Supreme (1964)
  5. Later period
    1. Ascension (1965)
    2. Sun Ship (1965, released 1976)
    3. First Meditations (final "classic quartet" session, 1965) and Meditations (with Pharoah Sanders and Rashied Ali, 1965)
    4.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Again! (featuring Alice Coltrane, as well as Sanders and Ali, 1966)
  6. Final sessions
    1. Stellar Regions (Sanders absent; released 1995, recorded 1967)
    2. Expression (final Coltrane-approved release; one track features Coltrane on flute, 1967)
    3. Interstellar Space (final studio session; duets for Coltrane and Ali; 1974; recorded 1967)
    4. The Olatunji Concert: The Last Live Recording (2001; recorded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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