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el's

1996 MusicForEgonSchiele

# 총평[ | ]

활동시기 : 90s- 장르 : Indie Rock, Post Rock 스타일 : Chamber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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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ing the Classics #7

실내악과 포스트 락의 만남 Rachel's

먼저 포스트 락post rock이 뭔지 살펴보자. 포스트 락은 90년대 중반에 많이 쓰이기 시작한 용어인데 기존 락의 한계를 벗어버리고자 한 흐름을 말한다. 예를들면 락적인 악기를 사용하지만 리드기타, (리듬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 (키보드) 정도의 일반적인 편성에서 벗어나 기타를 없애버린다거나 리듬파트를 거의 제거한다거나 하는 등의 편성을 보이기도 하고 락음악이 가진 마초성, 스테이지 액션 등을 배제하기도 한다. 또 작곡방식에서도 기존의 멜로디와 리듬파트의 구분, A-B-A-B' 등의 전형적인 패턴을 완전히 깨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기존 락음악이 가진 터부를 모두 무시하는 락음악을 통칭하는 말이다. 포스트 락은 60-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락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진부함을 벗어버리고자 한 몸부림이라는 점이다. 프로그레시브 락이 양식미를 추구했다면 포스트 락은 양식미를 붕괴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고. (물론 양식미의 붕괴조차 시간이 가면 양식미의 구축으로 정착한다. 펑크가 그러했듯.) 음악적으로 포스트 락은 미니멀 뮤직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내악Chamber Music은 특정 장르를 뜻하는 말은 아니다. 돈많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방[ 이라고 하지만 돈많은 사람들인지라 상당히 큰 ]에서 연주를 듣기위해 만들어진 장르아닌 장르인 것이다. 보통 3중주에서 5중주, 더 나아가 작은 오케스트라를 이루기도 한다. 귀족들의 취향을 맞추다보니 실내악은 조금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으며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실내악의 특징중 하나는 각각의 악기들이 앙상블을 이루어야지 독주獨走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내악은 몇안되는 악기로 악상이 전개되므로 각각의 악기가 가지는 미묘한 선율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섬세한 음악이다.

락음악에서 실내악적인 요소를 차용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인데 프로그레시브 락의 하위 장르중에 챔버 락Chamber Rock이라는 장르가 있다. 챔버 락은 60년대 후반 영국에서 이미 써드 이어 밴드Third Ear Band라는 출중한 밴드를 배출했고 이어 유럽에서는 유니베르 제로Univers Zero나 쁘레장Present과 같은 일가를 이루었다. 이들이 이루어낸 중세 고딕풍의 실내악은 매우 수준높은 것으로 이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챔버 락에 관해서는 이후 그 중세적 분위기와 함께 따로 다룰 예정이다. 참고로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챔버 팝Chamber Pop은 챔버 락적인 흐름과는 전혀 다른데 챔버 팝은 포크에 실내악적인 요소가 가볍게 접목된 것이다.

미국 아방가르드 씬과 팝/락 씬에 어중간하게 걸쳐있는 흐름중에 90년대 들어 부각된 흐름은 로파이Lo-Fi이고 이중 가장 주목받는 팀 중 하나가 레이첼스Rachel's이다. 94년에 여성 피아니스트 레이첼 그라임Rachel Grime과 제이슨 노블Jason Noble, 크리스티앙 프레데릭슨Christian Frederickson 이렇게 세명이 만든 챔버 트리오이다. 홍일점의 이름을 따서 밴드를 만든 것을 보면 꽤 매너있는 밴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전체적 분위기가 여성적 섬세함으로 가득찬 밴드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의 음악은 특이하게도 피아노, 아코디언에 하프시코드와 같은 건반악기 그리고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의 현악기가 주를 이루고있다. 물론 기타와 퍼커션이 주가 되는 곡들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을 좌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고전적 현악기와 건반악기를 위주로 우울한 멜로디의 서정적인 곡들을 연주하는가 하면 미니멀한 연주를 전개하기도 한다. 이들의 음악은 분위기를 묘사하는 느낌이 강한데 한편의 영화음악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이들의 작법은 실내악과 영화음악에 많은 기반을 두었으며 이들의 두번째 음반 [ 에곤 쉴레를 위한 음악MusicForEgonSchile(1996, Quarterstick QS35) ]은 퇴폐적 천재화가 에곤 쉴레(1890-1918)에 관한 발레음악으로 작곡된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97년의 세번째 음반 [ 바다와 종The Sea and the Bells(1997, Quarterstick QS38) ]이후 원숙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들의 음악은 이전의 바로크적인 냄새를 조금 지우고 그 자리를 효과음으로 채웠다. 작법이나 연주가 독특해졌고 포스트락 특유의 미니멀한 면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종종 앰비언트적인 음악까지 이들은 시도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이들은 락밴드라기보다는 고전적 클래식 연주자에 더 가까왔다. 그러나 이 세번째 음반부터 이들은 현대음악가라고 불리는 것이 어울리는 스타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고전적 낭만주의 성향이야 여전하지만 이 앨범에서 이들은 클래식 악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것을 들려준다.

 

이들의 공식 음반으로는 가장 최근작인 99년의 [ 셀레노그래피Selenography(1999, Quarterstick QS55) ]는 이들의 창작력이 절정에 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방법론은 전작과 비슷하지만 자신들의 음악을 더욱 자유롭게 요리한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다채롭다는 느낌은 조금 옅은데 그것은 이들의 연주가 전작에 비해 훨씬 미니멀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그만큼 감정의 고조에 있어 강해졌다.

이들은 재킷에도 꽤 신경을 쓰는데 그것은 이들이 다른 포스트 락 밴드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들처럼 음반 자체를 하나의 종합예술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반 재킷은 고풍스럽고 이미지적이고 종이의 질감을 잘 살리고있다. 음악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조화된 음반을 보면 음악 듣는 기쁨이 두배가 된다. :)

락음악계에 항상 나돌았던 얘기중 하나는 '락은 죽었다'이다. 이 말은 비틀즈의 해산시에도, 펑크의 죽음 뒤에도, 메틀의 종말기에도, 커트 코베인이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겼을때도 나왔다. 그때마다 어쩌면 별로 다르지도 않은 음악들이 나와서 대안alternative이라고 떠들어대곤 했는데 그 수많은 얼터너티브들 중에 포스트 락이 차지하는 위상은 조금 특이하다. 물론 나는 이 장르를 결코 락 이후의 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흐름은 항상 있었으니까. 90년대 전반기에는 테크노techno와 정글jungle 그리고 턴테이블의 마법사들인 DJ들이 나와서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포스트 락이 그 자리를 채워준 것 뿐이다. 재미있게도 그 와중에 레이첼스처럼 오히려 고전적인 악기로 관습을 깬 아티스트까지 나왔다. 역시 포스트 락은 음악적 해체주의의 한 절정을 보여주고 있기에 흥미롭다. 과연 포스트 락 이후에는 무엇이 나와서 진보의 흐름을 끌어갈 것인가.--거북이, 2002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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