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e Strummer

Clash 조 스트러머 포럼

1 # 조 스트러머 만나러 가는 길[ | ]

- 전 클래시 기타·보컬리스트 조 스트러머의 공연 취재 --허경, 1999, 뮤지컬박스 2호

당신하고 나하고 조 스트러머 보러 파리에 간다. 당신하고 나는 여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산다. 나는 여기서 공부를 하고 있고, 당신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어학 코스를 위해 이 프랑스의 독일 접경 도시에 왔다. 나는 후배인 당신하고 우연히 술을 마시다 당신이 음악을, 그것도 록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알고 너무 기뻐서 그날 과음을 했다. 그러나 안주가 없어도 당신과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콘, 판테라를 거쳐서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ELP를 얘기하고 급기야는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톰 존즈, 퀸까지 얘기했을 때, 나는 당신이 음악을 가려듣지 않고 그냥 '좋은 음악'이면 다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나는 당신한테 홀딱 반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돈이 없다는 당신을 부추켜서 오늘 조 스트러머의 공연을 보러 여기 파리행 기차에 마주 앉아 당신과 맥주캔을 나누고 있다. 당신은 물론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다.

지금은 1999년 12월 7일 오전 6시 20분, 스트라스부르-파리 행 열차 안이다. 너무 새벽 기차를 예매한 당신과 나는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기차에 탄지 1분도 안되어 문이 닫히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프랑스에 와 콘서트에 처음 간다는 당신도 나처럼 어제 밤에 잠을 설쳤다. 우리는 지나가는 프랑스 '홍익회' 아저씨에게 따뜻한 커피를 두 잔 산다. 새벽 6시 30분 창 밖은 아직도 깜깜하고 유리창엔 객실 안에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유리창으로 당신의 얼굴, 날카로운 콧날과 깊은 눈초리를 보며 당신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프랑스 친구들은 당장 내가 '오모섹쉬엘'(homosexuel)이냐고 물을 것이다. 당연과 자연이 다른 곳, 그곳이 외국이며, 그것이 여행이다. 따라서 여행은, 혹은 '밖에 나가 살기'는 진리(眞理)와 관계된다. 당신과 얘기하고 싶은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여기 온 지 두 달밖에 안됐지? 그럼, 파리에도 처음 가는 건가? 예, 첨 가보는 거예요. 여기 스트라스부르 오면서 비행기 갈아탈 때 파리 공항 안에서만 한 세 시간 있었나 그래요. 전 외국 나온 게 스트라스부르가 처음이예요. 그럼, 너도 처음엔 스트라스부르가 독일인 줄 알았던 것 아냐? 그럼요. 이름도 여기 어학원에 등록하면서 첨 들은 도신데요 뭐. 근데 어디서 듣던 이름 같아서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우리 서정원 선수가 프로 축구 리그에서 뛰었던 데더라고요. 근데 그 때도 여기가 독일인지 알았어요. 또 우리 나라 어떤 유럽 관광 가이드 책을 보니까 여기는 독어를 쓴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어학원 알아보면서 그 책이 잘 못 된 걸 알았는데요, 뭐. 여기 와서 프랑스 애들한테 그 말을 하니까 되게 기분 나빠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얘네 입장에서야 기분 나쁘지 뭐. 독도가 일본 땅인 줄 알았다는 거하고 똑 같지 뭐. 그러게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다. 당신과 나는 이 도시가 맘에 참 든다.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고. 인구도 25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우리 나라 춘천보다 조금 큰 정도일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되었던 알자스-로렌 중 알자스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가 바로 스트라스부르다. 이 도시는 크게 외교도시, 관광·문화도시, 대학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라인강 좌안 프랑스·독일의 접경 지대에 있는데, 지도를 보면 서유럽의 한 가운데가 된다.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차로 갈 경우, 서쪽의 프랑스 파리, 동쪽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쪽의 룩셈부르크·벨기에(브뤼셀), 남쪽의 스위스 제네바는 모두 3-4시간 거리에 있다. 이 도시의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중세기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주변국들의 치열한 경쟁을 야기시켰고, 따라서 이 곳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성을 감안해 유럽의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유럽공동체(EC)는 유럽 의회 본부, 유럽 인권 재판소 등을 이 도시에 두기로 결정했다. 한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대표적 관광·문화도시 중 하나다. 특히 12-14세기에 세워진 높이 142M의 고딕 성당이 유명하다 - 우편 엽서에 보이는 뾰족한 첨담이 성당이다. 한편 스트라스부르에는 파리를 제외하고는 프랑스에 하나밖에 없는 국립극장(TNS), 국립오페라단, 국립근현대미술관 등을 보유하는 등 시 예산의 무려 20%를 문화 부분에 지출하고 있다. 또 한편 1만명에 가까운 외국인 학생 등 총 5만 명 이상의 대학생이 재적한 대학답게 스트라스부르대학은 파리, 툴루즈대학과 함께 프랑스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상기한 도시의 문화적·국제적 특성과 대학생 문화의 청년적 성격이 어울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팔레 드 로앙(Palais de Rohan), 레트리(La Laitrie) 등 훌륭한 몇 개의 록 공연장이 있으며, 이 곳에서 세계 1급 뮤지션들의 공연이 하루를 멀다하고 이어진다(돈이 없어서 다 못 볼 지경이다!). 지난 6개월 동안에만 다녀간 아티스트들만 해도 데쓰 인 베가스, 토토, 스테레오포닉스, 언더월드, 스웨이드, 머신 헤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 스콜피온스, 앙쥐, 마그마, 슈퍼그래스, 데우스, 모비, 해리 코닉 주니어, 스팅, 벤 하퍼 등이 있다. 나 자신은 이 곳에서 공과 피터 해밀의 콘서트를 보았다 - 프랑스에 유학 오기 전까지 만 33년을 한국에서만 살았던 나는 이런 글 읽을 때 독자 여러분들이 '열 받는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한다 ...

형, 근데 오늘 공연에서 옛날 클래시 노래들도 할까요? <London Calling> 노래들 죽이지 않아요? 아, 진짜 신나잖아요! 그리고 전에 형이 녹음해 준 <Sandinista!> 죽이더라고요. 'Magnificent Seven', 'Somebody's Got Murdered'나 'Police On My Back' 같은 노래 말이예요. 그 판 되게 희한하면서도 좋더라고요. 그 노래들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근데 아마 안 할 것 같애. 그룹에서 나온 가수들은 보면 그룹 시절 노래, 어쩌다 한두 곡이나 하지, 보통 '존심'이 있어서 안 하는 것 같더라구. 그죠? 그래도 몇 곡 연주하면 좋을 텐데. 근데 클래시 따른 판은 뭐가 있어요? 크래시 다른 판? 아, 맞아, 내가 너 보여주려고 내가 전에 인터넷 음악 사이트 '신보 리뷰 코너'에 썼던 글 하나 출력해 왔다. 이걸 읽어봐. 여기 클래시 앨범 목록이랑 다 있다. 너 가져. 고마워요, 형.

2 그룹 활동 23년, 해산 14년만에 처음 나온 클래시의 라이브 & 이전 그룹의 리더 조 스트러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 ]

- The Clash, <From Here To Eternity>, Columbia/Sony, 1999 - Joe Strummer & The Mescaleros, <Rock Art And The X-Ray Style>, Mercury/Universal, 1999.

'무정부주의적 펑크' 그룹 섹스 피스톨스와 함께 70-80년대를 풍미했던 '좌익 펑크' 그룹 클래시의 라이브 앨범 <From Here To Eternity>(Columbia/Sony·99)가 발매되었다. 섹스 피스톨스와 마찬가지로 영국 출신인 펑크 밴드 클래시는 기본적으로 기타·보컬의 조 스트러머, 기타·보컬의 믹 존스(Mick Jones), 베이스의 폴 시모논(Paul Simonon), 드럼의 토퍼 헤든(Topper Headon) 등으로 이루어져 76년에서 85년까지 활동했는데, 이 기간 동안 그들은 1) <The Clash>(Epic/CBS·77) 2) <Give'Em Enough Rope>(Epic/CBS·78) 3) <London Calling>(2-LP·1-CD, Epic/CBS·79) 4) <Sandinista!>(3-LP·2-CD, Epic/CBS·80) 5) <Combat Rock>(Columbia/Sony·82) 6) <Cut The Crap>(Epic/Legacy/Sony·85) 등 모두 여섯 매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따라서 그룹 탄생 23년, 해산 14년만에 나온 이번 라이브는 그들의 일곱 번째 앨범이자,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이다.
이 라이브를 통해 클래시는 '영국 좌익 펑크의 원조'라는 그들에 대한 수식어가 전혀 과장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앨범에는 'London's Burning', 'I Fought The Law'부터 'London Calling', 'Train In Vain', 'Know Your Rights',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등 17 곡이 실려 있는데, 펑크의 정신이 그러하듯 곡들은 대부분 스튜디오 원 곡을 능가하는 '현장성'과 '힘'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드러머 토퍼 헤든의 연주는 그가 얼마나 좋은 '록 드러머'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앨범은 참으로 '펑크'는 물론 '록'의 명작·걸작 반열에 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라이브 앨범이다.
한편 85년 해산 이후 그룹의 리더였던 조 스트러머는 89년 첫 솔로 앨범 <Earthquake Weather>(Epic·CBS)를 낸 바 있는데, 록과 포크가 적절히 결합된 본 작은 85년 마지막 클래시 앨범 <Cut The Crap>을 훨씬 뛰어넘는 좋은 성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거의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는데 이는 그의 음악성이 '타락'했기 때문이기보다는 이미 90년대에 성큼 다가섰던 '시대적 변화'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REM과 너바나가 등장한 80년대 말의 록 신은 더 이상 이전의 '펑크 록 스타'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10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거쳐 조 스트러머는 이번 클래시의 라이브 앨범 발매에 맞추어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앨범 <Rock Art And The X-Ray Style>을 발표했다 우선 놀라운 점은 올해 47살이 된 이 '왕년의 펑크 아티스트'가 들려주는 사운드가 철저히 '레게·라틴'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러한 취향은 이미 그가 클래시의 앨범들을 통해 충분히 보여진 바 있지만, 앨범은 (다분한 상업적 의도가 읽히는 발매 시기와 함께) '펑크 그룹 클래시의 리더가 낸 신보'라는 선입견만으로 그것을 접하게 될 팬들을 당혹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그러한 음악에 깊이 기울어져 있다. 더구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앨범의 공동 작곡자 및 프로듀서로 참여한 인물이 '테크노 프로젝트' 그리드(The Grid)의 리차드 노리스(Richard Norris)와 이전 펄프(Pulp)·엘래스티카(Elastica)의 앤소니 겐(Anthony Genn)이라는 점이다. 얼핏 전혀 어울릴 듯 싶지 않은 이 '펑크 + 레게 + 테크노'의 혼합은 - 종종은 우리의 우려대로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 여전히 앨범의 기본 지향점인 레게 지향의 기타와 보컬의 멜로디·리듬 라인에 의해 적절히 다듬어지고 중화된다. 앨범의 첫 싱글 'Techno D-Day' 이외에도 'X-Ray Style', 'Forbidden City' 등은 이런 점이 잘 드러난 곡이다. 여러 면에서 이번 앨범은 스트러머의 음악적 캐리어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스트러머와 함께 그룹의 양대 지주였던 믹 존스(Mick Jones)는 이미 83년 클래시를 탈퇴하여 85년 빅 오디오 다이나마이트(Big Audio Dynamite - 보통 B.A.D.로 약칭)를 시작으로, 90년 이후에는 B.A.D. II를 이끌었고, 90년대 중반 B.A.D. II 해산 이후에는 런던의 한 사운드 시스템의 DJ로, 폴 시모논은 하바나 3 AM(Havana 3 AM)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몇몇 메이저 레이블들은 매년 그들에게 수천만 달러의 개런티를 제시하며 그룹의 재결성을 부추켜 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이 말은 이들에게 농담이 아니다!) 일회적 기념 공연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재결성은 '창조적으로 무의미하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역시 클래시는 위대한 그룹이었음에 틀림없다!

  • <From Here To Eternity> - 1. Complete Control 2. London's Burning 3. What's My Name 4. Clash City Rockers 5. Career Opportunities 6. (White Man) In Hammersmith Palais 7. Capital Radio 8. City Of The Dead 9. I Fought The Law 10. London Calling 11. Armagideon Time 12. Train In Vain 13. Guns Of Brixton 14. Magnificent Seven 15. Know Your Rights 16.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17. Straight To Hell
  • <Rock Art And The X-Ray Style> - 1. Tony Adams 2. Sandpaper Blues 3. X-Ray Style 4. Techno D-Day 5. The Road To Rock 'N' Roll 6. Nitcomb 7. Diggin' The New 8. Forbidden City 9. Yalla Yalla 10. Willesden To Cricklewood + CD Single Bonus Tracks: 1. The X-Ray Style (Live Simmer 99) 2. Yalla Yalla (Norro's King Dub)

야, 클래시 멋있네요! 오예, 멋진데! ... 그런데 우리가 공연 취재 가는 건 안 써있네요. 이 글이 옛날에 쓴 거라서 그래, 그게 뭐 중요하냐, <뮤지컬 박스>에 취재기가 난다는 게 중요하지. 형, 이거 연재라 그랬죠? 다음 호 공연 취재는 누구예요? 응, 요번에는 야심적으로 두 개를 해보려고 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하고 펫 샵 보이즈! 아니, '레이지'요? 그거 저도 같이 가도 되죠? 그래, 나야 좋지, 안 심심하고. 혼자 공연 보면 끝나고 누구하고 말하고 싶어서 얼마나 미치는데 ... 제가 보니까, 형이 요번에는 <뮤지컬 박스>에 글을 굉장히 많이 맡은 것 같아요, 요새 형 거의 매일 그것만 쓰고 있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너무 많이 맡았어, 잘못했어. 계산해보니까 지난 3달 동안 A4 용지로만 해도 250-300 매 가량 쓴 것 같아 ... 아니, 그렇게 많이 썼단 말예요? 그럼, 심지어 코피도 흘렸다, 야 ... 흑흑 ... 형, 진짜 많이 썼네요. 너라도 알아주니 고맙다 ... 뭘요 ... 그런데, 5호 특집은 뭐예요? 편집장하고 통화하면서 들었는데 아마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데뷔 앨범 100선'인가, 뭐 그럴 걸 ... 그것도 재미있겠네요. 재미있을까? 왜요? 일단 흥미가 가는데요. 그래, 그럼 다행이다 ... 형이 나한테 '선물'을 해줬으니까 나도 뭔가 보여 드려야죠. 여기 록 음악 잡지있잖아요 <Rock & Folk> 이번 2000년 1월호 특집 보셨어요? 아니 우리 집엔 아직 안 왔는데, 그거 특집이 독자 선정 '20세기의 그룹' 아니냐? 맞아요, 어제 서점에서 샀거든요. 기차간에서 보려고 갖고 왔지요. 그거 잘 가져 왔다, 야. 누가 선정됐냐? 형이 직접 보세요.

<Rock & Folk>을 펼치자 다음과 같은 투표 결과가 첫장에 실려 있다: "물론 비틀즈!" 1위는 비틀즈, 2위는 롤링 스톤즈, 3위는 레드 제플린, 4위는 레이디오헤드, 5위 U2, 6위 핑크 플로이드, 7위 지미 헨드릭스, 8위 너바나, 9위 벨벳 언더그라운드, 10위 도어즈, 11위 큐어, 12위 클래시. 페이지를 넘기자 1999년 '올해의 아티스트' 등도 실려 있다. '올해의 아티스트는' 1-5위가 실려 있는데 순서대로 데이빗 보위, 벡, 마뉘 차오, 벤 하퍼, 이기 팝, '올해의 그룹'은 케미컬 브라더즈, 레드 핫 칠리 페퍼즈, 플라세보, 데위스, 젭다의 순이다. '올해의 앨범'은 케미컬 브라더즈의 가 뽑혔다. 마뉘 차오(Manu Chao), 젭다(Zebda) 등 프랑스 그룹이 포함된 것이 이채롭다.

역시 비틀즈가 됐구나. 전 핑크 플로이드 뽑았는데. 그래? 근데, 하여튼 다른 건 좀 이해가 되는데 레이디오헤드, 큐어가 들어간 건 좀 의외네. 왜요? 레이디오헤드 <OK Computer> 좋잖아요? 그렇긴 하지, 너 같은 '젊은 청년분들'이 찍었나보네, 하하! 그러고 보니까 섹스 피스톨즈도 없네, 데이빗 보위 이번 앨범 <"hours...">도 아주 후지던데. 저도 안 좋던데요. 옛날 , 는 고사하고 <Scary Monsters>보다도 훨 안 좋던데. 그지? 아주 아니었어. 이건 '주최측의 음모'야, 음모. 그 판이 여기 프랑스 취향엔 맞나 보죠? 그런가 봐, 이해할 수가 없네. 딴 것도 보세요, 신보 소식 있잖아요. 피터 게이브리얼의 신보 이 곧, 2000년 상반기에 발매된다고? 이게 언제부터 '곧' 나온다는 건데 ... 왜 여태까지 안 나오지? 또 딴 판 나온다는 소식들은 거 없어요? 응, 다른 잡지들을 보니까 올해 상반기에 로저 워터스의 신보, 스틸리 댄의 신보 <Two Against The Nature>, 크라프트베르크의 신보, 그리고 죽이는 건 킹 크림즌이 신보를 내고 투어를 한대. 6월 25일 날 파리에서 공연한대, 그 때도 같이 가자. 킹 크림즌이요? 와 그거 죽이는데, 6월 25일이요? 가야죠. 내 평생 소원 중 하난데. 야, 킹 크림즌 본다는 얘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들으면 거의 반 미치겠는데요. 그지? '알찬' 공연 리뷰로 보답해야지, 뭐. 그럼 더 열 받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그 다음 특집엔 영국 리딩에서 열리는 WOMAD 2000 페스티벌이나 피터 게이브리얼 공연을 취재하려 그러는데 ... 아이쿠!

열차는 '파리동역'에 도착한다. 아침 10시 23분. 4시간이 걸렸다. 당신과 나는 동역(Gare de l'Est)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대규모 지하 종합 쇼핑센터 레 알(Les Halles) 역에서 내린다. 짐도 안 풀고 파리에 내리자마자 '레 알'에는 왜 갔을까? 지하철역에서 바로 통하는 레 알 지하 쇼핑 센터 안에는 대규모 서점·레코드점인 '프낙'(Fnac)이 있기 때문이다. 프낙에는 신보만 팔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밖에 싸지 않다. 프랑스는 보통 CD 한 장에 130-140 프랑 정도 하지만, 신보가 막 발매된 약 한 달 가량은 '프로모션 기간'으로 110-120 프랑 정도로 할인해 판매한다. 우리는 바로 인근 조르쥬-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Pompidou) 근처의 하루에 100 프랑 하는 한국인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시내 구경, 아니 정확하게는 CD 사냥을 나선다.

야, 하루 100 프랑에 아침, 저녁까지 주면 진짜 싸네요. 지금 1 프랑이 한 180원 조금 못 되죠? 1박에 18,000원이면 한국으로 쳐도 싸네요. 그지? 시설이 좀 후져서 그렇지, 조르쥬 퐁피두 센터 바로 옆이면 시내 중심가에 있지, 가격 싸지, 아마 배낭 여행하기엔 최고일 거야. 밥은 먹을 만 해요? 아주 괜찮다고 할 수는 없고 배고프니까 먹는 거지, 뭐. 형, 우리가 잡은 민박집 이름이 뭐죠? '우리민박'이야. 아줌마도 참 친절하시데요. 근데 말투가 ... 아, 연변 동포이실거야. 주소는 어디서 알았어요? 어, 그건 여기 (Oniva), 같은 한인신문들에 났더라. 그건 어디서 사는데요? 공짜야, 한인 상점이나 대사관이나 뭐 그런데 가면 있을 걸. 야, 배고프지 않니? 우선 우리 밥이나 먹자, 내가 가격이 상당히 괜찮은 중국집 하나 개발해 뒀지.

당신과 나는 지하철 10번선을 타고 파리 5구역(5e Arrondissement) 소르본느대학 바로 옆 '클뤼니-소르본느'(Clunny-Sorbonne) 역에 내린다. 역에서 나와 바로 옆에 맥도날드 골목으로 한 50M 들어가면 한자로 '의흥주가'(義興酒家), 불어로 '쉐 키옹'(Chez Kyon)라고 쓰인 중국집이 보인다. 파리의 음식은 1인당 보통 최하 50-100프랑 선으로, 가격이 싼 음식점을 찾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 부근은 대학 근처라 좀 싸다. '의흥주가'에서는 보통 볶음밥과 탕수육 혹은 고기덮밥이 나오는 '플라 뒤 주르'(Plat du Jour - 오늘의 요리)가 30프랑이다! 더구나 주인 아주머니(할머니?)가 아주 친절하다.
밥을 먹고 당신과 나는 바로 길 건너 소르본느대학 정문 앞 '지베르 조젭'(Gibert Joseph)으로 간다. 지베르 조젭은 문구·사무용품에서 서점, 레코드점을 겸하는데, 동일한 간판을 단 이 세 종류의 '지베르 조젭'이 나란히 서있다. 앞에서 보아 가장 왼쪽의, 버스 정류장 바로 뒤의 '지베르 조젭'이 당신과 내가 찾는 바로 그 '지베르 조젭'이다. 이 곳은 CD·LP·LD·DVD뿐 아니라, 각종 영화·음악·다큐멘터리 비디오 등등을 파는데 특이하게도 신보와 중고 제품을 함께 진열해 놓아 돈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그만이다. 지하가 팝·록·월드뮤직이며, 1층이 비디오·샹송, 2층이 재즈·클래식 등이다. 중고품들의 가격은 원가의 50-60%선이다. 여기서 좀 괜찮은 '희귀 음반'들을 사고 - 사실 프랑스에서는 우리 나라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희귀 음반'들이 부지기수다. 한 마디로 '돈이 없어서' 다 못 산다 - 그 바로 옆 골목 'CD 코너'(CD Corner)로 간다. 위에서 말한 세 '지베르 조젭'들 사이에 난 그 골목이다. 이 곳에는 '지베르 조젭'만큼 다양한 아이템은 없지만 중고품만 취급하며 '지베르 조젭'보다 가격이 조금 더 싸다. 주인 청년들이 두세 명 있는데, 역시 아주 친절하다. 이제 당신의 손에는 피터 게이브리얼의 <Passion Sources>가, 나의 손에는 크라프트베르크의 <Ralf Und Florian>이 들려 있다. 너무 행복하다 ...

  • 중국집 '의흥주가'(義興酒家) 혹은 '쉐 키옹'(Chez Kyon). 주소: 37, Rue de la Harpe, Paris. 홍세화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잘 나와 있는 것처럼 파리의 모든 골목, 거리에는 고유한 이름이 붙어있다. 뤼(Rue)는 불어로 '거리'(街). 즉, 이 곳은 '아르프 거리 37번지'이다.
  • 레코드점 '지베르 조젭'(Gibert Joseph). 주소: 34, Boulevard Saint Michel, Paris.

특이하게도 중고와 신보 CD를 함께 진열해 놓고 판다. 중고는 원가의 50-60%선. 엘리제 거리의 '버진 메가 스토어'와 레 알 지역의 '프낙'(Fnac)을 제외하면 - 물론 이 곳에는 중고 CD들이 없다 - 가장 많은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 '당신'이 파리에 간다면 가장 먼저 가야만 하는 곳. 없는 앨범만 빼고 다 있다.

  • 중고 CD점 'CD 코너'(CD Corner). 주소 1, Rue de l'Ecole de M dicine, Paris. '지베르 조젭'보다 더 싸다. '지베르 조젭'에서 10M 거리인데 이 곳은 파리 '6구'(6e Arrondissement)이다.

형, 진짜 기분 쌈빡하네요. 이거 진짜 파리만 해도 이런 판들이 이렇게 널브러져 있으니, 뉴욕이나 런던 같은데 큰 CD점은 어떨까요? 우리 편집장이 그러는데 토쿄도 그렇대. 몇 층 짜리 빌딩이 다 레코드점이래. 어휴, 배 아파. 그지? 근데 한국에서 이걸 읽는 독자들은 아마 우리보다 몇 배 열 받을 거다. 나도 처음에 유럽 와선 정신을 못 차리고 CD점만 다녔으니까. 돈도 수억 깨졌겠네요. 그럼, 그거 때문에 우리 처한테 얼마나 ... 하하하, 나라도 그럴 거예요.

당신과 나는 바로 인근의 '팡테옹'에 갔다가, 저 유명한 '고등사범학교'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셔보기로 한다. 팡테옹(Panth on)은 그리스어로 '만신전'(萬神殿)을 의미하는데, 이 곳 지하 묘지에는 프랑스를 빛낸 위인, 정치가, 애국자들이 묻혀 있다. 우리가 대충 아는 인물들만도 볼테르, 미라보, 루소, 위고, 졸라, 퀴리 부처 등이 있고, 가장 최근에 묻힌 사람이 문학가, 혁명가이자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로 더 유명해진 장-레옹 푸코의 <푸코의 추>도 이 안에 있다. 그러나 입장료가 있다는 사실을 안 당신과 나는 바로 곁 '고등사범학교'로 발길을 옮긴다. CD점에서 너무 무리를 했던 것이다.
고등사범학교(L'Ecole Normale Sup rieure, ENS)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생긴 프랑스만의 독특한 학교 제도이다. 우리 나라도 영재교육, 영재교육 하지만, 프랑스야말로 정말 철저한 영재, 천재, 엘리트 교육주의를 채택하는 나라이다. 이 곳은 우리 나라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박(Bac)을 통과한 학생들이 보통 2-3년 이상의 재수를 거쳐 입학하는 인문·사회 계열의 특수대학이다. 경쟁률은 물론 200-300 대 1 이상이며, 한 해에 인문계의 경우 40-50명밖에 뽑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전교생 전액 완전 장학금은 물론 기숙사, 일정량의 용돈까지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 그러나 프랑스 학생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하는 것은 - 이런 경제적 이유에서보다는 - 학교의 유서 깊은 '전통'과 '명예' 때문이다. 이 학교 졸업생은 누가 있을까? 한 마디로 우리가 이름만이라도 아는 프랑스 사상가 99%가 이 학교 출신이다. 베르크손, 싸르트르, 보부아르, 아롱, 메를로-퐁티, 알튀세, 푸코, 데리다, 앙리-레비가 그들이며, 자크 라캉과 움베르토 에코가 여기서 강의를 했다! 한 마디로 카뮈와 들뢰즈만 빼고는 다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다 했네요. 진짜 질리네. 싸르트르의 책들을 읽어보면 사람들은 이 학교를 그냥 여기 거리 이름인 '윌름가(Rue d'Ulrm) 45번지'로만 불러. 그리고 얼마 전에 한국 여학생이 여기 입학했어,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한 것 알아? 우와, 정말요? 대단하네. 여기서 태어난 애겠죠? 그럴거야. 아버지가 여기 외교관인가 그랬던 것 같다. 하여튼 대단하네요. 자, 우선 다리도 아프고 하니까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 잔 뽑아먹자. 여기도 자판기나 휴게실이 있지 않겠냐? 그러죠, 뭐. 근데 들어가다가 학생증이라도 보여달라는 거 아냐? 그럼 딴 데 가면 되죠, 뭐. 그래, 하여튼 가보자.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걸어가던 나는 무심코 뒤쪽을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 프랑스의 젊은 천재들이 모여있는 이 '윌름가'의 끝에 위치한 건물이 다름 아닌 '팡테옹'이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프랑스의 야심 있는 지적 청년들이 가질 만한 두 가지 꿈이 한 거리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젊어서는 ENS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활발한 지적·사회적 활동을 하고, 그리고 죽어서는 팡테옹에 묻히는 것, 그것은 적어도 이 곳 ENS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꿈이 아닌 '가능한 현실'일 것이다. 새삼 프랑스의 지적 전통과 그것을 운용하는 그들의 정신적 전략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다행히 수위 아저씨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전혀. 본관 건물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당신과 나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지하 휴게실을 발견했다. 둘이서 캔 콜라와 커피를 하나씩 빼들고 앉아 우리는 당구를 치고 있는 남학생 둘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에는 휴지, 신문조각 등이 널려 있고, 담배꽁초들이 땅바닥을 구른다.

허허, 이거 우리 나라하고 똑 같구나. 어유, 더 더럽네요, 뭐. 얘네들은 왜 이렇게 하고 살지? 근데 저기 앉아 있는 여학생 너무 괜찮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아까부터 보고 있는데 상당히 미인이다, 야. 그죠? 고등사범학교 학생들은 다 아주 아닐 줄 알았는데, 정말 여기 학생일까요? 혹시 ... 하하, 그거야 모르지, 아마 학생이겠지. 형 담배 있어요? 아까 가게에서 샀어야 되는데, 커피를 마시니까 생각이 간절하네요. 그래, 여기 있다. 그리구 거기 신문들 좀 줘 봐. 무슨 신문이냐? 여러 가진데요, <르 피가로>, , <르 몽드>요. 아무 거나 하나만 줘 봐. 오늘이 조 스트러머 공연인데, 혹시 기사가 안 났을까? 그러게요. 넌 그 신문들 좀 찾아봐라. 난 이 신문들 좀 찾아 볼게 ... 아무래도 문화면에 있겠죠? 그렇겠지 ... (신문들을 뒤적이며) ... 야, 좀 전에 당구 치던 애들이 지금 하는 얘기 들리니? 아니오, 전 아직 그 정도 수준은 ... 뭐라 그러는데요? 이 녀석들이 좀 전부터 여기 극우주의 운동하고 공산주의 이론하고 비교하면서 둘 다 까고 있는데 ... 생긴 건 전혀 안 그렇더니, 역시 다르네요. 에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없고 ... 우릴 의식하는 게 아닐까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기 앉아있는 녀석들이면 그럴 것 같지 않은데 ... 어, 형, 여기 났네요. <르 피가로>(Le Figaro) 신문에 있는데요? 그래, 그거 줘 봐. 취재기에 실어야겠다. 여기 있어요, 한 번 읽어 줘봐요. 그럴까?

3 '은퇴' 이후의 조 스트러머[ | ]

베르트랑 디칼

클래시의 전 싱어 조 스트러머가 자신의 신보 <Rock Art And The X-Ray Style>(Mercury)의 발매에 맞추어 오늘 밤 파리 엘리제-몽마르트르에서 공연을 한다. 이번 공연은 11년간의 침묵을 깬 컴백 공연의 일환이다. "11년이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한테 그리 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 사이 전 아마 '은퇴해' 있었던 거겠죠." 그는 약간의 솔직한 냉소를 보였다. 그는, 수많은 록의 혁명아들처럼,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아우라의 대부분이 이미 20년 전의 영광에서 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 '클래시의 싱어였다'는 사실이 오늘 그가 가진 뮤지션으로서의 위상에 커다란 음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 약간은 빈정거리는 투로 - '은퇴'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그 동안 제가 조직했던 그룹들은 전혀 일이 풀리질 않았어요. 처음엔 그리드(The Grid)의 리차드 노리스(Richard Norris)와 애시드 펑크를 시도해봤죠. 리차드는 음악이란 걸 단순히 리듬 박스 머신에 접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전혀 다르거든요. 말하자면 길지만, 전 음악이란 걸 텍스트, 화음, 리듬, 멜로디, 편곡 등등을 적당히 결합시키는 전체적 과정으로 생각해요 ... 의견 차이가 너무 컸어요. 다음에 전 해피 몬데이즈(Happy Mondays)와 블랙 그레이프(Black Grape)의 댄서 베즈(Bez)와도 작업했지요. 녹음을 해보니까 괜찮더라구요. 그런데 다시 들어보니까, 또 별로 아닌 거예요. 그 다음에 앤소니 겐(Anthony Genn)하고 작업하게 됐지요. 겐은 저한테 내가 요즘 뭘 하고 있냐고 물어봤지요. 전 이렇게 대답했지요: "아무 것도 안 해." 겐은 "그러지 말고 뭔가 해 보라"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앨범이 나온 거예요."
그들은 함께 이 잡종의, 거친, 시대에 맞는, 그러나 언제나 미완성의, 음악 전복적 펑크 감각으로 충만해 있는 <Rock Art And The X-Ray Style>을 녹음했다. 약간의 레게, 약간의 엘렉트록닉, 약간의 록이 뒤섞인 이 앨범은 무엇보다도 90대의 관습적 취향을 혼란시키는, 분노를 잠재우는, 하나의 분열된 앨범이다.
특히 조 스트러머는 이번 순회 공연을 위해 자신의 새로운 밴드 메스칼레로스(The Mescaleros)를 만들었다. 클래시의 첫 라이브 앨범과 그들의 도큐멘터리 비디오의 출시에 맞추어 발매된 이 앨범은 우리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펑크의 시대'에 대한 기억을 그에게 되묻도록 만든다: "좋은 기억만 남아 있어요. 기억이란게 어차피 나쁜 일은 망각하게 되어 있잖아요. 단 한 가지, 내가 믹 존즈의 호텔방에 들려 콘서트를 하자고 말했던 기억만 빼고는요."


와, 되게 시니컬하네요. 그러게. 하긴 사람들이 자기 20년 전의 작업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요즘 작업에 관심을 안 가져주면 상당히 괴로울 것 같긴 하네요,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그렇지?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또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티스트로서는 상당히 괴로울 것 같지?
근데, 도큐멘터리 비디오라는 건 뭐예요. 응, 지난 해 말인가 <The Clash - West Way To The World>(Sony)라고 나온 거야. 옛날 인터뷰, 공연 실황 같은 게 들어 있더라. 아주 볼만 해. 그걸 보면 조 스트러머가 당시 70년대 말 영국 펑크의 그야말로 (좌익적) '대변자'라는 걸 알 수가 있어. 사실 영향력의 측면에서 보면 물론 섹스 피스톨즈가 더 크겠지만, 조니 로튼은 조 스트러머만큼 의식 있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거든. 아티스트가 꼭 '의식'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정말 중요한 말이야. 더구나 펑크는 논리가 아니고 느낌이고 반항이니까 더 그렇지. 그래도 한 명쯤은 대변자가 있는 것도 괜찮겠지. 조니 로튼이 몸이라면, 매니저 맬콤 맥렐런이 배후 조종자고, 조 스트러머가 대변인이었을 거야. 그런 '심오한' 얘긴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 뭐 그냥 그런 게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봤어.

당신과 나는 고등사범학교를 나오자 괜찮은 한국식당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입맛을 다시지만 - 언제나 그렇듯이 '비용' 문제로 - 그냥 샹젤리제 거리의 '버진 메가 스토어'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고등사범학교 부근의 7번선 플라스 몽쥬(Place Monge)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튈러리(Tuileries) 역에서 1번선으로 갈아탄 후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에서 내린다. 멀리 개선문이 보이고 버진 메가 스토어가 바로 앞에 있다. 이 곳은 파리의 중심부답게 외국인 관광객의 물결이 넘치고 종종은 한국어도 들린다. 또 다시 '쇼핑'을 마친 당신과 나는 이미 5시 반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 공연은 7시 반이다 - 또 다시 커피를 한 잔 먹기 위해 바로 곁의 맥도날드에 들어갔다가 햄버거 하나씩을 먹고 만다. 저녁을 먹기 위해 민박집에 들렀다가 처음 가보는 공연장을 찾아가기에는 약간 늦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햄버거를 먹고 우리는 다시 1번선을 타고 샤를르 드골-에트왈(Charles de Gaulle-Etoile) 역에서 2번선으로 갈아탄 후 앙베르(Anvers) 역에서 내린다. 늦을까 봐 조바심을 쳤던 우리의 걱정과는 반대로 공연장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있다. 오히려 너무 일찍 도착했다. 6시 반. 아무도 없다. 엘리제-몽마르트르(Elys e-Monmartre) 공연장의 사진을 찍으려던 당신과 나는 필름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필름을 사려다, 이상하게도 주변에 필름 가게가 '너무 많은' 것을 발견한다. 꼭 관광지 같았던 것이다.

형, 여기 좀 이상하게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러게, 필름 가게도 이상하게 많고 ... 어, 형, 저게 뭐죠? 어, 저게 뭐지? 아니, 여기가 몽마르트구나! 저 위가 사크레-쾨르(Sacr -Coeur) 성당이고! 여기가 화가들이 있는 그 몽마르트르예요? 그런가본데, 왜 화가들이 없지? 겨울에다 저녁이 다 돼서 그런가? 하여튼 저 하얀 성당은 멋있네요. 진짜 크다, 야. 여기 안내판이 있는데요. 40년 걸려서 1919년에 지었다, 이런 거 같은데요. 맞아, 로트렉, 르누아르, 위트릴로, 피카소가 이 거리에 살았네. 조 스트러머 덕분에 신기한 거 구경하네요. 그러게. 형, 필름 사야죠. 조 스트러머는 공연 끝나면 꼭 관중들하고 술 마신다면서요, 우리도 사인받고 사진 한 장 찍어야죠. 그래, 내가 클래시 책 보다가 봤는데 그렇다는 거야. 그런데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인데, 지금도 그럴까? 모르죠 뭐. 진짜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우리 이러다가 혹시 조 스트러머 진짜 만나는 거 아냐?

당신과 나는 7시경에 다시 공연장 앞으로 왔다. 한 10여명의 팬들이 모여 있다. 입구에는 오프닝 밴드인 4인조 펑크 그룹 헬보이즈(Hellboys)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Turbo folk, Garage punk, Boogie trash, Rock'N'Roll - Single <Bloodshot Eyes>(Hellcat/Epitaph)" 헬보이즈? 터보 포크? 처음 듣는 이름이다. 7시 15분 경이 되자 입장이 시작된다. 공연장 내부는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크다. 안에서는 음료수와 맥주 등을 팔고 있고, 차츰 사람들이 입장하자 실내는 담배 연기로 꽉 찬다. 8시 가량이 되자 큰 공연장은 거의 만원이 되었고, 아마도 한 2,000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이 공연장에는 좌석이 없다. 관중들은 모두 서있다. 나는 공연장에 가면 항상 관객들의 다양한 분포도(?)를 유심히 조사해보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 관객들의 95%는 백인, 나머지는 유색인종이다 - 물론 동양인은 물론 당신과 나 둘뿐이다. 이 곳 파리 길거리에서 '발에 차이는' 것이 아프리카, 아랍 계열의 유색인종들인 것에 비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인구의 20-30% 가량은 될 것이다) 공연장에는 백인들만 가득 차있는 것이다. 관객들의 나이는 대강 10-40대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 곳의 다른 록 공연에 비해서는 단연 30-40대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남녀 비율은 8:2 정도로 남성이 많다. 펑크 음악의 팬들은 70-80년대 당시 백인·남성·청년·노동자 계급의 음악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조 스트러머의 팬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당시 조류에 동참했던 현재 30-40대의 '중년층'과 예전의 명성을 듣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 그들의 음악을 찾아들은 현재 10-20대 청년들 및 기타 음악 전문가 등등이 혼합된 것이다.
8시 10분이 되자 무대에는 오프닝 밴드 '헬보이즈'의 공연이 시작된다. 관중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연주가 사실 너무 좋았던 것이다. 헬보이즈의 기본 라인업은 리더로 보이는 기타·보컬리스트, 리드 기타리스트, 드러머, 베이시스트의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사는 영어이지만 중간 멘트 때의 불어 발음이 완벽한 것으로 보아 프랑스 그룹이 틀림없는 것 같다. 서구권 지역에 나와 살고 있는 음악 매니어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이 곳에서 정말 놀라운 점은 웬만한 록 공연장에서 매일같이 열리는 어떤 콘서트를 가보아도 - 정직히 말해, 적어도 최소한 테크닉과 사운드의 수준에서는 - 그들의 연주 수준이 한국 최고 뮤지션의 그것을 대부분 능가한다는 사실이다. 서구 록 음악의 베이스, 밑바닥 층은 그야말로 와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넓고 깊다. 특히 스래시, 고딕, 프로그레시브 등의 메탈 혹은 얼터너티브 하부 장르의 그룹들이 보여주는 연주의 기량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믿을 수 없이 잘 조절된 사운드 튜닝, 하나같이 초절기교로 무장한 완벽한 스테이지 매너에 나름의 카리스마를 골고루 갖춘 그룹들이 부지기수다 - 이는 물론 자신들 문명권의 음악을 그 문명권의 젊은이들이 연주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문명 프리미엄' 현상이 그 근본 이유일 것이다. 여하튼 상당한 호응 속에 헬보이즈가 아마도 대여섯 곡의 노래를 끝내고 퇴장했다.

인제 진짜 나오겠네요. 나오겠지, 오프닝 밴드도 끝났으니까. 몇 시예요? 8시 30분인데. 근데 또 왜 안 나오죠? 그러게 되게 안 나오네. 7시 30분에 원래 공연 시작이니까, 오프닝 밴드 한 30분 잡아먹고, 9시전에만 나오면 감지덕지다. 사운드 튜닝하고 그러는데 되게 오래 걸리네요. 그지, 그게 오래 걸리게 되나 봐. 옛날에 내가 스트라스부르에서 공(Gong) 공연을 보는데, 8시에 시작이라 그래서 난 우리 나라 생각만 하고 두 시간 전, 6시에 갔는데 - 그것도 줄이 길까봐 걱정하면서 - 근데 아무도 없는 거야. 7시 반정도 되니까 한 100명이나 오더라구. 전부 얼마나 왔는데요? 한 2000명? 그 사람들은 언제 왔어요? 아, 나만 모르고 일찍 온 거고, 공연장 문 자체도 8시 15분엔가 열어 주더라고. 그 때까지 혼자 2시간, 아니지, 글쎄 그 날은 오프닝 밴드도 없었는데, 아 이 사람들이 9시 반에 시작할 때까지 나 혼자 3시간 반까지 혼자 죽치고 앉아서 기다렸지. 아, 그래서 형이 절 그렇게 반가와 하셨군요. 그렇지, 어떻게 알았어! 하여튼 한 8시 15분 정도나 되니까 갑자기 사람들이 막 오더라구. 나만 몰랐던 거지. 그날 공연은 그래서 몇 시에 끝났어요? 12시 반인가, 1시인가? 그렇게 오래했어요? 9시 반에 시작해도 3시간이나 했네요. 아냐, 중간에 30분인가 한 시간인가 또 쉬더라구. 음악은 어땠어요? 음악은 진짜 죽이더라구. 정말 할렐루야였어. 정말 너무 연주가 좋아서 오래 기다린 생각이 하나도 안 나더라니까. 그리고 데이빗 알렌(Daevid Allen) 불어 진짜 완벽하게 하더라. 그 사람 파리에서 옛날에 살았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너무 잘 하는거야. 질리 스마이스(Gilly Smyth)도 왔었어요? 왔지, 내가 공연장 맨 앞줄에 서서 봤거든, 근데 그 할머니는 가까이 가서 보니까 진짜 너무 늙어서 팔뚝 살이 축 늘어지고, 그 목소리하고, 진짜 그로테스크하더라! 그 할머니하고 잘 어울리네요, 뭘 ... 아, 형 얘기 듣다보니까, 나도 조금만 일찍 왔으면 공 공연도 보는 건데 ... 으으으 ... 어, 나온다. 진짜. 몇 시지? 8시 40분인데요. 음,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구먼.

* 연주 곡명 리스트

Artist: Joe Strummer & The Mescaleros
When: 19H30, Tuesday, 7 December 1999
Where: Elys  e Monmartre, Paris, FRANCE

Personnels
Joe Strummer - guitar, vocal
Anthony Genn - guitar
Scott Shields - bass
Smiley - drums, percussions
Pablo Cook - percussions
... & unknown 1 keyboardist

List of Songs

1. Shouting Street
2. Diggin' The New
3. Nothing
4. X-Ray Style
5. Rock The Casbah #
6. Ishen
7. Brand New Cadillac #
8. Tony Adams
9. Trash City
10. Nitcomb
11. The Road To Rock 'N' Roll
12. (White Man) In Hammersmith Palais #
13. Safe European Home #
14. Yalla Yalla
15. Rudie Can't Fail #
16. London Calling #
17. Pressure Drop
18. Tommy Gun #

(앵콜곡)

19. Bankrobber#
20. Straight To Hell #
21. I Fought The Law #
22. White Riot #
23. Island Hopping
24. Forbidden City
25. Junco Partner#
26. White Riot#

# 표시는 클래시의 노래들.

아티스트들이 등장하자 공연장에 꽉 찬 관중들이 발을 구르며 열렬히 환호한다. 드러머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조 스트러머의 인사말이 이어진다: "안녕하세요, 파리! 저희 공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헬보이즈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음악과 리듬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저희는 이번 투어에서 57개 도시를 순회했는데, 오늘이 저희 투어의 마지막 공연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첫 곡은 89년의 솔로 1집 <Earthquake Weather> 수록곡 'Shouting City'이다. 공연을 여는 첫 곡답게 흥겨운 드럼이 리드하는 신나는 곡이다. 노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지만 모두 흥에 겨워 어깨를 흔들어 댄다. 공연을 리드하는 조 스트러머의 매너와 보컬리스트로서의 카리스마는 - 물론 이전 젊은 '열혈 펑크 로커'의 그것은 아니지만 - 관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나름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곡은 얼마 전 발매된 2집 <Rock Art And The X-Ray Style> 수록된 'Digging The New', 이어지는 곡은 'Nothing'과 역시 2집의 'X-Ray Style'이다. 앨범의 싱글이기도 한 이 네 번째 곡에서는 봉고가 연주된다. 그는 첫 곡 이후, 한 곡이 끝나면 약 5-10초 간격 이후 별다른 멘트 없이 바로 다음 곡으로 계속 넘어가고 있다. 영어로 멘트를 하고 있는데 사이사이에 종종 애교스럽게(?) "봉주르, 메르시" 같은 간단한 불어를 집어넣어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노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걱정했던 대로 관중들의 대부분은 89년의 솔로 1집은 물론 99년 발매된 2집 수록곡들조차 대부분 모르고 있다. 아마 관중들의 한 5-10%만이 2집 수록곡이나마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Nothing'은 클래시와 그의 솔로 작업 중 어느 앨범에도 수록되지 않은 미발표곡이다. 관중들은 여전히 환호하고 있지만 - 역시 사람들이다 보니 - 자신들이 모르는 노래만 나오니 그리 몰입되지 못하는 풍경이 역력하다. 나는 당신 곁에, 그들 사이에 서서 혼자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이 사람들은 여기에 무엇을 바라고 온 것일까? 그들은 조 스트러머의 노래를 모른다. 그냥 전설적인 '클래시'의 기타리스트 공연의 분위기를 보려고 온 것일까? 그냥 록이 좋아서 온 것일까? 그냥 분위기 좋을 것 같아서 온 것일까?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30-40대들은 과거의 젊은 날을 회고해보기 위해? 10-20대 젊은이들은 이 70년대의 '전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그들은 지금 조 스트러머가 20년 전의 옛 클래시 곡들을 연주해 주길 바라고 있는 것일까?
다섯 번째 곡이 시작된다. 그 곡은 놀랍게도 클래시의 82년 5집 <Combat Rock> 수록곡 'Rock The Casbah'이다. 이 곡은 드러머 토퍼 헤든이 작곡한 곡으로 강력한 신서사이저 드럼 소리가 매력적인 곡이다. 당시 이 곡은 빌보드 차트 8위를 기록한 클래시의 미국 최대 히트곡이다. 영국에서도 15위를 기록했다. 윌 스미스의 최근 싱글(곡명을 모르겠다, 알면 적어주세요)은 바로 이 곡을 샘플링한 것이다. 참고로 클래시의 곡으로 미국 탑 40에 오른 곡은 이 곡과 80년 2집 <London Calling>에 수록된 믹 존즈의 'Train In Vain'(23위) 두 곡뿐이다. 이 곡이 연주되자 관중들이 갑자기 모두 큰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야, 신나네요! 이 곡 할 줄은 몰랐네. 그러게, 난 클래시 노래는 아예 안 할 줄 알았는데. 하여튼 아는 노래가 나오니까 좋네요. 그죠, 사람들도 클래시 노래밖에 모르는 거 같아요. 조 스트러머도 괴롭겠다, 야! 조 스트러머 솔로 앨범 노래들 히트한 거 하나도 없죠? 없지. 89년도 나온 1집이 지금 얼마나 '희귀 음반'인데 ... 거, 진짜 괴롭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요즘 노랠 하면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하고 싶지 않은(?) 옛날 노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전 솔로 앨범 노래들도 좋던데. 특히 1집 노래가 좋더라고요. 그지? 하여튼 조 스트러머, 진짜 괴롭겠다.

여섯 번째 곡은 앤소니 겐의 실험적 기타 사운드가 돋보이는 'Ishen'이라는 곡이다. 이 곡도 어느 앨범에도 수록되지 않은 곡인데, 멘트로 보아 다른 사람의 곡인 것 같다. 일곱 번째 곡은 'Brand New Cadillac', 록앤롤과 펑크가 적절히 결합된 곡으로 <London Calling>에 있다.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좋아한다. 역시, 적어도 팬들에게 있어, 클래시의 본령은 <London Calling> 앨범의 '박력'에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여덟 번째 곡은 솔로 2집의 'Tony Adams'이다. 색소폰이 등장하는 이 곡은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도 굴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계속한 영국의 축구 선수토니 애덤즈에게 보내는 찬사의 곡이다. 아홉 번째 곡은 프로그레시브한 모던 록 스타일의 'Trash City'라는 곡으로 앨범 미수록 곡이다. 아마도 앤소니 겐의 영향인 듯 싶다. 열 번째 곡은 2집에 수록된 'Nitcomb'으로 특이하게도 베이스와 드럼 주자가 포지션을 바꿔서 연주한다. 이 곡은 제목에 걸맞게 조 스트러머에 의해 '장내의 여성 팬들에게' 바쳐졌다. 현재까지 연주된 열 곡 중 세 곡이 앨범 미수록곡, 다섯 곡이 솔로곡들, 두 곡이 클래시의 곡이다. 불행하게도 조 스트러머의 솔로 앨범을 모르는 관객들은 단 두 곡만이 아는 노래였을 뿐이다. 다음 곡은 솔로 2집 수록곡 'The Road To Rock 'N' Roll'이다. 조 스트러머가 이 곡은 조니 캐시(Johnny Cash)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멘트를 한다. 이 곡은 제목대로 흥겨운 록앤롤 리듬의 곡이다. 전체적으로 연주되는 곡들은 록과 포크 그리고 아마도 앤소니 겐의 영향인 듯 테크노와 약간의 프로그레시브·사이키델릭 취향의 곡들이다. 열두 번째 곡은 클래시의 전설적인 77년의 1집에 담긴 '(White Man) In Hammersmith Palais'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기로 유명한데, 관객들은 옛 클래시 곡의 가사를 대부분 알고 있다 - 한국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으로 영어를 알아듣고도 불어로 대답한다는 '신화'가 널리 유포되어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와서 생활해 보면, 불어 발음 구조상의 이유인지,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가히 '절망적으로' 못할뿐더러, 자신들이 영어를 못 한다는 사실에 대부분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생들의 경우에도 우리 나라의 평균적 대학생들보다도 훨씬 못 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불어로 대답하는 것은 언어 계통상의 친근성으로 '영어를 좀 알아듣기는 하지만, 그걸 영어로 전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불어로 하는 것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밴드는 '기왕 노는 김에 좀 제대로 놀아보자'는 기분인지 이어지는 곡으로 클래시의 78년 2집 <Give'em Enough Rope>의 싱글 'Safe European Home'을 연주한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훨씬 흥분되고 '화기애애' 해진다. 관중들은 발을 구르고 헤드뱅잉을 하며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나는 '이 정도면 아마 'London Calling'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곡이 끝나자 조 스트러머가 멤버 소개를 한다. 기타의 조 스트러머를 제외한 멤버들은 기타의 앤소니 겐, 베이스의 스콧 실즈, 드럼의 스마일리, 퍼커션의 파블로 쿡, 그리고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맨체스터 출신의 키보디스트 등 다섯 명이다. 이들은 모두 이번 솔로 2집의 스튜디오 녹음에 참여했던 멤버들이다. 멤버들 중 연주 기량의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은 역시 기타의 앤소니 겐과 드럼의 스마일리 정도이다. 잠깐, 조 스트러머의 나이가 오늘 몇 살인지 아는가? 1999년 12월 현재 그의 나이는 47세이다. 밴드 멤버들의 나이는 30대 중반 가량으로 보이는 드러머 스마일리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앤소니 겐을 제외하고는 모두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들이다. 이 동안의 청년들은 '위대한 펑크 로커 조 스트러머 선생님의 밴드에서 멤버로 공연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하고' 발랄하고 신나게 뛰어 돌아다니며 연주를 하고 있다. 다음 곡은 앤소니 겐의 실험적 기타 신서사이저가 주도하는 솔로 2집의 'Yalla Yalla'이다. 이 곡은 공연에서 연주된 곡들 중 실험성의 측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 곡은 <London Calling>의 'Rudie Can't Fail'이다. 아까처럼 관중들이 첫 기타 리프에서부터 벌써 알아듣고 환호를 한다. 이어지는 다음 곡은 ... 'London Calling'이다! 관중들의 환호는 절정에 도달한다. 이제 초반부의 약간 썰렁했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공연장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무르익어 있다. 이어지는 곡은 'Pressure Drop', 마지막 열 여덟 번째 곡(?)은 도입부의 드럼이 연발 기관총 소리처럼 울리는 클래시 2집의 싱글 'Tommy Gun'이다. 관중들은 모두 헤드뱅잉을 하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 환호와 함께 노래가 끝나고 멤버들이 퇴장한다. 9시 55분. 공연 시작 1시간 15분이다.

그러나 물론 관중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박수와 발구르기로 앵콜을 외치고 있다. 잠시 후 멤버들이 다시 등장하여 처음 연주한 곡은 80년 싱글로만 발매되어 영국 차트 12위를 기록한 'Bankrobber'이다. 한국에는 아마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이 곡도 관중들은 모두 따라 부른다. 이어지는 곡 또한 클래시의 <Combat Rock> 수록곡 'Straight To Hell'이다. 드디어 다음 곡으로 이들이 연주한 곡은 우리 나라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 그룹들의 단골 메뉴인 'I Fought The Law'이다. 다음 스물 두 번째 곡은 역시 클래시 1집의 '운동가요' 'White Riot'이다. 관중들은 완전히 몰아지경에 빠져 있다. 이제는 조 스트러머도 아예 '팬 서비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클래시의 곡들만을 연주하고 있다. 이 곡을 마치고 멤버들은 또 다시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당신과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시간은 10시 10분이다.

그러나 관중들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또 다시 앵콜을 외치고 있다. 록 스타라기보다는 언제나 '우리들의 친구'라는 이미지를 주는 조 스트러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시 등장하여 솔로 1집의 'Island Hopping', 2집의 'Forbidden City'를 잇달아 연주한다. 다음 곡은 드디어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시 앨범인 80년의 걸작 트리플 앨범 <Sandinista!>의 'Junco Partner'이다. 당신과 나는 좋아서 펄쩍 뛰었다. 밴드는 공연의 정말 마지막, 무려 스물 여섯 번째 곡에서 아까 연주했던 'White Riot'을 다시 한 번 연주했다. 관중과 무대는 하나가 되었다. 두 번의 앵콜로만 무려 여덟 곡을 연주한 그들이 드디어 뜨거운 박수 속에 마지막으로 퇴장했을 때 시각은 10시 30분, 공연 시작 1시간 50분만이었다.

어휴, 형도 옷 다 젖었죠? 원래 공연장이 좀 더운데 뛰고 나니까 진짜 완전히 한증탕에 들어갔던 것처럼 다 젖었네요. 하하, 그래도 진짜 공연 한 번 신나게 봤다, 야. 그러게요. 형, 우리 조 스트러머 기다릴거죠? 우선 배고픈데 요기 앞에서 샌드위치나 하나씩 먹죠, 금방 나오겠어요, 한 30분 한 시간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우선 샌드위치나 먹자, 나도 배고프다 ...... 맛있네요. 그지? 이 집 맛있다, 야. 근데 진짜 만날 수 있을까요? 모르지, 뭐. 우리 어차피 여기서 하루 자는데 우리 둘이 지금 민박집에 가서 뭐하냐, 밑져야 본전이지. 기다리면서 맥주나 한 캔 씩 사먹자. 좋죠! ... 야, 이거 뭐 벌써 한 시간이나 되고 앰프니 뭐니 짐도 아까아까 다 실어갔는데 전혀 나올 기미가 없네요. 뒷문으로 벌써 나간 것 아냐? 보통 아티스트들은 그런 문으로 그냥 휙 나가 버리잖아. 에이, 괜히 기다렸나보다. 어우, 추워 ... 그래도 저 쪽에 딴 사람들도 같이 기다리니까 좀 낫긴 하다만 ...

정문 앞에는 당신과 나말고도 두 '팀'이 더 기다리고 있다. 한 팀은 20대 가량의 여성 3명이고, 한 팀은 30대 가량의 남성 둘이다. 그래봐야 우리까지 다 해서 일곱 명이다. 기다리다 지친 당신과 내가 말을 걸자 그들은 자기네들도 조 스트러머가 관중들을 만나준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벌써 간 것 같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던 중 남자들 중 하나가 아예 안으로 한 번 들어가보자고 해서 모두는 컴컴한 계단을 지나 공연장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니, 그랬더니 이게 웬 일 ... 공연장 안은 불을 다 켜놔서 훤하고 한 쪽 귀퉁이의 방안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혹시 저기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얼른 방문을 열고 눈부신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 안에는 ... 정말 조 스트러머가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바로 당신과 나의 눈앞에 진짜로!

당신과 나는 너무도 흥분해 말이 안 나왔다. 우리 나라 별 볼일 없는 시시한 록 스타 한 명도 얼마나 거만하게 굴고 만나기 힘든데 이런 대스타를 진짜 바로 눈앞에서 보다니, 정말 클래시 책에서 그들을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고 싶고, 또 실제로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던' 펑크의 정신에 너무도 충실한 사람이라고 했던 평가가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이 온 몸으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자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말을 좀 해봐야 되겠는데, 내 말을 들어줄까? <뮤지컬 박스>에 실린 사인이나, 인사말 같은 걸 부탁해도 될까? 사실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그를 정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거의 못 해 봤기 때문에 갑자기 당황했다. 약간 정신을 차리고 우선 방안의 분위기를 좀 살펴보니, 조 스트러머는 관중·크루 등 한 스무 명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인도 해주고 말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용기를 내서 한 번 얘길 해 봐야지. 그런데 말을 걸려다 가만히 보니까, 조 스트러머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맥주병을 들고 웃음을 터뜨리며 사인만 해주고 있었다. 그가 종종 하는 말은 모두 영어였다. 아하, 이제 알겠다, 조 스트러머는 불어를 못 하고, 불란서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니까, 저렇게 서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미소만 주고받고 사진만 찍고있는 거구나! 그럼 그 동안 팝송 가사 외우며 20년 동안 갈고 닦은 나의 영어 실력을 한 번 실험해 봐야지 ... 당신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려 조심스럽게 조 스트러머에게 다가갔다.

기자: "안녕하세요."
조 스트러머(조): (반갑게)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 정말 좋았어요."
조: (아주 친절하게) "감사합니다."
기자: "저는 사실 한국의 음악 전문지 <뮤지컬 박스>의 기자인데요. 선생님의 공연을 취재하러 스트라스부르에서 파리로 취재를 왔습니다. 저는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조: (좀 놀라며, 무척 기쁜 얼굴로) "어, 그래요.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그리고 저희 잡지는 매호 하나의 아티스트나 그룹을 정해서 특집을 마련하는데요. 특집 분량은 매호 약 50-60페이지 정도 되고, 그 안에는 그들의 연대기, 모든 정규·솔로 앨범·싱글의 리뷰, 기타 관련 아티클 등을 싣는데요, 1호는 핑크 플로이드, 곧 나올 2호는 제너시스와 피터 게이브리얼, 3호는 크라프트베르크, 4호가 바로 클래시 특집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조: (깜짝 놀라며) "그래요? 핑크 플로이드, 제너시스 다음에 저희를 다룬다고요? 그것도 60페이지나요? 모든 앨범을?"
기자: "예, 그렇지요. 사실 지금 취재도 그렇게 해서 온 것이거든요. 사실 저희는 작년 7월경에 이 특집들의 순서를 정해 놓았는데, 거짓말 같이 클래시와 당신이 저희 특집 직전에 10년만에 신보를 내놓아 무척 놀라면서도 기뻤습니다."
조: "정말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기자: "아뇨, 오히려 저희가 ... 그리고 ... 그래서 부탁드리는데요, 괜찮으시다면 여기 당신의 앨범 커버에 우리 <뮤지컬 박스> 독자들에게 보내는 간단한 인사말과 사인 같은 것을 좀 써주실 수 없을까요?"
조: (아주 친절하게) "그러죠 ... (인사말을 쓰면서) 잡지 이름이 <뮤지컬 박스>이죠? 한국, 아니 남한이죠? 아니, 북한인가? 서울이예요? 서울은 대한민국이죠?"
기자: (웃으며) "서울은 대한민국입니다."
조: (미안해하며 조심스럽게) "한국에서도 클래시를 잘 아나요? 전 한 번도 못 가봐서 ..."
기자: "아는 정도가 아니죠! 한국 언더 그라운드 신에서는 아마 거의 매일 한 번씩 당신들의 'I Fought The Law'나 'London Calling'같은 곡들이 연주될걸요. 클래시는 록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거의 전설이예요"
조: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아, 그래요? 정말 기분 좋은 얘기네요. 언제 한국에 한 번 가보았으면 좋겠네요."
기자: "저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기자가 돌려받은 커버 위에는 'To Musical Box, All People Unite!!! Rock On In S. Korea, Hullo From Joe Strummer'라고 써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망설이며) 그리고 또 ... 선생님의 스냅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을까요?"
조: "그래야죠." (친절하게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해주며, 심지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같이도 한 장 찍어요."
기자: (웃으며) "아니, 전 안 찍어도 되는데..."
조: "그래도 찍어서 책하고 보내줘요. 보낼 때 나온 책 1, 2, 3, 4호를 다 보내줄 수 있어요? 보고 싶은데, 한국말이겠지만 그림만이라도 보게요."
기자: "그럼요. 나오는 대로 다 한 권씩 보내드릴께요. 런던의 머큐리 레코드 본사로 보내면 되겠죠? 주소는 인터넷에서 저희가 찾아보지요."
조: "아, 그렇게 하면 되죠. 꼭 보내줘야 되요. 그리고 한국 팬들한테 제 안부 인사를 꼭 전해주세요. 고맙다고요."
기자: "물론 그래야죠.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다음에 책을 보내드릴 때 '서면 인터뷰'를 보내면 답장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오늘은 정신이 없어서 미처 준비를 못 했어요."
조: "좋아요. 인터뷰도 보내주세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고마워요."
기자: "제가 드릴 말씀이네요. 그럼 또 다른 분들과도 말씀 나누세요. 감사합니다."
조: "또 봐요."

우리 뒤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혹은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있었다. 당신과 나는 그러고도 한참을 그 방에 앉아 다른 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당신과 나는 그가 클래시의 음악을 여러 곡 연주했던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뮤지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 그것도 '시대에 적실한 음악'이다. 오늘 그가 연주했던 자신의 솔로 앨범에 담긴 음악은 아마도 사람들을 그리 감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콘서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지만 앤소니 겐과의 공동 작업도 나의 눈에는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그럼에도 이 곳 유럽에서의 비평가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박준흠의 말대로 '동세대적'이어서 그랬을까). 역시 그의 본령은 - 테크노나 일렉트로닉 음악과의 접합보다는 - 역시 솔로 1집이나 포지스(The Pogues)와의 공동 작업처럼 록과 포크, 혹은 레게가 어우러진, 보다 '소박한' 음악적 지향 위에 놓여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와 당신의, 그리고 우리가 방안에서 함께 얘기를 나눈 다른 팬들의 표정에는 행복의 표정이 어려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의 음악, 그의 성의, 그리고 그의 진실됨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구원했던 것이다. 내가 읽은 클래시 멤버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와 클래시는 "자신들의 판을 사고, 자신들을 콘서트를 보러 와주며,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팬들, 실상 아티스트 자신도 그들 중 하나였던 그 대중들로부터 멀어져, 돈밖에 모르고, 대중들과 담을 쌓는 스타디엄 뮤지션들에 반대하는 펑크 록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고 싶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공연 후 팬들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 그들의 로디였던 조니 그린의 책 <A Riot Of Our Own>(99)에 따르면, 그들의 보디가드들에게 전달되는 제1원칙은 '공연 후 멤버들이 샤워와 목욕을 한 후에, 팬들이 대기실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로 막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룹이 해산한 85년, 장장 14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까지도 자신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진실된 것임은 우리가 그와 나눈 대화, 그가 우리에게 보낸 눈빛 하나 하나에서 너무도 잘 드러나고 있었다. 그에게 왜 그런 일들을 이제는 그만두고 싶은 피곤하고 귀찮은 날이 없었겠는가? 더구나 그처럼 유명하고 뛰어난 뮤지션이 말이다. 당신과 나는 오늘 지상 최고의 뛰어난 명연을 들었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더욱 소중한 것을 얻었다. 당신과 나는 너무도 '좋은 사람' 하나를 만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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