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23일 (토) 13:36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1 개요[ | ]

Du contrat social
사회계약론

 

2 일본에서의 수용[ | ]

  • 주로 메이지시기 일본에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번역한 서명. 나카에 조민에 의한 『민약론』(1874)과 『민약역해(民約訳解)』(1882)가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핫토리 도쿠(服部徳)의『민약론』(1878), 하라다 센(原田潜)의『민약론복의(民約論覆義)』(1883) 등이 있다.

3 #자일리톨[ | ]

이처럼 얇은 책을 이처럼 오랜 시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은 몇년전에 정치학과 전공선택 수업에 꼽싸리 끼어 들었던 정치사상사 과목의 발표용으로 읽었던 책이다. 독일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된 강사가 맡은 수업이라서, 수업은 처음의 2시간을 빼놓고는 학생들이 '마키아벨리부터 헤겔'까지의 원전 중 하나를 선택하여 충실히 읽어오고 그것에 대해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고 발표내용을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학을 4년간 다녀오면서 발표수업은 많았지만, 이처럼 원전에 대해 독해를 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수업은 처음이었고, 학생들의 자발적인 호응 속에서 서로 얻은 것도 많았던 알찬 수업으로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후기산업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에서도 원전을 읽는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더욱이 일목요연하게 편집된 여러 개론서들, 특히나 ‘한권으로 읽는...’등의 부제가 붙은 얄궂은 개론서 한권을 읽고, 그 책에 수록되어 있는 많은 사상가들의 사상을 다 이해했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지금 세상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상서들의 저자들은 그들이 발을 딛고 있었던 세계의 문제점을 무엇이라고 보았으며, 그 문제들을 어떻게 체계화시켰는지, 그리고 대응책은 무엇이었는지를 철저하게 뒤쫓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고전을 직접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루쏘를 중고등학교 때 배운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사상가로서만 단편적이고도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사회계약론자로서 분류되는 홉스와 로크, 몽테스키외, 루쏘의 주장 사이에 거의 공통점이 없음을 알고는 정말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은 사회계약론에 대한 짧은 서평이다.

루소는 15년간 의 출간을 기획하였으나, 그가 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구성되게끔 만드는 근원적인 사회계약에 관하여 글을 남기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이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15년간의 그의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사회계약' 이외에 루소가 생각한 올바른 정치와 공동체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정치사상사의 영역에서 홉스, 로크, 몽테스키외 등의 사상가들과 함께 '사회계약론자'로 분류된다. 즉, 그들은 인간들이 근원적인 사회계약을 통해 정치공동체를 구성했다고 주장한 점에 있어서는 동질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을 고찰해 보면 그 이외의 공통점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에 큰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홉스는 절대군주정을, 로크는 부르주아 대의제 민주주의를, 루소는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하였으며, 인간의 (정치적)원시상태, 사회계약의 필요성 등에 있어서 그들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들의 이러한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루소의 저작을 읽는다면 더욱 더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루소의 저작에서 우리(특히 남한에서)에게 가장 유명한 말은 '영국 국민들은 그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정작 그들은 투표가 끝난 후 쇠사슬에 묶인 노예의 처지가 된다.'는 말이다. 이 말처럼 그는 직접민주주의를 갈구한다. 대의제민주주의에 안주하며, 정치적 무관심에 길들여져 가는 인간들의 나태와 무관심을 질타한다. 이것이 비단 루소 당시의 사람들만 해당되는 말일까? 건전한 정치적 관심과 직접적인 참여만이 민주주의의 생명이라는 루소의 주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루소의 을 읽다보면, 그가 어쩔 수 없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 또한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그의 전체주의적인 성향이나 국민을 완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계몽의 대상, 새로운 인간형으로 거듭나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는 루소의 모순적인 사고방식... 과연 그 시대의 특징이라거나 갖은 정치적 핍박을 받아야 했던 루소의 비극적인 인생의 특징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분명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현대의 독자들이 읽기에는 그리 흥미로운 저작은 분명 아니다. 현대의 인문사회과학도서만큼 각 장에서 각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된 결론을 제시하지도 않을 뿐더러 했던 이야기를 중언부언하기도 하고, 잘못된 자연과학적 예시나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고대의 사례를 나열하는 등 그의 [사회계약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몰려오는 잠을 내쫓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제외한다면, 이 책을 어렵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물론 무엇이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며 또 독자적으로 사색하려는 독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자본론 서문을 parody ^^;>

4 같이 보기[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