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오리 노리나가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17일 (목) 19:05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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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Motoori Norinaga (1730- 1801)
本居 宣長(もとおり のりなが)
모토오리 노리나가
  • 일본 에도 시대의 국학자, 문헌학자, 의사
  • 4대 국학자[1] 중 하나로 손꼽힌다.
  •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에도 중기 국학자이다.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문하에서 고도(古道)연구를 하였으며, 30여 년에 걸쳐 『고사기전(古事記傳)』을 완성하였다. 유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고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 가라고코로漢意는 중국의 서적을 읽어 중국풍에 심취하여 감화된 마음을 가리킨다. 노리나가는 이를 외래 사상 특히 유학 사상에 물든 것이라 비판하면서 그에 대비되는 참된 마음을 `마고코로(眞心)' 또는 `야마토고코로(大和心)'라 하였다. 고대 일본인들의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을 뜻하며 노리나가는 이를 이상적인 인간의 마음이라 여겼다.
  • 『다마쿠시게玉くしげ』는 한자로는 옥즐사(玉櫛笥)로 표기한다. 일반적인 뜻은 빗과 화장 도구를 넣는 빗접이다. 여기서는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1787년 저술한 『비본(祕本) 다마쿠시게』를 가리키는데, 와카야마의 번주 도쿠가와 하루사다(德川治貞)의 자문에 따라 고도(古道)의 대의를 논하였다. 서명에 한자와 히라가나가 혼용되어 있고, 서명을 해석해서 표기하여도 쉽게 이해되지 않으므로 일본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였다.
  • 에도 시대의 국학자, 문헌학자, 언어학자, 의사. 일본 4대 국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23세에 의학수업을 위해 교토에 상경해, 의학과 한학을 배우면서 오규 소라이, 게이추의 학문에도 접한다. 이를 계기로 고전연구에 눈을 떠, 『겐지 모노가타리』를 비롯한 일본 고전을 강의하고, 『고사기』를 연구하여 35년에 걸쳐 주석서 『고사기전』 44권을 집필하였다. `シラス'와 `ウシハク'에 관해서는 『고사기전』 3권에서 다뤘다.

Motoori Norinaga self portrait.jpg

2 저술[ | ]

  • 1751 『都考抜書』 교토 관련 문헌 자료집
  • 1757 『排蘆小船(あしわけおぶね)』 : 와카 평론집
  • 1763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 『紫文要領』 : 지만지 출간
  • 1763 이소노카미 사사메고토 『石上私淑言』 : 모노노아와레 수록
  • 1764 나오비노미타마 『直毘霊』 : 국체원형 수록
  • 1771 『詞の玉緒(ことばのたまのお)』 : 어학연구서
  • 1771 『てにをは紐鏡(てにをはひもかがみ)』 : 와카 연구
  • 1778 『馭戒慨言(ぎょじゅうがいげん)』 : 외교사
  • 1780 『くず花』 : 수필
  • 1787 다마쿠시게 『玉くしげ』  : 국체원형 수록
  • 1787 비본 다마쿠시게 『秘本玉くしげ(ひほんたまくしげ)』  : 국체원형 수록
  • 1795 『玉勝間』  : 수필
  • 1798 고사기전 『古事記伝』 (1764~)
  • 1798 우히야마부미 『うひ山ぶみ』  : 국체원형 수록
  • 1798 『鈴屋集』 : 와카집
  • 1799 겐지 이야기 다마노오구시 『源氏物語玉の小櫛』 : 모노노아와레 수록
한국어판
  • 일본 국체 내셔널리즘의 원형 -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국학 (국학 선집)
  • 모노노아와레 - 일본적 미학 이론의 탄생 (문학 선집)
  •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
연구서
  • 야마구찌 가즈오 / 일본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사생관

3 같이 보기[ | ]

4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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