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쇼펜하우어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16일 (수) 00:14 판 (새 문서: == 개요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 독일의 철학자. 괴팅겐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819년에 주저...)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1 개요[ |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 독일의 철학자. 괴팅겐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819년에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하여 이듬해 베를린대학의 전임강사가 되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책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되며, 그의 철학은 근대유럽의 합리주의적 기술문명에 바탕이 되었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피히테, 셸링, 헤겔 등의 관념론적 철학자를 공격하였으나, 그 근본적 사상이나 체계의 구성은 같은 `독일 관념론'에 속한다. 그는 칸트와 같이 인간의 인식 대상으로서 눈앞에 전개되는 세계는 시간 · 공간 · 범주(category), 특히 인과율(因果律)이라는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의 형식으로 구성된 표상일 뿐,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표상으로서의 세계 존재는 주관에 의존하므로, 세계의 내적 본질은 `의지'이며, 세계의 원인으로서의 의지를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로 주장한다. 그는 무신론자임을 표명하였으며, 19세기 말에 유행하여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한편 그의 사상은 인도 베단타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쇼펜하우어는 1820년대에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 힌두교와 불교를 접하고, 이 종교들의 핵심 교리 속에 자신과 칸트가 도달한 결론과 같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서양에서 최초로 동양 철학의 세련된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2 참고[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