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단 진화 이론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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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간단 진화 이론 설명서 (1)
  • 저자: Jjw
  • 2014-10-09

생물학에서 진화는 생물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진화 이론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과학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진화 이론을 공격하는 진영의 대표는 아무래도 기독교 근본주의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성경이 문자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사실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가 어찌 믿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과학을 공격하더라도 대게의 경우엔 그냥 여러분끼리 그렇게 '믿는' 거야 우리가 뭘 어쩌겠어요 하고 넘어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미 과학적으로 거짓으로 판명났거나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부득부득 과학이라 우기는 경우도 있다. 종교의 가장 큰 적은 무신론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이듯이 과학의 가장 큰 적은 사이비 과학 또는 과학적 사기이다.

뗏목지기님이 링크를 건 덕분에 알게된 글 하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정확치 않은 유전학적 지식(사실 유전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듯 하다), 진화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거짓으로 판명난 유사 과학에 대한 옹호로 가득차 있다. 우선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 1. 획득형질은 유전된다.
  • 2.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 3. 획득형질의 유전은 어떠한 '의지'가 진화에 개입될 여지를 남긴다. (이 글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이상의 사항을 증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 1. 플레밍 젠킨의 사고 실험 - 어떤 백인이 흑인들만 사는 섬에 난파되었다. 그 백인은 흑인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해서 그곳의 왕이 되었다. (다윈의 주장은 우월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하였으니 그 주장대로라면 세대가 흘러 이 섬은 모두 백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백인이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흑인 뿐이고 결국 1세대는 50%의 백인 2세대는 25%의 백인.. 이렇게 하여 몇 세대가 지나면 도로 모두 흑인이 될것이다. 그러니 다윈이 틀렸다.
  • 2. 진화이론은 중간단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라고 말하지만 그 근거는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 3. 윌리엄 베이트슨이 진화 이론에 도입한 멘델의 유전법칙은 진화이론의 목숨은 연장시켜 주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이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역시 제시 되지 않고 있다.)
  • 4. 파울 캄머러의 산파두꺼비 실험은 과학적 사기로 판명되어 매장되었으나 최근 재평가를 받았으며(재평가의 근거라고 제시되는 논문은 그렇게 볼 수만은 없지만 여기선 넘어간다) 획득형질 역시 유전될 수 있다.

사실 생물학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나 같은 덕후는 좀 외롭기 마련인데... 이 건 참 어디서부터 까야 될 지 난감한 수준이다. 이 주장을 비판하려면 최소한의 생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진화이론과 관련된 생물학적 지식을 몇 가지 살펴보고 결론에서 저 주장을 비판하기로 한다.

초간단 기초 생물학(이라고 하지만 좀 길다...)

2 유전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공교육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누구나 DNA가 유전물질임을 안다. 하지만 실제 유전이 일어나는 과정은 그리 자세히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간단하나마 유성생식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전달과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잠시 생물 시간에 배웠던 것을 상기해 보자.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단수분열을 통해 생식세포를 만들고 이 생식세포는 배우자의 생식세포와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로 발달한다. 통상적으로 생물을 이루는 생물을 체세포라고 하고 이들 체세포는 각각의 세포마다 모두 동일한 염색체 세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경우 염색체의 수는 23쌍이다. 이렇게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체세포의 유전자 량을 보통 2n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단수분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생식세포는 체세포가 갖는 유전자량의 절반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보통 n이라고 표기한다. 인간의 경우 남성의 정자에 들어있는 23개의 염색체와 여성의 난자에 들어있는 23개의 염색체가 결합하여 새로운 23쌍의 염색체를 갖는 수정란이 생긴다. 이때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량은 n, 이 둘이 결합한 수정란의 유전자량은 당연히 2n이 된다. 그런데 실제 유전 과정이 이렇게 간단할까? 천만에!

우선 생식세포가 만들어질 때에는 유전자 재조합( https://ko.wikipedia.org/wiki/유전자_재조합 )이 일어난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유전자를 뒤죽박죽 섞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의 산물인데 이렇게 뒤죽박죽 유전자를 섞는 쪽으로 진화한 녀석들이 적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가 겪게될 환경 변화가 어떠한 것이든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후손을 남겨 놓으면 그 중에는 환경 변화가 심하더라도 살아남는 녀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초간단 진화 이론 설명서 (1)-1.jpg

이렇게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난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진핵세포생물의 경우 세포안에는 미토콘드리아라고 불리는 세포소기관이 존재한다. 이것은 세포가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세포소기관인데 세포핵과는 독립적인 별도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자와 난자에 모두 미토콘드리아가 있지만 수정란이 되어 남는 것은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뿐이다. 수정란이 된 후 분열이 일어나기 전에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소멸된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DNA는 철저히 모계로만 유전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고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고 외할머니는 또 외할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고... 그렇게 하여 현생인류의 최초 공통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중에 돌연변이를 설명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DNA는 매우 안정적으로 똑같은 DNA를 복재해 내지만 대략 100만번에 한 번 꼴로 실수를 한다. 따라서 두 집단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차이를 조사하면 대충 언제쯤 서로 떨어지게 되었는지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유전자인류학자들을 먹여살려주는 기초 요소이다. 최초의 인류 공통조상의 어머니를 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이브 ( https://ko.wikipedia.org/wiki/미토콘드리아_이브 )라고 부른다. 현생인류의 분화정도를 미토콘드리아 DNA를 살펴보면 인류는 대충 아프리카에서 발원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일부 종교가 주장하듯 유대인이 후손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를 넘어간 용감한 선조들이 시조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인류_미토콘드리아_DNA_하플로그룹 )

미토콘드리아 DNA 외에도 모계유전을 하는 경우는 많다. X형 샤르코 마리 투스 질환 ( https://ko.wikipedia.org/wiki/샤르코_마리_투스_질환 )과 같은 성염색체 위에 존재하는 돌연변이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모 재벌 가문이 이 병의 유전인가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여기선 주제와 관계없으니 패쓰. 남성의 경우 Y염색체를 통째로 아버지에게 물려받기 때문에(이 경우에도 유전자 재조합은 당연히 한다.) 부계유전이 일어난다.

멘델은 몇 세대를 계속해서 흰 꽃만 피우던 녀석(이런 걸 순종이라고 한다)과 몇 세대를 계속해서 보라색 꽃을 피우던 녀석을 교배시키면 그 후세(이걸 잡종이라고 한다)는 무조건 보라색 꽃이 나오더라는 걸 발견하였다. 이렇게 잡종에서 우세를 보이는 유전형질을 우성이라고 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열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잡종 1세대 끼리 다시 교배를 시켰더니 보라색 꽃을 피우는 녀석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개중에는 흰 꽃을 피우는 녀석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잡종 2세대에서는 다시 열성 인자가 등장한 것이다. 멘델은 하나의 유전형질 자리(이 경우엔 꽃의 색)를 놓고 다투는 우성과 열성의 유전인자가 있다는 것과 이들을 결합할 때 이 유전인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지만 발현되지 않을 뿐이란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을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초간단 진화 이론 설명서 (1)-2.jpg

사실 멘델의 경우엔 비록 삶은 많이 꼬였지만 실험만큼은 억세게 운이 좋았는데 그가 관찰한 유전인자가 모두 독립적인 염색체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깔끔한 결과를 가져왔다. 만일 완두콩 껍질을 쭈글쭈글하게 만드는 유전인자와 흰꽃을 피우게 하는 유전인자가 하나의 염색체에 있었다면 그가 원하는 실험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 생물학은 훨신 더 복잡하고 다양한 유전형질의 발현을 다룬다. 어쨌든 이글에서 필요한 것은 여기까지니 "나머지 자세한 과정은 생략한다."

여기까지를 정리해보자. 유전은 유전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복잡하며 다양한 경로가 있다. 유성생식의 대표적인 단수분열 과정에서도 유전자 재조합을 반드시 거치며 따라서 한 개체가 갖는 유전자조합은 매우 다양한 변이를 거치며 후손에게 전달된다. (이게 형제라도 서로 얼굴이 다른 이유다.) 어떤 유전자는 몇 가지 이유로 모계 유전을 하거나 부계 유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간단히, 생물은 보다 다양한 후손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3 돌연변이 - 진화의 기원

앞서 유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서 생물은 다양한 후손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는 진화의 기본적인 동력인 돌연변이를 살펴보려고 한다. 돌연변이는 DNA의 복제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여 후손의 유전형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DNA의 복제는 복잡한 생화학 반응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가끔, 그러니까 대충 100만번에 한 번 꼴로 실수가 일어난다. 이 정도는 매우 적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번 일어난 변경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후손들은 모두 변경된 DNA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DNA가 변형되니까 시간이 오래 지나면 결국 DNA의 변형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이것으로 끝인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우선 생물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서식처에 훌륭하게 적응하여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돌연변이는 이러한 적응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오히려 불리하고 몇 대가 지나지 않아 소멸되기 마련이다. 한편, 한 개체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DNA는 무수히 반복하여 복제된다. 이 과정에서도 실수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복잡한 구조의 생물들은 대부분 DNA 복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 지 검사하는 별도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데이터 복사에서 패킷 단위로 원본과 사본을 비교하고 다음으로 진행되듯이 DNA 복제도 일정 단위로 이상유무를 검토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 평생 수십억번의 복제를 거치면서도 그닥 걱정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각종 질환이 발생한다. 암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참고로 유전등에 의한 희귀난치성질환의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helpline.nih.go.kr/cdchelp/disease.gst?method=listView )


잠깐 용어 설명

여기서 잠깐 멈추고 용어 설명을 해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글에서 DNA, 유전자, 유전형질, 염색체 등을 아무 설명없이 사용해왔다. 유전학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어서 이 참에 잠깐 정리를 하고 지나간다. 먼저 아래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하나의 염색체를 이루는 DNA를 보여주고 있다. DNA, 즉 디옥시리보스핵산은 디옥시리보스라고 불리는 단당류 분자 한켠에 네 종류의 염기가 매달려 긴 사슬을 이룬 것이다. 네 종류의 염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이다.

차근 차근 풀어보자. 디옥시리보스는 5탄당이다. 하나의 디옥시리보스 분자에 탄소원자가 5개 있다는 소리다. 분자구조는 아래의 그림과 같다.

 

이렇게 생긴 단당류의 분자 한쪽에 염기가 달라붙고 다른 한 쪽엔 인산이 달라붙는다. 인산은 세개까지 연달아 달라붙을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아데노이신삼인산이다. 잘 보면 디옥시리보스의 한쪽에 뭔가 커다란 덩어리가 달리고 다른 한 쪽에 인산이 쪼르르 세개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약자로 ATP라고 불리는 이녀석은 세포 속에서 일종의 건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뒤에 달려 있는 인산은 쉽게 분해되는 데 이게 분해되면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세포가 하는 온갖일은 모두 APT가 제공하는 에너지에 의존한다.

다시 디옥시리보스 구조를 보면 오각형의 고리 모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고리 가운데 한 쪽이 풀려서 다른 디옥시리보스 구조들과 쭉 연결되면... 그렇다 기다란 사슬이 만들어진다. 이 사슬 한 쌍이 서로 마주 보고 염기가 사다리처럼 연결된 것이 DNA이다. 염기들은 수소결합을 이용하여 아래의 그림처럼 사다리를 만든다.

 

이 사다리가 꽈배기처럼 꼬이기 때문에 결국 이중나선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꼬인 이중나선은 매우 길게, 그러니까 염색체 하나에서 끊김없이 이어져 있다.평소에는 사슬처럼 풀어져 있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세포 분열을 하려면 아무래도 정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DNA사슬을 뭉쳐 놓을 필요가 생기는데, 진짜 실패처럼 생긴 단백질이 DNA 실을 감는다. DNA가 무척 길기 때문에 실패도 많이 필요하다. 이렇게 아주 많은 실패에 감긴 DNA 덩어리... 이게 염색체이다.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인간의 염색체는 모두 23쌍으로 어느 세포나 똑같이 그러니까 그게 피부 세포건 간 세포건 모두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그게 어떻게 어떤 것은 피부가 되고 어떤 것은 간이 되는 지는 나중에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기나긴 DNA 사다리는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 맨앞의 그림을 다시 보면 하나의 유전자는 DNA의 일정 구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유전자 역시 엑손이라는 구간과 인트로라는 구간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엑손은 처음과 끝을 나타내는 지시자 역할을 하고 인트로는 실제 단백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정보가 담긴 구간이다. 사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일과 단백질을 만들 정보를 제공하는 일 딱 두가지이다. DNA가 유전자를 품고 있는 방식은 마치 하드디스크가 파일을 저장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한참 정보를 읽고 있던 CPU가 EOF를 만나면 아 파일 끝났구나 하고 판단하듯이 한참 정보를 복제하던 효소는 엑손을 만나면 손털고 DNA의 지퍼를 잠근다. (뭔가 어려운 걸 설명하기 위해 어려운 예를 들었다는 느낌이지만 넘어가자.)

여기까지 초간단 정리하면; DNA는 4종류의 염기가 매달린 기나긴 탄소 사슬이다. 이 염기가 적당한 길이로 나뉘어 유전자를 이룬다. 유전자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엑손 구간과 정보를 담은 인트로 구간으로 나뉜다. 따라서 하나의 DNA 사슬은 여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한 세포엔 DNA 사슬이 여러개가 있고 필요하다면 뭉쳐놓을 수 있는데 이게 염색체이다.

유전형질은 유전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전적 특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유전형질의 발현에는 많은 유전자가 여러 단계에 걸쳐 개입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유전형질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마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수 많은 공정을 거치고 그 공정마다 필요한 자재와 작업절차가 있듯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피부색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유전형질도 여러 유전자의 공조에 의한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DNA 안에 있는 유전자들이 수 없이 복제되다 보면 원본과 다른 '실수'가 생긴다. 이게 돌연변이다. 돌연변이의 발생은 순전히 확률에 의한 것이고 어디에 어떻게 생길 지 알 수도 없다. 치명적인 실수는 개체가 발생하는 도중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마련이기 때문에 대부분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그 중에는 간혹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거나,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도 생겨난다. 이게 나치독일뿐만아니라 한때 서구를 풍미했던 우생학에 의한 인간 개조가 성공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아무리 우월한 유전자만 모아서 완벽한 후대를 만들어봐야 소용없다. 돌연변이는 또 생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하드디스크의 EOF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실수가 발생했지만 멀쩡히 살아남았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영장류의 염색체는 24쌍인데 유독 인간만 23쌍이다. 한 때 이 것은 진화를 부정하는 증거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다 면밀한 조사 결과 인간의 2번 염색체가 사실은 두 개의 염색체가 붙어버린 녀석이란 걸 발견했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염색체도 처음 시작 부분과 가운데 부분의 구조가 다르다. 그런데 인간의 2번 염색체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끝에 있어야 할 녀석이 가운데 하나 더 있다. 가능한 설명은 하나뿐. 두 염색체가 붙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이 외에도 생물학적으로 볼 때 생존에 매우 불리한 돌연변이를 겪었는데 몸의 대부분에서 털은 그저 장식품이라거나, 훌륭한 도구이자 무기인 송곳니 역시 장식품 수준이되었다거나... 그럼에도 잘만 살아남아서 지구를 매우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유전자의 변이가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이란 것이다. 털없는 생물이 빙하기의 겨울을 견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은 불을 피우는 재주로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였다.

한편, 돌연변이 자체가 생존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정상적인 생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생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항체가 형성되서 다음 번에 똑같은 녀석이 들어오면 한방에 진압해버린다. 그런데 인플루엔자는 빠른 돌연변이 때문에 계속 모양이 바뀌고, 면역체계는 매번 새로운 녀석들과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다.

또하나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DNA 사슬의 많은 부분이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슈도진(pseudogene)이라는 것이다. 이 구간은 마치 쓰고 지우기를 하도 많이해서 복구가 불가능한 하드디스크 같은 상태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개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돌연변이는 그저 확률적으로 일어나며 어떠한 의지를 갖는다거나 계획이 존재한다거나 할 수 없다. 그게 생물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은 사후 결과로서만 나타난다. 밑에 두 사진은 같은 종류의 나방이다. 밝은 색과 검은 색은 그저 완두콩의 꽃 색처럼 어쩌다 엊게된 돌연변이일 뿐이다. 그러나 공업화가 진행된 19세기 런던 교외에서 밝은 색의 나방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는데 매연이 뒤덮인 건물과 나무 위에 앉은 밝은 색 나방은 '저 여기있어요'하고 네온사인을 켜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고 새들은 이 맛있는 광고판을 가만두지 않았다.

 

 

진화 이론을 비판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것 중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탄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 물론이다. 진화는 스스로를 설계하는 아주 정교한 유전자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고철 야적장에 태풍이 몰아친다고 보잉747이 저절로 조립될리는 만무하다. 이 경우엔 다윈의 설명을 들어볼만 하다. 지금 개들은 하운트니 테리어니 하는 아주 다양한 품종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의 종으로서 서로 교배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질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도태시킴으로써 품종을 개량(이게 개량인지는 의문이 있지만... )해왔다. 이러한 "인위적 선택"의 기준은 물론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것이다. 자연은 자체로서 어떤 원하는 것이 없을 지 몰라도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사막의 식물에게 네가 일년에 1리터의 물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능한 녀석은 후손을 남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매 세대는 계속해서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다양한 후손을 남기겠지만 선택의 기준이 엄격한 이상 계속해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방법도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조상이 아주 다른 경우라도 이러한 조건에서라면 살아남은 것들은 생김새마저 비슷해져 버릴 수 밖에 없다. ( https://ko.wikipedia.org/wiki/수렴_진화 를 참조할 것)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뒤에 플레밍 젠킨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은 매우 다른 개념이다. 플레밍 젠킨은 이를 혼동하여 다른 모든 개체에 비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한 개체와 같은 존재할 수 없는 가정을 정당화한다. 사회진화론은 진화이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번 글의 초간단 요약: 모든 생물은 돌연변이를 피할 수 없다.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형질 변화는 발생된 이후에 시험대에 오른다.

4 같이 보기

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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