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8월 16일 (일) 21:06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야기의 널널한 진행을 위해 민가라는 것이 확고한 실체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어정쩡한 경계를 갖는 나름의 대상으로 규정할 수는 있으리라 가정한다. 그리고 추후의 발뺌을 위해, 이 글은 방외자의 관점에서 비겁하게 바라본 일종의 후일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일찌감치 빼고 들어 가기로 한다.

내 기억이 닿는 한, 내가 처음 들어본 민가는 중학교 때 울트라 메가 수퍼 하이퍼 파워 히트를 기록한 노찾사의 노래들이었고 이들이 4장의 정규 음반을 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돌이켜 보건데, 이들의 노래가 얼마나 신선하게 대중에게 다가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산울림 1집이 당대 가요 씬에 던진 파문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라 하겠다. 그리고, 산울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찾사 역시, 이들 이외의 그 어떤 노래패도 (당대는 물론이고 "그 후로 오랫동안") 이들만한 음악성과 대중적 인지도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은 가요씬에서나 민가씬에서나 여러모로 예외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머리에 남아있는 민가 = 노찾사 라는 등식은 왜일까. 그 주된 이유로 노찾사를 거쳐간 가수들의 화려한 면면을 지적하는 것은, 많은 후일담 류의 소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넌센스라 하겠다. 차라리 노찾사의 면면이 너무도 화려했기에 그 후로도 노찾사를 거쳐간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다. 물론, 대다수의 노찾사 출신 가수들은 그들이 노찾사 출신이라는 레떼르를 달고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다른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그들의 초기 팬 층을 구성하는 대다수가 노찾사의 팬들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김광석마저도 초기에는 노찾사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소개되었다.) 아무튼, 구성원의 화려함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노찾사를 準 일반 명사로 끌어 올린 주된 이유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노찾사와 산울림 :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What is to be sung? 일상 혹은 삶에 대한 질문과 답 ; 진지함과 유쾌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각자의 씬에서 매우 비슷한 의미를 갖는 밴드라 생각됨.)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당시만 해도 대학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속하지 않았다-에게 노찾사의 노래는 신선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선명한 당시의 기억 가운데 하나는 가사의 음미 없이 흥겨워 따라 부르는 사계의 리듬과 멜로디. 사실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가사는 부차적. 이 점에서 민가는 판소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 노래라는 매체의 보편성과 건강한 삶을 담은 메세지.

  • 독보적이자 고립적인 존재인 노찾사와 언더 컬트로 존재하는 민가씬
  • 응집된 창작욕구의 분출과 시대 상황 : "음악성"이란? 혹은 음악적 완성도란?
  • 인자들의 자기 정체성 "고수" 노력과 "삶을 노래하는 노래 / 진실한 삶의 노래"라는 모토 형성
"반쪽 노래"라는 인식 : "대중 가요를 비롯한 기존의 노래 문화가 민중들의 진실된 삶의 과정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채 몽환적이고 허구적인 현실의 껍데기만 폭력적으로 제시함으로하여 현실을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 (노래1, 김창남 등, 실천문학사)
  • 삶을 바라보는 치열함 - 완고함 : 삶의 주변부 vs. 삶의 중심 - 나

나팔꽃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