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신론 (한국어판)

Jmnote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3월 9일 (화) 22:23 판 (→‎책속 한구절)

1 개요

백일신론 한국어판
백일신론 – 법과 도덕에 관하여
1판 1쇄 발행 2020년 9월 29일
저자 니시 아마네 역자 허지향 발행인 정철
편집 정철 표지 디자인 김상만 출판사 빈서재
이메일 pinkcrimson@gmail.com
ISBN 979-11-971296-1-2

256페이지. 28000원.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일본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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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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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

제 1 장 『백일신론』상권 . . . . . . . . . . . . . . . . . . 11
1.1 서문 . . . . . . . . . . (남마 츠나노리) . . . 11
1.2 백교일치 . . . . . . . . . . . . . . . . . . . . 13
1.3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 . . . . . . . . . . . . 15
1.4 정과 교의 분리 . . . . . . . . . . . . . . . . . 18
1.5 공자와 육예 . . . . . . . . . . . . . . . . . . 22
1.6 공자의 가르침은 실리적이다 . . . . . . . . . 26
1.7 맹자의 시대 . . . . . . . . . . . . . . . . . . 29
1.8 예가 법이 되다 . . . . . . . . . . . . . . . . . 32
1.9 예와 법의 구분 . . . . . . . . . . . . . . . . . 35
1.10 소박하고 관후했던 삼대 시대 . . . . . . . . . 40
1.11 정형으로 다스렸던 춘추 시대 . . . . . . . . . 43
1.12 법과 법가에 대하여 . . . . . . . . . . . . . . 49

제 2 장 하권 . . . . . . . . . . . . . . . . . . . . . . . . . 53
2.1 법과 교 . . . . . . . . . . . . . . . . . . . . . 53
2.2 법은 올바르고 교는 선하다 . . . . . . . . . . 56
2.3 법과 교의 차이 . . . . . . . . . . . . . . . . . 59
2.4 교와 법의 경계선 . . . . . . . . . . . . . . . . 61
2.5 법으로 애벌빨래하고 교로써 다듬기 . . . . . 63
2.6 권權과 의義 . . . . . . . . . . . . . . . . . . . 65
2.7 권의와 자애 자립의 마음 . . . . . . . . . . . 66
2.8 교와 법은 구분해야 한다 . . . . . . . . . . . 67
2.9 두 개의 도리 . . . . . . . . . . . . . . . . . . 70
2.10 물리의 리 . . . . . . . . . . . . . . . . . . . . 72
2.11 심리의 리 . . . . . . . . . . . . . . . . . . . . 75
2.12 심리도 천리를 따른다 . . . . . . . . . . . . . 78
2.13 인간사에서 물리와 심리의 구별 . . . . . . . . 81
2.14 조화사라는 학문과 철학 . . . . . . . . . . . . 82

제 3 장 「백학연환」총론 . . . . . . . . . . . . . . . . . . 85
3.1 제1 총론 . . . . . . . . . . . . . . . . . . . . 85
3.2 제2 학술기예學術技藝 : 학 / 술 . . . . . . . . . 88
3.3 제2 학술기예 : 기계 / 시설 . . . . . . . . . . 98
3.4 제2 학술기예 : 치지 . . . . . . . . . . . . . . 103
3.5 제2 학술기예 : 진리 . . . . . . . . . . . . . . 109
3.6 제2 학술기예 : 단계 . . . . . . . . . . . . . . 115
3.7 제2 학술기예 : 방법 . . . . . . . . . . . . . . 119
3.8 제2 학술기예 : 연환 . . . . . . . . . . . . . . 122

제 4 장 병가덕행 . . . . . . . . . . . . . . . . . . . . . . . 125
4.1 1강 . . . . . . . . . . . . . . . . . . . . . . . 125
4.2 2강 . . . . . . . . . . . . . . . . . . . . . . . 131
4.3 3강 . . . . . . . . . . . . . . . . . . . . . . . 135
4.4 4강 . . . . . . . . . . . . . . . . . . . . . . . 139

제 5 장 니시 아마네의 생애와 저작 . . . . (허지향) . . . 143
5.1 출생과 성장 . . . . . . . . . . . . . . . . . . 143
5.2 첫 에도 : 난학과 양학, 막부 출사와 결혼 . . . 148
5.3 네덜란드 유학 . . . . . . . . . . . . . . . . . 153
5.4 도쿠가와 요시노부와의 동행 . . . . . . . . . 159
5.5 대정봉환이 정해지고 시즈오카로 . . . . . . . 164
5.6 오랜만에 귀향, 고향에서 쓴 글들 . . . . . . . 167
5.7 신정부 출사 . . . . . . . . . . . . . . . . . . 169
5.8 육군성과 야마가타 아리토모 . . . . . . . . . 172
5.9 동경학사회원 . . . . . . . . . . . . . . . . . . 177

제 6 장 『백일신론』외 해제 . . . . . . . . (허지향) . . . 181
6.1 『백일신론』의 시대적 의미 . . . . . . . . . . 181
6.2 「백학연환」의 전거典據 . . . . . . . . . . . . . 198
6.3 「병가덕행」의 낯선 말들 . . . . . . . . . . . . 218

제 7 장 연보와 저술목록 . . . . . . . . . . . . . . . . . . 233
7.1 연보 . . . . . . . . . . . . . . . . . . . . . . 233
7.2 니시 아마네 저술 목록 . . . . . . . . . . . . . 236
7.3 니시 아마네 연구 목록 . . . . . . . . . . . . . 239

참고 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45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49

4 출판사 책소개

[헤드카피]

현대 일본 시스템은 메이지 초기 유학파 공무원이 만들었다. 여전히 한문으로 글쓰는 게 편했던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공자, 유학의 언어와 칸트, 유럽 법철학의 언어가 충돌한다.

[간단 소개]

니시 아마네는 한국에서 주로 philosophy를 철학哲學으로 번역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 책 『백일신론』의 내용에 철학은 별로 없다. 굳이 찾자면 법철학과 정치철학이 담겨있다.

유학을 공부했고 네덜란드에서 서양을 배운 양학자가 왕정복고 혁명으로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지는 메이지 일본에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법이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고민하는 것이었고 니시는 논어, 맹자부터 다시 얘기한다. 『백일신론』은 법과 도덕이 다르지만 도달하려고 하는 곳은 하나라고, 사실 서구의 여러 학문(백가지 학문)이 있어도 모두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는 뜻을 가진 제목이다.

니시는 패배한 막부측 지식인이지만 이후 교육자와 행정가로 메이지 정부에서 일했다. 그는 서구를 일본에 이식하는 과정에 충실한 공무원이었다. 그때부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을 이끌어간 관료집단의 한 전형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니시 아마네를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발간하기로 했다.

5 책속 한구절

주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 가지 종합해서 생각해보니 백교(세상 여러 가르침)라는 것도 결국은 일치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문장

그 어떤 야만夷狄蠻貊의 나라라 할지라도 누가 나를 때리거나 내 물건을 뺏어가줘서 고맙고 기쁘다고 말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법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p77] 사람의 마음에도 공통 요소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이렇게 해서 심리를 밝히고 천도와 인도人道를 규명하여 교의 방법을 세우는 것을 히로소히(ヒロソヒー, philosophy), 번역해서 철학이라고 하여 서양에서도 예부터 논해져 왔습니다.– [p83] 철학이라는 번역어가 처음 사용되는 순간

그러나 아직까지 패유腐儒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산요 선생이 정말 진리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왜 쉬운 우리말로 적어도 되는 책을 헛되이 고생해가면서 한문으로 적었을까? 한문으로 적은 탓에 필자 스스로도 많은 고생을 했고 독자도 많은 노고를 들였다. 더군다나 한문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만약 우리말을 사용하면 만민에게 두루 널리 미쳐서 그 이익은 클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문장을 적을 때에 우리 문장和文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학자가 한문을 몰라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학자라면 반드시 한문도 습득해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지 문장을 적을 때에는 사람들이 알기 좋도록 함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p102] 일본외사를 한문으로 쓴 라이 산요를 비판하며

그런데 이 ‘기계장치’라는 것에는 위에서 말한 예들 외에도 또 하나의 기계장치가 있다. 바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계처럼 사용한다는 관점이다. 즉 한 명의 대장이 자신의 팔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천군만마를 지휘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이 메커니즘을 번역하면 ‘절제의 병사’라고 할 수 있다.– [p126] 현대 군대의 특성을 설명하며

6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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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혁명과 국가 성립은 별개였다

일본사를 읽다보면 메이지유신이라는 사건이 나온다. 개요는 간단하다. 권력을 막부가 가지고 있다가 천황에게 돌려줬다고 적혀있다. 이 요약은 틀리지 않았지만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도 없다. 권력을 막부가 정말 가졌던 것인지, 천황에게 돌려줬다는데 그전에는 그럼 천황에게 권력이 있었던 것인지, 돌려주긴 정말 돌려준 것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일단 사건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 메이지유신은 정치적 사건의 연속에 가깝다.

이와는 별개로 막부도 메이지 신정부도 서세동점의 시대에 맞춰 준비를 했다. 사절단과 유학생을 보내서 꾸준히 서양을 배워나간 것이다. 엄청난 연봉을 주어가며 서양인 자문단을 운영했다. 니시 아마네는 두번이나 사절단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세번째에 성공해서 1862년 네덜란드로 유학가게 되었다. 이것도 원래는 미국행이었는데 남북전쟁 통에 군함 구매처가 네덜란드로 바뀐 것이다. 니시에겐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는 서양을 알고싶었다.

  • 유학자의 정신으로 양학을 배우다

막부 말기에 태어난 지식인은 한문과 소로분(근대 이전의 문어체)으로 글을 썼다. 난학과 국학이 조금 더 융성했을 뿐 조선 후기 유학자의 지적 소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서양에 가서 그들의 법과 정치를 배웠다. 니시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는 니시가 남긴 노트의 양만 봐도 알 수 있다.

니시는 서구 문명을 한자 개념어로 번역할 뿐만 아니라 한자 개념어에 해당되는 서구 개념어가 무엇이 있는지 역으로 살펴보는 식으로 공부했다. 즉 일방적으로 지식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역방향으로도 번역해 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한자어 개념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니시는 철학 뿐 아니라 연역, 귀납과 같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번역어를 만들어냈고, 절제(mechanism)나 교문(religion)과 같은 설득력있는 번역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 국가 체제가 바뀌었다, 무엇이 필요한가

백일신론을 집필한 1874(메이지 6)년, 일본은 여전히 메이지유신이 진행중이었다. 신정부의 정책에 반발한 사족들의 불만이 쌓여갔으며 그 결과 3년 뒤에는 일본 최후의 내전인 세이난 전쟁이 터진다. 이 혼란의 와중에 용케 죽지않고 살아남은 지식인들이 모여 메이로쿠샤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니시는 그 모임의 중진 멤버였고 다수의 글을 발표했다. 그들은 국가에 무엇이 필요한지 연설했고 글을 썼으며 그것을 모아 학술지를 만들었다. 메이로쿠 잡지가 그것이다. 나라는 눈코뜰새없이 바뀌고 잊을만하면 서양물 먹은 지식인들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리던 때였는데 그들은 문명과 개화를 토론했다. (끝나고 서양 식당에 가서 양식을 먹었다. 아직도 우에노에서 영업중인 세이요켄이라는 곳이다.)

니시는 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법과 도덕, 종교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설명했다. 그 얘기를 듣던 친구 야마모토 가쿠마가 니시에게 글을 부탁했고 자비로 출간한 것이 백일신론이다. 야마모토 가쿠마는 수년전 혁명세력인 조슈번과 싸워 승리했던 사무라이였다. 이렇게 너나할것없이 뭔가를 배우려고 했던 시대였다.

니시는 법과 도덕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이지만, 즉 책 제목 백일신론처럼 백가지의 가르침이라도 하나로 통하는 것이지만, 법이 서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자유도 줄 수 없으니 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와 동시에 백가지 가르침에 대해 얘기하면서 서양 학문 체계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 학문 체계의 뒤에는 생각하는 방법이 담겨있고 그것을 서양인들이 philosophy라고 부르며 그것을 철학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다시말해 생각의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니시에게는 법과 도덕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과 학문의 체계를 파악하는 것이 다르지 않았다. 모두 생각의 방법론인 것이며 철학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 책에서 니시는 철학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철학이란게 있다던데 궁금하니까 이제 공부해보려고 한다 정도로 소개한다.

메이지 초기의 가장 큰 논쟁중 하나는 민선의원 설립과 헌법에 대한 것이었다. 서양은 만국공법이라는 법을 들이대면서 일본의 개항을 강요했다. 세상은 법이란 무엇인가 알고싶었고 니시 아마네는 그에 응했다.

이런 사람들이 준비를 했기 때문에 메이지 시기의 일본은 수십년간 뒤흔들리는 난리를 겪으면서도 나라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은 하나의 사건이 아닌 것이다. 메이로쿠 잡지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니시처럼 행동했다. 각자가 맡은 일은 그것대로 수행하면서 어떻게 서양을 배워 소개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 개인은 복잡한 존재다

니시 아마네의 직업은 크게 보면 두가지였다. 하나는 서양학을 가르친 교육자였고 또 하나는 병부성 관료였다. 다시말해 일본군 성립 시점에서 군 내부의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이었다. 병가덕행을 읽어보면 그가 군인의 본분에 대해서도 꽤나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메이로쿠 잡지에 실린 다른 글까지 읽어보면 만물박사같다는 느낌도 있다. 그는 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법가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군대 관련 일을 했다고 해서 크게 위화감은 없다. 하지만 그를 철학자로 막연하게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경력일 것이다.

니시 뿐 아니라 메이지 시기 지식인들은 거의 총동원되어 공무원화 되었다. 국가건설 총력전의 시기다. 근대 일본은 공무원이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후쿠자와 유키치가 모두 공무원을 하고있으면 누가 국가를 견제할 것이냐는 논쟁적인 글을 썼을까 싶다. 니시의 삶은 그런 공무원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한다. 그리고 니시 같은 사람이 다져놓은 군대가 이후 대만을, 조선을, 중국을 공격한다. 니시는 그저 직분에 충실했지만 이후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심지어 자유민권운동조차도 국가폭력과 구분된 것이 아니었다. 그 시대의 한계라는 것이 있다. 일본은 그 공무원들이 너무 유능해서 국가가 승할 수 있었고 그 위의 정치인들이 너무 무책임해서 국가가 패했던 역사를 가졌다. 이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어로 사실상 니시가 처음 소개되는 이 시점에서 그간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니시를 철학자로 볼 것이 아니라 메이지 초기의 지식인 공무원으로 새로 읽어보자.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니시의 글 세 편을 번역하고 해제를 붙였으며, 니시의 삶을 정리한 짧은 평전을 실어 니시 아마네의 전모를 읽어보려 했다. 니시를 전공한 역자 허지향은 코로나 와중에 교토에서 자신의 2020년을 쏟아부어 이 책을 번역했다.

7 저자 / 역자 소개

저자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 츠와노번 번의藩医 집안 출생. 번교 요로칸에서 한학을 배웠고 20대 중반부터 에도를 거점으로 양학을 학습했다. 1862년, 막부 세 번째의 외국 사절단의 일원으로 네덜란드에서 유학했다. 가이세이쇼 교수,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오쿠즈메奥詰 등을 거쳐, 신정부에서는 육군성 및 학제취조국에서 일했다. 메이지 초기에 수립해야 했던 수많은 시스템들 중에서도 특히 군제에 필요한 규칙과 조례의 초안을 작성했고 직접 네덜란드에서 배운 최신의 법정치학, 유행했던 실증 철학을 일본에 번역하고 소개했다. 메이로쿠샤 및 동경학사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연설하고 글들을 발표했으며, 독일학협회학교의 초대교장, 동경사범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직접 간행한 단행본은 몇 되지 않는다. 니시의 강연문을 토대로 야마모토가 출판한『백일신론』을 제외하면 모두 번역 및 편역이며, 주요 글로는「서양 글자로 국어를 쓰자」,「교문론」,「지설」,「병가덕행」등이 있다.

역자 허지향(許智香).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전문연구원으로 출강하면서 교토에서 공부하고 있다.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2016년 일본사로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philosophyから「哲+學」へ』(文理閣, 2019)를 출간했다. 니시 아마네와 막말-메이지 시기의 사상가들이 일본 내에서 논의되는 방식에 위화감을 갖고 일본 내의 근대화 스토리를 넘어선 사상사 서술을 모색하고 있다. 역서로『한자권의 성립』(사이토 마레시 저, 글항아리, 2018)이 있다.

[출판사 / 총서 소개]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던 한 독자가 일본사 개설서와 연구서를 몇 권 읽다가 깨달았다. 한국어로 된 막말-메이지유신기의 고전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여기저기 물어보니 고전들은 잘 출간되지 않는다는 말만 들려서 실망했다. 기왕 책을 만들려면 오래 살아남을 책을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고전총서를 먼저 기획했고 총서를 찍기 위해 그 독자는 출판사도 만들었다. 웹사전 전문가로 사전을 15년간 만들어왔던 정철이 그 독자이다. 그는 2016년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시작으로 사전에 대한 책을 4권 집필했다. 새로 만든 출판사 이름은 빈서재이다. 책을 욕심껏 마음대로 꽂을 수 있는 빈 서재를 가지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어떻게 근세와 근대를 통과해나갔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살아갔던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사 고전총서는 그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이다. 일본사를 볼수록 한국사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 일본의 이 시기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계속 의문이 솟기 때문이다. 또 중국은 어땠는가, 러시아는, 유럽은, 미국은 무엇을 했는가. 끊임없이 연결되는 그 역사 공부의 기점으로 한국사도 좋지만 일본사도 훌륭한 선택이다. 일본사를 깊게 읽으면 한국사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조각맞추기(직소 퍼즐)는 경계부터 맞추는게 기본이다.

8 왜 백일신론을 출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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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현대사, 문명개화, 번역의 문제를 다룬 책을 보다보면 메이지 일본의 번역문화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이 서구의 liberty나 individual 같은 개념어를 한자어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했고 일본어에 정착, 번역된 뒤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물론 중국어에서 먼저 사용된 개념어도 상당히 있지만 일본에서 만든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대 한국어에서 사용중인 2음절 한자어 상당수가 '일제'이다. 개인, 과학, 사회, 원가(原価), 보건(保健) 등 개념어부터 전문용어, 일반어까지 셀 수 없을만큼 많다.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번역과 일본의 근대'(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 저)를 읽으면 메이지 번역문화가 실감나게 전해진다.

그중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경우 중 하나가 철학이고 그 번역자인 니시 아마네이다. 철학이라는 번역어가 처음 등장한 책이 백일신론이므로 백일신론이라는 책도 계속 언급된다. 발행인은 사전을 만들던 사람이고 계속 사전에 대한 책을 써왔기 때문에 번역이라는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니시 아마네를 검색해보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안나와있고 책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계속 인용은 된다. 음식사진만 보고 그 음식을 먹어볼 수가 없으면 화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분명 무슨 맛이라고는 하는데 먹어보질 못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진은 계속 돌아다닌다.

출판에 관심을 가진 것이 이미 십년도 넘었겠다 이런 고전은 출간될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결국 직접 찍어보기로 했다. 망해도 고전 찍다가 망하면 기분은 덜 나쁠 것 같았다. 그래서 전공자를 찾아보니 두세명이 눈에 들어왔고 그중 역자 허지향과 연락이 되어 만났다. 취지를 설명하고 이런저런 내용을 물어봤는데 역자의 답이 놀라웠다. 전공자 외에 니시 아마네에 대해 이렇게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라고. 사실 전공자들도 별로 물어보지 않는다고. 니시 아마네에 대해 한국어로 이렇게 길게 얘기해본 적도 거의 없다고. 아 그렇구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거네. 누구 더 목마른 사람이 있나 했었는데 알고보니 발행인이 제일 목마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번역과 자료조사, 해제집필과 편집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이 그냥 공부였다. 편집자(이자 발행인)가 역자에게 계속 질문과 요청을 보내고 역자는 그것에 응답하는 식으로 글을 써서 보내왔다. 그 과정에서 니시 아마네라는 사람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철학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모두 일본 철학이나 일본 번역가의 시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국방부 공무원이었다. 공부를 좋아해서 공부할 자리를 찾아다녔고 유학다녀와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쪽에 취직했는데 정작 요시노부는 권력을 천황에게 반환하고 이후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은 서구의 위협 - 존황양이 운동 - 천황을 둘러싼 지방정권의 쿠데타 - 막부의 권력 포기 - 국지전과 수습이라는 형태로 길게 이어진 변혁과정이다. 대규모 전면전이 없었을 뿐 이 시기는 폭력과 죽음이 일상적이었다. 결국 요시노부는 마지막 쇼군이 되었고 일본은 천황 중심의 국가로 선언되었다. 당시 일본의 지방정권은 구분된 나라나 다름없었고 자신의 지역을 쿠니(国)라고 불렀으니 나라잃은 관료가 된 것이다. 니시는 미래가 불투명했다. 사실 일본의 누구도 천황제 국가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일본의 미래 역시 불투명했다.

그러다가 니시는 용케 메이지 신정부의 문부성과 병부성에 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그는 현대 일본군의 설계 실무자 중 한명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군대용어사전도 하나 만들었다. 그는 서구의 법과 도덕, 학문체계를 접하고 그 배경에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철학이 뭔지 이해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소개하면서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철학을 시작한 사람은 니시 다음세대 인물인 이노우에 테츠지로이다. 한국에서 니시 아마네를 철학 어쩌구 하면서 소개한 사람은 사실 니시 아마네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니시 아마네는 어쩌다가 한국에서 왜곡된 형태로 회자되던 중이었고 발행인 역시도 그렇게 접했다.

그렇게 결국 니시 아마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편집을 진행했다. 편집은 글을 더 자연스럽게 고치고 책의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므로 편집자는 반복해서 읽게된다. 그 과정에서 발행인은 대여섯번 이상 백일신론을 읽었다. 읽으면서 역자와 계속 얘기를 나눴다. 니시는 법과 도덕(본문에서는 교라고 쓰고있는)의 경계를 정하고 법이 어떻게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 서구에서 배운 법철학을 논어와 맹자의 언어로 설명한다. 그것이 얼마나 정치한 언어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평화롭게 정권교체가 된 것 같지만 사실 여전히 내전중인 나라, 그리고 국가 성립기여서 혁명세력은 독재를 하고있고 다른 쪽에서는 자유민권운동이 폭발중인 나라였다. 그 나라에서 유학파 지식인이 법철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을 자신의 언어로 소화해내는 과정이 바로 문명개화라는 것을 니시는 알고있었다.

그리고 추가로 번역한 백학연환과 병가덕행을 보면서 니시 아마네라는 사람이 입체감있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서양학문을 분류하고 간단하게 정리하여 서양학문입문 강의를 하고있던 것이다. 책으로 남기진 않았지만 강의를 제자가 필기했고 또 자신의 강의노트까지 남았기 때문에 재구성이 가능했다. 그는 죽을고생을 하면서 네덜란드어를 공부했고 또 이후에도 번역을 지속적으로 했기때문에 사전을 좋아했다. 백학연환은 웹스터 영어사전을 되씹으면서 개념을 이해한 노트였다. 발행인도 사전을 만들면서 15년을 보낸 사람이다. 이쯤되면 니시 아마네에게 관심이 안갈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병부성에 들어가 악명높은 군인칙유의 초안을 작성한다. 니시는 일본군을 만든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측근에 있으면서 머리를 빌려주었다. 그가 이상한 사람이었을까. 그렇게 공부와 학문과 번역과 사전을 좋아한 사람이 갑자기 군국주의자가 된 것일까. 그때는 군국주의라는 말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무사국가였고 니시 역시 원래 무사신분이었다. 게다가 당시 세계는 약육강식이어서 먹히지 않으면 먹힌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일본도 서구에 먹히지나 않을까 벌벌 떨다가 힘을 키워서 다른 나라를 넘보게 되었다. 니시는 본인 말처럼 '번역이라는 미약한 기술을 가진' 공무원으로 자기 직분에 충실히 살았다. 그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건강이 악화된 66세에 청일전쟁을 경험했다. 이후 일본이 점차 파시즘에 빠져들어갈 것을 그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니시같은 인물이 꾸준히 등장하고 또 자기 일을 열심히 했기때문에 일본이 막부 말기부터 거의 백년간 전쟁같은 상황을 겪었고 20세기 들어서는 동북아 뿐 아니라 세계가 전쟁으로 말려들어갔다는 것을 알고있다. 누구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니시 아마네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공부하면서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그가 서구를 어떻게 이해해나갔는가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것은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했고 역시 니시 아마네라는 사람은 한번쯤 짚고 넘어갈만한 인물이라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병부성에서 일했고 그도 얼마든지 평범한 악인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고 메이지 시대는 꽤나 난세여서 그만큼 더 복잡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그 복잡한 인간 군상을 접하면서 느껴지는 시대감이라는 것은 여타 해설서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Pinkcrimson (토론) 2020년 10월 7일 (수) 05:0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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