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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생각 - 어떤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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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30일 (일) 23:07 기준 최신판

1 개요[ | ]

오늘의 잡생각 - 어떤 징역
  • 2021-12-24 jjw

그게 아마 2000년대 초반이었을 거다. 그 때 나는 능곡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그 동네에 유명한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다. 좋은 일로 유명한 건 아니고, 그 왜 80년 대 중반 쯤엔 동네 어디나 있던 이른바 "바보 형" 정도 되는 유명세를 달고 다니던 할아버지다.

늘 헤어진 옷을 입고 있었고 어딘가 주눅들어 보이는 표정으로 거리에서 살았다. 가끔 마주치면 한 손으로 술 한잔 꺽는 시늉을 하며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그거 들어 줄 이유가 없어서 가끔 빵을 사드리긴 했는데, 그냥 돈을 주면 빵이 아니라 술을 사기 때문에 동네 점방에서 빵을 사서 손에 쥐어 드렸다.

그 것도 한 두 번이지 자꾸 마주치면 술을 사 달라는 통에 어느 샌가 멀찌기 보이면 피해 돌아가기도 하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좀 귀찮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어 어 하고 다가 와서 연신 손을 꺽으며 술 술 하였다. 그 땐 그래도 동네가 원룸촌 빌라촌 뭐 이런 환경이어서 어디 쫓겨가거나 하지는 않고 지내셨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겨울 저녁 퇴근 길 동네 골목에 경찰차가 서 있었다. 경찰 셋이 할아버지를 붙잡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고물상에서 구리 파이프를 훔쳤단다. 그 때도 어디선가 밤 새 구리 난간을 감쪽같이 떼어 팔아치우는 일당 뉴스가 나고 그랬다. 그런데 저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나는 믿기 힘들었다.

옆에서 대충 눈치를 보니 신고한 고물상 주인은 이게 처음도 아니란다. 얘기인 즉슨 겨울만 되면 이 할아버지가 고물상에 들어와 기물을 부수던가 무얼 훔치던가 한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이미 경찰도 여러 차례 들락 거린 모양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그 해 겨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음 해 여름이 다 되어서 다시 얼굴을 보였는데 멀쩡하게 예전에 하던 대로 거리를 돌며 술 술 하고 있었다. 이전엔 한 번도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하도 오랜 만에 보여서 그 동안 어디 계셨냐고 했더니 구치소에 있었단다. 아마 야간 주거침입 기물파손 특수절도 쯤으로 들어갔을 텐데, 피해 금액이 적으니 몇 달 살다 나왔겠지 싶다.

아이고 싶어서 처음으로 술을 사드렸다. 한 병 다 주었다간 큰 일 치를 거 같아서 내가 병을 쥐고 딱 반 병을 큰 종이컵에 따라 드렸는데 그걸 원샷하더라. 속으로 병째 주지 않은 게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사람 한 명 죽일 뻔 했구나 하면서. 더 달라는 걸 나도 먹어야 하지 않냐며 병을 들고 나와버렸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는 겨울이 너무 추워 견디기 힘들면 일부러 교도소에 갈 짓을 저지르며 살았던 것이다. 이 분이 왜 어디 보호할 수 있는 시설에 들어가지 못했는 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저 술 버릇 때문에 시설에 들어갔어도 못 견디고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디 살만 한 곳 없냐는 말은 묻지 못했다. 아무 것도 못해 줄 처지에 물어서 뭐하나. 그냥 빵 하나 더 사주고 헤어졌는데 그 뒤 몇 번 얼굴을 보다가 영영 다시 보지 못했다.

오늘 감옥을 나오게 된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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