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닉 패션 트렌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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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정화 패션 칼럼니스트>
<글 = 박정화 패션 칼럼니스트>


[[분류: 2003년]]
[[분류: 패션]]
[[분류: BrainSalad의 스크랩북]]
[[분류: BrainSalad의 스크랩북]]

2022년 10월 4일 (화) 00:51 기준 최신판

오가닉(Organic) 패션[ | ]

출처: 주간 시티라이프 제509호

옷을 입는다는 것은 자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그렇다. 옷을 통해 우리는 표현하고, 주장하고, 설득한다. 개성과, 신념과, 가치관들이 옷을 통해 표현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옷은 단지 자신의 부와 명예를 뽐내기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당신의 옷은 당신의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경제적 능력? 감성적인 자유분방함?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각? 이지적이고 지성적인 성적 매력? 모두 다 좋다.하지만 이런 건 어떤가! 당신은 아직도 멸종하지 않고 도시의 변두리를 날아 다니는 반딧불과 촉촉한 연두색 청개구리의 등짝과,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숲과, 가로 등 불빛에 묻혀가는 밤하늘의 별과, 여름날 밤의 개구리 울음소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가능하냐고? 한 벌의 옷을 입는 것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오가닉 스타일’(Organic style).
한때 불어닥쳤던 ‘Organic food’(유기농 식품)의 열풍을 기억한다면 이 생소한 트렌드를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맹독성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든 일반 농산물 대신 비싸면서도 군데군데 벌레먹은 자국이 있는 유기농 식품을 망설임없이 집어들었다. 그것이 그들의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왜 유기농 식품이 좋은지, 왜 환경세제를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가닉 패션이란 생소하다. 하지만 당신이 입고 있는 하늘색 반팔 티셔츠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농약이 뿌려졌는지, 얼마나 많은 화학비료가 살포 되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메뚜기와, 청개구리가 죽어가고,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는 가장 자연적인 섬유소재다. 마는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맨 처음 만들었던 데님바지의 소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가닉 스타일은 단지 화학소재를 대신해 자연소재를 쓰는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면소재는 자연소재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어떤 화학섬유보다 환경파괴적이다. 면화를 생산하기 위해서 엄청난 맹독성 농약이 살포되는 것이다. 결과는 비참하다. 강은 농약에 오염되고 물고기는 하얀 배를 뒤집고 떠오른다. 물고기를 먹은 동물들이 시체로 변하고 사람들은 농약중독으로 신음한다. 그러나 유기면화는 화학적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들어진 옷은 천연염료로만 염색을 하거나 아예 염색을 하지 않는다. 강을 살리고, 물고기를 살린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타인의 생명도 구하게 된다. 더 많은 면화를 재배하기 위해 농약중독으로 신음하는 농부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먼지를 마시며 재봉틀을 돌리는 수많은 봉제공장의 어린 여공들과, 독성물질로 가득한 염색공장 직공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인조 모피는 어떤가? 화학적인 제조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덫과 올무에 다리가 잘리고 목이 조여 죽어가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의 가죽을 대신할 수 있다. 이렇듯 오가닉이란 말 자체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포함되어 있다.

오가닉 스타일은 이제 극단에 이른 럭셔리 스타일 매장의 한쪽 구석을 조금씩 차지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패션브랜드들은 오가닉 스타일을 21세기에 풀어야 할 새로운 화두로 삼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재활용되거나 재생된 빈티지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유명한 톱디자이너들조차 옷과 액세서리를 교환하는 뒷골목의 의류센터나 빈티지 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빈티지 룩을 쏟아내고 있다. 랄프 로렌은 카키톤의 마직물을 이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0년 전부터 마소재의 진을 생산해왔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앤 폰테인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수동 재봉틀로 박음질한 셔츠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돈나나 코트니 러브, 크리스티 털링턴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흐름에 가세했다. 크리스티 털링턴은 식물추출성분으로 만든 화장품과 요가복에서 유래된 의상을 즐겨 입는다. 프라다는 나뭇잎 문양 패브릭을 사용하며 패치워크 드레스나 데님 스커트 등은 재활용 패션을 표방한다.캐서린 햄넷은 PVC사용을 중단하고 자연소재로 회귀했다. 국내의 여러 디자이너들도 꾸준히 자연소재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파리에서 거즈를 이용한 전통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패션쇼를 보였던 홍미화를 비롯해 데님, 린넨 등은 우리 디자이너들의 단골 소재였다. 전통적인 자연 염색 기법으로 파리를 매혹시켰던 이영희도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하나다. 자연 추출물에서 얻은 색으로 물들인 갖가지 동양적인 소재들은 오가닉 패션의 다양성을 자랑하는듯 하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매일 잠들고 일어나며 생활하는 모든 공간들도 오가닉 패션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커튼, 벽지, 이불, 베게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에 닿는 그 어떤 것들도 ‘오가닉’이라는 커다란 이슈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 최근의 추세다. 오가닉 패션은 정신적인 패션이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이며 한편으로는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독성 천연 소재, 공해를 배출하지 않는 소재, 콘베이어 벨트를 대신한 장인들의 수작업… 이런 재료와 공정의 오가닉화는 최근 패션계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패션은 겉모습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패션계의 새로운 이슈는 ‘이너 보디(Inner Body)’이다. 치장하는 패션에서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는 패션. 겉으로 평가받기 위한 옷이 아니라 진정 자신의 몸을 위해서 입는 옷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미래와 자연을 생각하는 정신이 담겨져 있다. 그 정신은 조금은 윤리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실천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활용되는 옷이나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 가공 방식의 옷들은 재래식으로 담그는 된장이나 몇 년 묵혀서 만드는 젓갈과 비슷하다. 그것이 더 맛있다는 것, 몸에 좋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런 음식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의 노고와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보다 쉽고 편한 길이 있는 걸 알면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푸른 하늘과 맑은 물. 그리고 등푸른 물고기와, 깜빡이는 반딧불과, 연두빛 청개구리와, 나무와, 별과, 그 땅에 살아가는 당신 자신과, 가족들을 끝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가능하다. 한 벌의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글 = 박정화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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