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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국학자<ref>[[가다노 아즈마마로]], [[가모노 마부치]], [[히라타 아쓰타네]]</ref> 중 하나로 손꼽힌다.
* 4대 국학자<ref>[[가다노 아즈마마로]], [[가모노 마부치]], [[히라타 아쓰타네]]</ref> 중 하나로 손꼽힌다.
*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에도 중기 국학자이다.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문하에서 고도(古道)연구를 하였으며, 30여 년에 걸쳐 『고사기전(古事記傳)』을 완성하였다. 유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고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에도 중기 국학자이다.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문하에서 고도(古道)연구를 하였으며, 30여 년에 걸쳐 『고사기전(古事記傳)』을 완성하였다. 유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고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 가라고코로漢意는 중국의 서적을 읽어 중국풍에 심취하여 감화된 마음을 가리킨다. 노리나가는 이를 외래 사상 특히 유학 사상에 물든 것이라 비판하면서 그에 대비되는 참된 마음을 `마고코로(眞心)' 또는 `야마토고코로(大和心)'라 하였다. 고대 일본인들의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을 뜻하며 노리나가는 이를 이상적인 인간의 마음이라 여겼다.
* 『다마쿠시게玉くしげ』는 한자로는 옥즐사(玉櫛笥)로 표기한다. 일반적인 뜻은 빗과 화장 도구를 넣는 빗접이다. 여기서는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1787년 저술한 『비본(祕本) 다마쿠시게』를 가리키는데, 와카야마의 번주 도쿠가와 하루사다(德川治貞)의 자문에 따라 고도(古道)의 대의를 논하였다. 서명에 한자와 히라가나가 혼용되어 있고, 서명을 해석해서 표기하여도 쉽게 이해되지 않으므로 일본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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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5일 (월) 15:13 판

1 개요

Motoori Norinaga (1730- 1801)
本居 宣長(もとおり のりなが)
모토오리 노리나가
  • 일본 에도 시대의 국학자, 문헌학자, 의사
  • 4대 국학자[1] 중 하나로 손꼽힌다.
  •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에도 중기 국학자이다.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문하에서 고도(古道)연구를 하였으며, 30여 년에 걸쳐 『고사기전(古事記傳)』을 완성하였다. 유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고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 가라고코로漢意는 중국의 서적을 읽어 중국풍에 심취하여 감화된 마음을 가리킨다. 노리나가는 이를 외래 사상 특히 유학 사상에 물든 것이라 비판하면서 그에 대비되는 참된 마음을 `마고코로(眞心)' 또는 `야마토고코로(大和心)'라 하였다. 고대 일본인들의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을 뜻하며 노리나가는 이를 이상적인 인간의 마음이라 여겼다.
  • 『다마쿠시게玉くしげ』는 한자로는 옥즐사(玉櫛笥)로 표기한다. 일반적인 뜻은 빗과 화장 도구를 넣는 빗접이다. 여기서는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1787년 저술한 『비본(祕本) 다마쿠시게』를 가리키는데, 와카야마의 번주 도쿠가와 하루사다(德川治貞)의 자문에 따라 고도(古道)의 대의를 논하였다. 서명에 한자와 히라가나가 혼용되어 있고, 서명을 해석해서 표기하여도 쉽게 이해되지 않으므로 일본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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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같이 보기

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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