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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8일 (토) 20:04 판

1 위기의 세계금융, SRI가 동아줄

2002년 세계 투자자들은 신뢰 위기의 악몽에 시달렸다. 엔론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차례대로 신뢰 위기에 봉착해 무너져갔다. 투자자들은 혼란스럽다. 믿음직스럽기만 하던 번듯한 대기업 주식이 하루 아침에 신뢰를 잃고 휴짓조각이 돼버리기 일쑤다. 어떤 나침반을 따라 투자해야 할 것인가. 'Economy21'은 ‘사회책임투자’(SRI)라는 화두를 신뢰 위기 시대 투자의 새로운 대안으로 모색한다. 이제 단지 돈을 잘 번다는 사실만 믿고 기업에 투자하기는 어려워졌다. 멀쩡히 돈을 잘 벌다가도 한순간에 신뢰를 잃고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업, 환경과 인권과 소비자와 노동자를 생각하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기업이고, 장기투자할 만한 기업이라는 게 SRI의 정신이다. 'Economy21'은 전세계에 불어닥치는 SRI 바람을 현장에서 취재해, 네번에 걸쳐 이 새로운 투자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원문기사

1.1 # 세계 금융의 새로운 대안, SRI

  모건스탠리 세계주가지수(MSCI World). 전세계 대표적 기업들을 규모를 기준으로 편입해 주가 동향을 보여주는 세계주가지수다. 지난 1993년 12월을 100이라고 놓고 보면, 이 지수는 올해(2002년) 10월말 123이 된다. 전세계 주가는 꼭 10년간 23%가 상승한 것이다.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DJSI). 전세계 대표적 기업들을 규모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성과 노사관계·인권·남녀평등 등 사회적 가치를 감안해 비중을 조절한 뒤 편입해 주가 동향을 보여주는 세계 사회책임투자 지수다. 모건스탠리 세계주가지수와 마찬가지로 93년 12월을 100이라고 놓고 보면, 이 지수는 올해 10월말 139가 된다. 전세계에서 환경경영·인권경영 등을 통해 사회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책임감을 보여준 기업들의 주가는 10년간 39%가 오른 것이다.

1.1.1 사회책임 다하는 기업이 돈도 잘 번다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인 기업들에 투자했다면 10년간 그렇지 않은 우량 기업들에 투자했을 때보다 16%포인트나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전세계 금융시장에 조용히 불기 시작하는 사회책임투자(SRI) 바람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냉혹한 돈의 세계에서 환경이나 사회, 인권 등을 이야기하는 건 언뜻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왠지 그런 고상한 이슈들을 투자지침으로 삼으면 수익은 포기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는 그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실제 환경이나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SRI펀드는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미국과 영국에서 급속하게 성장중이다.

다국적 SRI운동단체인 사회투자포럼(Social Investment Forum)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펀드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는 펀드투자금 8분의 1, 약 12%가량이 SRI펀드에 투자돼 있다. 미국의 SRI투자펀드 규모는 84년 400억달러에서, 95년 6390억달러로, 99년 1조4900억달러로, 2001년 2조3400억달러로 급성장세를 이어왔다. 다소 정체상태에 들어선 99년부터 2001년까지만 따져도 36%의 성장률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전체 펀드 규모는 16조3천억달러에서 19조9천억달러로 22% 늘어나는 데 그쳤다. SRI펀드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커지면서, 펀드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SRI펀드 규모는 99년 520억파운드에서 2001년 1200파운드로 빠르게 불어났다. 이 가운데 연기금 투자자산이 850억파운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종교 또는 자선단체 자금이 314억파운드로 뒤를 이었다. 일반투자자 자금은 35억파운드가 SRI로 들어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사회투자포럼이 500대 연기금 펀드를 조사한 결과, 펀드의 59%(자산규모로는 78%)가 투자전략에 SRI를 감안하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아예 기업의 사회책임성을 일일이 평가해 표준화시켜놓은 지수를 자신의 운용기준(벤치마크)으로 삼는 펀드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스위스의 지속가능자산운용(SAM)에 따르면, DJSI에 맞춰(벤치마크) 투자하는 ‘지속가능’ 성향의 펀드만 해도 40여개에 자산규모 1800여억원이나 됐다. 99년 10월 출범해 3년 남짓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다.

1.1.2 SRI투자기법, 운용성과 뛰어나

특히 영국에서는 이른바 ‘메인스트림’ 투자자들이 아예 SRI에 뛰어들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국지적으로 SRI펀드를 만들어 기존 투자 흐름과는 달리, 기존 금융시장의 ‘큰 손’들이 ‘우리는 이제 SRI를 투자전략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영국보험협회(ABI)다. 영국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보험업계의 대표조직 영국보험협회는, 아예 회원사 전체의 투자자산 모두를 대상으로 ‘SRI 가이드라인’을 부과하고 있다. 피터 몬테뇽 영국보험협회 투자본부장은 “1조1500파운드(2천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자금이 ‘사회책임’이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면서 금융시장에 SRI 논리를 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거대한 움직임의 뒷심은 역시 수익률이다. 펀드의 운용수익률과 손실위험도는 투자 스타일, 펀드매니저의 역량, 투자대상 선정기준 등에 따라 영향받는다. SRI투자기법이란 이 가운데 투자대상 선정기준을 정할 때 사회적 기준을 첨가하는 것이다. 다국적 투자기업들의 연구 결과, 투자대상 선정 때 사회적 기준을 첨가해도 그 기준을 첨가하지 않은 펀드보다 운용성과에서 오히려 앞선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SRI펀드의 약진이 가능했던 것이다.

씨티그룹자산운용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규모 1억달러 이상 SRI펀드 가운데 73%가 세계적 펀드평가사 모닝스타 및 리퍼의 1년간 및 3년간 펀드수익률 순위(2001년 9월말 기준)에서 최상위 그룹에 들었다. 또 모닝스타는 같은 기간 동안 전체 SRI펀드 가운데 35%에게 별 네개 또는 다섯개를 수여했다. 전체 뮤추얼펀드 가운데 별 네개 또는 다섯개를 받은 펀드는 32.5%였으니, SRI펀드 전체 펀드보다 근소하게 앞섰다는 얘기다.

노동자들의 권익에 신경쓰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주가 흐름이 좋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98년 미국 경제잡지 '포천'이 발표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미국 기업’ 가운데 상장된 기업의 5년간 연간 주가상승률은 27.5%였는데, 이는 러셀3000(중소형기업 중심의 미국 주가지수)의 17.3%를 크게 웃돈 수치다. 씨티그룹자산운용은 저공해 기업의 주가상승률이 공해 기업의 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경우도 일반적이라는 조사 결과도 내놓았다.

1.1.3 기업에 사회적 책임 부여로 이어져

홍콩의 투신운용사 킹스웨이그룹 유언 마셜 수석 펀드매니저는 이렇게 말한다. “SRI는 자선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에 투자해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이다. 친환경적이고 친인권적 기업은 평균적으로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장기적으로 더 좋은 기업실적을 거두고 따라서 주가도 더 오르는 게 보통이다. 결국 펀드는 돈을 벌고, 투자자들은 만족한다. 동시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강제할 수 있다.”

신뢰 위기와 사회 책임 기업들의 안정된 주가 흐름이 SRI 바람의 진원지라면, 증권시장의 장기투자 흐름은 SRI 바람의 초석이다. 한때 인터넷주 열풍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초단기 투자자들이 시장을 장악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는 했지만, 열풍이 가라앉은 지금 세계 증권시장, 특히 금융선진국 시장들은 이제 단기매매를 노리는 조무래기 투기꾼들의 난장이 아니다. 증권시장은 이제 저금리에 지친 은행 예금자들이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빼내 옮겨가고 있는, 평생이 보장돼야 하는 초장기 투자시장이다.

초장기 투자를 한다면 투자의 위험도 초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한사람의 평생 동안 무너지지 않을 기업에 투자해야 평생 모은 돈을 노후에 회수해 여생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이라면 장기적으로는 신뢰 위기에 봉착해 자금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SRI에서 제기하는 ‘사회적 위험’의 본질이다.

SRI는 기업의 사회책임 부분을 평가해, 사회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업의 투자비중을 줄이거나 없애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의 투자비중을 높이는 활동이다. 적극적으로는 더 나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투자기법이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면, 투자자로서 기업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거나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에 직접 투자하는 활동으로까지 이어진다.

1.1.4 SRI 가설, 세계 곳곳서 서서히 입증

사회투자포럼은 이런 의미에서 SRI의 전략에 펀드 포트폴리오 구성전략 이외에 ‘주주운동’과 ‘공동체투자’의 두가지를 덧붙인다. 주주운동이란 주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각종 권리를 이용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면서 투자의 사회적 위험을 줄이는 활동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주총회에서 SRI에 뜻을 같이하는 주주들이 함께 특정인에게 의결권을 위임한다든지, 기업이 사회를 해치는 특정 활동을 벌일 때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공동체투자란 아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선사업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형태다.

결국 SRI는 ‘선한 자가 오래 살아남는다’는 가설을 실전투자로 검증해 보여주는 투자방법이다. 곳곳에서 펀드 투자 수익률로, 사회 적대적 기업의 신뢰 위기로, 그 가설은 조금씩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재편되지 않으면 지구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게 SRI의 기본 전제다. 환경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서구 선진국 시민 정도의 환경파괴적 생활을 전체 지구인이 하게 된다면 세개의 지구가 있어야 그들을 먹여살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전체 지구인은 서구 선진국 시민의 생활상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선한 돈’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게 SRI 진영의 외침이다. 그리고 이 외침은 무엇보다도 ‘돈도 벌 수 있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다.

“SRI는 돈과 지속가능한 사회 사이를 잇는 통역사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당면한 자본시장 신뢰 위기, 즉 금융과 기업 사이의 균열 상황을 떠받치는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유엔환경계획 금융부문(UNEPFI) 사무국장 폴 클레멘츠-헌트의 말이다.

===== 사회책임투자(SRI)란?
사회책임투자(SRI)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처음에 순수한 윤리운동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처음에는 ‘돈에도 윤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운동으로 시작됐으나, 그뒤 정교한 투자위험 분석이 결합되면서 투자전략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SRI 애널리스트들은 초기 윤리운동 단계와는 달리 지금은 거시적, 미시적 수준에서 숫자를 동원해 다양한 양적 평가를 하고 있다.한 연구에서는 SRI의 기원을 퀘이커교도가 18세기에 노예 거래상으로부터 자금을 철수했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자금이 베트남전쟁 관련 기업으로 흘러들어간다며 문제제기하는 형태로 SRI의 초기 형태가 드러났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최초의 SRI펀드는 역시 1971년에 미국 감리교 신자들이 설립한 ‘팍스 월드 펀드’에서 찾아야 한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팍스 월드 펀드는 군수산업, 담배산업, 도박산업 등 감리교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를 거부했다. SRI가 결정적으로 급부상한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펀드가 생기면서부터로 알려졌다. 70년대부터 미국이나 유럽의 수많은 노동조합과 종교계 펀드가 남아공 기업이나 남아공과 거래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결국 80년대 미국 뉴욕,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등 주정부들이 각각 수백억달러(수십조원) 규모의 연기금을 남아공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환경문제가 대두하면서 SRI의 관심이 일반적 윤리문제에서 급속히 환경으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환경 관련 기술을 갖춘 기업에 투자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에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업의 환경보고서 등이 의무화되면서 기업의 환경영향 평가를 통해 사회적 위험을 가늠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SRI의 일반적 방식이 되고 있다. =====

1.1.5 # 관련기사1. 아시아는 SRI의 신천지

  “아시아에서 아직 사회책임투자(SRI) 움직임은 미약하다. 그러나 분명 SRI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는 신세계다. 서구적 가치와는 조금 다른 아시아적 가치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SRI와 만날 수 있다.” 10월28~29일 이틀 동안 열린 아시아SRI협회 2차 연례 컨퍼런스에 모인 SRI 전문가, 아시아의 펀드매니저, 아시아 기업인들은 이렇게 결론내렸다.

일본 후지제록스의 고바야시 요타로 이사회 의장은 아시아 기업의 ‘아시아적 가치’를 이렇게 보여줬다. “우리는 왜 기업을 경영하는가? 이익 자체가 경영의 최종 목적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주주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게 가치있는 기여를 하기 위해 위해 경영한다. 이익을 내는 것은 그 방법일 뿐이다.”

타이 프란다 보석회사 프리다 차수완 회장도 비슷한 생각을 전했다. “우리 기업의 경영 목표는 주주, 노동자, 원료공급자, 소비자, 정부, 지역사회라는 여섯가지 이해관계자들에게 균형잡힌 가치를 돌려주는 것이다. 특히 생산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보석세공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1.1.5.1 일본에선 환경펀드에 개인투자자 몰려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가치는 이렇게 아시아 기업, 더 나아가 아시아 사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덕목이다. 사기업에서도 가부장적 경영문화가 유지되고 기업의 공적 책임이 당연시되는 등 유교적 전통이 오래 유지됐다는 게 중요한 원인이다. 유교적 전통에는 긍정적 면도 있고 부정적 면도 있지만, 어쨌든 여기에 아시아와 SRI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게 SRI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관이 경영이념에 스며 있으며 경제가 가장 앞서 있다는 일본에서조차 SRI는 서구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아시아에서는 ‘주주가 기업의 사회 책임을 강제하는 SRI’로 가기에는 자본시장과 기업지배구조가 충분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데서 SRI 발전이 미약한 이유를 찾았다.

아시아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정부나 기업 경영자 중심의 경영이 이뤄졌다. 대주주를 제외한 다른 투자자들의 의견은 사실 회사 의사결정에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주주 중심의 경영이 중요한 이슈로 제기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오래 전부터 주주 중심 경영이 이뤄져왔던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르다. 일본 SRI 컨설팅 업체로 3년 전 에코펀드(환경펀드)를 일본에 가장 먼저 소개해 붐을 일으킨 굿뱅커스 쓰쿠시 미즈에 사장은 “에코펀드를 처음 들여왔을 때, 일본 기관투자가들은 아직 SRI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항이 컸던 것은 물론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일본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왔다. 기관투자가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에코펀드에 개인투자자들의 돈이 밀려들었다. 다른 에코펀드도 속속 등장했고, 에코펀드 자산은 석달 만에 800여억엔(8천여억원) 규모가 됐다. 현재 에코펀드 가운데 펀드규모가 가장 큰 니코자산운용 에코펀드의 경우 자산의 90%가 개인투자자들 몫이다. 오자와 가츠스노스케 니코 펀드매니저는 “펀드 판매는 주로 회사쪽에서 먼저 접근해 이뤄지지만, 에코펀드는 특이하게도 개인들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뒤 에코펀드는 일본 기업들의 환경친화 경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게 SRI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업의 환경친화성 평가를 위해 SRI펀드쪽에서 요구하는 ‘환경보고서’는 99년 270개 기업만이 내고 있었지만, 현재 1천개 이상의 기업이 내고 있다. 도쿄대학 연구팀이 2001년 조사한 결과, 85% 이상의 기업이 에코펀드가 환경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 환경단체가 선정한 세계 전기전자업종 환경경영 순위에서 일본 기업이 10위권에 9개나 들어가는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리고 연기금 자금에서도 SRI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 도쿄교원상호부조협회 나루카와 토모히사 전무는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교사들의 의견에 따라, SRI의 원칙을 들여와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SRI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분명 움직임은 있다. 일본에서는 현재 8개의 에코펀드와 3개의 사회펀드가 운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삼성투신운용에서 에코펀드를 출범한 데 이어, 올해는 교보투신운용이 여성고용평등 펀드를 출범할 예정이다.

아시아 기업의 지배구조도 비슷한 시기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늘어나고 후지제록스 같은 다국적 합작기업이 많아지면서, 기업들이 주주들의 요구에는 점점 민감해졌던 것이다. 말레이시아를 제외하면, 한국 등 외환위기를 겪었던 나라에서도 98년 이후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유입되면서 주주 중심 경영이 조금씩 이뤄지기 시작했다.

1.1.5.2 환경 이외의 문제엔 시간 걸릴 듯

이런 환경을 감안할 때,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SRI에 관심을 갖고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하면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환경 이외의 사회문제를 SRI를 통해 제기하는 데는 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얘기다.

일본 기업 일부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SRI를 받아들이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편의점 세븐일레븐 등을 운영하는 대형 유통기업 이토-요카도의 이나오카 미노루 전무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을 무슨 사치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사회공헌에 들어가는 비용만 생각하고 높아지는 기업가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오해다. SRI는 경영의 사회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투자활동이다.”

아시아에 아직 SRI라는 개념이 낯설다는 지적도 사실이다. 기업지배구조와 투자관련 제도들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오곤 한다. 그러나 서구에서처럼 안착된 자본시장에 비집고 들어가기보다, 성장단계에서부터 개념을 심어두는 게 더 쉽고도 근본적 접근일지도 모른다는 게 SRI 전문가들의 얘기다. 영국 출신인 아시아SRI협회장 테사 테넌트는 이렇게 말한다. “10년 전에는 영국에도 SRI가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메인스트림 투자자들을 움직이는 힘이 됐다. 10년 뒤 아시아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1.1.6 # 관련기사2. 테사 테넌트 아시아SRI협회 회장

프로필 1980년 영국 런던대학에서 환경과학 공부 80년대 내내 영국 환경단체 녹색연합(Green Alliance·한국 녹색운동연합과는 관련없음)에서 활동 1987년 미국 사회투자그룹 트릴리엄자산운용(Trillium Asset Management)에서 활동 1988년 영국에서 첫 환경펀드 출범에 참여 1993~97년 영국 사회투자포럼(Social Investment Forum) 회장 1997년 NPI리서치센터장 1998년 아시아 기업 리서치를 통해 첫 아시아SRI펀드 출범 2001년 아시아SRI협회(ASrlA) 출범, 회장 취임

  “서구보다 앞선 사회 가능하다”

테사 테넌트 아시아SRI협회 회장은 평생 금융 및 산업을 통해서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결과물을 실천해온 활동가다. 그는 “SRI야말로 돈을 벌면서도 선한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꿈의 해결사”라며 “아시아는 SRI를 통해 서구 선진국보다도 더 앞장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RI의 장기적 비전은 무엇인가. 끝까지 밀고나가면 어떤 시장을 보게 될 것인가.
SRI는 일종의 ‘꿈의 해결사’다. 효율성과 형평성이 만나는 지점이고, 돈을 벌면서도 선한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 지속가능한 시장, 지속가능한 사회가 궁극적 목표다.

아시아적 가치와 SRI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SRI에서 제시하는 가치는 기본적으로 지구적이다. 환경과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생각은 아시아와 서구가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투자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시아에는 강력한 정부도 많은데, 정부 역할만으로는 부족한가.
최근 있었던 요하네스버그 국제환경회의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환경과 사회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미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환경과 사회를 지속가능한 쪽으로 발전시키기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기업이 자체 동력으로 단기적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사회와 환경에 자발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라기는 쉽지 않다. 장기 투자자들이 있는 자본시장이 사회적 위험을 고려하면서 기업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다.

왜 아시아에서 활동하는가.
아시아는 경제가 매우 다이내믹하게 발전하는 곳이다. 그런 만큼 사회문제와 환경문제도 함께 급속도로 커져가고 있는 곳이다. 이미 경제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문제들조차도 정체상태에 들어서 있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다. 이미 문제가 안착단계에 있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해결책을 찾으려면 문제를 모두 드러내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아시아는 아직 문제 형성 단계이므로, 어찌 보면 지금부터 개입하면 현재 유럽이나 미국이 갖고 있는 문제를 짊어지지 않고 갈 수도 있다. 그들보다 더 앞선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7 # 관련기사3. 기업마다 ‘사회적 위험’ 경계령

  올해 4월 일본에서는 호주산 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위장해 팔며 소비자를 속인 최대 햄·소시지 생산업체 유키지루시식품이 영업을 중단했다. 이 회사는 일본 햄·소시지 시장점유율 86%의 대표적 소비재 기업이었는데,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고는 곧바로 파산한 것이다. 주주들이 순식간에 투자금을 모두 날린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기업은 이미 지난 2000년 한번 신뢰 위기를 겪은 일이 있다. 유키지루시식품의 모회사 유키지루시 유업에서 만든 저지방 우유를 마신 사람들이 대거 식중독에 걸렸는데, 경영진이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다가 공장 폐쇄와 주가 폭락, 사장 사임 사태를 맞은 일이 있다. 신뢰를 한번 잃은 기업인 만큼 다시 한번 위기가 닥치자 소비자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받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신뢰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집어넣은 투자자들은 낭패를 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게 SRI진영의 의견이다. 기업의 사회적 위험을 막연하게 두려워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이제 돈으로 평가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 역시 이들의 진단이다.

기업의 ‘사회적 위험’을 얘기할 때 SRI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드는 또 다른 사례는 유니언카바이드 사태다. 유니언카바이드는 1897년 설립돼 지난 99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의 30개 대표기업을 편입하는 다우지수 편입종목이었을 정도로 유수한 다국적 화학기업이었다.

그러나 각종 유해물질 배출과 공해사고를 일으키던 끝에, 지난 84년 인도 보팔 공장에서 ‘역사상 최악의 환경사고’를 일으키면서 급속히 무너져갔다. 유니언카바이드는 84년 12월2일밤 인도 보팔에서 2시간 동안 맹독성 메틸이소시안산염을 유출시켜 최소한 지역주민 7천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0만여명에게 피해를 입혔다.

SRI 진영에서 주목하는 것은 유니언카바이드 사태의 피해자가 지역주민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고로 유니언카바이드는 인도 정부에 4억7천만달러(약 5600여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환경파괴의 사회적 위험이 구체적 기업의 손실로 나타난 것이다. 공장이 문을 닫은 것은 물론이고, 사고 수습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면서 생겨난 구조조정 압력으로 10만여명이던 노동자를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사세는 위축을 거듭해 결국 99년 다우케미컬에 합병됐고, 다우지수에서도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투자자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입힌 것이다.

영국보험협회 투자본부장 피터 몬테뇽은 “유니언카바이드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위험은 도처에 널려 있다”며 “우리는 투자할 때 이들 위험을 평가해 투자자산 배치를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음식 신선도를 지키지 않아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식품회사는 돈을 잘 벌더라도 당연히 낮게 평가돼야 한다. 언제 또다른 사고가 터져 시장에서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개발 암치료약을 저개발국가에서 지나치게 비싼 값으로 팔다가 신뢰를 잃고 불매운동에 부닥친 다국적 제약업체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뇌암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혹은 아직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고, 이동전화 업체들에 대한 투자는 그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감안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SRI 진영에서 사회적 위험이 가장 높다고 보는 기업은 주로 군수산업, 담배업종, 주류업종, 환경파괴적 거대장치산업, 저개발국가 지사에서 반인권 논란을 일으킨 다국적 기업 등이다. 아시아에서는 기업의 ‘환경보고서’를 주시하면서, 환경파괴적 기업들을 우선적으로 경계한다.

1.2 # 사회책임투자 (SRI) ‘3P’를 만족하라

  “사회책임투자(SRI)의 투자기준은 세개의 ‘P’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수익률(profit), 사람(people), 그리고 지구(planet)입니다. 기존 펀드가 첫번째 P만 앞세우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익률의 지속 가능성, 또는 체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투자회사 ING자산운용의 투자담당임원(CIO) 앤젤리나 켐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현재 세계 금융가에 ‘세개의 최저선’(tripple bottom line)이라는 용어에 실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SRI 투자원칙을 설명한 것이다. 세개의 최저선이란 투자, 신용대출, 자산운용 등 금융활동의 의사결정에서 경제·사회·환경의 세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실제로 SRI원칙은 세계 금융가 메인스트림 투자자들의 인식 속에 급속히 파고들어가는 중이다. 다우존스인덱스의 데이비드 모란 사장은 “ING뿐 아니라 씨티그룹, HSBC, JP모건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사회책임에 대한 분석을 확대하거나 투자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여론조사회사 TNS가 지난해 12월 유럽 펀드매니저 1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1%가 “포트폴리오 구성 때 SRI원칙을 분명히 고려하거나 약간 고려한다”고 답했다. 전체적 SRI 펀드 수가 늘어날 뿐 아니라,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SRI 원칙을 실전 펀드 운용에 적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 방법에 따라 결과물인 포트폴리오나 수익률도 매우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SRI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는 ‘배타적’(negative) 방식과 ‘질적 평가’(positive)방식 두가지 서로 다른 전략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1.2.1 미 도미니 소셜 인베스트먼트 운용사례

미국의 자산운용사 도미니 소셜 인베스트먼트는 이런 두가지 전략을 한꺼번에 사용하며 SRI실전 운용전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투자회사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사회적 책임 투자 펀드 가운데 하나인데, 15억달러 정도 규모의 SRI전문 뮤추얼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도미니는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기업을 선정할 때 배타적 방식과 질적 평가 방식 두가지를 적절하게 구사한다. 배타적 방식은 특정한 산업에 속한 기업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미니는 미국의 많은 SRI펀드처럼 담배, 술, 도박, 원자력, 군수산업 등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방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충실한 기업들을 고르는 질적 방식도 병행한다. 이때 이들이 사용하는 기준은 환경 문제에서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 노동문제에서는 작업장 안전도나 사원 환원 프로그램 등 노사관계에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가, 차별문제에서는 여성이나 소수 민족, 성적 소수자들을 얼마나 차별없이 고용했는가, 사회환원에서는 자선활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등이다.

질적 평가 방식은 배타적 방식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다. 이 평가를 위해 도미니는 ‘도미니400사회지수’라는 자체 평가기준에 따라 기업을 선별한다. 기업의 선별 작업을 통해 400개 회사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선별할 때에는 3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는 정보를 그 회사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정보원을 통해서 얻고, 두번째로 약 100여개의 예/아니오 질문을 기업에 직접 던져 활동을 평가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적 계량화를 통해 투자해도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를 나누는 것이다.

계량화 방법은 다양하다. 환경문제를 측정한다면 환경문제를 다루는 데 자금의 30% 이상을 썼는지 여부를 살핀다. 여성 문제라면 이사회에 여성이 한명 이상 있는지를 본다. 보통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8%이기 때문에, 한명도 없는 회사라면 나쁜 회사로 간주한다. 이익의 몇퍼센트를 사회에 기부했는가를 살피기도 한다. 이때 이윤의 50% 이상을 3년 이상 기부했을 때 최고 기준에 다다른 것으로 본다. 이런 평가 작업을 한 뒤 각 분야별로 상위 10% 안에 들어온 기업만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한다.

투자전략은 기본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바이앤드홀드’ 전략을 쓴다.좋은 활동을 하는 회사라면 꾸준히 투자해서 장기보유해 계속 그 회사가 커 나갈 수 있게 한다는 관점이다.물론 중간에 나쁜 회사로 판별되면 바로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종목을 편입한다.

도미니는 단순한 투자 이외에 적극적 주주활동을 통해 기업을 변화시키기도 한다.즉 단순히 사회적 가치에 적극적인 기업을 고르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그런 가치에 다가갈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미국 기업들은 법적으로 주주들이 이사회 전에 경영진에게 어떤 이슈에 대해 질문을 하면 반드시 답변을 하도록 돼 있다.도미니는 이것을 적극 활용해 해마다 경영진에게 20개의 질문을 던지고 의결에 압력을 행사한다.

도미니는 실제로 이런 주주활동을 통해 굵직굵직한 변화를 이끌어냈다.메릴린치가 중국에 댐을 건설하는 데 투자하려고 한 것을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중지시켰다.홈디포라는 생활용품회사가 남녀를 차별하고 있는 것을 지적해 개선하게 만들기도 했다.월트디즈니와 맥도날드가 국제 노동기준을 어기고 중국에서 헐값으로 물건을 만들어 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P&G에 재활용 문제 등을 건의한 것도 이들의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기업들에 이런 문제들을 제기했을 때 그것을 성실하게 해결해나가려는 자세를 보이는 회사가 궁극적으로 비용도 줄이고 수익성도 높아진다는 게 도미니펀드의 관점이다.

1.2.2 유럽 ISIS·주피터 운용사례

유럽에서 SRI 펀드가 가장 활발한 곳이 영국이다.SRI를 투자원칙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 대형 투자사들은 헨더슨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ISIS, 주피터 등이다.

예컨대 ISIS가 운용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친구들’ 펀드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이스트재팬레일웨이 등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전세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 펀드는 현재 자산 9억1900만유로(약 1조1030억원)로, 단일 펀드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주피터그룹은 ‘주피터 글로벌 SRI 펀드’, ‘주피터 글로벌 녹색투자 펀드’ 등을 운용한다. 주피터그룹은 포트폴리오 구성 때 대체에너지 개발, 공공교통수단뿐 아니라, 사내 복지정책,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인권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평가를 거쳐 판단을 내린다.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DJI)를 만들며 SRI평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지속가능자산운용(SAM)도 자체 평가부문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직접 자산을 운용한다. 현재 SAM이 운용하는 펀드 규모는 7억유로(약 8400억원)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회사 펀드의 25~30%는 일반투자자들의 자금이라는 사실이다. 펀드 매니저 크리스티앙 지그프리트는 “수많은 펀드에 대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평가작업이 일반화돼 있어, 일반투자자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특성에 맞는 펀드를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클레멘테캐피털은 SRI펀드로 아시아 시장까지 넘보고 있는 투자회사다.이 회사는 필리핀인 릴리아 클레멘테 회장이 지난 77년 미국 뉴욕에 설립할 때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한 팍스월드 펀드 참여 등 SRI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배타적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짠 것이다. 주로 SRI평가회사 IRRC가 내놓는 이슈에 따라 투자했다고 한다. 지난 9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3억달러(약 3600억원) 규모의 SRI펀드 ‘시티즌 글로벌 펀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아시아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클레멘테는 대만에서 첫 SRI펀드인 광화펀드를 설정해 2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광화펀드는 대만 뮤추얼펀드 가운데 수익률 1위를 거두는 등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다. 릴리아 클레멘테 회장은 “현재 일본에서 여성문제 관련 펀드를 하나 만들 계획”이라며 “윤리의식이 높은 한국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으니, 기회가 생긴다면 펀드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다국적 기업들 역시 SRI를 염두에 두고 있는 분위기다. PcW의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 책임자인 서닐 미서는 “최근 몇년 사이 유럽계 다국적 기업의 3분의 2,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41%가 ‘세개의 최저선’을 기업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며 “투자홍보활동(IR)에서 사회책임과 관련한 기업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리포팅 활동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기업들이 기존의 회계보고서 이외에 환경보고서, 사회보고서 등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알리고 이를 IR에 이용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얘기다.

세계 금융가에서는 SRI펀드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운용전략과 기법도 점점 다양화·정교화하고 있다.그런 가운데 SRI는 단순히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방법’에서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완성돼가고 있다.릴리아 클레멘테 클레멘테캐피털 회장은 말한다. “이미 월가의 펀드 가운데는 철학을 가진 곳이 많다.SRI는 점점 더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지적되면서 윤리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1.2.3 # 관련기사1. “SRI, 사회적 효과·수익성 동시에”

SRI전문 투자회사 도미니 소셜 인베스트먼트 창업자이자 사장인 에이미 도미니는 “반사회적 기업이 제재를 받지 않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SRI펀드의 수익률이 일반 펀드보다 낮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도미니 사장은 또 “도미니 펀드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도 기대하지만,도미니가 내거는 사회적 가치에도 동조하는 사람들이라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고 말했다.

요즘 SRI의 추세는 어떤가. 특히 어려웠던 시기는 없었나.

이제까지 SRI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나빴던 때가 딱 두번 있었다. 클린턴과 부시가 대통령이 막 되고 났을 때 ‘허니문 기간’이라 기업들의 반사회적 활동에 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그럴 때 우리들의 수익률은 다소 낮아진다. 그때 이외엔 특별히 어려웠던 때는 없었다.최근 12개월 동안 성적도 매우 좋다. 수익률도 S&P 500 기업의 수익률보다 항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RI는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어떤 점을 강조하는 것이 쉬운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하나.

SRI는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하나는 좋은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도덕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회사와 주주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올해 초에 우리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답변이 89%,수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답변도 똑같이 89%가 나왔다. 때문에 흔히 미국에서는 SRI를 ‘두개의 최저선’(double bottom line)이라고 이야기한다.사회적 효과도 누리면서 수익성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유럽에서는 최저선이 세개라고 하기도 하더라.

SRI가 월스트리트의 주류 투자방법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고 본다.지금 대기업들의 경영은 갈수록 앞으로 더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이런 상태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엔론 사태 등은 역설적으로 SRI를 확대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실제로 그 사태 이후 우리 리서치 자료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도미니의 주요 투자자는.

도미니가 내거는 사회적 가치에 동조하는 투자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도미니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도미니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을 분석해보면 30대에서 50대가 대부분으로,여성이 다른 펀드보다 좀더 많고,투자자의 85%가 대졸자,35%가 대학원 졸업 이상이다.즉 학력수준이 매우 높은 투자자들인 셈이다.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고도 한다.이들은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미래 가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도미니 펀드에 기꺼이 다가온 사람들이다.그래서인지 도미니 펀드에 한번 들어온 투자자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1.2.4 # 관련기사2. 사회책임투자시대-평가산업 가치 높아진다

  사회책임투자(SR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평가산업이다.SRI가 과거처럼 더이상 윤리적, 종교적 관점에 입각해 특정 산업이나 기업들을 배제하는 방식(negative screening)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정교한 분석틀에 입각한 첨단 투자 행위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SRI 관점에서 바라볼 때 어느 기업이 투자할 만한 기업인지를 보여주는 기업 평가자료가 절실해진 것이다.

수익성 위주로 투자할 때 기업 수익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듯, SRI를 할 때 역시 그런 관점에 맞춘 기업 분석이 필요하다. SR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관투자자나 개인투자자들에게 사회적 리스크를 반영한 기업평가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대략 20개 정도의 평가회사가 활동중이다.가장 대표적 평가기관으로는 미국의 이노베스트,스위스의 지속가능자산운용(SAM), 독일의 외콤(Oekom)을 꼽을 수 있다.

1.2.4.1 이노베스트, 환경적 요소 제일 중요시

투자자들이 밀집한 뉴욕에 근거지를 둔 이노베스트 www.innovestgroup.com는 평가작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이노베스트는 무디스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같이 기업을 평가해 순위와 등급을 매긴다.하지만 기업을 평가하는 관점이 기업이 처한 환경적 위험과 기업이 그 위험을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것이 무디스나 S&P와 다른 점이다.

이노베스트의 평가 작업은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말자”는 식의 도덕적 접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투자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전통적으로 기업의 주요 평가항목으로 여겨졌던 재무 성과는 실제 기업가치의 약 15%만을 나타낸다는 게 이노베스트의 시각이다.

나머지 85%의 가치는 숨겨져 있는데,그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이노베스트 평가방법론의 출발점이다.숨겨진 가치에는 환경적 요소,인적 자원,주주 권리실현,지속가능한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경영방법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이런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보고 투자해야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이 가운데서 이노베스트는 환경적 요소를 첫번째 평가 요소로 다루고 있다.

이노베스트는 실제 리서치를 통해 환경적 요소를 잘 관리하는 기업이 그 외의 기업활동도 잘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발견했다고 한다.1997년 처음 작업에서는 S&P 500 기업들로 테스트를 했는데,환경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들의 수익률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1% 이상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이 수익률 차이는 해를 넘길수록 점점 더 벌어졌다.

이노베스트의 평가방법은 외형적으로 다른 신용평가기관들과 비슷하다. 60개 항목에서 점수를 매긴 뒤 합산하고,총점을 기준으로 AAA에서 CCC까지 등급을 매긴다.60개의 항목은 크게 세갈래로 분류된다.첫번째 갈래에서는 그 기업이 속한 산업에서 처할 수 있는 환경 관련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한다.두번째 갈래에서는 기업이 자신의 환경 관련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본다.여기서는 기업의 환경관리 시스템이나 자체 감사 기능,그리고 그런 환경적 사안을 누구에게 최종 보고하는가 등을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삼고 있다.세번째 갈래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환경 관련 위험을 얼마나 이윤의 기회로 삼고 있는지를 평가한다.환경 관련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또는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했는지 등이 주요 평가항목이 된다.

이노베스트 방법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산업별로 나누어서 비교를 한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화학산업은 공해물질을 많이 배출한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그 기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이노베스트는 환경 관련 위험이 높아도 그에 대한 대처를 잘하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따라서 똑같은 환경 위험을 가진 같은 산업군에서 좀더 기업활동을 잘하는 기업을 찾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현재 이노베스트는 세계적으로 환경과 관련이 높은 25개 산업군,1600개 기업에 대해서 보고서를 만든다.하나의 산업군에 대한 보고서에는 해당 산업에 대한 환경 분석과 함께 그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각 평가 항목에 대한 배점과 분석이 함께 담겨져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에 퍼져 있는 기관투자가들에게 제공한다.자기 기업의 분석을 의뢰한 해당 기업에 팔기도 있다.현재 ABP(네덜란드 펜션펀드)와 미국의 캘퍼스와 같은 굵직굵직한 기관 펀드를 비롯해 록펠러,다이와증권 등 40여개가 넘는 세계 유수 투자기관과 컨설팅회사,기업들이 이노베스트의 고객들이다.특히 엔론과 타이코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는 고객들의 의뢰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재무정보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좀더 다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보고 싶어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노베스트는 이제까지 환경적 요소에만 초점을 맞춰 기업을 평가해왔지만, 분석틀을 사회 문제로 확대해나갈 계획도 있다.ABP의 의뢰로 6개월 전부터 기업지배구조,노사관계,제3세계 시장에서의 노동문제,인적 자원문제 등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마케팅 담당자 피터 윌크스는 “결국 어떤 기업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기업, 어떤 투자자든지 모두 고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1.2.4.2 SAM, 리서치 외에 직접 자산 운용도

95년 설립된 SAM은 현재 스위스 취리히 본부를 중심으로 미국, 호주에 사무소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평가사업을 담당하는 리서치부문과 리서치부문의 결과를 바탕으로 직접 자산을 운용하는 자산운용부문으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다른 평가회사들이 평가사업 수수료를 받는 것과는 달리 직접 자산을 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특히 다우존스와 공동으로 ‘다우존스지속가능지수’(DJSI)를 만들어 주요 펀드들에게 사용료를 받고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14개국 40개 펀드가 이 지수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SAM 평가모델에서도 이노베스트와 비슷하게 ‘특정산업에서 최고’를 꼽는 데 주력한다.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산업이라도 해당기업이 얼마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지를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바르카비 이사는 “예를 들면 앞으로 10년 뒤까지 이어질 경제·사회·환경적 흐름에 신기술이나 사회적 가치 확산을 통해 잘 준비하고 있느냐를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SAM은 59개 산업부문을 대상으로 전세계 2500여개 기업을 선정해 질문서를 발송하고 1차 분석 작업을 진행한다.이런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300여개 주요 기업과 200개 중소기업을 추려내서 평가보고서를 낸다.이 가운데 300여개 주요 기업은 DJSI에 편입한다.평가항목은 해당산업의 특징적 잣대를 40%,보편적 평가기준을 60% 적용한다.

1.2.4.3 외콤, 30여개국 대상 평가작업도 진행

독일 뮌헨의 외콤은 89년 출판사로 출발했다. 93년부터 주로 환경분야를 중심으로 기업평가를 수행했고,94년 과 공동으로 기업평가사업을 진행하면서 성장이 시작됐다.외콤은 기업의 사회책임 평가뿐 아니라,30여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평가작업도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또 이노베스트와 같이 특정기업이 해당 산업에서 차지하는 순위를 구체적 ‘사회책임등급’으로 표시한다.

외콤은 현재 매년 세계 31개국의 25개 산업분야에서 800개 기업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데,이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주요 투자자에게 제공한다.800개 기업 가운데 600개는 25개 산업별로 세계 주요기업을 망라하고,나머지 200개는 신기술 개발하는 중소기업과 신설기업에 배정한다.외콤 로베르트 하슬러 대표는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 책임 기업들 발굴하는 계기로, 일종의 ‘사회적 벤처캐피털’이 싹틀 수 있는 토대”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자동차 및 통신분야 한국 주요기업들 평가작업을 진행중인데, 이들 기업은 특히 투명성부문에서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들 평가사는 형식상 경쟁관계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SRI를 세계 금융시장에 더 널리 퍼뜨려야 하는 전선에 선 동반자이기도 하다. SAM의 리서치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알렉산더 바르카비 이사는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평가기관들의 방법론상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장기적으로는 이들 사이에 경쟁관계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당분간은 모두 함께 SRI 영향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1.3 # 연금펀드 SRI로 일보 전진

“2000년 7월3일을 영원히 기억하라. 이날은 바로 영국 SRI 역사에서 한획을 그은 날이다.”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에서 불고 있는 SRI 바람을 최근 출간된 'SRI:글로벌 혁명'이란 책에 고스란히 담아낸 영국 출신의 펀드매니저 러셀 스팍스는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영국 사회투자포럼(UKSIF)의 SRI 프로젝트팀장을 맡고 있는 헬렌 바네스도 이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이날을 계기로 영국에서 SRI는 분명히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모두들 이 날이 영국에서 SRI 얘기를 꺼내는 첫단추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도대체 이날 영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비밀은 꼬박 1년 전인 1999년 7월1일 의회를 통과한 연금법(Pensions Act) 개정안이 이날부터 마침내 효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잠시 세월을 거슬러 떠나보자. 95년 제정된 영국 연금법(제35조)에는 모든 민간연금펀드 운용 주체가 이른바 ‘투자원칙선언’(SIP)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규정이 담겨 있었다. SIP란 말하자면 특정펀드를 운용하는 대원칙이나 철학이 담긴 기본 밑그림쯤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런데 99년 개정안에 이르러 ‘자그마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SIP가 좀더 구체적 내용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이제 민간연금펀드를 운용하는 모든 주체들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사회·환경·경제의 세 요소를 함께 고려할 뿐 아니라, 주주로서의 권리를 성실하게 이행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다. 이를 두고 스팍스는 “단 50개에 불과한 단어가 영국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까지 말한다.

SRI와 관련한 첫 제도화 사례로 받아들여지는 이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모든게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 사회투자포럼의 헬렌 바네스는 특히 “영국 연금펀드협회(NAPF)의 반발이 무척 컸다”고 회고했다. NAPF는 기업연금, 공무원연금 등 영국 내 700만 종업원과 400만 퇴직자를 아우르는 거대조직이다. 이 협회 산하의 펀드자산만 합쳐도 7000억 파운드에 이른다. 당시 이들 연금펀드와 연결되어 있던 펀드매니저들은 SRI 관련 규정이 자칫 수익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스팍스의 말을 빌리면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셈이다. 하지만 의회내 각 정당을 아우르는 ‘SRI 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비로소 논의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1.3.1 “사회·환경·경제 고려하고, 주주 권리 성실히 이행”

물론 이 규정은 어디까지나 공시(disclosure)의 의무를 나타낼 뿐, 실행의 의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연금펀드를 반드시 SRI 원칙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자그마한 변화가 가져온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주주책임연구센터(IRRC) 런던본부의 데이비드 단도 대표는 “이 규정으로 인해 그간 일부 소수집단의 움직임으로 비춰지던 SRI가 영국 금융의 메인스트림 대열에 끼어들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때까지 SRI가 주로 일반투자자나 자선펀드만의 관심거리였다면, 이제 메인스트림 기관 투자자들의 촉수에 좀더 분명하게 걸려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각종 연금펀드들이 앞을 다퉈 SRI 대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은 물론 주요 서구국가들에서 연금펀드는 이미 SRI를 떠받치는 든든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2002년 현재 금융시장을 무대로 투자활동에 참여하는 연금펀드의 자산총액은 전세계적으로 대략 15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99년을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세계 300대 연금펀드의 자산총액만 5조2천억달러 규모다. 예컨대 영국 시장에서 연금펀드가 차지하는 몫은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35%에 이른다. 만일 이 돈이 단기적 수익성만을 좇는 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회적 위험’을 감안한 지속가능성이라는 잣대에 눈을 뜰 경우, SRI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게 틀림없다.

영국에서 비교적 일찍부터 이런 흐름에 뛰어든 연금펀드로는 230억파운드 규모의 브리티시텔레콤(BT) 기업연금이나 220억파운드 규모의 대학교원연금(USS)을 꼽을 수 있다. USS의 경우 3500명에 이르는 개인들과 대학교원협회 등이 나서 SRI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금펀드 가맹자들의 노력이 방향전환에 미온적이던 펀드매니저들의 마음을 돌려 놓은 사례로 꼽히는 탓이다. 지방공무원연금(LAPF)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각 지방정부가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의 비전으로 제시한 ‘로컬어젠더21’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방편으로 지방공무원연금은 SRI라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편, 영국내 연금펀드의 운용실태를 연구하는 프로젝트 ‘저스트펜션’(JustPension)의 롭 캐트리지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연금펀드로 하여금 SRI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사실의 의미를 단순히 SRI가 메인스트림 영역에서 한자리를 차지했게 됐다는 식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무게중심을 다른 곳에 두는 편이다. “서구사회에서 연기금은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말 그대로 메인스트림 투자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상대적으로 장기적 안목에 선 SRI가 부침이 심한 주식시장에서 매우 안정적 수익을 안겨다주는 열쇠라는 것 아닌가?” 예컨대 미국 엔론 사태 와중에 커다란 손실을 입은 ‘플로리다 퇴직연금’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말이다. 그는 “이 사건은 SRI에 담겨진 뜻을 연금펀드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단정했다.

1.3.2 엔론 사태 이후 관심 크게 늘어

이 말은 “영국의 뒤를 이어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이 잇달아 유사한 규정을 마련하거나 현재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도 SRI가 안정적 수익과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특히 엔론 사태 이후 각국의 퇴직연금펀드가 줄줄이 큰 타격을 입자 유럽의회 차원에서 SRI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부쩍 발걸음이 빨라진 것도 한번쯤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저스트펜션’이 자산총액 1700억 파운드 규모의 14개 연금펀드를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최근 연구결과는 설령 영국의 공시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더라도 SRI의 정착 가능성에 대해 당장 섣불리 큰 기대를 거는 건 무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SRI가 완전히 뿌리내리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이 연구작업에 참여한 펀드매니저 던컨 그린은 “특히 규모가 큰 연금펀드일수록 오히려 의결권 행사 등 주주로서 권리를 충실히 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SRI 가이드라인을 따르겠다는 투자원칙을 명시적으로 밝혔다고 하더라도, 막상 투자대상 기업에 대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주주책임연구센터 런던본부 데이비드 단도 대표의 생각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주주로서 기업경영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SRI 바람이 더욱 거세지는 것과 한데 맞물려 있다.” “아마 무게중심은 투자원칙을 확립하는 것에서 보다 많은 투자를 실제로 실행시키기 위한 정교한 틀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던컨 그린의 말에는 이제 SRI 바람이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고민과 열정이 묻어나온다.

1.4 # 자본주의 유토피아를 일군다.

  지난해 초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였다.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이 대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일본에서는 니코자산운용에서 하는 에코펀드라는 게 화제라던데, 우리도 그런 걸 한번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당시 삼성투신운용 사장이었던 황영기 현 삼성증권 사장은 새로운 펀드라는 말에 바짝 긴장했다. “그게 어떤 겁니까?” “환경친화적 기업에 투자를 하는 펀드래요. 그런데 그게 수익률도 높고 의미도 좋고 그래서 인기가 높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우리도 한번 만들어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인 삼성투신운용의 에코펀드는 이런 ‘갑작스러운’ 탄생 배경에서 태어났다. 황 사장은 당장 내려와 직원에게 에코펀드를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책임을 맡은 직원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개념의 펀드가 소개된 적이 도통 없었으니 부딪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떤 기준으로 환경친화적 기업을 가려낼지, 그런 기업을 고른다 하더라도 펀드에 얼마나 편입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에코펀드 준비는 시작됐다. 이윽고 6개월 뒤인 2001년 8월, 에코펀드는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그러나 출발이 쉽지 않았던 에코펀드엔 뒷심도 그다지 붙지 않았다. 펀드를 조성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어렵사리 모았던 투자금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그게 SRI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 정도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만들었지만 볼수록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그런 걸 받아들이기엔 아직 우리나라 투자토양이 척박했던 것 같아요. ” 삼성투신운용 관계자들은 에코펀드 이야기를 꺼내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딱히 수익률이 나빠서라기보다는 투자자들이 꼭 에코펀드에 투자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외면당했다는 사실이 담당자들을 더 답답하게 했다.

1.4.1 SRI를 위한 국내 토양, 아직은 척박

이 정도가 현재 우리나라의 SRI에 대한 인식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직 어떤 가능성도 제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흔히 SRI는 사회를 선하게 바꾸면서도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SRI가 투자자들의 눈을 확 끌 만한 수익률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일본에서 에코펀드가 투자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대만에서 최초의 SRI펀드인 광화펀드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대만 뮤추얼펀드 가운데 수익률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초기에 자리를 잡을 때에는 일단 수익률로 승부를 보았다는 이야기다.

SRI가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줄 만한 계기도 없었다. 서구에서 SRI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기업의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시각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시각이 힘을 얻으려면 적어도 한가지는 검증을 거쳤어야 한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때 기존 시각에서 볼 때와는 달리 굉장히 위험한 기업이라거나, 또는 굉장히 훌륭한 기업이더라는 식의 검증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선 그런 검증의 기회가 없었다. “펀드에 편입된 기업 가운데 하나가 매우 반환경적 행위를 해서 펀드에서 과감히 제외하는 걸 보였다면 좀더 펀드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삼성투신운용 허용 애널리스트는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마치 심각한 컴퓨터 바이러스가 떠돈 후에야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또 너무나 단기 투자 위주로 투자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SRI는 성격상 좋은 기업의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해 높은 수익을 거두는 투자기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펀드에 들어온 자금이 웬만해선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빠져 나간다. 수익이 안 나면 바로 자금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탓이다. 특히 SRI 투자와 가장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는 정부기관의 자금이 장기적이기는커녕 더 단기적이라는 것은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달 단위로 수익률을 비교해 성적이 나쁘면 바로 펀드를 갈아치우곤 합니다. 그러니 정부 자금일수록 더 단기 성과에 목을 매지요.” 펀드 매니저들은 일단 정부부터 투자를 장기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자금의 단기화 성향을 바꾸기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설령 SRI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서는 투자 기업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들이 아직도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각종 잣대로 기업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인터넷 홈페이지엔 주주나 평가기관에서 필요한 정보는 없고 간단한 회사 소개나 상품정보만 있을 뿐이더군요.” 세계적 투자자문사인 ISS의 아시아 담당 마크 골드스타인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한국 기업에서 자료를 얻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교보투신운용에서는 SRI의 취지에 맞춰 여성고용평등펀드를 만들려 했지만 기업들이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4.2 개인 투자자 상대로 접근해 시장 열어야

그렇다면 한국은 영원히 SRI의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는 이야기일까. 우리보다 앞선 금융 선진국들의 예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에게도 처음 도입은 쉽지 않았고, 힘든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 이번 해외취재의 결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 SRI 전문 펀드인 도미니는 개인 투자자들을 주로 공략해 투자의 단기화와 함께 수익률에만 움직이는 기관 투자가들의 움직임에 맞서고 있었다. “우리 펀드를 필요로 하는 투자자들만으로도 충분히 펀드를 꾸려갈 수 있다. 수익률 1%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돈이 옳은 곳에 쓰이고 좋은 기업을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다. 이들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투자한다.” 도미니펀드의 창시자의 에이미 도미니는 펀드 가입자들의 이탈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미세스 그린펀드를 띄웠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많은 여성 투자자들이 모여들었다.

투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월가 여의도 금융권에도 그런 씨앗은 이미 잉태돼 있다. 해외 SRI의 동향을 추적하면서 문득 예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펀드매니저가 떠오른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때는 마침 우리나라의 대표적 카지노 업체인 K가 강원도 동강 상류지역에 초대형 골프장을 짓는다던 때였다. 동강 상류지역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라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 펀드매니저는 결연히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제 포트폴리오에서 K를 뺐습니다. 앞으로도 그곳엔 절대 투자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지금 당장 수익률을 조금 올릴지는 몰라도 그렇게 한치앞만 보는 기업은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SRI 관계자들은 지금 그의 확신을 ‘사실’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금융권의 언어로 바꾸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삼성투신운용의 에코펀드도 조만간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계획이다.

최근 미국의 투자전문지 '머니'는 SRI를 다룬 기사 ‘세상을 바꾸고 싶다’에서 SRI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사람이 이것을 선택한다면 성공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돈이 선택하는 것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안전한 투자를 돈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공할 것으로 본다.” 이미 월가의 투자금 가운데 8분의 1이 SRI에 투자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SRI는 아직 진행되고 있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돈의 힘으로 세상을 선하게 바꿀 수 있다는 ‘자본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강할 뿐이었다.

1.4.3 # 관련기사1.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SRI의 조화

우리나라에선 SRI가 소개된 역사도 짧지만 워낙 SRI의 개념이 넓어 현재 관심있는 단체들이 각각 부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주주권리, 환경, 지역사회, 노동·인권·사회 등 주제별로 각개 약진하고 있는 셈이다.

워낙 뿌리가 얕아 큰 대립지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무게중심을 두는 방향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특히 주주권리 강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미묘한 시각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 주제가 결국은 같은 방향에 놓여 있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주의 권리를 강조하다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키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주주들의 권리를 제자리에 놓는 일만 하는 것도 힘에 부치니까요.” 기업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주영 변호사는 그런 의미에서 SRI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주주의 권리강화와 SRI를 한방향에서 진행하는 것을 많이 관찰할 수 있다. 미국의 도미니 펀드는 SRI를 완성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주주들이 직접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미니 펀드는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이 사회에 반하는 경영을 펼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한다. 주주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을 대행하는 인스티튜셔널 셰어홀더 서비스(ISS)는 거꾸로다. ISS는 주주들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세부 원칙을 대부분 노동자의 권익과 지역사회복지에 기여하는 내용으로 채우고 있다. 모두 기업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즉 많은 주주들의 것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이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기업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외에서도 이 두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주장이 많다.

1.4.4 # 관련기사2. 인터뷰 - 존 루콤닉 / GMI 파트너

“한국기업, 주주들 권리·조정 무시”

기업지배구조 분야의 권위자인 존 루콤닉은 기관 투자자들을 자문하는 싱클레어캐피털의 파트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KT의 지배구조에 대한 자문을 하기도 했다. 존 루콤닉은 최근 GMI(Governance Metrics International) www.governancemetrics.com라는 기관을 만들어 전세계 주요 기업들에 대한 지배구조 평가를 하고 있다. 존 루콤닉 역시 “SRI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마치 벤다이어그램에서 두개의 집합이 약간씩 걸쳐져 있는 것과 같다”며 두 주제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GMI의 활동에 대해 설명해달라.

GMI의 목표는 기업의 위험을 밝혀 투자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업지배구조 수준이 그런 위험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고 본다. 지난 2년간 그 기준으로 기업들의 순위를 내는 작업을 해왔고 이제 성과가 나왔다.

기업들의 순위를 내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사회의 책임성, 재무 상태 공개와 내부 통제 시스템, 주주권리, 경영진의 보수 수준, 주주를 조정할 수 있는지 여부, 투명성, 그리고 SRI 문제 등 모두 7개의 큰 주제 아래 600가지 이상의 질문을 가지고 순위를 낸다. 올해 말까지 1천개 회사의 순위를 낼 계획이고 2003년까지 2천개 회사의 순위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전반적 지배구조 상태는 어떤가.

기업들마다 너무나 케이스가 다양해서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매우 빨리 변하고 있고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재벌에 대해서는 장단점이 있다. 주주들의 의견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주 조정을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흥미로운 것은 그 두가지 상황을 모두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지배구조가 반드시 잘 갖춰져야 하는 이유는.

기업지배구조가 좋을 때에는 비용절감을 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그 기업에 대한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면 위험성이 더 높아지고 위험성이 높아지면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1.4.5 # 관련기사3. 보고서, 기업 정보 공개 창구 역할

SRI가 자리잡기 위해선 기업들이 다양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각 기관들마다 각각 필요한 정보를 기업에게 일일이 받아야 한다면 그것 또한 비효율이 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선 일관된 양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SRI가 자리를 잡기 위해선 보고서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기업이 매년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이해 관계자에게 배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기업 회계기준에 맞춰 재무적 성과에 대한 재무제표를 작성해 매년 사업보고를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보고서에도 여러가지 양식이 있을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지속가능성보고서를 가장 많이 작성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환경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활성화돼 있다. 프랑스는 1979년부터 기업들이 사회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보고서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제안한 지속가능성보고서다. 지속가능성보고서는 경제, 환경, 사회, 인권, 노동, 제조물책임 등을 포괄한 형태로 가장 발달한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책임투자운동 최정철 박사는 “가장 발달된 형태의 보고서를 도입해 선진국들이 거친 시행착오를 줄여야 그나마 뒤떨어진 수준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보고서들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에게 투자분석 자료로 이용될 수 있고, SRI펀드의 기초자료도 활용될 수 있다.

1.4.6 # 관련기사4. 국내 실무 전문가 초청 좌담회

'Economy21'은 4회에 걸친 사회책임투자(SRI) 해외기획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국내 실무 전문가 4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재무 성과로 계량화하는 평가작업이 지금 단계에서 SRI를 활성화하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이 사업보고서를 내듯이 ‘사회보고서’나 ‘지속가능보고서’ 형태의 통합된 사회적 성과보고서를 내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임대웅(에코프론티어 에코시스템연구소 책임연구원)

 

임창희(LG화학 환경안전팀장·부장)

 

최정철(사회책임투자운동 운영위원·신화컨설팅 대표·경제학박사)

 

허용(삼성투신운용 리서치팀 선임)

 

사회 최우성('Economy21' 편집장 직무대행)

최우성 'Economy21'에 실린 사회책임투자(SRI) 기획연재 기사에 대한 독후감부터 들어보자.

최정철 일단 기사 보고 매우 반가웠다. 새롭고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그동안 SRI와 관련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해왔는데, 이런 얘기를 언론에서 다룰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찰나에 기사가 나왔다.

임대웅 지난 1996년, 현재 아시아SRI협회장인 테사 테넌트가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한국에 왔었다. 당시 그는 한 SRI펀드의 아시아 담당이었다. 그런데 결국 투자를 못하고 갔다. 기업들이 환경보고서 등 사회책임성 평가자료를 만들고 있지 않아서 평가가 불가능해서였다. 결국 테넌트는 그 돈을 들고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가서 투자했다. 그 뒤 6년이 지났는데, 언론에서 다룰 만큼 논의가 진전된 것 같아 기쁘다.

허용 사실 삼성투신운용은 SRI펀드를 사실상 국내 최초로 출범시켰다. 2001년 8월에 처음 에코펀드가 출범했는데, 준비기간이 6개월 정도 됐다. 당시 펀드 출범을 준비하면서 국내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금융밖에 모르니 환경 전문가들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지 못했다. 새로운 개념이라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1년쯤 되니까 반향이 좀 생기는 것 같다. 학생들이나 일반 투자자들도 문의를 해오곤 한다. 'Economy21' 시리즈가 대중적으로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것 같다.

최우성 사실 SRI의 정의조차도 아직 분명하게 정리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SRI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한국에서는 시기상조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허용 투신운용사는 어차피 수익률 관점에서 SRI를 본다. 그런 부분에서 환경 전문가들과 관점이 조금 다르다. 우리가 보기에 SRI라는 건 결국 일종의 역발상 투자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은 사회책임 관련 투자가, 결국 발생가능한 큰 비용을 미리 막는 역할을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금융과 환경이 접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우리가 운용중인 에코펀드도 SRI의 일부다. 직접 운용해보니 관건은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더라. 현재 기업의 환경 관련 평가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중인데, 앞으로는 전문 평가사에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평가와 적용이 활발해져야 논의가 발전될 거다. 아직은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최정철 SRI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구에서는 ‘기업의 사회 책임’이라는 30년 역사를 가진 개념과 맞물려 있다. 한국에서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가 '한겨레'와 함께 10년 전부터 포괄적 사회책임지표를 만들어 ‘경제정의기업상’을 주고 있다. 그런데 서구에서 SRI가 주류 투자방법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는 지금, 한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책임 문제를 아직도 투자에 접목하지 못하고 있다. 시기상조라는 말은 그러니 어불성설이다. 경제규모나 인식수준을 고려할 때,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SRI에 대해서 ‘재무적인 것’을 보조하는 부수적 기업평가지표라는 오해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나는 SRI 방식이야말로 기업의 본질적 미래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대기업들조차 IMF 뒤 기업 내부적으로 사업성 평가를 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과거 재무적으로만 사업성과를 평가하던 것에서, 내부 프로세스와 고객만족, 조직의 성장과 학습 등 두가지 가치를 덧붙인다. 재무적 성과만으로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지 못한다는 반성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SRI는 여기에 기업내의 지적 자산이나 사회적 성과를 추가해야 한다는 논의다. 환경만 얘기하다 보니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종업원 등 인적자산 가치, 기업지배구조 등을 기업가치평가에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빼고 나면, 결국 본질에서 벗어난 투자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임대웅 처음 SRI에 접근할 때 환경보고서와 관련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기업의 환경 보고와 관련해서 세계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글래스고대학의 교수를 직접 찾아갔었다. 그런데 그의 첫마디는 ‘루소를 아느냐’는 말이었다. SRI의 기저에는 루소의 사회계약설이 있다는 것이다. 즉 기업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가 계약을 맺고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철학에서 SRI가 출발한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SRI의 또 다른 이슈가 된다. 지속가능성을 따져볼 때 재무적 부문이 있을 테고 사회적 부문이 있을 텐데, 이 가운데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부문을 투자판단 때 감안하는 게 SRI다. 이 두가지를 요약하면, 결국 SRI란 단지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기업에 투자하자는 게 아니고, 기업가치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제대로 측정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외국 환경신용평가 회사들은 그래서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기업가치’ 평가사라고 부른다. 이른바 글로벌스탠더드란 게 있고 한번 사고가 터지면 기업가치에 바로 반영되는 환경 영역에서 시작해서, 사회문제, 그리고 지적재산으로 발전하더라.

임창희 기업쪽에서 보면 현재는 환경안전과 관련한 기업활동을 사회적 책임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기업들은 이미 환경안전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언젠가 큰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인식 아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환경안전 투자에 나서고 있다. 화학산업의 경우는 환경안전 측면에서 이미지가 굉장히 좋지 않다. 전체 산업을 비교했을 때, 담배산업을 빼고는 가장 인식이 나쁘지 않을까.(웃음) ‘화학공장’하면 우선 공해부터 생각나지 않는가. 그래서 화학산업에서는 ‘책임활동’(RC·Responsible Care)이라고 해서 환경안전 측면의 활동에 함께 나서고 있다. 생존차원에서 환경 관련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된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3년 전부터 RC 활동을 시작했다. 내용은 주로 종업원과 기업 주변 지역주민을 환경문제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RC 보고서를 내고, 좀더 선진기업에서는 환경안전 문제에다 재무제표를 연결시켜 지속가능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내기도 한다. 지난해까지는 주로 RC 아니면 환경보고서였는데 올해부터 지속가능보고서라는 제목이 등장하더라.

최정철 재무성과는 측정이 쉽고 환경이나 사회적 성과는 측정이 어렵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환경이나 사회적 성과도 충분히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이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 게 문제이지, 일상적 기업활동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매우 풍부하다. 유럽의 사회보고서만 봐도 알 수 있다. 임금이나 노동시간, 장애인 고용비율 등이 객관적 지표가 아니란 말인가. 환경만 놓고 본다면 에너지 사용량이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 측정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이미 기업 내부에서는 이런 수치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단지 투자지표로 가공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임창희 맞는 얘기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환경성과는 측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측정의 기준, 즉 표준화가 문제일 뿐이다. 표준화만 된다면 재무제표 수준까지도 데이터가 나올 수 있다. 이미 최근에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사회에 공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다. 정성적으로만 경영진을 설득해서는 설득이 되지 않으니까, 각종 지표를 동원해 환경안전투자의 효과를 재무적 성과와 연결시켜서 설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객관화 정량화 작업을 기업에서도 많이 하고 있다. 이를 환경보고서와 연결시킬 수도 있고, 기업의 리스크 평가와 연결시키거나, 기업가치와 연결시켜서 주가나 이자율에 영향을 끼치게 할 수도 있다. 아직 국내 경영진들은 환경안전·사회문제에 관심이 적은 편이지만, 이를 주가나 이자율에 연결시키면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다.

최정철 펀드매니저들이 사회적 성과 자료를 기업에 요구하지 않으니까 투자 이슈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투자자들이 요구했으니까 SRI가 일반화된 거다. 평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허용 기존 펀드도 물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했다. 단지 그게 펀드매니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했던 것이다. 재무적 면은 수치로 객관화해서 보고, 기업의 지속가능성부문은 주관적으로 해석했다. 이걸 객관화하는 게 SRI라고 본다. 어떻든 아직은 재무적 성과가 더 객관적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 사회인식이다. 사회적 성과 관련 데이터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평가방법만 구체화되고 모아진다면 SRI 논의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본다. 평가가 아직은 추상적이고 거칠다.

최정철 명확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느냐와 평가방법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는 두가지의 다른 문제로 보는 게 좋겠다.

임대웅 말씀하신 대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노동·환경 등 사회적 성과에 대한 정보를 금융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주는 것이다. 우리 같은 평가기관이나 학계에서 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이 그거라고 본다.

임창희 재무적 성과와 연결시키는 것은 환경안전투자와 기업의 재무적 이익이 단기적으로 반비례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최정철 IMF 이후 대기업들은 기업 내부 사업평가를 할 때는 이미 재무적 성과 이외의 부문을 평가한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기업들이 시장에다 그런 자료를 제공하고 사회적 성과 평가를 받기는 꺼리고 있다.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옳다. 또 증권업계에서도 이제 재무인 요인과 다른 요인을 명확히 구분해 기업가치 평가에 반영하는 게 맞다.

최우성 국내에서 SRI라는 게 한단계 더 성숙할 수 있으려면 일종의 인프라가 필요할 것 같다. 제도적으로 국가가 기업에 사회보고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인프라가 시급한지 얘기해보자.

허용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SRI가 지향하는 가치들이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로 모아질 때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본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직은 일반인들이 SRI를 이해하지 못한다. 재무적 지표 개념조차도 일반 투자자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운데, SRI는 이해시키기 더 어렵지 않느냐. 우량기업에만 투자하는 우리 에코펀드만 해도, 코스닥의 자그마한 환경 관련 기업들에만 투자하는 펀드 아니냐는 오해가 있을 정도다. 결국 이걸 해야 사회와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정부도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최우성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평가한다고 할 때, 기업들이 자료공개를 잘 하지 않는 것도 문제 아닌가.

임창희 기업이 숨기려고 한다는 것은 오해다. 사실 주요 기업들은 분위기만 되면 충분히 자료를 내놓을 것이다. 단지 자료가 잘못 인용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꺼리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환경 관련 투자 데이터를 달라고 하면, 무엇을 환경투자로 볼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자료제공에 주저하게 된다. 이미 필요한 투자를 다 마쳐서 올해 수치가 작은 기업도 있을 것이고, 환경투자의 정의를 다른 기업보다 좁게 내리고 있어서 수치가 작은 기업도 있을 것이다. 이런 수치에 대해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개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가이드라인만 명확해지면 다들 받아들일 것이다.

최정철 어쩌면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거기에 못미치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웃음)

최우성 SRI가 장기투자라는 점에서 보면 연기금과 잘 어울리는 것 아니냐.

최정철 이미 영국이 2000년에 연기금의 SRI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했다. 연기금의 투자는 당연히 SR I관점에서 하는 게 옳다. 도입예정인 기업연금도 마찬가지다.

임대웅 89년에 유럽에서 처음 환경보고서가 나오고, 90년대 미국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장기투자와 관련이 있다. 장기투자자금이 주식시장의 30~40%까지 가면서 이런 움직임이 나온 것이다. 10년, 20년을 묻어두는 초장기투자자들이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SRI가 활성화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연기금이 나선다면 사회 분위기는 탄력을 받을 거라고 본다.

허용 사실 펀드매니저들도 장기투자하고 싶다. SRI 개념을 갖지 않은 펀드매니저라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연기금까지를 포함해 모든 투자자들이 단기투자에 나서고 있는 게 문제다. 단기성과가 나지 않으면 여차하면 돈을 빼내버린다. 이게 운용사들의 고민이다. 연기금의 장기투자자화를 의미하는 SRI투자 법제화는 이런 의미에서도 증권업계의 환영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임대웅 어느 대기업 계열사를 갔는데, 국제 사회보고서 관련 NGO인 GRI 기준에 맞춘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더라. 왜 그러냐고 했더니 영국, 독일 등의 지사에서 자금이 필요해 금융사에 가면 꼭 보고서를 내놓으라고 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준비한다고 하더라.

허용 사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여기에 대한 보완책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최정철 SRI가 말씀처럼 처음에는 대기업들이 해외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도입됐다. 그런데 이제 국내 자금쪽으로 시각을 돌릴 때가 아닌가 싶다. 국내 자금이라면 중소기업을 소외시키지 않고도 SRI에 나설 수 있다. 사회책임투자운동은 130개 우량기업을 평가해 여성고용평등펀드를 만들려고 준비중이다. 그런데 여성 고용 비율을 평가하다 보니 꼭 대기업만 유리하지는 않더라. 여성관리직 비율이 높은 중견기업이 의외로 있더라.

최우성 법인자금에 집착하지 말고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대대적으로 나서보면 어떤가.

허용 최근 삼성투신운용은 적립식 펀드를 내놓았다. 적금처럼 정기적으로 돈을 집어넣는 펀드다. 이건 노후를 대비한 매우 장기적 펀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된다면 SRI는 긍정적 영향을 받을 거다. 장기투자가 대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 관련기관들을 포함해 모든 자금이 너무나 단기적인 것도 사실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지만, 아직은 더디게 보인다.

1.4.7 # 관련기사5. SRI의 3대 축, 펀드운용사-평가사-기업

사회책임투자(SRI)는 펀드 운용사, 평가사, 기업의 3대 축을 중심으로 정보와 투자자금이 순환되면서 이뤄진다.

우선 펀드 운용사는 사회적 성과가 높은 기업을 선별하고 SRI 원칙에 따라 투자하는 게 임무다. 운용사는 개인 투자자·연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SRI 원칙에 따라 투자하게 된다. 따로 SRI 명목의 펀드를 만들어 이 펀드로 자금을 끌어올 수도 있고, 운용하는 펀드 전체에 SRI 원칙을 적용하면서 이를 이용해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ㄱ투신운용은 사회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만 투자합니다’ 같은 식으로 말이다.

평가사는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기업가치에 반영하는 평가틀을 만들고 여기에 맞춰 기업가치를 가려낸다. 펀드 운용사들이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평가대상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계량화해 제공한다. 운용사들은 평가사가 제공한 SRI 기준 기업가치평가와 전통적 기업 재무성과 평가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에 나선다.

투자대상 기업은 사회보고서, 환경보고서 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성과를 시장에 알리게 된다. 이 보고서들은 또 평가사들의 기업 사회적 성과 평가를 위한 기초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기업들의 적극적으로 사회적 성과 투자홍보(IR)에 나서는 것도 SRI 활성화에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1.5 # [기자수첩] SRI, 능력이 안 되면 과외라도

“한국에서 펀드 운용사들에게 사회책임투자(SRI)를 하라고 말하는 것은 덧셈도 못하는 유치원생에게 미분ㆍ적분같은 고등수학을 가르치라는 얘기나 마찬가집니다.” 한 투신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대뜸 이런 회의론을 먼저 꺼냈다. 가뜩이나 ‘정통’ 주식형 펀드를 갖고도 장사하기 힘든 판에, 사회책임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주렁주렁 매단 ‘특수한’ 주식형 펀드를 갖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겠느냐는 게 그의 얘기였다.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한국 금융시장, 특히 간접투자시장은 매우 척박하다. 정부기관 자금이나 연기금같이 마땅히 장기투자에 나서야 할 투자 주체들도 3개월 단위로 투자수익률을 평가하면서 포트폴리오를 교체하는 단기투자를 일삼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개인 투자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초단기 투자자들이 돼버렸다. 오죽하면 ‘간접투자 단타매매’라는 신종 투자기법이 생겨날 정도였다. 펀드매니저들은 가치투자는커녕 단기 급등 종목을 찾아내기 위해 루머를 쫓아다니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5~10년 뒤를 내다보고 장기투자하라고, 그것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들에 투자해야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기업, 지속가능한 환경, 지속가능한 사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금융시장도 투자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거꾸로 이미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 기업과 시장이 지속가능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졌다.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유치원생에게 고등수학을 가르쳐야만 지구를 살릴 수 있다면, 입시제도를 바꾸고 과외를 시켜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시장 토양이 척박해 지속가능한 금융시장을 만들기 어렵다면, 국민의 돈으로 이뤄진 연기금이나 정부기관 자금이 먼저 나서서 거름을 주면서 기름지게 가꿔야 한다.

어쩌면 지금은 좋은 기회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오랜만에 ‘정신을 차리고’(?) 국민연금기금 투자기업 주주권 행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반드시 사회책임기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항목을 이 가이드라인에 넣어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차기정부 경제정책 공약에서도, 기업이 재무성과 보고서뿐만 아니라 사회·환경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성과를 공표하고,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에 나서도록 법제화하겠다는 약속을 집어넣어야 한다. 지금은 과외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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