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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8일 (화) 20:13 기준 최신판

최한기도 그의 책 기학에서 분류체계를 세웠다고 한다. 참고


이것은 문집에 실린 글들의 분류이다. 국역 점필재집에 실린 항목들을 두산 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으로 채워두었다.

1 설(說)[ | ]

구체적인 사물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서술하면서, 사리를 설명하여 나가는 문장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당나라 한유(韓愈)의 《사(師)의 설(說)》, 유종원(柳宗元)의 《뱀을 잡는 자(者)의 설(說)》, 송나라 소순(蘇洵)의 《이자(二子)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설(說)》과 같은 것이 있다.
이런 문장의 체제는 '논(論)'이라고 하는 의론문(議論文)과 큰 차이는 없으나, '논'은 정밀·명쾌를 주안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하여, '설'은 우의적(寓意的)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문체는 원래 역학(易學)의 설괘(說卦)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만 문학작품으로서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당나라 이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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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跋)[ | ]

서지학(書誌學) 용어로 단순히 발(跋)이라고도 한다. 또, 책의 진위(眞僞)를 판정하고 증명을 위한 사항을 적는 일도 있어, 발문은 그 책의 계통 ·연대 등을 판단하고, 진위를 감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꼬리말 ·뒷말 ·발사(跋辭) ·후기 등 같은 뜻의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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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게 이런것을 장르로 삼다니. 흠.

3 후(後)[ | ]

후기인 모양이다. 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

4 기(記)[ | ]

잡기(雜記)라고도 한다. 기(記)란 본래 기술(記述)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문장 형식으로는 여러 가지 사물에 관해 기술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기술하는 주제가 개인의 전기나 정치와 관계가 있는 중요한 기록이면 기라고 하지 않는다. 기의 주제 가운데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① 건조물(建造物):이를테면 한유(韓愈)의 《새로 등왕각(王閣)을 수축(修築)하는 기(記)》, 증공(曾鞏)의 《의황현학(宜黃縣學)의 기(記)》 등. ② 산수(山水)의 유람:이를테면 유종원(柳宗元)의 《황계유람기(黃溪遊覽記)》, 소식(蘇軾)의 《환산유람기(桓山遊覽記)》 등이다. 이 부류를 특히 유기(遊記)라 하며, 이런 것은 제법 장편의 기행문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③ 서화(書畵) ·기물(器物) 등:예를 들면 한유의 《화기(畵記)》, 구양 수(歐陽修)의 《인종어비백기(仁宗御飛白記)》 등이다.
기의 문장은 대부분 산문으로 쓰여지는데, 주제의 기술과 더불어 자기의 감정이나 주제와 관계가 있는 글로써 토론식으로 엮는 것이 보통이다. 개중에는 기라고 하면서도 비문의 문체로 썼거나, 또는 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기에 가까운 것도 있다. 당나라 중엽, 8세기로부터 9세기에 걸쳐 한유 ·유종원 등의 고문가(古文家)들이 다투어 썼으며, 본래의 기 외에 여러 저작물에도 그 이름을 붙였다. 이를테면, 강의의 기록인 《예기(禮記)》, 지방지(地方志)인 《풍토기(風土記)》 등이 그것이다. 당송(唐宋)의 문어체 소설로 사물을 주로 그린 작품의 제명에 《고경기(古鏡記)》 《회진기(會眞記)》 등이 있다. 또 희곡이나 소설로서 역시 사물을 주로 한 것에 《서상기(西廂記)》 《비파기(琵琶記)》 《서유기(西遊記)》 등이 있다. 명(明)나라의 희곡을 모은 《육십종곡(六十種曲)》 같은 것은 전부 기라는 제명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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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誌)[ | ]

국역 점필재집을 보니 지는 지리지의 준말처럼 보인다.

6 명(銘)[ | ]

원래는 정(鼎) ·이(彛) ·준(尊) ·반(盤) 등의 동기(銅器)에 새긴 글을 말하는데, 은(殷) ·주(周) 시대부터 비롯되었다. 정 ·이 ·준 ·반 등의 동기의 대부분은 어떤 사적(史蹟)을 기념하기 위해 주조된 보기(寶器)이므로, 명문(銘文)은 그 사적을 기록하고, 동시에 그 사적을 이룩한 사람의 공로를 찬양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중에는 잠언(箴言)의 경우처럼,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뜻을 담은 글도 있다. 은나라의 탕왕(湯王)이 목욕하는 반(盤)에 새겨두어 스스로를 경계한 《탕지반명(湯之盤銘)》이나 공자의 조부인 정고부(正考父)가 솥[鼎]에 새겼다고 하는 《정고부정명(正考父鼎銘)》 등이 그런 경우이다. 그런데 후대(後代)로 내려와서는 명문을 동기에 새기는 경우 이외에 진(晉)시대의 장재(張載)의 《일각명(閣銘)》처럼 돌에 새긴 것도 있고, 또 한(漢)시대의 최원(崔瑗)의 《좌우명(座右銘)》처럼 기물(器物)에 새기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쨌든 명은 원칙적으로 운문(韻文)으로 짓는 것이나 주(周)시대 이전의 것은 운법(韻法)이나 구법(句法)이 일정치 않다. 그러나 주 이후의 것은 1구 4언(一句四言)이고 격구압운(隔句押韻)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다. 명 중에서 공적을 찬양한 것으로서는 《사기(史記)》 중의 태산명(泰山銘) ·회계명(會稽銘) ·낭야대명(琅邪臺銘) ·지부명(之銘) ·갈석명(碣石銘) 등이 있다. 후한(後漢) 이후 죽은 자의공을 찬미하는 데 채용되어 비명(碑銘) ·묘명(墓銘) 등이 생겼는데, 한국에서도 이것을 본떠 비명 ·묘명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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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장르가 아니라 형태로군.

7 기행록[ | ]

8 유교(諭敎)[ | ]

왕 혹은 선왕이 내리는 교서를 말하는 것 같다. 말 자체로는 깨우치고 가르치다라는 말인데. 그런데 이게 왜 개인 문집에 들어있는거지? 대필했나? -_-

9 찬(贊)[ | ]

원래는 신명(神明)에게 바치는 글이었으나 후세에 변하여 잡찬(雜贊) ·애찬(哀贊) ·사찬(史贊) 등으로 나누어졌다. 잡찬은 인물 ·서화(書畵) ·문장 등에 대한 찬으로 대표적인 예는 족자나 액자로 된 회화 속에 쓰여진 시(詩) ·가(歌) ·문장 등이 있다. 애찬이란 남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덕을 찬양하는 글로서 한(漢)나라의 채옹(蔡邕)이 쓴 “의랑호공부인애찬(議郞胡公夫人哀贊)”은 유명하다. 사찬이란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을 비롯한 역대 사서의 책 끝에 그 책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포폄(褒貶:칭찬함과 나무람)을 적은 것이다. 한국도 예부터 많은 학자 ·지명인사들에 의한 여러 가지 찬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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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애책문(哀冊文)[ | ]

시책문(諡冊文)·옥책문(玉冊文)

문체(文體)의 하나로서 한(漢)나라 초기부터 행하여져, 위(魏) ·진(晉) 시대에 가장 발달하였다. 진나라 반악(瀋岳)의 , 송나라 안연년(顔延年)의 등은 유명하다. 당 ·송 이후로는 태자 ·제왕(諸王) ·대신(大臣) 등의 죽음에도 애책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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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문(祭文)[ | ]

애사(哀辭)

책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마 대상이 다를 것이다.

○ 사(辭)·의(擬)

12 부(賦)[ | ]

《시경》의 시를 수사상(修辭上) 분류한 것인데, 서정적(抒情的)인 것도 있으나 직서묘사(直敍描寫)의 서사(敍事)를 주로 하였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서 시작된 이래 하나의 형식으로 고정되어 내려왔는데, 한대(漢代)에는 대표적 미문(美文)의 형식으로 확립되었으며, 이후 육조(六朝:5∼6세기)에 이르는 동안 성행하였다. 《문선(文選)》에서는 부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경도(京都) ·교사(郊祀) ·경적(耕籍) ·전렵(獵) ·기행(紀行) ·유람(遊覽) ·궁전(宮殿) ·강해(江海) ·물색(物色) ·조수(鳥獸) ·지(志) ·애상(哀傷) ·논문(論文) ·음악(音樂) ·정(情)의 15종류로 나누고, 초사를 따로 소(騷)라 하였다. 시대적으로는 굴원 ·송옥(宋玉) 등의 부를 소부(騷賦)라 하여 앞에 서(序)가 있고, 뒤에 난사(亂辭)가 있다. 《순자(荀子)》 부편(賦篇)은 부의 시초로 대구(對句)를 근간(根幹)으로 하고, 혜(兮) ·이(而) 등의 조사(助詞)를 많이 붙이는 운문(韻文)으로 원래 읊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한부(漢賦)는 궁정(宮廷)문학으로서 사물(事物)을 화려하고 장대하게 직사(直寫)해서 국사(國事)를 찬송하여 읊었는데 이런 종류의 부를 사부(辭賦), 또는 고부(古賦)라 하였다. 위진(魏晉) 시대의 부는 개성적 ·서정적으로 변하여 음악과 같이 무형(無形)의 것도 소재(素材)로 삼았다. 남조(南朝)시대의 부는 묘사가 세밀해져서 귀족적 ·유희적(遊戱的)으로 변하여 신선미가 없어졌다.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부는 사구(辭句)를 장식하여 거의 대구에 사용하였는데, 이를 변부(賦), 또는 배부(俳賦)라 하였다.
수(隋) 및 당(唐) 초기의 부는 성률(聲律)의 규정이 엄격하고 압운(押韻)의 제한을 가한 율부(律賦)가 생기고 과거(科擧)에까지 부를 시험보게 되었으나 문학적 위치는 시(詩)에 뒤지고 말았는데, 이 시대의 부를 율부라 한다. 송대(宋代) 이후는 산문화(散文化)하여 문부(文賦)라 하는데, 청대(淸代) 강남(江南) 출신 문인들이 위진의 부풍(賦風)을 한때 재흥(再興)시키기도 하였다. 한국에도 일찍이 한학(漢學)의 발달로 부가 전래하여 고려시대부터 과거의 시험과목으로 지정되었으며, 문인들은 거의 부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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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書)[ | ]

서간문(書簡文)을 말한다. 원래 계(啓)·장(狀)·소(疏)·간(簡)·차(箚)·전(箋) 등을 포함한 뜻으로 사용하였다.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글을 통틀어서 서라고 하였으나, 후대에 와서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은 표(表)나 주(奏)라 하고,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것은 서라 하였다. 그뒤 보통 사람들과 주고받는 편지를 써라 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편지의 뜻으로 사용된 것은 진(秦)·한(漢)나라 때부터였다.
서의 종류는 다른 사람의 안부나 소식을 묻는 것, 다른 사람의 질문이나 문안에 대한 회신형식의 것, 서로 학문을 논한 것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성리학(性理學) 및 학문을 논한 서는 그 작자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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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序)[ | ]

서적에 관한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며 서서(書序)라고 한다. 원래는 권말(卷末)에 있었으나 점차 권두(卷頭)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권말에 있는 것을 후서(後序) 또는 발(跋)·발문(跋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시(毛詩)》(시경)의 대서(大序)·소서(小序), 《상서(尙書)》의 서(序)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친지(親知)와의 이별에 있어서 석별의 정을 서술한 것을 송서(送序)라고 한다.
당(唐)나라 때에는 자기의 소감을 서술하여 타인에게 보낸 증서(贈序)가 유행하였고, 명·청 시대에는 장수(長壽)를 축원하는 글을 쓴 수서(壽序)가 성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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