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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2일 (목) 03:28 기준 최신판

1 # Geogaddi[ | ]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 속에 얽혀 들어가는 경험이 시작된다. Geogaddi(무슨 뜻이냐고? Geo-Gad-di일까? 에이펙스 트윈의 읽을 수도 없는 곡 제목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양호한 편이다). 과거가 현재 속에 놓여있고(<Music Is Math>), <In A Beautiful Place Out In The Country>에 이어 또다시 헤븐스 게이트 사건이 언급되고(, 와코의 대참사, 데이빗 코레시와 아모 비숍 로덴. 한편으로는 찰스 맨슨이 언급되었다고도 하고), 역방향의 재생에서 정상적인 샘플링이 들려온다(이 경우는 이 앨범의 대부분의 트랙들에 해당된다). 보즈 오브 캐나다. 알고보니 그들은 우리 시대의 초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음악의 탁월한 힘이 실현될 기회를 노린 그들은 우리를 서서히 가두고 있다. 그들은 음악의 힘을 믿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데이빗 코레시를 따르던 무리들의 광기와 같은 믿음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음악이 컬트가 될 수 있으며, 삶을 변혁시키는데 있어서 유일한 승부수일 수 있다는 것은 믿고 있다, 이들의 인터뷰를 보라). 사실, 이들이 참조하는 그 목록들을 가치판단할 수는 없다(그럴 필요도 없다. 헤븐스 게이트를 몰라도 이들의 음악은 이해된다. EP In A Beautiful Place Out In The Country에 실린 사진들을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어느 한쪽을 택하기 위한 샘플의 선택이 아니라 환기시키는 것이 그 선택에 대한 이유의 전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보즈 오브 캐나다에게도 헤븐스 게이트는 사교 집단의 비극이지만, 그들은 그 비극 속의 또다른 비극을 바라보고 있다).

Geogaddi는 이들이 심리적 동요를 야기시키는 데 있어서는 에이펙스 트윈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앰비언트 사운드의 은밀한 공포라고나 할까. 샘플들을 거꾸로 재생해서 레코딩하는 것은 마치 비정상성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방향성이 그들의 음악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주 낮고 고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느낌을 노출시키면서, 풍경처럼 바라보는 기억들 속을 헤쳐나가는 이들의 사운드는 질질 끌려나오는 비트와 지글거리는 목소리 샘플링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타블라와 이름을 알 듯 모를듯한 타악기 소리도 들린다고? 아니, 이들의 앨범에서 이미 정교하게 변형된 소리의 원래 형태가 들려온다고? 우리 시대의 일렉트로니카는 소리의 익명성을 추구하고, 모든 것을 정체불명의 상태로 돌려놓아, 출전의 의미를 무가치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아트 오브 노이즈’의 세계인 것을!

보즈 오브 캐나다는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강박증과 신경증을 대표한다. 전작인 Music Had The Right To Children(이하 MHTRTC)으로 인해 이들에게 쏟아진 기대가 얼마나 거대했는가? 다들 새로운 앨범이 아예 사운드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었다. 대체 다들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전작과의 연속성이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Geogaddi는 보즈 오브 캐나다가 왜 새로웠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제서야. 왜 MHTRTC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는지. 이들의 정교한 사운드 편집의 세계가 얼마나 힘든 머리싸움이었는지. 유년에 대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대체 무슨 심사였을까? 그 기억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들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유년 시절에 대한 집착, 동요의 구절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이며,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유년기를 뒤늦게 찬양하는 나이 든 자들의 기억상실과 같은 것이 아니라(그 시절은 어느 누구에게나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순수와 함께 떠올리는 것은 기억의 착오일 뿐이다), 얼굴이 지워진 70년대에 대한 언급을 나타냈던 MHTRTC의 재킷처럼, 이들은 그 시절들을 나타냈던 풀리지 않는 악몽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보즈 오브 캐나다의 트랙들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유아의 목소리에서(그리고 이들의 유년기를 사로잡았던 캐나다국립영화협회의 아동용 교육 필름들의 샘플에서, 이번 앨범에는 급기야 그 필름들을 대표하는 나레이터 레슬리 닐슨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의 기억을 읽는다. 해소되지 않아 그리움으로 남아있지만, 간혹 이들 음악 속의 이러한 유년기에 대한 연상은 장막 너머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이들은 앰비언트 노이즈가 다다를 수 있는 경지 중의 하나가 기억을 재생시키고, 연상력을 증폭시키는 세계라는 것을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노래가 추억을 먹고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짜맞추게 한다. 전자적 음향 증폭 장치의 세계가 우리들의 강박관념들을 자극하고, 기억의 퍼즐들을 풀어 헤쳐놓게 만든다. 서서히 음악이 우리의 기억의 침전물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 앨범에 대한 ‘리뷰’는 무엇이든 ‘프리뷰’에 불과하다.

  • 이 앨범이 나왔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그런데 역시 MHTRTC의 강한 인상은 저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 Sonimage 2004-4-14 12:14 am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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