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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1일 (수) 22: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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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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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예정으로 찍기시작해서 11일만에 찍었다는 이 영화는 그 제작기간과는 달리 김기덕 영화들 중에서 가장 덜 어색한 작품일 것이다. 그동안 김기덕은 현실을 찍으면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상징적이거나 우화적이었다. 그래서 보는이들로 하여금 영화속에 몰입되어있다가도 순간 빠져나가게는 하지 않고있다. 원조교제를 소재로 하여 또 김기덕 특유의 극단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었지만 정사씬같은 것들을 넣지 않아 영화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도 막았고 영화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을 자아내게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버지 역의 이얼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려고했던 가장 중요한 동기가 이얼이었던 나는 도대체 이 양반이 와이키키브라더스 이후 언제나 영화에 나올라나 하고 고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여전히 성실한 도시 소시민의 얼굴로 무표정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비해서는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딸을 묵묵히 바라보는 아버지의 연기를 충실히 소화하고 있다. 이 영화는 원조교제에 대한 영화가 아니고, 딸의 원조교제를 알게된 아버지가 딸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딸에게 다가가기 위한 심리적 갈등과 변화를 보여주는 부성애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이얼은 가장 적합한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김기덕의 여성관은 욕을 먹을만하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하는 이분법은 여전하며 그 둘이 이번에는 여고생이라는 '선한' 존재 안에 하나로 들어가있다. 주인공 아이들은 여기서 원조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육보시'를 하고있는거다. 아버지가 나중에 원조교제를 해왔던 남자들을 하나씩 까지만, 원조교제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영화는 하지 않는다. 영화적 설정이고, 전체적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 여고생들이 남자들을 위해 육보시를 하면서 행복해한다는 설정은 좋게 봐주긴 어려운 것이다. 특히 영화의 의도마저 왜곡하는 저 선정적인 포스터들은 범죄에 가깝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몸을 더럽히게 되었던 그 아이들을 그래도 영화는 보듬어주고있다. 아버지는 딸을 끝까지 바라보며 딸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려고 한다. 김기덕 영화 치고는 많이 따듯해졌다.
여기 나오는 남자들은 다들 삶에 찌들어서 고생들을 해오던, 그래서 여성성의 부드러움에 목말라하는 남자들이다. 그렇게 연민의 정을 표하는 김기덕 감독의 마음을 남자인 나 또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식으로 면죄부를 부여할 수는 없는거라는 것을 김기덕 역시 알지 않을까 싶다. 여튼 여성들의 눈에 곱게 비칠 그런 면은 분명히 아니다.

보너스 장면들을 보면 김기덕이 영화를 어떻게 찍는가가 나와있는데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순간의 변주와,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듯 하다. 그리고 저돌적 추진력도.
나는 그가 컬트적인 감독을 넘어서서 파스빈더나 베르히만처럼 보편성을 담아내는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길 바란다. -- 거북이 2004-7-19 1:53 am

2 # 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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