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Fripp

KingCrimson

1 # I Advance Masked[ | ]

김형모 {mailto:E999@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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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ANDY SUMMERS & ROBERT FRIPP 1982 00

{sep_str} 1. I Advance Masked 2. Under Bridges of Silence 3. China - Yellow Leader 4. In the Cloud Forest 5. New Marimba 6. Girl on a Swing 7. Hardy Country 8. The Truth of Skies 9. Painting and Dance 10. Still Point 11. Lakeland/Aquarelle 12. Seven on Seven 13. Stultified {sep_str} 별 말이 필요없는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과 폴리스의 앤디 서머즈 의 첫 조인트 앨범인 I ADVANCE MASKED는 1982년에 발표가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국내에 수입이 되어서 저렴한 가격에 손에 넣을 수 있게 되 었는데 우선 프립과 앤디 서머즈 하면 마치 대가인 프립이 한참 아랫 벌인 앤디 서머즈와 같이 앨범을 냈구나하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많 으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조금 좋아하는 기타연주자인 앤디 서머즈 는 세인의 예상을 뒤엎고 현재 우리나라 나이로 쉰 네살로(42년생) 이 제 얼마 안가 환갑상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이 입니다. 반면 프립은 45년 생이지요. 아무도 모르게 어느새 그렇게 앤디 서머즈는 노화했을까? 그렇다면 그가 폴리스에서 인기를 얻어가고 스테이지에서 시정잡배같은 경망한 몸동작을 취하고 있을때 이미 그의 나이 불혹이 였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수 있지요. 여하튼 프립이 킹 크림슨을 80년 대 들어 다시 재결성하고 앤디 서머즈는 싱크로니시티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이 조인트 앨범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기타 외에 그들 자신이 연주한 베이스와 약간의 퍼커션을 담은 이 앨범은 그런대 로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80년대 크림슨에서 나타났던 예 의 미니멀리즘적 경향과 롤랜드 기타 신디사이져를 이용한 누구나 팻 메쓰니적이라 말하는 그런 음색, 적당한 임프로바이제이션적 요소, 그 리고 앤디 서머즈의 조금은 차갑고 뉴에이지적 요소가 스며든 기타등 이 뒤섞여 있습니다. 물론 그룹 앙상블 위주의 꽉 짜여진 연주를 원하 시는 분들에게는 실망이겠지요. 공동 프로듀스여서 더 그런지 몰라도 두 사람의 곡들도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표기가 안되어있기에 누구의 곡인지는 그냥 추측일 따름이지요) 예전에 서울 음반에서 프라 이빗 뮤직 레이블의 뉴에이지 시리즈를 쏟아 냈을때 낑겨나온 앤디 서 머즈의 독집 앨범인 MYSTERIOUS BARRICADES를 들어 보신 분들은 아시 겠지만 앤디 서머즈는 폴리스 시절과는 매우 구별되는 정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연주를 특기로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솔로 음반을 냈고 소프트 머쉰의 마이클 랫틀리지와도 조인트 앨범을 냈다 하는데 들어본 바가 없어서 어떤 지는 잘 모르겠고 여하튼 두 사람 다 필링이 깃든 연주와는 좀 거리가 있는 실험적이고 이지적인 음악을 하는 양반 들이라 연주도 흥미롭고 또 어떤 곡들은 제법 무드가 있어 밤에 듣기 에도 어울립니다. 타이틀 곡은 이 앨범에서 제일 짜임새 있고 다분히 동적인 곡으로 크림슨의 곡들에 종종 나오는 요소들도 언듯 언듯 보이 고 있습니다. 두번째 조인트 앨범인 BEWICHED가 앤디 서머즈 혼자의 프로듀스 탓인지 좀 지루하고(아니 개인적으로는 많이) 엉성한데 비해 이 앨범이 훨 나은 것도 같습니다. 외지의 평가도 그러하구요.
끝으로 수록곡은 I ADVANCE MASKED/UNDER BRIDGE OF SILENCE/CHINA-YE LLOW LEADER/IN THE CLOUD FOREST/NEW MARIMBA/GIM ON A SWING/ HARDY COUNTRY/THE TRUTH OF SKIES/PAINTING AND DANCE/STILL POINT/LAKELAN D-AQUARELLE/SEVEN ON SEVEN/STULTIFIED(워낙에 알아보기 힘들게 적혀 있어 일부는 분명 틀렸을 것임)

{이 글은 하이텔 언더그라운드 동호회 아트락 게시판(under 14)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mailto:경우정철zepelin@hanmir.com에게 요청하세요.}

2 # Soundscape[ | ]

정용진 {mailto:rem777@hitel.net}

Subject ROBERT FRIPP 1994 00 Soundscape 란 무엇인가?

{sep_str} {sep_str}


Soundscape이란 무엇인가?

King Crimson의 기타 연주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발전시킨 특수한 음향 효과 장치를 이용한 연주를 말한다. 이 장치의 기본 아이디어는 7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Robert Fripp은 King Crimson의 음악 이외에도 다양한 Session, Project 등에 참가하는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그 중 72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명반 {No Pussyfooting}에 참여하면서 그 싹이 트이게 되었다.
Brian Eno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초기의 형태는 2대의 녹음기를 이용하여 한번 연주된 소리를 녹음과 재생을 여러 번 반복시키는 일종의 Delay효과를 발전시킨 것이다.

70년대 King Crimson 시절에는 당시의 앨범들을 살펴보면 Robert Fripp의 연주악기는 Guitar와 Devices로 되어 있는데 당시로선 아직 확실하게 확립이 되지 않은 이 장치를 막연히 Devices라고 부른 것이다. 그 후 70년대 말서부터는 "Frippertronics"라는 명칭을 얻어 Robert Fripp이 참여한 각종 앨범에서 당당히 그 이름을 들어내기 시작하였다.

80년에 Robert Fripp이 조직했던 Project밴드인 The League of Gentlemen의 속지에 보면 Robert Fripp이 Tape Recorder에 둘러 쌓여 기타를 연주하는 사진이 있어 그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다. Frippertronics는 시대를 거치면서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성능이 향상되게 되었다. 핵심 장치인 2대의 아날로그 녹음기(Revox A77)는 디지털 장비로 대체되고 각종 이펙터를 추가하여 마침내 "Soundscape"으로 Upgrade된 것이다. 94년 공연 당시의 Soundscape 장치는 다음과 같은 장비들로 구성되어 있다. (Tokai Les Paul Guitar, Roland GR300 Guitar Synthesizer, Eventide 3000SE, Korg A2, TC2290 (2~4대의 Digital Recorder), Digitech Whammy Pedal)

Soundscape이나 Frippertronics에서는 주로 음을 반복, 연장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Rorbert Fripp이 참여한 각종 음반에서 나는 대부분의 환상적인 분위기로 넓게 퍼지는 (이런 효과 때문에 Sound(소리) + Scape(풍경)이란 명칭을 얻었다.)
소리가 이것에 해당하며 Keyboard계통의 Synthesizer를 쓴 것이 아니다.

Robert Fripp은 Soundscape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Soundscape에 의한 나의 연주는 음의 지연(delay), 반복(repetition), 우연적인 효과(hazard)를 기본으로 한다. 주로 즉흥연주(Improvisation)이기 때문에 때와 장소, 청중들과 청중들에 대한 연주자의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Soundscape은 기타 한 개로 수많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Robert Fripp과 그의 제자들인 California Guitar Trio가 조직한 기타 5중주단(String Quintet)의 {The Bridge Between}의 'Threnody for Souls in Torment'에서는 나머지 4명의 Acoustic Guitar연주를 잘 받쳐주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뤄주고 있다. King Crimson의 'B'Boom'에서는 2명의 타악기 연주자와, 'Matte Kudasai'등에서는 아드리안 벨루(Adrian Belew)의 부드러운 보컬, 슬라이드 기타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만들어 내고 있다. 94년 6인조의 대규모로 재결성된 King Crimson의 각양각색의 연주들을 조용히 뒤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여 감싸고 이끄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92년 발표된 데이빗 실비안(David Sylvian)과의 듀엣 프로젝트로 발표된 {The First Day}의 마지막 곡 'Bringing Down the Light'에서는 보통 메인으로 잘 등장하지는 않던 것과는 달리 완전히 Soundscape만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곡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시초로 Robert Fripp은 6인조 King Crimson의 세계 순회 공연을 마친 뒤인 94년부터 95년까지 Soundscape만의 Improvisation으로 연주하는 단독 콘서트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이 때의 연주들을 DAT에 녹음하여 사운드 엔지니어인 데이빗 싱글톤(David Singletone)의 디지털 편집 작업을 거쳐 일련의 앨범들을 발표하게 되었다.

94년 6월 아르헨티나에서의 실황들을 편집하여 {1999 : Live in Argentina}를 발표하였으며 95년에는 {1995 : Soundscapes Live}라는 일련의 타이틀로 {Vol 1 : Radiophonics}, {Vol 2 : A Blessing of Tears}, {Vol 3 : Soundbites}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의 곡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지나치게 난해하다. 평균 10분 내외의 각 곡들은 모두 Soundscape의 환상적인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퍼지기만 하고 구체화된 형태는 발견되지 않는다.

전혀 기타의 연주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피킹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놀라운 연주, 그리고 각종 음과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조정하고 있는 Robert Fripp의 능력은 단순히 기타연주자라든가 작곡가라고 하는 어떤 영역을 이미 훨씬 뛰어 넘고 있다.

{1999 : Live in Argentina}는 비교적 일반인이 접근하기 제일 쉬운 편이다.
'2000'에서는 비로소 기타 같은 소리도 가끔 들린다. 말 그대로 '간주곡'인 'Interlude'이 제일 알아듣기 쉬운 곡으로 Delay효과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는 듯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1995 Series에서는 {1999}보다도 기타로서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더욱 진보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A Blessing of Tears}의 앨범 자켓은 John Miller작 'Midnight Blue'으로 가장 Soundscape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보랏빛의 작품이다.
이 앨범은 Robert Fripp이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Edith Fripp에게 바치는 작품으로 어머니의 임종에서 느낀 슬픔과 추억,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감상을 반영한 것이다. 'Returning 1 & 2' 2부작은 같은 연주를 각각 다르게 Remix한 것으로 이 중 'Returning 1'은 'Returning 2'의 Backward mix여서 음악에서도 대칭 효과를 표현해 내고 있다.

Robert Fripp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실한 자세로 음악에 임하는 진정한 Progressive Rocker이다. 그에게 있어서 Progressive Rock이란 더 이상 6-70년대에 융성하던 (당시로서)진보적이던 음악을 지칭하는 장르가 아니다. 이와 같이 철저히 상업성을 무시한 극단적인 진보와 실험성을 과감히 발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가 직접 독자 레이블 Discipline Global Mobile을 설립하기 하기까지 한 것이다.

글/ 박준택 출저/ http://www.changgo.com/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해서 잘 설명되어 있는 글 이기에 저자허락을 얻어 올립니다.
{이 글은 하이텔 앰비언트 소모임 음악 이야기 게시판(sg2350 11 1)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경우 mailto:정철zepelin@hanmir.com 에게 요청하세요.}

3 # Radiophonics : 1995 Soundscapes Volume.1 - Live In Argentina[ | ]

정용진 {mailto:rem777@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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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ROBERT FRIPP 1995 00 Radiophonics : 1995 Soundscapes Volume.1 - Live In Argentina

{sep_str}

1. Radiophonic I 2. Radiophonic II (Fripp)
3. Buenos Aires Suite: I Atmoshpere 4. Buenos Aires Suite: II Elegy (For Mothers...
5. Buenos Aires Suite: III Streets 6. Buenos Aires Suite: IV Sky

{sep_str} 96년에 발매된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의 사운드 스케이프 첫 작품입니다.
앨범 커버 하단에 '1995 Soundscapes Volume.1 - Live In Argentina' 라고 씌어 있습니다. 즉흥적인 형태를 취하는 실황 녹음 음반 입니다.
로버트 프립 소유인 Discipline 사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커버의 그림은 색채 위주의 간단 명료한 이미지만 그려내고 있는데, 붉은 빛을 띄고 있습니다. 음악 또한 그 색채와 어울리게 붉은 이미지가 상징하는 도발적이고, 정신 분열적인(?) 그러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음반 이후에 발매되는 그의 솔로작 시리즈들은 모두 이러한 패턴의 자켓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두번째 사운드 스케이프 시리즈인 'Blessing Of Tea' 음반의 커버는 은은한 푸른 보랏빛을 띄는데, 담겨있는 음악 역시 색채와 어울리는 은은함 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소개하려는 Radiophonics 음반과 상반되는 이미지의 음반이라 비교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로버트 프립의 음악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괴롭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본 앨범의 경우.. 그러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듣다가 종종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뭐랄까.. 사람을 원초적으로 신경질적으로 유도한다고나 할까요.
얼핏 듣기에 도저히 기타소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한, 신디 소리?
그러나 신디소리 라고 보기에도 의아한 소리들로 앨범 전체가 매워져 있습니다.
그가 기타를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음색은 무척 독자적이고 실험적이며, 섬세하고 예리합니다.
지속적으로 천천히 흘러다니는 그 예리한 소리들은.. 마치, 날을 갈은 면도칼을 갈고 또 갈아서 보다 더 예리하게, 날카롭게 하려는 행위의 묘사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합니다.

모두 6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곡은 아래와 같습니다.
1. Radiophonic I 2. Radiophonic II -Buenos Aires Suite-
3. I Atmosphere 4. II Elegy (For Mothers And Children)
5. III Streets 6. IV Sky

듣기에 적잖은 부담이 갈수 있는 음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런닝타임이 긴 1번과 2번 곡에 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게 하는 요소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3번 곡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해소,이완의 뉘앙스로 천천히 향해가는 느낌이고요.

이 앨범을 듣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무척 색다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로버트 프립은 음악인으로서 이러한 독자적인 소리의 한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무척 긍정적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이 음반은 소리의 맛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살살.. 달착지근한 스틱달린 알사탕을 핥아먹는 듯한 재미.
하지만, 이 음반에 붙여주고 싶은 딱지가 있다면 그건....
"편안하게 이완되는 음악 아님!" 입니다.

독자적인 길을 보이는 음악인의 음악을 듣는 것은 무엇보다 흥미있는 일인것 같습니다. 음악이 주는 일상적 기능 이외에.. 보다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발견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 입니다.
어릴적 소풍가서 보물찾기를 하다 보물쪽지를 찾았을때의 그 기쁨, 신선함, 흥분, 짜릿함이랑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음악에서 뭐든 찾아낸다는 것도......
{이 글은 하이텔 앰비언트 소모임 음반/감상 소개 게시판(sg2350 11 2)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경우 mailto:정철zepelin@hanmir.com 에게 요청하세요.}

4 # 연대기[ | ]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129번 제 목: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은 누구인가?
올린이:crabclaw(강태승 ) 96/05/07 19:19 읽음:215 관련자료 없음


? 가수, 기타리스트, 작곡가, 밴드리더(King Crimson), 음반 프로듀서, ? 1946년 5월 16일 영국 태생

영국 록 음악의 역사는 로버트 프립(Robert Fripp)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 다. 초기에 그는 1970년대 독창적인 록 밴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창 단 멤버였고 이 밴드에는 훗날 ELP(Emerson, Lake and Palmer)의 그렉 레이 크(Greg Lake)와 전 예스(Yes)의 드러머 빌 브루포드(Bill Bruford)도 가담 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부터 프립은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대 릴 홀(Daryl Hall),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와 같은 유명 음악인들과 작업을 했고 펑크/뉴 웨이브 장르의 발전에도 기 여를 했다.

1969년부터 1974년에 해체될까지 그의 주요한 관심사였던 킹 크림슨에 대 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밴드는 1974년 9월에 해체가 되었고 같은 장르에 속한 다른 영국 밴드들 도 그 당시에 같이 사라져야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큰롤 공룡은 이미 확립된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 밴드들은 발전을 하지 않은 채 옛날에 하 던 그대로 나아갔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낀 프립은 한동안 음악과 인연을 끊었다.
"74년 9월부터 77년 8월까지 난 음악계를 완전히 떠났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았다."
록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의 하나라는 평가 때문에 작업 제의가 계속 들 어 왔으나 그는 3년 동안이나 그것들을 거절했다.

"음악계는 내 성격 중 가장 못된 면을 유혹하기 때문에 난 내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난 음악계로의 복귀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복귀하자마자 그는 피터 가브리엘의 밴드에서 리드 기타를 맡았다.
"그가 제네시스(Genesis)를 떠나기 직전의 공연 후에 그를 만났다. 그가 밴드를 떠나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그 밴드에서 실제적인 일을 하 는 사람은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피터 밖에 없었고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방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이러한 창조적 갈등 은 피터가 떠나자 사라졌고 그 이후의 밴드는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졌다.
그는 내게 자신의 첫 앨범([Peter Gabriel], 1977년 Atco발매)에서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둬도 된다고 내게 약속했다. 일단 작업을 시작한 상태에서 일이 마음에 안들자 아무 문제없이 떠날 수 있었지만 그냥 있기로 결심했다. 나와 프로듀서에게 는 별로 안 좋은 상황이었다.
아예 내가 그 앨범에 참가하지 않았어야 했다."

어쨌거나 프립은 이 사건으로 다시 음악계에 등장을 했다.
"피터 가브리엘의 첫 앨범에 참가한 것은 마치 물의 온도를 알아보기 위해 욕탕에 발가락을 집어넣는 것과 같았다. 그와 투어를 하기로 했지만 내 이 름을 사용하지 않고 더스티 로우즈(Dusty Rhodes)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했 다. 투어하는 밴드에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이 정말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브리엘은 프립에게 자신의 두번째 솔로 앨범(1978년 - 타이틀은 역시 [ Peter Gabriel])의 제작을 맡아 달라고 설득했다. 그 일을 하기 전에 프립 은 홀 앤 오츠(Hall and Oates)의 대릴 홀의 솔로 앨범 제작을 하는 등 여 러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그 앨범은 록 계통에서의 나의 첫 프로덕션이었다. 1969년부터 1974년까 지 킹 크림슨의 각 앨범의 제작에 참가하긴 했지만 결코 킹 크림슨의 프로 듀서라 불리우고 싶지 않다. 그전에 제작일을 조금했지만 전부 재즈와 관계 된 일들이었다. 실제적으로 나의 첫 프로덕션은 키스 티펫(Keith Typett)의 센티피드(Centipede)일 것이다. 그는 69년 재즈 스타로서 런던 최고의 뮤지 션으로 결성된 50인조 밴드를 만들었다. 그후로 아방재즈(Avant-Jazz) 앨범 몇 개를 제작하고 나는 그 장르에서 물러났다."

홀 프로젝트 이전에 그는 전 록시 뮤직(Roxy Music)의 브라이언 이노(Bri- an Eno)와 함께 아방가르드 록 앨범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프립 의 록 음악계에 대한 불신은 커지기만 했다.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경영쪽 사람들은 우리의 프로젝트를 말리려고 했고 아일랜드 레코드 사는 앨범 발매를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 앨범은 유럽 아방가르드 팝 음 악 최고의 앨범중의 하나가 되었다."
[Evening Star]라는 이 앨범은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 데이빗 보위와 이 기 팝(Iggy Pop)과 같은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기와 데이빗은 늘 [Evening Star]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다녔다."
1970년대말에 절판이 되자 [Evening Star]는 1981년에 Editions EG 레이블 에 의해 재발매 되었다.

프립은 또한, 보위의 [Heroes]앨범에서 리드 기타를 쳤다. 앨범 녹음계획 이 잡히자 프립은 뉴욕으로 이사갔다.
"여기서 다시 학교를 다닐까 했지만 대릴 홀의 솔로 앨범을 하기로 했었고 작업시작 2주전에 데이빗 보위와 이노가 연락을 했다. 난 데이빗과는 1972 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사실 그는 킹 크림슨 공연장에서 앞으로 그의 부인이 될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새 앨범의 기타를 맡아달라고 했고 나는 좋다고 했지만 3년 동안이나 리드 기타를 치지 않았기 때문에 잘될지는 모 른다고 설명을 했다. 금요일 밤 나는 일하기 위해 떠났고 거의 모든 곡의 리드 기타를 연주했다. 그 일로 베를린에서 3일간 머물렀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홀의 앨범을 제작했고 본인은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 각했지만 홀의 전작들과는 너무 틀리다고 하여 홀 앤 오츠 매니저들은 발매 반대를 했다. 작품을 마치고 그는 새로운 피터 가브리엘의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떠났다. 녹음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되어 런던으로 옮겨졌고 1978년초 뉴욕의 트라이던트 스튜디오에서 행해졌다.
프립은 이렇게 말한다.
"피터는 고집이 센데다가 상당히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그와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첫 앨범은 피터 가브리엘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고생한 것만으로 따져도 두번째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해본 일중 가 장 힘든 것 중의 하나였지만 그를 제대로 제시해 주는 좋은 앨범인 것 같 다."

프립은 전망좋은 새로운 팝 유행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펑크 록의 등장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1978년 가장 재미있었던 일 중의 하나가 CBGB에서 블론디(Blondie)와 함 께 연주하는 것이었다. 난 펑크 록을 좋아한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었고 6 년 동안이나 내가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 가장 흥미 로왔던 것은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대부분이 아주 한정된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표현방법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했다는 점 이다. 내가 좋아하는 터프 다츠(Tuff Darts)와 같은 밴드들을 많이 보았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새 앨범 중 브라이언 이노가 믹스한 테입을 들 었는데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이 프로듀서로써 인기가 많았지만 프립은 과연 뮤지션들이 제작 이 제작을 외부인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난 프로듀서를 고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프로듀서가 뮤지션 을 잘 이해한다면 꽤 쓸모가 있을 것 같다. 60년대말과 70년대초에는, 뮤지 션과 밴드들이 프로듀서를 거의 쓰지 않았지만 현재는 상당히 많이 고용을 하고 있다. 프로듀서가 있어야지만 히트 레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경험없는 신인 뮤지션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작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유명한 미국 프로듀서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상품을 마케팅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상품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을 별로 안쓰고 단지 그것을 포장해서 판매한다. 뮤지션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이미 정해진 포장 방식을 가지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꽤 있다. 이익을 위한 수단 이다.
다른 방식은 뮤지션이 혼자서는 생각해내지 못했을 아이디어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프로듀서만큼이나 이기주의적이라 대립이 자 주 생긴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늘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삭제하고 편집한다. 이런 경우에 음반은 헐리우드적인 광 이 나지만 훨씬 더 효과가 있을 수 있는 원본의 거친 면이 결여된다."
프립은 당연히 두번째 방법을 선호한다.
"나는 히트 앨범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연주한 그대로를 녹음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다. 내 자신이 히트를 만들 수는 없지만 뮤지션 자신이 히트할 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면 최대한의 효과를 살릴수 있도록 제작을 할 수 있 다고 나는 믿는다."

다른 사람들 작품의 제작 이외에 프립은 자신의 솔로 앨범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8년 그는 [The Last of the Great New York Heart Throbs]라는 앨범의 수록곡들을 완성했다. 킹 크림슨 시절 아틀랜틱 간부들과의 안 좋은 경험들을 되새기면서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미국내에서는 나는 자유로운 계약조건을 가지고 있다. 누가 이 앨범을 발 매할지는 모르나 절대로 아틀랜틱은 아닐 것이다."
결국 그는 폴리그램과 계약을 했고 솔로 앨범 여러 장이 발매되었다. 여기 에는 대릴 홀과 피터 가브리엘이 참가한 1979년작 [Exposure]와 [God Save The Queen/Under Heavy Manners](80), [Let The Power Fall](81), [The Le- ague of Gentlemen](81)이 있다. 1981년작이 실패하자 프립은 1980년대형 신 킹 크림슨을 결성했다. 재결성된 밴드는 워너 브러즈와 계약을 하고 [D- iscipline](81)과 [Beat](82)를 발표했다. 멤버는 프립(기타), 에드리언 블 류(기타), 토니 레빈(베이스), 빌 브루포드(드럼)이었다.

1980년대 전반에 프립은 킹 크림슨 이외에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프로덕션 과 세션으로써 참가를 했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곡들을 썼다.

그는 계속 음악계의 좋지 못한 면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을 했다.
"내가 초기에 록을 시작했을때 난 불만이 많았고 세월이 지나고 록이 점점 상품화되자 그 불만이 커져갔다. 대기업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 어쩌면 바보같은 짓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공격할 것이 고 난 그런 것을 필요로하거나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면에 이 음 악계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들의 철학, 특히 미국에서의 철학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 악이 판매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그것을 판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레코드 기업체의 역할이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태도 는 이렇다. 이 레코드는 많이 팔렸으니까 수준있는 레코드이다."

1980년대 말, 프립은 기타 강습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투어를 했으며 EG 사를 통해 [Robert Fripp and The League of Crafty Gentlemen]을 발표했다.

- 출처 : THE ENCYCLOPEDIA OF POP, ROCK & SOUL(1981) (HOT MUSIC 9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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