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mbo

1 # Jumbo[ | ]

2 # DNA[ | ]

Jumbo - DNA ★★★ 점보는 국내에선 가장 인기없는 이태리 밴드일 거라고 짐작된다. 적어도 내 주위의 친구들중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지 못했다. 그럴때 마다 나는 소리죽여 항변한다. '점보 좋은데..씨이..' 이들의 무거운 음색 은 듣는 사람을 억누르는듯한 느낌을 줄때도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이들의 매력이 바에야 짓눌린다고 생각된다면 Jumbo에 대해선 포기해야 할 것이다 . 하드한 취향의 이태리 록에선 손꼽히는 걸작. --조영래


34. Jumbo / 「D.N.A.」 (྄ Philips)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수퍼그룹 Jumbo의 두번째 앨범 「D.N.A」는 데뷔작에 비하여 더욱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이탈리아적인 향기보다는 영국적인 색채가 짙은 그룹이었으나 이 앨범부터는 이탈리아 특유의 개성이 노출되기 시작, 데뷔작에서 들려주었던 Blues적인 성향이 축소되고 당시 유행하던 프로그레시브 록이 과감하게 도입되고 있다.

앞부분에서 Flute의 과다사용으로 영국의 Jethro Tull과 이탈리아의 Osanna를 연상시키지만 전체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블루스.재즈.컨트리 등 다양한 음악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파워와 박력이 넘치는 연주와 특히 플륫 파트가 가장 돋보이고 있으며,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Alvaro Fella의 거칠고 허스키한 보컬은 Jumbo라는 그룹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파워풀한 그룹으로 인정받게 만들고 있다.

당시 대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던 그들은 최근 이탈리안 록에 대한 재평가 작업속에서 가장 실력있는 그룹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3 # Vietato Ai Minori Di 18 Anni?[ | ]

Specchio Come Vorrei Essere Uguale A Te Il Ritorno Del Signor K Via Larga Gil Vangelo ?
40 Gradi No!

JUMBO - Vietato Ai Minori Di 18 Anni?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자존심, 그 Jumbo 같은 위력" 50줄을 바라보는 노장복서 죠지 포먼이 지난해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전세계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의 40대 이상의 아버지들은 천군만마의 지원군을 얻은 듯 했을 것이다. 전세계 40대 사망율 1위라는 불명예의 위협에 숨을 죽였던 아버지들은 이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40대 교수님이 프로 복싱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30대 후반 중소 기업체의 간부 한분이 역시 20대의 새파란 젊은이들과 사각의 링에서 결전을 벌이기도 했다. 부권(父權)이 상실되어 대형 재난과 사고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힘주어 말하던 선배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사례들을 보면서 이젠 아버지의 힘이 되살아 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필자의 바램은 아마도 프로그레시브 록의 붐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과 그 궤도를 같이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져본다.

전세계 레코드 재발매를 주도하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록이 국내에서 보다 활성화되어서 많은 라이센스 음반 뿐만 아니라 이웃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탁월한 실력의 그룹들이 등장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왜, 느닷없이 권투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지금 소개될 Jumbo는 그 탁월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태리 아트록이 지켜온 카테고리를 벗어난 힘있고 박력있는 사운드로 인해 서정적 멜로디를 좋아하는 우리네 팬들에게는 그간 너무 외면당한 현실이(물론 일부 매니어들은 그 진가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맥빠진 아버지들을 보는듯한 느낌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그 기력을 되찾은 아버지처럼 Jumbo에 대한 재평가와 아울러 프로그레시브 록의 부흥을 기대해 본다.

Jumbo는 리더인 Allvaro Fella의 음악생활 시작으로 부터 탄생했다.
그는 60년대 중반부터 많은 소규모의 밴드에서 연주활동을 했는데 그중에는 Jumbo의 키보드 주자로 후에 가입했던 Sergio Conte와 Il Volo의 키보드 주자 였던 Vince Tempera 가 몸담고 있었던 Nuova Era (신세대 그룹 아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A.Fella는 Vito Balzano(Jumbo의 드러머로서 1, 2집 제작에 참가), Robert Giuliani(Maxophone의 기타 리스트)와 함께 Lo Stato D'Animo를 결성, 밀라노의 작은 클럽을 중심으로 Cream과 Jimi Hendrix 의 음악을 연주했다.
이어 그는 Juniors Di Vercelli라는 팀에서도 한동안 활약하다가 마침내 Jumbo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70년 Numero Uno 레이블을 통해 첫 작품인 (In Estate)와 (Montego Bay/Due Righe Da Te)를 발표했다.
71년 Philips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이듬해인 72년에 대망의 동명 타이틀 앨범을 공개했다.

(Che Senso Ha), (Ho Visto Piangere)등 풍부한 테마로 가득했던 데뷔작에 이어 롬바르디아 출신 그룹답게 강력한 사운드를 구사했던 2집 「DNA」에서는 공격적인 보컬, 탁월한 플륫연주, 헨드릭스풍의 기타 연주와 이태리 그룹 가운데 자신의 음악적 흐름과 일치하는 가사를 썼던 몇 안되는 팀 가운데 한 그룹인 Jumbo는 이 앨범에서 중요한 가사들을 음악이라는 구조 아래 적절히 삽입시키며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이로써 대중들에게 확실한 신임을 얻기에 이른 Jumbo는 자신들의 보다 확실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72년 로마에서 열린 제 2회 Festival D'Avanguardia E Nuove Tendenze를 비롯해 73년 나폴리의 Be-In 페스티벌 그리고 Festival Di Civitanova Marche 등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73년 이들 최고의 걸작이라고 손꼽히는 「Vietato Ai Minori Di 18 Anni(18세 이하에게 금지된 것)」이라는 타이틀의 3집 앨범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는 이티래의 일류 뮤지션인 Franco Battiato를 비롯해 Bla Bla 레이블의 전문 연주자인 Lino Vaccina 등이 참가해 앨범을 빛내주고 있다.

A.Fella의 거친 목소리로 포문을 여는 첫 곡 (Specchio (거울))는 性의 발견에 눈을 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앨범 커버에 한 소녀가 침대 위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훔쳐보는 것이 그려져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D.Bianchini의 격렬한 기타 워크와 Dario의 플륫에 이어지는 부드러운 현의 리드가 오르간의 마무리로 이어진다.
클래식의 선율로 이어지는 (Come Vorrei Essere Uguale A Te(얼마나 당신처럼 되고 싶은지))는 기타와 플륫을 담당하는 Dario Guidotti의 흐느적 거리는 보컬과 갑자기 등장하는 빠른 메시지의 전환, 관악 파트의 보강 그리고 끝에서의 둔탁한 팀파니가 여운을 남긴다.
격렬한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광기의 몸부림으로 해석되는 두 번째 이어 이태리 록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사운드의 피아노 멜로디에 이은 어쿠스틱 기타와 Alvaro의 보컬이 2집인 「DNA」에 담겨 있는 (Suite Per Il Sig.K(K씨를 위한 조곡))의 연장선상 위에 있는 (Il Ritorno Del Signor K(K씨의 복귀))는 테이프 주행이 빨라지면서 들리게 되는 목소리를 삽입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마치 Latte E Miele의 (Papillon) 앨범에서 흘러나옴직한 동화적 감성의 사운드로 시작되는 (Via Larga)는 따스함이 담겨 있는 곡이다. 이태리 파시스트 청년활동을 담은 (Gil)에서의 압권은 이들 사운드에서 등장하는 본격적인 멜로트론 음향이라 할 수 있다.

멜로트론 음향과 어울려 흘러 나오는 사운드는 60년대말 전유럽을 휩쓸었던 스튜던트 무브먼트(Student Movement)의 실패를 못내 아쉬워 하는 어두운 톤의 분위기와 선동을 목적으로 게스트로 참가한 L.Vaccina의 토속적인 리듬의 퍼쿠션의 감정의 고조를 이끌어내고 있다. 성당의 종소리와 한 성직자의 기도서 낭송에 이어지는 플륫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Vangelo?(복음서))는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주는 장엄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다. 알콜에 의존하는 생활을 비판한 (40 Gradi(40도)), 격정적인 결말에 이르는 (No!)까지 금지되는 것 없이 과감한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비평가들의 격찬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채 결국 이들의 해산을 재촉하기에 이른다. 이후 83년에 다시 모여 만든 '1983 Violini D'Autunno'(92년 Mellow Records에서 CD 발매)가 발표되었으며, 또한 90년 2월 파리에서 열린 라이브 공연을 담은 CD가 92년에 공개되었다.
날카로운 비판 의식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이들 사운드는 음악의 사회학적 기능에 대한 완벽한 대답을 보여주고 있다.
글/이춘식

4 # Live[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