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참맛을 찾아서

1 곰칫국[ | ]

밤낮으로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 뱃사람들. 이들은 노동이 고된 만큼 술도 많이 마신다. 매서운 추위까지 이겨내야 하는 겨울엔 더 말할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이 술꾼들은 무엇으로 숙취를 달랠까. 삼척이나 동해 포구에서 어부들에게 묻는다면 곧바로 튀어나오는 해장국 이름 하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곰치국이다. 속초·주문진 등에서 물곰탕, 영덕·포항쪽에선 물메기탕으로 부르는 곰치국은 이름과 요리방법이 다소 다르지만 같은 동해바닷가의 대표적인 속풀이국이다. 사실 곰치의 본디 이름은 꼼치'로, 분류학상 곰치'라는 물고기와는 전혀 다른 종. 어쨌든 물미거지·물텀벙이·물고미 등으로도 불리는 이 고기는 험악한 생김새로 이름높다. 처음 보는 마음 약한 이라면 “세상에, 뭐 이렇게 생긴 게…” 하며 한걸음 물러설 만도 하다. 길이 40~50㎝에 이르나 몸이 흐물흐물해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데다, 시커멓거나 껍질을 벗겨놓은 듯 불그죽죽한 빛을 띈 흉칙한' 모습이다. 함지박에 몇마리 담으면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퍼지는데, 건드리면 거의 액체 수준으로 출렁인다. 이 멋대로 생긴' 놈이 바로 동해바다 어부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해장국의 재료다.

이 음식이 식당의 간판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옛날 어부들은 곰치가 잡히면 먹을 게 없다며 바로 바다에 던져버렸다. 물텀벙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일부 가정에서 겨울철 마땅한 국거리가 없을 때 묵은김치를 넣어 끓여 먹거나, 말려뒀다가 가끔 술안주로 찢어 먹었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고기다. 삼척항 근처의 바다횟집(033-574-3543)은 1993년께 이 술국을 시험삼아 해장국으로 식단에 올려 대박을 터뜨렸다. 그 맛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지면서 곰치국은 삼척 일대의 웬만한 횟집·식당들이면 다 내놓는 해장국의 대명사가 됐다. 거저 줘도 시큰둥해하던 곰치가 지금은 없어서 못파는 `금치'로 바뀐 것이다. 얼리면 살이 다 풀어지고, 잡은 지 2~3일만 지나도 제맛을 잃는 것도 곰치의 희소가치를 높인다. 맛은 검은색인 숫놈이, 붉은 암놈보다 더 뛰어나다.

곰치국 요리방법은 단순명쾌하다. 오로지 묵은김치와 곰치만의 만남이다. 간도 김치국물로 조절한다. 자연히 묵은김치 맛이 곰치국맛을 좌우한다. 그래서 전문식당들은 김장철 대량으로 김장을 담가 잘 익힌 뒤 저장해 1년 내내 같은 맛의 곰치국을 낸다. 양념이 잘 되고 폭 삭은 김장김치를 넣어야,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곰치와 어울려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우러난다. 먼저 냄비에 물과 묵은김치를 넣고 끓이고, 곰치 토막을 넣어 다시 한번 끓여 낸다. 먹을 때는 살이 부드러워 뼈만 잘 발라내면 거의 들이마시다시피 하면서 먹게 된다. 흐물거리는 부분은 껍질과 살 사이의 점막덩어리로, 제맛을 아는 사람들은 이것만을 찾는다고 한다. 밥과 반찬이 나오지만 곰치국만을 공략해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뼈만 수북이 쌓아놓는 술꾼들이 많다. 처음 먹는 사람중엔 흐물거리는 건데기에 질려 숫가락을 들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 한두번 먹다보면, “국물 안에 들어가 헤엄치며 마시고 싶을 정도”로 반한다는 게 뱃사람들의 주장이다. 최근 들어선 한여름의 이열치열식 해장국으로도 인기가 높다.

속초나 주문진 등에서 먹는 물곰탕은 김치를 쓰지 않고 무와 파를 많이 썰어넣어 시원한 맛을 낸다. 남해안 일부지역에선 회나 찜으로 요리해 먹기도 한다. ◇ 삼척 일출횟집 (033)574-2479. ◇ 삼척 만남의 식당 (033)574-1645. ◇ 속초 물곰탕전문 사돈집 (033)633-0915. ◇ 속초 옥미식당 (033)633-8052.

2 갈치·고등어[ | ]

중국산 활어들이 넘치듯 들어와 국내산으로 둔갑하여 횟상에 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활어라는 것은 대부분 인공 사료로 양식된 것이고 인공사료에는 농작물에 농약이 묻어 있듯이 항생제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짙다. 더구나 자연산 꽃게나 조기 뱃속에도 납덩어리를 집어넣는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활어에 무슨 약품을 얼마나 절여 보내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생선은 자연산을, 양식한 것을 먹더라도 꼭 국내산을 먹기를 권한다. 횟집에서 파는 생선은 거의 양식한 것이고 자연산이라면 낙지와 넙치, 그리고 조개류 뿐이다. 요즘같은 겨울철에 가장 흔한 자연산 생선이 갈치와 고등어다. 그리고 갈치와 고등어 등 생선은 내년봄 산란기 대비용으로 몸에 가득 영양을 싣고 있는 요즘이 가장 기름지고 맛이 있다. 제주도와 거문도 등 갈치잡이배가 닿는 곳에서는 갈치와 고등어를 회로 먹을 수도 있지만 갈치와 고등어는 신선도가 금방 떨어지고 냉동을 할 수도 없기에 먼 곳에서는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 수밖에 없다. 요즘 제주도 수협( )에 전화주문하면 횟감으로 쓸 수 있는 싱싱한 갈치를 비행기에 실어 당일로 보내준다. 그러나 갈치는 몸통 살 속에 기생충이 들어 있기도 해서 되도록 잘 익혀서 먹는 게 안전하다.

한겨울에 먼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갈치와 고등어를 구이와 조림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제주도에는 어디를 가나 식당에서 쉽게 맛볼 수 있고 거문도 갈치가 올라오는 여수에서도 갈치구이나 조림은 인기있는 식단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도시 광주에는 `00갈치 라는 간판을 내건 전문식당가가 들어서 있고 서울에서도 남대문시장과 마포 공덕시장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는 갈치조림이 간단하면서도 섭섭지 않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반찬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갈치조림의 진수는 너무 크지 않고 싱싱한(눈이 말갛고 몸에 은빛갈이 번쩍이는)은 중질 갈치를 골라 생 무를 뚝뚝 썰어넣고 물엿과 고추장 된장 통고추 깨소금 등 신선한 양념을 고루 잘 넣어 푹 익혀 낸 것이다. 고등어조림도 조리하기는 마찬가지다. 갈치와 고등어는 철 없이 잡히는 생선이어서 농촌에서 모내기나 벼베기 일에 쉴참거리 반찬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실고추와 실파를 얹은 갈치조림을 논둑에서 펼쳐놓고 지나는 길손까지 불러들여 쉴참을 맛나게 먹던 시골풍경은 이제 추억의 그림이 되었다. 그런 추억을 되새김하러 갈치조림을 찾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대부분의 갈치조림은 간갈치나 냉동갈치를 쓴 것이어서 쌈박하고 달콤한 맛이 나질 않는다. 후라이팬에서 튀긴 것을 갈치구이 라고 내놓는 곳도 있다. 은빛 북실한 살 위에 왕소금을 듬성듬성 뿌려 지글지글 석쇠에 구워내는 갈치구이, 먹고 나면 수십가지 진수성찬 궁중요리를 먹은 것보다 뱃속이 더 후련한 갈치조림, 고등어조림을 생각하면 침이 절로 난다. 그 맛을 만나볼 수 있는 식당으로 서울에 마포경찰서 아래쪽 ( )식당 , 광주에 구 시청사거리 광주갈치 (062-227-7744), 제주도에는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동쪽 신토불이 ( )가 있다.

3 황태[ | ]

황태. 명태라는 바닷고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후·최고의 이름이다. 그가 거듭나는 곳은 어딘가. 눈보라 매섭게 몰아치는 한겨울 강원도 산골이다. 생선을 말려 저장식품으로 만드는 일은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거지만, 황태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식품도 따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명태가 황태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심연만큼 깊고 고독한 세월이 필요하다. 지금 진부령 자락이나 대관령 산골짜기에선 수십만마리의 명태들이 나무에 줄줄이 걸려, 모진 바람 속에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황태덕장이다. 짧은 기간에 말린 북어나 반쯤 말려 조림반찬으로 먹는 코다리와 비교할 때 황태는 눈보라치는 산악지역에서 12월부터 2~3월까지 3개월간이나 얼고 녹기를 되풀이한 뒤에야 완성되는, 격이 다른 그 무엇이다. 그렇게 태어난 황태는 잘 구워진 듯 노릇노릇한 빛깔을 갖게 되고, 찢으면 더덕처럼 적당한 탄력을 일으키며 부드럽게 찢긴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산속에서 바람맞아 얼고 햇볕에 마르기를 거듭하는 데 맛의 비결이 숨어 있다고들 한다. 끓인 국물을 보면, 쪄서 단 하루 만에 기계를 이용해 말려내는 가짜 황태나 북어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잘 건조된 황태는 국물이 사골국물처럼 뽀얗고 깊은 맛을 내는 반면 북어나 기계건조품, 중국에서 단기간에 건조돼 수입된 제품은 진하지도 않고 깊은 맛도 없다.

해장국은 황태채에 들기름과 물을 조금 부어 뽀얀 국물이 우러날 때까지 끓인 뒤, 물을 더 붓고 감자나 무를 썰어넣어 다시 끓인다. 보통 무를 넣어 시원한 맛을 내지만 강원도 지역에선 감자를 쓰는 곳이 많다. 여기에 다진마늘과 당근·양파를 채썰어 넣고 굵은소금으로 간을 한다. 30~40분 이상 푹 끓여야 국물이 진하고,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더하다. 황태는 통째로 불에 살짝 구워 찢어 내도 훌륭한 술안주다. 식당들에선 대개 양념을 발라 구워낸다. 뼈와 껍질을 제거하고 고추장에 마늘·양파·배를 갈아넣은 양념장을 발라 반나절 정도 잰 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앞뒤로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전국에 5~6년전부터 생겨난 황태덕장·황태골·북설악·황태나라 등 황태요리 전문 체인점들이 성업중이다. 인제군 용대리와 평창군 횡계리 일대엔 직접 덕장을 운영하며 황태음식을 내는 식당들이 10여곳씩 된다. 용대리에서 25년째 황태요리를 전문으로 해온 용바위식당(033-462-4079)과 횡계리의 황태회관(033-335-5795)이 대표적이다. 용바위식당에선 황태국과 구이가 나오는 구이정식을 6000원에 내놓는다. 구이는 3000원, 국은 2000원. 황태회관에선 10여가지 반찬이 딸린 황태미역국·해장국이 5000원, 구이정식이 7000원이다. 찜은 1만5000~2만5000원. 속초시 미시령 길목에도 황태요리점들이 몰려 있다.

황태는 본디 함경도 바닷가 지방의 전통식품이다. 함경도 피난민들이 60년대 초부터 진부령·대관령 등 함경도 산악지방과 기후가 비슷한 곳에 덕장을 꾸리면서 정착됐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요즘 나오는 황태들이 거의 전부 원양산이라는 것. 몇년 전부터 동해 근해에선 명태가 잡히지 않아 북태평양 등 원양어선이 잡아온 명태로 황태를 만든다. 근해산이 맛에서 한수 위라는 게 황태덕장을 하는 이들이나 수십년 황태요리를 해온 음식점 주인들의 말이다. 황태덕장 과천점 (02)507-0580. 황태골 서소문점 (02)777-5887. 북설악 역삼점 (02)556-4349.

4 추어탕[ | ]

벼 이삭의 영양분을 담뿍 머금은 논물이 도랑과 개울에 스며드는 추수 무렵, 미꾸라지는 진흙에 녹아있는 이 영양분을 먹고 배에 통통하게 기름을 올린다. 펄떡펄떡 뛰는 이 놈들을 잡아 산 채로 소쿠리에 담고 굵은 소금을 뿌려 뚜껑을 닫아둔다. 이렇게 해서 물 찌꺼기 냄새인 해감내를 쫙 뺀 뒤 깨끗하게 씻어 한소큼 끊인다. 살이 무르면 채에 바치고 살을 걸러내고는 막된장을 푼 물에 풋배추, 토란, 파, 무, 깻잎, 고추를 잘게 썰어 넣는다. 여기에 마늘과 파, 생강 등 갖은 양념을 하고 다시 잠시 끊인 뒤 산초가루를 넣고 먹는 정통 추어탕의 맛. 바다와 민물을 막론하고 어느 물고기가 이 깊고 은근한 맛을 내겠는가? 지금은 내로라하는 추어탕집 가운데도 이런 자연산 미꾸라지를 쓰는 집은 많지 않다. 대개 전북 남원 고창 등지에서 양식한 것을 사용하는데, 맛과 영양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고창 등 양식장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서는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를 몇마리 풀어넣는다. 미꾸라지는 메기와 천적인지라, 슬슬 유영을 즐기던 미꾸라지들은 메기가 투입되자마자 생존을 위한 필사적 도피를 시작한다. 움직임이 덜해 조직이 완화된 탓에 특유의 감칠맛이 떨어지는 양식산을 자연산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도 영양 만점의 구수하고 얼큰한 추어탕을 즐길 수 있게 된 데는 민초들의 이런 생활의 지혜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에는 “미꾸라지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북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정기를 보해 발기불능에 효과가 있다”고 써있다. 미꾸라지의 알과 내장(특히 난소), 뼈에는 비타민 A와 D, 칼슘, 가 많이 들었는데, 추어탕은 미꾸라지 몸 전체로 조리되기 때문에 이들 영양소가 고스란히 국물에 묻어나는 것이다.

몇년 전까지만해도 이런 맛을 즐기려면 전남 남원의 새집이나 원주북추어탕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었으나 최근에는 서울 시내에도 꽤 잘하는 집들이 들어섰다.(요즘에는 영양과 맛을 대부분 잃은 중국산 냉동 미꾸라지를 헐값에 들여와 적당히 조리해 내는 집들도 적지 않으니 주의할 것.)

의왕시 오전동 국민은행 앞 부천추어탕'((031)453-2831)은 언론을 타지 않고도 단골들의 입소문만으로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집이다. 추어탕 선수'들도 “탕 맛 하나는 전국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지방에서는 양지고기나 소 잡뼈, 곱창 등을 넣어 푹 끓인 뒤 이를 육수로 추어탕을 낸다. 하지만 이 집은 “추어탕에 미꾸라지 말고 다른 것을 넣으면 맛 망친다”는 신조 때문에 일체 다른 것을 섞지 않는다.

미꾸라지를 푹 고아낸 물에 들깨를 듬뿍 넣어 다시 끓인 뒤 집에서 만든 남도 된장을 풀고 우거지와 풋배추, 토란대, 무 장아치, 말린 호박, 유부 등을 잘께 썰어 넣는다. 1인분을 시켜도 이 집과 역사를 함께 해 온 찌그러닌 양은 냄비에 끓여 내온다. 남원 새집의 탕맛이 걸죽함을, 서울 용금옥이 얼큰함을, 원주 추어탕이 시원함을 각각 자랑한다면 이 집은 추어탕 특유의 깊은 구수함을 내세운다. 고추를 주문하면 앙칼지게 매운 풋고추를 숭숭 썰어 내오는데, 이를 넣어 매운 맛을 더해도 썩 괜찮다.

갈지 않고 통으로 주문하면 충청도식 통 추어탕을 즐길 수 있는 게 특징. 여럿이 가서 간 것과 통을 한냄비로 섞어달라고 주문하면 통을 안주로, 국물을 밥 반찬으로 즐길 수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동치미와 무 장아치, 갓김치, 고들빼기 김치의 맛을 보면 주인이 호남(광주)라는 것을 금방 알게 한다.

지난 80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의왕 농협 골목안에 허름하게 자리했었다. 과천정부청사에 근무하는 미식가 공무원들이 의왕―과천 고속도로를 타고 단골로 찾는 집이다. 탕 1인분 6000원, 튀김 한접시 1만원. 주차장 있음.

5 순대[ | ]

우리 고유음식 중 순대만큼 대중화돼 사랑받는 음식도 드물 듯하다.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맛과 형식의 꾸준한 전승은 더 유별나다. 싫어하는 이도 물론 있겠지만 졸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훌륭한 토종음식이다. 순대는 제조방법이나 영양·맛·정성 등에서 서양식 순대인 소세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식품이다. 전국적인 음식이지만 함경도·평안도 등 추운 북쪽지방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아바이순대니, 알래스카(추운 지방이라는 뜻)순대니, 개성순대니 하는 이름들이 세간에 알려져 있다. 주로 재래시장 한귀퉁이나 새벽 가축시장 주변에서 성가를 떨쳐온 음식이다. 몽골의 칭기즈칸시대 돼지 창자에 쌀과 야채를 넣고 말려 전투식량으로 썼던 데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순대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치 않다. 돼지 창자의 기름기 제거부터가 그렇다. 깨끗이 씻어 일정한 길이로 자른 뒤, 속을 뒤집어 굵은소금을 뿌리고 공들여 문질러야 한다. 이 공정을 소홀히 하면 누린내가 난다. 세척이 끝나면 불려 놓은 찹쌀과 신선한 돼지피, 돼지고기·숙주·시래기·양파 따위와 파·마늘 등 양념까지 20~30가지 재료를 버무려 내장에 채우고 양쪽을 묶는다. 지방에 따라서는 당면이나 숙성시킨 김치·무를 다져넣기도 한다. 이를 30~40분 가량 찌는데, 그냥 두면 내용물이 팽창해 터지므로 수시로 꼬챙이로 찔러줘야 한다. 다 익으면 순대를 한입 크기로 썰어 간·허파·머릿고기·오소리감투(돼지 위장) 등과 곁들여 낸다. 깨소금이나 새우젓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 맛도 맛이려니와 단백질·철분·비타민이 고루 함유된 영양의 보고다. 보통 작은창자를 쓰지만, 큰창자를 쓰면 이른바 왕순대, 아바이순대가 된다. 돼지머리나 잡뼈를 푹 고아낸 국물에 순대와 머릿고기 등을 넣고 끓이면, 한차원 고양된 풍미를 자랑하는 순대국이 만들어진다. 파를 듬뿍 넣고 들깨가루와 마늘·후추·고춧가루 등을 버무린 양념장을 설설 풀어 밥을 말아 먹으면, 이 맛이야말로 깊고 그윽한 우리 전통음식 맛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실향민들은 그래서 제맛을 내는 순대국집을 찾으면 단골로 정해 놓고 드나든다. 순대골목을 형성한 곳은 서울 신림동 순대골목, 연희동 먹자골목, 인천 송현동, 천안 병천, 용인 백암리 등 많다. 그러나 제맛을 보려면 수십년 대를 이어 직접 순대를 만들어온 식당으로 가야 한다.

얼큰하고 구수한 맛을 보겠다면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건너편 뒷골목의 함경도찹쌀순대(545-3302)나 을지로4가 우체국 뒷골목 알라스카(2266-1535)를 찾을 만하다. 두 집 모두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 30여년 대를 이어 하는 집이다. 가자미식해를 반찬으로 내는 것도 공통점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려면 헌법재판소 부근 재동초등교 앞 재동골(766-1035), 서울역 건너편 시티타워와 벽산빌딩 사잇길 오른쪽의 아범순대(755-6100)로 가면 된다. 재동골은 9년, 아범순대는 30년(12년전 주인 바뀜) 된 집이다. 재동골 순대는 제주도산 돼지 내장에 찹쌀·조·밤·대추·당근 등 20여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선지를 뺀 `백순대'도 있다. 깻잎을 얹어 내는 순대국은 국물이 진하고 담백하지만 당면순대를 쓴다. 여의도의 화목순대국(780-8191), 용인 백암리의 중앙식당(031-333-7750)도 이름난 집이다.

6 한정식[ | ]

한정식이란 `전통 한국음식을 제대로 갖추어 잘 차려낸 상'이라고 하겠다. 전통 한국음식도 지방에 따라, 또는 기후 풍토 및 거기에서 나는 물산에 따라 다양하다. 또 궁중음식이 있고 양반들이 먹던 것이 있고 부자들이 거나하게 먹 던것, 일반 서민들의 가난한 상차림이 달랐을 것이다. 두당 수 만원씩 하는 무교동 등 서울의 `한정식'집에 가보면 도대체 음식이 입에 맞질 않는다. 값비싼 음식상이어서 정갈하게 차린 듯 야단을 부렸으나 냉장고에서 몇일 된 돼지고기 수육을 다시 김들인 것, 수입산 홍어찜, 제사지내고 남은 제물을 변하기 전에 쓸어넣어 끌인 것 같은 신선로 등이다. 진실과 정성이 담기지 않은 이런 음식을 먹으면 나는 30분 가량 지나면 꼭 라면이라도 하나 더 먹어야 한다. 함량이 모자라서은 먹고 난 뒤 뱃속이 후련하지 않고 뭘 먹다 만 것처럼 배가 허전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궁합이 잘 맞도록 식단이 배합된 것을 맘 편하게 먹어야 한다. 위장은 신경이 예민해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분위기가 나쁘면 그 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비즈니스를 할 때 상대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식당으로 초대해 흡족하게 먹여놓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잘 먹으면 누구나 위장이 후련하고 심신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내가 10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거다! 하고 권할만한 한정식 식당들이 있다. 이 식당들의 공통점은 철따라 한국인이 즐겨먹는 `산해진미'를 잘 배합해 내놓는다는 것이다. 속리산 관광단지에 있는 경희식당(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구 280번지, 043-543-3736)은 주인 남경희(87) 할머니가 6.25때부터 대전에서 열어오던 것을 지난 1973년 관광지인 속리산 관광단지로 옮겨온 것이다. 경희식당은 한정식(1만 8천원) 한 가지만 판다. 반찬 가지 수는 42~45가지. 내 경험으로는 그만한 가격에 대한민국 한정식 반찬으로는 가장 많은 가짓수다. 그런데 그 많은 반찬을 대충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정갈한 손길을 가한다. 예를 들면 게장의 경우 게통을 까서 거기에 게통국물과 함께 게살을 일일이 발라 넣어준다. 그 밖에 한우전골, 생굴부침과 무침, 온갖 나물, 굴비구이 등이 나온다. 예전의 인심좋은 시골밥상의 잔재가 아닌가 싶다.

전통식당(전남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688-1, 061-382-3111)은 이름 그대로 전라도의 전통 한정식 차림이다. 한정식 한 가지에 두당 2마원 짜리와 2만 5천원 짜리가 있다. 반찬은 40가지 안팎, 민물참게장, 묵은지(땅속에서 3년 묵은 김장김치), 굴비구이, 죽순무침, 각종 장아찌, 집장과 토하젓을 비롯한 각종 젓갈, 그 밖에 계절에 따른 국 종류 등이다. 2만 5천원 짜리는 삼합과 갈치구이. 모듬전이 더 나온다. 이 식당은 17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특징은 주요 음식을 놋그릇에 내놓는다는 것이다.

요석궁(경북 경주시 교동 57번지, 054-741-3348)은 다섯 종류의 한정식을 내놓는다. 가격대에 따른 분류인데 두당 2만원, 3만원, 5만원, 7만원, 10만원 짜리가 있다. 2만원 짜리는 홍어무침, 낙지볶음, 편육, 갈비찜, 생선회, 생선구이, 각종 찌개 등 30여 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최상급인 10만원 짜리는 전복회와 찜, 간장 게장, 육회, 신선로, 구절판, 어란, 영광굴비찜, 상어산적, 갈비구이, 수삼튀김, 장어구이, 녹두전 등이 나온다. 3만원 짜리를 가장 많이 찾고 10만원 짜리는 관공서나 기업체 및 외국인 바이어와의 회식, 접대자리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천일식당(전남 해남읍, 061-535-1001)은 전화번호를 `천일번'으로 했을 만큼 사람이 많을 때는 줄을서서 기다릴 각오를 하고 가야 한다. 떡갈비백반(1인분 1만 6천원) 전문인데 휴가철이나 성수기에는 더 달라는 주문을 받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좀 싼 한정식으로는 전남 구례읍 우체국옆에 있는 동원식당(061-782-2606) 한정식(1인분 6천원, 반찬 25가지 안팎)이 권할만하고, 해물한정식으로는 전남 완도읍에 있는 산호정(061-554-2367)이 좋다. 산호정엔 한정식(1인분 1만 2천원, 전어구이 등 30가지 안팎)과, 갈치구이, 돔구이, 전족회 등을 추가한 한정식 상차림(4인분 한 상에 9만원, 15만원)이 있다. 1인분만은 팔지 않는다.

서울근교에 있는 것으로는 하남시 마방집(031-792-2049)이 괠찮다. 1인분 7천원인데 돼지장작구이 등은 따로 주문한다. 된장찌개 맛이 좋다. 반찬을 너무 조금씩 놓는 게 흠이다.

7 돼지똥국[ | ]

한국인들이 가장 고맙게 생각해야 할 가축이 있다면 무엇일까? `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게 돼지가 아닐까? 조상 대대로 가장 중요한 동물성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우리의 식생활을 도와준 공로는 정말 돼지머리 올려놓고 수 백번 큰 절을 올려도 될법하다. 우리 민족이 2000년 넘게 돼지 덕을 보면서 살아오다 보니 전국 땅이름에도 돼지와 관련된 것이 많다. 돼지를 많이 길렀던 제주 지역에 그런 땅 이름이 많은데, 남제주군 대정읍 보성리 돝귀둥'은 돼지 귀처럼 생긴 곳이고, 제주시 회천동 돝 죽은 산밭'은 맷돼지가 많이 잡혀 죽은 곳이다. 대전 유성구 학하동 골짜기의 도야지 궁그러 죽은 골'은 산이 험해 굴러떨어져 죽은 돼지들이 많았던 것이고, 경상남도 창녕의 돼지 목 자른 만댕이'나 전라북도 남원의 `돼지 무덤'등은 제사용으로 돼지를 희생시킨 곳이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처럼 반가운 소리도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아마 두어 달에 한 번씩) 그 소리가 윗말에서 들리면 아이든 어른이든 달려간다. 아이들은 빨리 가서 불캐(돼지 오줌보)를 얻어 내 오줌 빼내고 겉기름 뜯어내고 적당히 불어서 축구공으로 쓰기 위해서다. 어른들은 가마솥에 내장 곱창 잔뜩 씻어넣고 무 줄기 말린 것도 넣고 한 두 시간 가량 장작불 때서 끓여 낸 돼지국에 막걸리 마시는 판을 벌인다. 그 구수한 돼지국을 이젠 맛보기가 어렵지만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다 그런 추억을 되새기며 먹어 본 돼지고기 음식을 소개한다.

전남 곡석군 석곡면 석곡리는 돼지고기 석쇠숯불구이로 유명한 곳이다. 예전에 시골버스타고 다닐 때 광주에서 여수, 순천 방면을 오가는 버스들이 늘 석곡리에 오면 점심때가 되어 운전수와 승객들이 요즘의 고속도로 휴게소식당에 들르듯 내리는데, 그곳 식당들이 푸짐하고 맛있게 돼지국밥과 석쇠숯불구이를 내놓은 것이 유래가 됐다. 요즘엔 10여 곳의 돼지숯불구이 전문식당이 있다. 1인분에 1만원, 15가지 정도의 반찬이 나온다.

내가 최근에 먹어본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 음식은 전남 곡성 오일장터에서 먹은 똥국'이다. 어릴 적 얻어먹었던 그 가마솥 시레기 곱창국'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똥국이란 말은 원래 돼지국이라는 뜻의 돈국'이었는데 구린내가 (살짝)나는 곱창국'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별칭이라고 한다. 똥국은 막 잡은 돼지에서 대창을 걷어내 소금물로 깨긋이 씻고 그 안에 선지를 가득 채워 순대를 만들고, 하루 종일 돼지머리를 곤 국물에 머릿고기와 순대를 넣어 말아주는 것이다. 곡성읍내 여운천변에서 3일, 5일자에 열리는 곡성오일장터가 나온다. 똥국집은 장터 가운데 식당가에 네 곳이 있다. 오일날만 식당을 연다. 순대 한 접시에 오천원, 국밥 한 그릇에 삼천원이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두암식당(061-452-3775)식당은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돼지석쇠짚불구이' (1인분 6천원) 전문식당이다. 그 집에 가면 예전에 추수 뒤 볏짚창고로 쓴 허름한 헛간이 있는데 지금은 그곳이 주방이다. 돼지고기를 석쇠에 얹고 볏짚에 불을 붙여 연기를 펑펑 쏟으며 구워낸다. 무안의 명물 양파김치를 곁들여 먹는 맛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8 굴비백반정식[ | ]

밥 먹는 일'을 식사라고 하지만 요즘처럼 외식의 시대, 정성보다는 상혼이 깃들어 있기 십상인 음식을 사 먹는 시대'에는 식사'보다는 진지'의 개념으로 밥 먹기를 가려 대할 필요가 있다. 먹을 거리가 넘치고 밥을 사 먹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만병의 근원은 입”이라는 신토불이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식사를 습관적인 일상 거리로 대충 때워 넘기기 보다는 어른 밥상'인 진지'의 개념으로 격상시켜 `질 높은 밥 먹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진짓상을 받듯' 정성이 깃든 음식을 사 먹을 수만 있다면 굳이 이런 제안이 필요없겠다. 하지만 요즘 우리 외식의 현실이 그렇질 않다. 국적없는 별미 음식'에 화학 조미료로 맛을 낸 무슨 탕류, 비닐하우스에서 속성 재배된 채식 반찬, 그리고 서구음식의 대홍수…, 뭐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어쩌다 정말 진짓상같은 음식을 대하면 혼자 먹기 어려워 싸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런 음식 가운데 하나가 전남 영광 읍내와 법성포 일대에서 맛볼 수 있는 `굴비백반 정식'이다.

굴비는 예전부터 귀한 물건이어서 토종 참조기로 만든, 제대로 된 굴비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 영광 칠산 바다에서 곡우절에 잡히는 알 밴 조기로 만든 것을 오사리굴비'라고 했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밥 도둑놈'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또 어떤 구두쇠가 반찬값을 아끼기 위해 처마에 매달아 놓고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는 고기도 굴비이다. 기왕 쳐다만 볼 것이니 가장 맛있는 고기를 매달아 매달아 놓았을 것이다.

굴비는 고려 인종 때 영광으로 귀양온 이자겸이 귀양살이 신세지만 “굴'(屈)하지 않겠다'(非)”는 뜻으로 임금한테 진상하면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임금은 굴비의 맛 때문에 이자겸을 사면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이니 이때부터 한국의 말림고기 가운데 으뜸으로 자리잡았음직하다.

굴비는 원료인 조기는 몸의 기운(氣運)을 도와준다(助)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하니, 굴비의 영양가를 헤아릴 수 있다. 예전 시골에서는 굴비 머리 하나로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비웠다.

△ 영광읍과 법성포에서 맛볼 수 있는 굴비백반정식

그런 굴비로 지어 올리는 맛있는 진짓상을 굴비의 고장인 영광읍과 그 아래 영광 법성포에 가면 받아볼 수 있다. 영광 읍내에는 국일관((061)351-2020), 굴비 원 생산지인 법성포에는 일번지식당((061)356-2268), 부두회관((061)356-3392) 등 `굴비백반 정식' 전문식당들이 있다. 보통정식 1만원, 특정식 1만 5천원이다. 이곳 식당들의 굴비백반은 반찬 가지 수가 중요한 계절음식들을 포함해 20~30여 가지에 이른다. 영광 일대 굴비백반 반찬의 핵심은 굴비 말고 굴비장아찌, 병어회와 전어회, 장대구이나 서대구이, 아구탕, 쑥국이나 냉이국, 굴젓이나 굴무침 등이다. 굴비장아찌는 흠집이 난 굴비를 좍좍 찢어 된장과 고추장을 섞은 것에 쳐박듯 묻어 놓았다가 꺼낸 것이다. 된장맛과 고추장맛이 짭짤하게 배어들어 밥을 물에 말아 먹을 때 좋은 반찬이다. 병어회나 전어회는 뻘맛이 좋은 칠산바다나 전라도 일대 서해안에서 나는 것이 기름기가 넘친다. 장대나 서대는 그것들이 엎드려 있던 개펄도 맛이 있다고 할 정도로 전라도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갯고기이다. 아구탕은 다른 곳의 식당이라면 그것만으로 2~3만원을 받을만한 양과 질을 갖췄다. 싱싱한 아구에 미나리 등 신선한 채소를 넣어 끓인 것이다.

영광굴비백반은 밥을 한 그릇 이상 거뜬히 비워도 배가 더부룩하지 않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굴비백반은 조상들이 오랜 세월 이루어낸 우리 전통음식이야말로 `우리 몸에 우리 음식'임을 새삼 확인하게 해 준다.

9 쭈꾸미 구이[ | ]

입맛 까다롭고, 손맛 좋고, 음식 인심 풍부한 남도 사람들 사이에 “봄 쭈깽이(주꾸미), 가을 낙자(낙지)”라는 말이 전해진다. 가을은 낙지가 알을 배는 시기고 봄은 주꾸미가 알을 배는 때. 생선을 비롯해 모든 바닷것'은 알을 배는 시기가 맛과 영양에서 최고다. 바야흐로 주꾸미 배(흔히 머리라고 일컫는)에 알이 가득 차는 주꾸미의 계절'이다. 주꾸미는 낙지와 꼴뚜기 중간쯤 되는 것으로, 낙지보다 연하고 꼴뚜기보다 씹는 맛이 더하다. 싱싱한 놈을 데쳐 먹을 때 톡 튀어나오는 수액의 감칠맛은 낙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도 사람들 가운데는 낙지보다 주꾸미를 웃질로 치는 이들도 있다.

예로부터 주꾸미는 끓는 물에 데친 뒤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숙회'). 그런데 아궁이 불씨에, 나뭇가지에 끼운 양념 주꾸미를 구워 한접시 내던 남도 한정식 전통이 최근 살아나면서 숯불구이 맛이 으뜸으로 떠올랐다.

몸통에 싯푸른 기미가 감돌고 빨판이 떡떡 벌어진 싱싱한 주꾸미에 갖은 양념을 한 고추장을 척척 바른다. 마늘 찧은 것을 듬뿍 넣고 물엿과 생강·왜간장·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은 뒤 버무린 고추장이다. 여기에 참기름을 살짝 붓고 깨소금을 흩는다. 벌겋게 고추장 옷을 입은 주꾸미를 숯불 위 석쇠에 척척 올려놓고 다리 끝이 조금 감아올라갈 때까지 살짝 익힌 뒤 먹는다. `퍽' 하고 터지는 수액이 매콤한 고추장맛과 버무려져 혀끝을 낚아챈다. 소줏잔에 저절로 손이 가고 만다. 낙지는 이렇게 구워내면 육질이 단박에 단단해지고 꼴뚜기는 그대로 쪼그라들어 먹을 게 없다. 오직 주꾸미만이 특유의 연한 육질과 양념 고추장의 맛을 숯불의 내음에 버무릴 수 있다.

서울 마포 홀리데이 인 서울'(옛 가든호텔) 뒤 도화파출소 옆 뒷골목의 마포 쭈꾸미숯불갈비'(02-703-1538·주인 이강욱)와 필동 극동빌딩 옆골목(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 농협 옆) `쭈꾸미숯불구이'(02-2279-0803·주인 장영칠). 두 집 모두 질 좋은 주꾸미가 생산되는 전라도 남해안쪽(순천) 사람이 주인이다. 또 최근 수요가 급증하면서 베트남 등지에서 들여오는 냉동 주꾸미를 일절 쓰지 않는다.

10년째 한곳에서 주꾸미를 내는 마포주꾸미의 특징은 서울 사람 입맛에 딱 맞게 약간 매콤한 맛에 달큰한 맛이 배어 있다는 것. 밑반찬은 `밑안주'라 해도 좋을 만큼 실속이 있다. 물오징어와 홍당무, 호박 다진 것을 넣어 살짝 데치듯이 구워내는 전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술안주다. 바지락과 호박을 넣고 뚝배기에 팔팔 끓여내는 된장국과 싱싱한 배추로 담근 백김치는 주꾸미구이에 알싸해진 입을 개운하게 해준다. 1인분 9000원. 숯불구이 원조인 필동숯불구이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소 매운 맛이 특징. 몇년 전만해도 무교동 낙지볶음 만큼이나 독한 매운 맛을 냈다. 서울 사람 입맛을 감안해 최근 매운 수위를 낮췄다. 생마늘과 된장이 곁들여진 상추쌈이 나온다. 낙지불고기(1인분 7500원)와 키조갯살인 가이바시라(1인분 1만8000원)를 함께 낸다. 세가지를 한꺼번에 내는 모듬은 1인분 2만6000원. 두 집 모두 주차장 없고 일요일은 쉰다.

10 상주할머니 올갱이국[ | ]

'올갱이’는 충청도 방언으로 ‘도슬비’ ‘베틀올갱이’라고도 한다. 전라도에선 ‘대사리’, 강원도에선 ‘꼴부리’, 경상도에선 ‘파리골뱅이’ ‘사고동’ ‘고댕이’ ‘고동’이라고도 하며 표준말로는 ‘민물 다슬기’라 부른다.

올갱이는 청정수역에서 청정산소와 이끼의 성분인 클로렐라를 섭취하므로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시 상당구 중앙공원 근처 서문오거리에서 YMCA 옆골목에 위치한 ‘상주할머니 올갱이국’(043-256-7928)은 30여년의 전통을 갈무리해 오면서 올갱이 해장국과 올갱이 무침으로 이름 높다. 딸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김월임씨(76)는 욕쟁이 할머니로도 통한다. 밑반찬도 깍두기와 초고추절임(여름에는 풋고추) 두 가지뿐이지만 이 집을 찾는 손님은 하루 100여명에 이른다.

반딧불이가 뜨는 여름 밤 냇가는 다슬기의 서식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슬기는 반딧불이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반딧불이 보호구역인 무주 구천동(설천면)은 대표적인 다슬기 서식처라 해도 좋을 듯하다.

따라서 올갱이국이야말로 해장국으로선 최상품에 드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월임씨에 따르면 다슬기를 물에 푹 삶아 건져내 식구들이 둘러앉아 바늘로 속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로 한 세월 좋게 허비했다고 말한다. 다슬기를 삶아내면 초록빛이 감도는 국물에 된장을 풀고 양념을 해서 육수로 쓴다. 이 육수에서 뽑아낸 속을 밀가루에 한 번 굴려 부추와 함께 다시 솥에 안치고 마늘과 고추 양념을 풀어 푹 끓여낸다. 밀가루가 들어가 국물이 다소 걸쭉해지고, 해감내와 함께 다슬기의 쌉쌀한 맛도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걸쭉한 국물에 밥 한술 말아 떠먹으면 땀이 훈훈하게 배어나며 온몸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러므로 이 음식은 탁기가 아니라 청기(淸氣)를 보하는 선식(仙食)과도 같다. 욕쟁이 할머니는 반딧불이가 다슬기를 먹는다는 말에 “누가 아남? 올갱이국 많이 먹으면 몸에서 반딧불이 새어나올지!” 하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여름 밤을 환상적으로 수놓는 왕눈이 반딧불이나 애반딧불이가 되어 하늘로 후끈 떠오를 것 같은 청정한 기운이 온몸에서 솟아나는 것 같다. 술국으로 더없이 좋겠다고 하니 “누가 아남? 신선이 될지!” 하고 맞받아친다. “옛날에야 무심천이 참 맑기도 했지” 하며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처음엔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장터에 나오는 올갱이를 사다 고향에서 하던 솜씨대로 된장찌개를 끓여내곤 했는데, 그것이 인기가 있어 올갱이 전문집으로 아예 문패를 바꿔 달았다고 한다.

“자리가 100석인데, 점심시간엔 모자랄 정도니 이만하면 소원풀이 한 셈 아닌가유?”라며 김할머니는 웃는다. 새벽 6시30분이면 문을 열고 7시부터 손님이 들어와 아침 해장을 하는데 후루룩 국물 떠먹는 소리가 물텀벙 소리를 낸다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상주할머니 집에서 해장국을 들고, 흥덕사지(1377년)를 들렀다가 청주시내 고인쇄박물관에 들르면 무엇보다 값진 여행일 것 같다.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직지심체요절’은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보다 70년이나 앞선 유네스코 지정 유산이기에 반드시 찾아볼 문화재이기도 하다. ‘직지’(直指)란 곧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내용 중 ‘직지인심’에서 따온 말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야말로 우리 역사상 한국이 세계의 문명국가로 인정받는 놀랄 만한 대사건이다. 어쩌면 금속활자의 금채와 환상적인 반딧불이는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슬기를 먹고 사는 반딧불이처럼, 청주를 여행하면 꼭 올갱이국물을 먹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11 갈낙탕[ | ]

영암·목포 등 남도지방 식당에서는 `갈낙탕'이라는 차림을 흔히 볼 수 있다. 조금 낯설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 음식을 자기 고장의 최고 별미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또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맛을 못잊어 아예 애호가가 돼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 갈낙탕은 소갈비와 낙지에서 각각 갈'과 낙'을 따 만든 합성어로, 소갈비와 낙지를 함께 넣고 끓인 탕이라는 뜻이다. 연한 갈색으로 말갛게 우러난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시원·담백해 물과 뭍의 고기 맛이 혀끝에 오묘하게 와닿는다. 언뜻 잘 우려낸 갈비탕과 맛이 비슷한데, 느끼함이 훨씬 덜해 바쁜 숟가락질에도 입이 쉽게 물리지 않는다.

갈낙탕은 맛뿐 아니라 영양까지 두루 갖춘 음식이다. 바다의 최고 스태미너식인 낙지와 땅의 고단백원인 쇠고기가 어우러져 들어오면 우리 몸속의 쇠한 기운들이 어찌 놀라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의학에서 쇠고기를 양'(몸의 기력을 돋우는 뜨거운 기운), 낙지를 음'(몸을 식혀주는 찬 기운)의 음식으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갈낙탕은 음·양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남도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기도 한 것이다.

갈낙탕은 재료와 조리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간장·소금·설탕·양파·배즙 등으로 양념을 잰 한우갈비를 맑은 물에 한소끔 끓인다. 이때 우러나온 육수가 맛을 좌우하므로 식당마다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다. 양념을 너무 진하게 하면 그윽한 맛이 살아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 다음 잘 다듬은 세발낙지 2~3마리를 대추, 대파 등을 곁들여 1분 정도 더 끓이면 끝. 목포쪽에서는 여기에 조개·새우·버섯 등을 더 추가해 좀더 복잡한 맛을 낸다.

조리법이 간단한 만큼 재료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영암에서는 무안·목포·해남 등 인근의 기름진 뻘에서 잡은 세발낙지와, 같은 지방의 질좋은 한우 암소갈비를 쓰고 있다. 일반 낙지가 붉은 색깔에 육질이 질긴 데 비해, 뻘 낙지는 검푸른 빛을 띠며 육질이 연하고 부드럽다.

영암 독천리에 갈낙탕 집이 10여곳 모여 있다. 그중 `원조'임을 자부하는 독천식당(061-472-4222)과 2대에 걸쳐 맛집을 하고 있는 영명식당(061-472-4027)이 특히 이름나 있다. 갈낙탕과 함께 상에 오르는 젓갈류는 남도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혜다. 옛날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다는 창란젓의 짭잘·고소름한 맛은 밥을 절로 꿀꺽 넘어가게 한다. 한 그릇에 1만2000원.

서울과 수도권에선 갈낙탕을 하는 집이 흔치 않다. 간혹 하는 집이라도 형편없는 낙지와 갈비 재료를 써놓고 미나리·고추·팽이버섯 등 온갖 양념에 와사비 장까지 곁들이는 실정이어서 본래의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또 값도 비싼 편이어서 웬만하면 꾹 참았다가 본 지방에서 갈낙탕 맛을 보는 게 현명할 듯 싶다.

서울에서 굳이 갈낙탕 맛을 보겠다면, 종로경찰서 맞은편 미래꽃집 골목 안에 있는 `목포집'(02-722-0976)을 추천하고 싶다. 한우 떡갈비에 산낙지를 넣고 양념을 곁들여 전골식으로 끓여 낸다. 3~4명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4만5000원.

12 멸치회[ | ]

멸치를 회로 먹는다? 그렇다. 회 선수'들은 싱그런 봄바람이 불면 싱싱한 멸치회를 떠올린다. 멸치가 무리지어 근해로 몰리는 때인 까닭이다. 봄 내음 가득한 이즈음, 펄펄 뛰는' 멸치회 한접시와 소주 한잔 어떨지. 뼈를 발라낸 큼직한 멸칫살에 미나리·쑥갓·양파·쪽파·고추를 듬뿍 넣고 잘 익은 고추장·식초로 버무린 멸치회 무침.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씹으면, 바닷내음이 아련히 느껴지면서 혀끝에 녹아드는 새콤 달콤한 멸치의 싱싱한 육질. 깔끔하고 고소한 맛에 남녀노소 없이 반하고 만다.

동남해안에 멸치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철 잡히지만 4~5월에 나는 봄 멸치를 최고로 친다. 횟감으로 쓰는 멸치는 길이 10㎝ 가량의 왕멸치. 멸치는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바로 죽어버리고, 냉동보관을 하면 맛이 뚝 떨어진다. 갓잡은 싱싱한 멸치회를 맛보기 위해 멸칫배가 드는 포구로 가야 하는 이유다. 포항·부산·거제·통영·남해 등이 멸치회로 이름난 지역. 특히 부산 기장읍 대변항은 `멸치' 하면 첫번째로 떠올릴 법한 곳이다. 그만큼 멸치가 많이 잡히고 20여곳의 횟집에서 멸치회나 멸치찌개 등을 주종목으로 내걸고 입맛 다시는 관광객을 맞는다. 남해도 미조항에도 멸치회로 승부를 거는 집들이 있다. 수협어판장 옆 공주식당(055-867-6728)과 삼현식당(055-867-6498)은 모두 10여년을 두고 멸치회를 다뤄온 집이다. 매일 어판장에서 배를 갈라 뼈와 내장을 발라내고, 머리를 떼어낸 뒤 소쿠리에 담아 문질러 비늘을 제거해 재료를 마련한다. 멸치회는 신선도와 비린내 제거가 생명. 여기에 고추장과 식초 등 양념이 감칠맛을 좌우한다. 두 집은 모두 막걸리를 발효시켜 직접 만든 식초와 담근 고추장으로 맛을 내고, 양배추·양파를 비롯한 야채에다 마늘·깨 등 20여가지 양념을 섞어 깊은 맛을 보탠다. 완성된 멸치회무침은 풋풋한 비린내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상추·깻잎·미나리 등과 함께 싸먹으면 개운하다. 양이 푸짐해 2만원짜리 한접시면 3~4명이 술안주로 들 만하다. 두 집은 갈치회도 전문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요즘은 서울에서도 현지에서 비행기로 직송한 멸치회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늘고 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2번출구로 나와 산업은행 옆길에서 오른쪽 현대증권 골목 안에 자리잡은 충무상회(02-515-6395)는 10년째 통영에서 매일 직송되는 멸치로 회무침을 내는 곳이다. 이름이 시골 쌀집이나 잡화상같아 보이지만 내부시설은 깨끗하고 아늑하다. 아침에 통영 서호시장에서 다듬어져 출발한 멸치는 오후 5시께 식당에 도착해 저녁 상차림에 오른다. 미나리·양파·붉은고추·풋고추를 썰어넣고 초고추장에 버무려 통깨를 듬뿍 뿌려 낸다. 단맛이 강조되긴 했지만 비린내가 전혀 없고 혀끝에서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이 특징. 요리 전에 식초 탄 물에 씻어 비린내를 없앤다고 한다. 반찬으로 곁들여지는 톳·청각무침, 우거지된장무침·무나물 맛도 깔끔하다. 따로 청하면 무와 굴을 함께 삭힌 굴젓(굴김치)도 맛볼 수 있다.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멸치회무침 한접시 3만원. 양은 좀 적으나 두사람 술안주로 거뜬하다. 토·일요일엔 멸치가 안올라와 내지 않고, 평일에도 대개 저녁에만 맛볼 수 있다. 도다리 세코시와 잡어회가 본디 전문이다.

13 인천 물텀벙이[ | ]

'물텀벙이’는 아귀라고 하는 물고기로 유독 인천에서만 그렇게 부른다. 물고기가 흔했던 시절엔 먹지도 않고 잡히는 대로 물에다 ‘텀벙’ 버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는 물텀벙이 골목이 따로 있다. ‘성진물텀벙’(대표 전병찬ㆍ032-883-6690)을 비롯해 ‘대신’ ‘동원’ ‘본가’ ‘복천’ ‘능허대’ 등의 물텀벙이 집이 있는데 모두 10여년 안에 생긴 집들이고, 성진물텀벙만 3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집으로 못생긴 아귀와는 달리 위풍당당하다. 손맛이 좋고 그만큼 노하우도 쌓였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인천의 향토음식점 거리로 ‘물텀벙 골목’을 지정, 조형물까지 설치했다. 대구의 동인동 양재기 골목과 앞산 따로국밥집 골목, 광주의 떡갈비 골목, 마산의 아귀찜 골목 등 향토음식들이 손맛을 자랑하며 골목을 이루는 것은 덧정나는 일이다. 옛날 서울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 그랬고, 마산 아귀찜은 서울 신사동에 와 신사동 아귀찜 골목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아귀처럼 퍼먹는다’는 말이 있다. 식탐이 센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물텀벙이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생각나게 한다. 오죽이나 위장이 크고 입이 커 닥치는 대로 물고기를 집어삼켰으면 배가 부른 채 물에 던졌을 때 물텀벙 소리를 내는 걸까. 13종의 핀치(finch)가 각각 다른 부리를 가지고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변이에 의한 창조를 해 나가듯, 아귀란 놈도 배를 갈라보면 씹지도 않은 고등어 대여섯 마리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이 맛에 어떤 자린고비는 아귀를 즐겨 사온다고도 한다. 고등어 배 속을 열면 까나리, 까나리 배 속을 열면 뱅어 잔챙이들…. 이런 경우 진화론의 자연선택설이야말로 얼마나 평등한 먹이사슬 관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래고기가 장생포(울산)의 상징이듯, 이쯤 되면 물텀벙이는 인천 먹자골목의 대표 상표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성진물텀벙의 주메뉴는 찌개와 찜인데 찌개는 그 국물 맛이 유달리 시원해 술국으로도 그만이다. 찜은 생물을 그대로 이용하는데 다른 집보다 달지 않아 혀에 부드럽게 감긴다. 또 이 집 반찬은 짠지를 이용한 물김치가 일품이다. 짠지의 1년 소비량만도 트럭 10대 분량이라고 하니 물텀벙이 찌개나 찜을 찾는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는 상상조차 안 될 정도다. 물김치는 바로 아귀찜의 맵고 저린 맛을 중화해 주는 조미료 구실까지 해준다. 그래서 성진물텀벙(용현동)의 규모는 200석이며, 송도비치호텔 뒤에 있는 송도점은 대지 360평에 건평 300평이니 인천에서 물텀벙이의 텃세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물텀벙이는 고단백 물고기여서 탕을 끓이면 담백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먹을 수 있고, 특히 숙취 해소에 그만이어서 날로 단골손님이 늘어난다고 한다. 재료는 연안부두에 특별히 주문한 싱싱한 것만 사용한다.

전병찬 사장은 “30여년 동안 물텀벙이만 조리하다 보니 손님의 취향과 입맛에 환할 수밖에요”라며 환한 미소를 띤다. 그는 또 왕년의 코미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가 없어 못 마신다’는 한 토막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물텀벙 소리가 나지 않은 날이 없다고, 아예 물텀벙이로 돈 벌어 사회사업에 한몫했으면 좋겠다고 복지사업 구상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성진물텀벙은 종업원만도 15~17명에 이른다. 가격은 찌개, 찜 구분 없이 3만5000원(대), 3만원(중), 2만6000원(소)으로 구분돼 있어 가족 나들이에도 좋고, 송도점은 그쪽의 풍광 때문에 인기를 끈다.

14 닭도리탕[ | ]

유홍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국어사전에 새 낱말 하나가 추가될 것 같다고 에 썼다. 가든'이라는 말이 그것인데, ①정원'이라는 뜻에다 ②갈비, 생등심을 전문으로 내는 집'이라는 풀이가 덧붙여질 것 같다는 얘기다. 하기야 전국 국도변에 00가든', 가든'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보면, 그런 풀이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가든'과 쌍벽을 이루는 국도변 메뉴'가 있으니, 그게 바로 닭백숙', 닭도리탕'이다. 전국의 국도변을 도배하듯 장식하고 있는 수천개의 닭백숙, 닭도리탕 간판. 이걸 보면, 이 음식이야말로 사철탕'과 함께 온 국민의 으뜸 먹거리가 아닌가 싶다. 담백하게 푹 고아낸 닭백숙이 왈칵 땡기는 계절이다. 마침맞게 자란 암탉에다 황기며 인삼, 밤, 대추 등을 넣고 3~4시간 고아낸 뒤 도톰하게 살이 오른 다리살을 북북 찢어 소금에 찍어먹는 맛은 백숙만이 선사하는 별미다. 반면, 닭도리탕은 몸통을 뭉뚝뭉뚝 잘라 갖은 양념을 듬뿍 넣은 뒤 물을 자잔하게 붓고 끓이는 것인데, 양념맛이 은근히 밴 다리며 몸통살을 뜯어먹는 맛이 각별하다. 여기에 양념 맛이 푹 묻어나는 햇감자와 구수하고 얼큰한 국물을 곁들이면 술 안주로는 백숙보다 한결 낫다. 문제는 제대로 된 닭도리탕을 내는 집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닭 요리는 재료인 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많은 닭도리탕집들이 매일 닭을 잡아대니 질 높은 닭이 남아날리 없다. 웬만한 집에서는 양계장에서 외국산 사료를 먹고 자란 `폐계'들을 대량으로 사다 얼린 닭들을 쓴다. 퍽퍽한 살맛, 진국과는 거리가 먼 국물은 이런 재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칠보산 안자락에 있는 `칠보산토종닭'((031)-292-3236)은 질 좋은 닭이 맛을 보장하는 흔치 않은 닭도리탕 전문집이다. 충청도에서 사들인 토종 암탉 병아리에 잔밥과 각종 채소를 먹인다. 반나절은 그냥 풀어 먹인다. 90일 정도 된 암탉을 뭉툭하게 토막낸 뒤 대파와 양파, 겨자, 마늘, 고추가루, 간장 등속을 넣어 끓이고 햇감자를 넣어 중불로 뭉근하게 끓여 육수와 양념맛이 은근히 스며들도록 한다. 어슷하게 자른 대파와 풋고추는 모두 이 집 앞 텃밭에서 가꾼 완전 무공해다. 함께 올라오는 마늘 장아치와 동치미, 배추김치, 각종 나물도 별미다.

물 좋기로 유명한 칠보산 물 맛도 닭도리탕 맛을 보증한다. 주말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칠보산 경관 구경과 드라이브를 아울러 즐길 수 있다. 요즘에는 푸르름 속에 평상에 둘러앉아 소주 안주로 먹는 맛이 제법이다.

15 청정수역의 원조 다슬기국[ | ]

괴산·충주·옥천 등 충청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올갱이국집이 유난히 많다.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강원도 사투리다. 지역에 따라 올뱅이·대사리·고동·고디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어릴적 물맑은 시골 냇가에서 허리를 숙여 물속 바위틈에 딱 달라붙은 다슬기를 줍던 추억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 다슬기를 박박 문질러 씻어 아욱과 된장을 넣고 국을 끓이면 밥 한끼는 거뜬했다. 그만큼 다슬기국은 물맑은 지방이면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토속음식이다.

그런데 다슬기국'이 아닌 올갱이국'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여러 지방에 있지만 충청도 올갱이국이 원조이고, 색다른 맛을 낸다는 증거다. 남한강과 괴강, 달천강 등 청정수역은 이 지역에서 올갱이가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올갱이는 사람의 간 조직과 비슷해 간 보호와 피로회복·숙취제거에 탁월하며, 피를 맑게 하고 소화를 돕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요즘엔 올갱이 추출물에 갖가지 한약재를 넣어 영양식품으로 파는 회사도 있을 지경이니, 그 보양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이름이 많은 것처럼 지역마다 요리법이 약간씩 차이가 있다. 경상도에서는 들깻가루와 우거지를 넣어 추어탕처럼 끓여내고, 전라도 일부에서는 재첩국처럼 말갛게 내기도 한다.

충청도에서는 아욱국처럼 구수하게 끓여내는 게 특징이다. 올갱이를 삶은 물은 진초록 색깔을 낸다. 맛은 한약처럼 씁쓸한데, 그 자체로 올갱이 액기스다. 이 물에 된장과 약간의 고추장을 풀어 한소끔 끓인 다음, 아욱·부추 등을 넣고 잠깐 다시 끓인뒤 올갱이를 얹어 내놓는데, 그 맛이 구수하면서도 부드럽고 시원해 입안을 슬슬 녹인다. 특히 만취한 다음날 국물 맛은 뒤틀린 속을 확 풀어놓는다.

괴강 인근에 있는 괴산 직행버스터미널 건물 1층의 주차장식당'(043-832-2673)은 30년 전통을 자랑하며 올갱이국의 원조'임을 자부한다. 주인 김종박(52)씨는 “30년 전엔 술꾼들 술안주로 내줬는데, 반응이 좋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갱이에 달걀을 입히고 국에 부추를 많이 넣어, 부드러운 맛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을 쓴다. 이 맛을 못잊어 30년 단골손님이 요즘에도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연중무휴.

한국방송공사 충주방송국 옆에 있는 운정식당(043-847-2820)은 21년 전통을 갖고 2대째 올갱이국을 하고 있다. 고추와 파를 곁들여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더 난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삶은 올갱이에 된장과 양념을 묻혀 후라이팬에 데친다. 연중무휴.

서울에도 올갱이국을 하는 집이 제법 있는데, 부수적으로 하거나 본사에서 올갱이를 공급받는 체인점 형태인 곳이 많다. 강남구 포이동의 영동올뱅이(02-572-3731)는 충북 영동 출신의 방영길씨가 8년째 운영하는 곳으로, 금강 상류에서 친구가 잡아올려주는 자연산 올갱이를 쓰는 전문점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쉰다.

16 무젓과 박속밀국 낙지탕[ | ]

저갯마을 흐드러진 복사꽃잎 다 질 때까지는/ 이 밤은 아무도 잠 못 들리/ 한밤중에도 온 마을이 다 환하고/ 마당 깊숙이 스민 달빛에/ 얼룩을 지우며/ 성가족(聖家族)들의 이야기 도른도른 긴 밤 지새리// 칠칠한 그믐밤마다 새조개들 입을 벌려/ 고막녀(女)들과 하늘 어디로 날아간다는 전설이/ 뻘처럼 깊은 서산 갯마을// 한낮엔 굴을 따고/ 밤엔 무시로 밀낙지국과 무젓을 먹는 아낙들/ 뽀얀 달무리도 간월도(看月島) 너머 지고 말면/ 창창한 물잎새들 새로 되듯/ 이 밤엔 아무도 잠 못 들리/ 저 갯마을 복사꽃잎 다 흩날릴 때까지는

필자의 ‘서산 갯마을’이란 시다. 서해안 지방에서는 전통 음식인 보리밥과 게장이 일미로 전해오지만, 무젓(꽃게무침)은 이와 달리 꽃게의 속살을 저민 것이라 혀끝에서 생크림처럼 녹는 맛이 청풍명월을 음미하는 듯하다.

무젓은 밑반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두레음식으로 널리 애용돼 왔다. 복사꽃이 피고 탱탱 알 밴 꽃게들이 무진장 잡히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피면 부뚜막의 앵병도 주꾸미 맛에 절로 운다지만, 꽃게찜이나 무젓도 이만 못하지 않다.

서산시 축협 삼기식당(대표 정재원ㆍ041-665-5392)에 따르면 특별한 잔치나 두레마당이 벌어질 때 주문만 하면 무젓을 대량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남도에서 홍탁(홍어+탁주)과 삼합(홍어+해묵은 배추김치+돼지편육)이 없으면 울력판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맛깔나는 무젓을 양반가에선 외면한 사람마저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까닭인즉 게가 비틀걸음을 치기 때문에 횡행거사(橫行居士), 눈알을 부라리기 때문에 천상목(天上目), 창자가 없고 버캐를 피우므로 무장공자(無腸公子), 서해 뻘밭에서 많이 잡힌다 하여 강호사자(江湖使子), 서호판관(西湖判官) 등 갖가지 상징적 용어로 불린 때문이다. 그러나 무젓을 한 옹배기씩, 탱탱 알 실은 꽃게찜을 한 바구니씩 상 위에 올려놓고 추렴하는 이 지방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마당 깊은 복사꽃 환한 그늘에서 유정한 간월도의 달을 바라보며 도른거리는 꿈 같은 밤은 온전히 서산 갯마을만이 누리는 특유의 정취 아니겠는가.

‘굴, 합(蛤)과 같은 패류만은 퇴조시(退潮時)에도 도망가지 않으므로 이를 많이 포획하나 그 자원은 다함이 없다.’ 이는 ‘고려도경’ 잡속편의 일부다. 우리 국토의 다함 없는 뻘밭을 부러워하며 송나라 서긍이 쓴 글이다. 그 사신(使臣)도 무젓의 신선한 맛과 탱탱 알 실은 꽃게찜을 음미하며 썼음직하다.

‘조금 물 또랑 게’란 말도 있지만 달밤엔 갑각류의 살이 차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딱히 알 수 없지만, 태양이 떠 양기가 동하면 신체 리듬도 양기를 발산해 운동을 하고, 달이 떠 음기가 작용해 수분이 넘치면 체내 리듬도 수축과 저장이란 휴식 상태로 바뀌는 게 아닌가 싶다. 사계가 순환하듯 생체 리듬도 바뀌는 것이다.

달밤에는 이매패(二枚貝)인 새조개도 살이 차지 않아 하늘 어디로 날아간다는 서산 갯마을에 내려가 한 옹배기 무젓을 들어볼 일이다. 봄밤 복사꽃 그늘에 평상을 놓고 청풍명월을 부르는 그 멋스러움이 국토를 누비는 선풍(仙風)의 가락 아니겠는가. 그도 아니면 봄바람에 복사꽃 다 흩날리고 나서 음력 5~6월이 오면 역시 갯벌음식인 ‘박속밀국낙지탕’을 찾아봐도 좋다.

박속밀국낙지탕은 ‘삼해횟집’(서산시 읍내동ㆍ041-665-7878)과 ‘구도회관’(서산시 팔봉면 구도리ㆍ041-662-6117), 또 지곡면 중왕리 ‘중앙낙지한마당’(041-662-9016) 등이 널리 알려졌다. 박 오가리와 낙지, 국수가 만나는 ‘더위지기’ 음식으로 최상일 듯하다. 여기에다 최근 개막된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의 ‘꽃박람회’에 들르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17 '신토불이' 쌉싸름한 향 군침도네[ | ]

곰취·누르대·참나물·두릅·고사리…. 이름만 들어도 입안에 상큼한 향기가 번지는 산나물들이다. 푸르름이 한껏 살아있는 나물무침을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천천히 어금니로 씹어 보자. 느낌이 다소 거칠면서도 은은한 맛과 향으로 혀를 녹이는 곰취, 쌉싸름한 향기가 강하게 입안 가득 번져가는 참나물, 두툼하면서도 연하게 씹히면서 약간 텁텁한 뒷맛으로 밥맛을 돋우는 두릅…. 이게 바로 고향의 맛과 향기 아닐까. 기름진 서양 음식에 밀려나 있던 우리 땅 맛있는 산나물들이 최근 채식 바람이 타고 한층 각광을 받고 있다. 맛과 향기말고도, 몸에 좋은 자연식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산채정식이나 산채비빔밥을 내는 집들이 많지만, 정작 산나물 무침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나마 더덕 고사리 도라지 따위 일부 나물들은 수입산이 많아 입맛이 당기지 않는 게 사실. 하지만 전국 곳곳에 고집스럽게 제철에 나는 신선한 산나물들로 반찬을 만들어 내는 집들이 있어 입을 즐겁게 해준다. 열가지 안팎의 산나물 무침을 밑반찬으로 내는 산나물 전문식당들이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매표소 앞 식당가의 오대산식당(033-332-6888)은 25년 동안 한결같이, 부근 산간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무쳐 상에 올리는 집이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아 나물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나물 종류만 10여가지에 녹두전·생선 등까지 반찬이 35가지에 이른다. 특히 곁들여 나오는 된장찌개는 안주인 김남화(68)씨가 재래식 방법으로 직접 쑤어 만든 된장으로 요리해 구수한 맛을 더한다. 11년전 서울 강남 양재동에 아들이 같은 이름의 식당(02-571-4565)을 냈고, 올초엔 경기 파주 통일동산(031- )에도 지점을 차렸다. 산나물·된장·고추장 등 모든 재료는 고스란히 오대산에서 장만해온 것을 쓴다.

경기 성남의 남한산성 식당가에 있는 반월정(031-743-6562)도 25년 동안 산나물 정식을 해온 집. 120년 된 고택의 방에 들어가 상째 받는 산채정식 차림이 푸짐하다. 20여가지의 반찬중 철따라 나는 신선한 산나물 무침이 14가지나 된다. 모싯대·비름나물·취·두릅·참나물·미나리 등. 매일 아침 서울 가락시장에서 직접 골라온 뒤 다듬어 뒀다가 다음날 삶아 상에 올린다.

묵은나물만 내는 곳도 있다.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 정령치 밑 대기리의 에덴식당(063-626-1633)은 지리산에서 직접 채취해 말린 묵은나물 반찬을 내는 집. 주인 부부가 봄에 뜯은 산나물을 종류별로 말려두었다가 한겨울을 빼고는 내내 반찬으로 무쳐낸다. 16가지 반찬중 다래순·취·제보·게발딱지 등 9가지가 말린 산나물. 애써 뜯어 말린 나물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싫어해, 밥상에 맛볼 만큼만 적은 양을 낸 뒤 더 시키는 반찬을 듬뿍 갖다준다. 직접 담궈 내는 청국장도 일품이다.

대개 산나물정식을 내는 집들은 나물과 밥을 비벼먹을 수 있도록 그릇을 따로 내준다. 그러나 처음부터 비벼먹어선 저마다 다른 나물 개개의 참맛을 즐길 수 없다. 우선 한가지씩 천천히 씹으며 그 나물만의 맛과 향을 즐긴 뒤 고추장 듬뿍 올려 비벼먹어도 늦지 않다.

18 정선 올갱이묵[ | ]

강원도는 영동과 영서로 나뉜다. 산악권인 영서의 고산지대는 영동의 해안 음식과는 달리 맛이 밋밋하고 텁텁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외지인의 입맛을 노골적으로 유혹하지는 못한다.

감자와 옥수수, 메밀이 주식인 영서에서는 감자옹심이, 올챙이국수, 꼴뚜국수가 조식(粗食)으로서 3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집집마다 국수틀이 있거나 마을 공통으로 나무틀이 있었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정선읍의 장날은 봉평장과 마찬가지로 2일과 7일에 선다. 장터를 돌아보는데 좌판 앞에 앉아 올챙이묵을 먹는 모습이 남도 장터의 국밥집을 연상시킨다. 황포묵과 청포묵이 남도를 대표하는 묵이라면 올챙이묵이나 도토리묵, 메밀묵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묵이다.

정선읍에는 이름난 묵집이 많다. 장터 안의 대흥식당(033-563-1319)과 석곡집(033-562-8322), 정선역 부근의 동광식당(033-563-0437) 등 유명 묵집들이 널려 있다. 이 묵집들에서는 올챙이국수(묵)만 파는 게 아니라 콧등치기국수(메밀국수)도 판다.

1992년에 개업한 동광식당은 특히 메밀국수인 콧등치기로 이름이 났다. 이 집의 특징은 국물에 된장을 풀어 멸치로 우려낸 것에다 속껍질째 갈아 만든 메밀면을 삶고, 호박 우거지 등을 얹어 내는 데 있다. 향긋하고 쫄깃거리는 맛이 아주 좋다.

장터 안 대흥식당은 약밥백숙이 괜찮고, 대흥식당 옆 해동집(박옥년·033-562-2634)은 올챙이묵이 별미로 꼽힌다. 값도 저렴해 2000원이다. 9년째 맥을 잇고 있는 해동집의 주인은 스스럼없이 전통비법도 일러준다.

먼저 풋옥수수나 마른 옥수수를 물을 넣어가며 맷돌에 간 다음 체에 밭쳐 껍질을 걸러낸다. 그런 다음 맑은 액체를 솥에 넣어 풀을 쑤듯 저어가며 끓인 뒤, 되직해지면 구멍이 숭숭 뚫린 바가지에 부어 찬물에 면발을 받는다. 이때의 면발이 마치 올챙이처럼 하늘하늘 떨어진다 해서 올챙이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기에 갖은 양념을 하면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배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매끄러운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여름 별식으로 그만인 듯싶다. 더구나 열무김치를 걸쳐 먹으니 단번에 입맛이 돋는다.

‘열무김치 들어간다. 아구리 딱딱 벌려라’는 나주 지방의 열무김치도 유명하지만, 이곳 고랭지에서 길러낸 열무김치는 냉하면서도 아삭아삭 사근거리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고랭지 채소가 들 채소보다 비싼 이유도 알겠다.

정선읍 해동집에서 올챙이묵으로 한 끼를 때우고 오늘은 동면의 몰운대와 화암동굴을 찾아간다. 어제는 아우라지 나루를 건넜다. 비탈밭에서는 열무씨를 뿌리는지 일손들이 바쁘고, 저녁 햇살이 짧아진다. 별어곡, 자미원, 예미, 아우라지, 여량, 구절리 화절령 등 오지마을의 정겨운 이름들도 저문다. 1080여m의 각화산을 끼고 있는 무치재의 구불구불한 고갯길도 몇 년 전엔 자갈길이었으나 지금은 시원한 포장길로 변했다. 고개를 넘으며 문득 ‘앞산 뒷산’이라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요 앞산 뒷산에 빨랫줄을 매고요/ 눅눅한 팔자일랑 짧은 햇살에 널어 말리지요.’

그래서 정선 땅을 산팔자, 물팔자라 했던가. 강원도 달비장수도 울고 넘었다는 고갯길. 올챙이묵처럼 하늘하늘한 구름 한 자락도 깊은 골 앞산 뒷산에 걸려 비틀걸음을 친다. 전 국토가 식당화, 가든화, 먹을거리의 즉흥성과 입맛만 좇는 분위기로 덮여가고 있는데 그래도 이곳만은 아직도 숨쉴 공간이 있긴 있다.

이윽고 화암동굴의 약수터로 가기 전에 몰운대에 섰다. 허옇게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이 몰운대에 기대 섰다. 어쩐지 아우라지 처녀상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진 한 컷을 다시 찍는다.

19 밴댕이회[ | ]

밴댕이가 표준말일까. 그렇다. 우리나라 남서해안에서 4~6월에 잡히는 길이 10㎝ 안팎의 청어과에 속하는 바닷고기다. 반디·소어 등으로 불리며 젓갈용으로만 써오다 10여년전 일반음식점에 선보인 뒤, 해마다 이맘때면 강화도·인천 일대에서 인기를 끄는 횟감이 됐다.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닿자마자 삶을 포기하고 곧바로 죽어버리는 속 좁은 고기. 뱃사람들조차 살아 있는 놈을 구경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밴댕이 소갈머리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이놈을 회로 먹으면 고소하기 이를 데 없어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약간 비린 듯하지만 쌈에 싸먹으면 깔끔하다. 머리와 뼈를 발라내고 펼치면 한 마리가 한젓가락. 상추·깻잎에 고추냉이간장에 적신 밴댕이회를 한점 올려놓고 마늘·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함께 싸먹는다. 값도 싸 한접시에 1만~2만원선. 2만원짜리면 2~3명 술안주로 거뜬하다.

밴댕이회로 이름난 곳은 강화도 외포리와 선수리(후포항). 횟집마다 밴댕이회 전문 간판을 달고 있다. 강화도 밴댕이는 남서해안 것보다 크기가 작은 데 비해 고소한 맛은 더하다. 주산지는 서도면의 볼음도·아차도·말도 부근 바다. 그러나 요즘은 밴댕이 어획량이 급감해 4~5년 전같지 않다. 주민들은 영종도 새공항 건설과 한강 오염을 원인으로 꼽는다. 일부 횟집에서 오로지 볼음도 치를 쓴다고 주장하지만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대부분 횟집에선 목포 등 남서해안에서 잡아 냉장운반한 밴댕이를 쓴다.

가장 먼저 밴댕이회를 상품화한 사람은 선수리 청강횟집(032-937-1994)의 이성배(64)씨다. 18년째 밴댕이회 전문(2만원)이다. 상추·취나물에 싸서 먹는다. 외포리의 보문사행 옛 선착장에 있는 외포횟집(032-932-6662)은 인삼·대추·순무등 푸짐한 밑반찬이 돋보이는 집. 강화도와 마주한 김포 대곶면 대명포구나, 인천 구월동 문화예술회관 주차장 건너편 골목에도 밴댕이회 전문집들이 많다. 구월동 밴댕이 골목엔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송원식당(032-432-6948)을 비롯해 여덟집이 몰려 있다. 한접시 1만2000원 균일. 게장과 구수한 된장국을 곁들여 내는 것도 똑같다.

20 매콤새콤 서늘~ 국수[ | ]

김치말이국수

덥고 목마르고 배고플 때 딱 알맞은 음식. 살얼음 낀 바알간 김칫국물에 소면을 말아먹는 김치말이국수다. 먼저 이가 시려오고 입안이 얼얼해지면서, 잘 익은 매콤하고 상큼한 김칫국물 맛이 느껴진다. 졸깃한 면발과 아삭아삭한 무·김치 조각을 함께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가슴속까지 서늘한 한기가 퍼져 내려간다. 시원하고 개운한 뒷맛이 냉면과는 또다른 맛의 경지다.

동치미국수·열무김치국수·오이소박이국수 등 김치말이국수류는 매운맛이 덜해 외국인들에게도 김치 입문용으로 권해볼 만한 전통 먹거리다. 본디 속이 헛헛해지는 한겨울밤, 무·배추·파·고추 따위가 한데 어울려 잘 익은 동치미 국물에 국수나 찬밥을 말아먹던 평안도 지방의 겨울 별식(평안도 동치미는 고춧가루를 갈아넣어 발갛게 만든다)이다.

경기 포천군 내촌면 내리 47번 국도변의 ‘곰터먹촌’(031-534-0732)은 보기 드물게 깊은 맛을 내는 김치말이국수 전문집. 배추·무·대파·양파를 숙성시켜 우려낸 김칫국에 갓 삶아낸 국수를 말아 배·무·오이를 채썰어 넣고, 소 편육과 으깬 두부, 열무김치·풋고추·달걀반숙·깨·잣을 얹은 다음 참기름을 살짝 둘러 낸다. 졸깃한 면발과 야채, 시원하고 깊은 국물맛은 여타의 김치말이국숫집과 구별된다. 기름기를 완전히 걷어낸 쇠고기육수와 잘 익은 김칫국물의 조화로운 배합이 맛을 내는 비결이다. 평양 출신 안주인 함병현(67)씨가 14년째 한결같은 맛을 내고 있다.(사진) 5000원.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 연세중학교 앞 ‘죽여주는 동치미국수’(031-576-4070)는 8년째 시원하고 깔끔한 동치미국수를 선보이는 집이다. 국물맛이 시원하고, 곁들여지는 통배추 물김치 맛이 일품이다. 4000원. 바로 옆의 ‘개성집’(031-576-6497)은 오이소박이냉국수를 내는 집이다. 잘 익은 오이소박이 김칫국에 소면을 말아낸다.

서울 여의도 인도네시아대사관 맞은편 골목의 ‘김치방’(02-780-2489)과 삼청동 금융연수원 건너편 위쪽의 ‘눈나무집’(02-739-6742)도 각각 10년, 12년 경력의 김치말이국숫집이다. 새콤한 포기김치를 썰어 올리고, 따로 반찬으로도 낸다.

21 동해안 물빛만큼 다양한 맛깔 / 막국수[ | ]

막국수는 아무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다고 하여 `막'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고 한다. 서민층의 국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막국수 하면 춘천을 떠올리지만 막국수는 이제 강원도의 음식이다. 강원도 어느 고장에 가더라도 소문난 막국수집 한 두곳 없는 곳이 없다. 이렇게 강원도가 막국수의 고장이 된 데에는 막국수의 주재료인 메밀의 생장 특성과 무관치 않다. 기온이 낮은 고지대에서 잘 자라는 메밀 생장 특성과 강원도의 지역적 여건이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막국수는 메밀을 주재료로 하지만 메밀만으로 국수를 뽑으면 국수 발이 푸석해지기 때문에 감자가루나 고구마가루를 섞는다. 그러나 전분을 너무 많이 섞으면 메밀의 구수함이 사라지고 고무줄같이 질기기만 해지니 메밀과 전분의 비율이야말로 막국수 맛을 좌우하는 열쇠라 하겠다.

막국수는 지역마다 차림새나 먹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춘천막국수 경우는 국수와 육수를 따로 내면 먹는 사람이 취향에 따라 비벼 먹거나 국물을 부어 먹지만, 동해안 지역의 막국수는 보통 처음부터 육수를 부어내온다.

맛도 조금 다르다. 춘천막국수가 새콤달콤한 여성 취향의 맛이라면, 김과 참깨 가루가 많이 뿌려지는 동해안 막국수의 시원하고 담담한 육수에서는 보다 남성적인 맛이 느껴진다.

삼척의 ?5s부일막국수?5b는 삼척지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근의 태백, 동해, 도계 등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막국수집이다. 이 집 막국수는 고기·멸치·다시마·무 등을 우려 육수를 만든다고 하는데 시원하면서도 혀에 착착 감기는 끝맛이 좋다. 일반적으로 시원한 육수는 맛이 싱겁고, 감칠맛 좋은 육수는 인공적인 뒷맛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집 육수 만큼은 예외다. 메밀과 전분을 7:3의 비율로 섞어 뽑는 국수는 메밀 함량을 늘려 풋풋함을 더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쁘진 않다. (033)572-1277.

강릉과 주문진의 중간인 연곡에 있는 ?5s동해막국수?5b의 막국수는 시원하면서도 진한 육수가 일품이다. 육수는 동치미국물과 고깃국물을 섞어 만들지만 고깃국물 맛이 다소 강한 편이며, 국수는 쫄깃하게 찰기가 살아있다. 연곡농협과 연곡 등하교 중간지점에 위치. (033)662-2263.

양양에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쟁쟁한 막국수집들이 버티고 있다. 주문진과 양양의 경계인 입암리에 자리한 ?5s입암리막국수?5b는 까실한 메밀국수에 시원한 육수가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1968년부터 막국수를 해오며 지금은 버젓하게 현대식 건물까지 지어 준기업형 막국수집으로 발전하였는데 옛 허름한 막국수집의 운치가 사라져 아쉬움이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옛맛을 잘 지켜나가니 손님들의 발길 또한 꾸준하게 이어진다. 이 집 막국수의 포인트는 메밀 순도 높은 구수한 국수와 한사발을 들이켜도 뒷맛이 남지않는 시원하고 담백한 육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빔막국수는 들기름으로 비벼 조금 들척지근하다. 양양군 입암리 임당초등학교 앞에 있다. (033)671-7447.

?5s단양식당?5b은 80년에 걸쳐 3대를 이어오는 전통의 막국수집이다. 식당을 시작한 할머니의 고향이 충북 단양이어서 옥호를 단양식당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 집은 막국수와 냉면을 같이 하는 것이 독특한데, 차이가 있다면 막국수는 메밀만으로, 냉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국수를 뽑아 사리의 질감이 다를 뿐이며 육수나 양념은 같다. 이 집 막국수 육수는 냉면스타일의 깔끔한 맛으로 감칠맛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이 집의 막국수를 최고로 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질긴 사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막국수 대신 냉면을 주문하면 된다.

제육(1만3천원)도 맛있어 제육을 몇 점 전채 삼아 곁들이고 막국수로 마무리 하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양양사거리에서 양양 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다가 국민약국 옆에 있다. (033)671-2227.

?5s실로암막국수?5b는 동해안의 대표 막국수집으로 좋을 만큼 명성이 드높다. 이 집에서 막국수를 맛보았다는 것은 각자의 맛기행 이력에 적어둘 만한 일로서 속초, 양양지방의 나들이길에는 뺄 수 없는 코스다. 생전 정주영 회장은 한 달에 몇 번씩 이 집을 찾아 막국수를 즐겼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서울에서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와 막국수를 먹고 돌아간다고 할 정도로 골수 단골들이 많다,

이 집 막국수는 맛이 조금 독특하다. 고기국물 맛이 강한 여느 막국수와 달리 동치미 국물로만 말아내는데 김치를 다져 넣고 동치미 국물만을 부어 먹기 때문에 이북식 김치말이를 먹는 듯한 느낌이다. 국수는 메밀 알갱이가 씹힐 듯이 거칠지만 구수하다.

물막국수와 비빔맘국수 구별이 따로 없으며 비빔막국수에 동치미국물을 부어가며 들기름, 설탕, 식초로 각자가 알아서 맛을 내 먹는다. 삼겹살을 얇게 썰어 달콤하게 무친 무말랭이, 미역 등과 같이 내오는 제육(300그램/1만2천원)도 소문난 맛이다. 위치는 양양군 속초비행장 부근이다. 일요일은 쉰다. (033)671-5547.

22 자연산 횟감 싱싱 … 서해안 맛집 가이드[ | ]

서해안에는 먹을거리들이 많다. 크고 작은 어항에 붕장어(아나고)와 간재미(가오리의 일종)·우럭 등이 넘쳐난다. 가로림만과 천수만 등 갯벌들에서 나는 낙지와 조개류도 별미다.

태안반도의 모항과 안흥항은 여름철 별미인 붕장어가 제철을 맞고 있고, 안면도 연안의 백사장어항과 방포·영목항 등에도 아침이면 자연산 우럭과 간재미 등을 받으러 오는 활어 차들이 줄지어 있다. 서산과 태안 홍성 보령 서천 등지에는 박속낙지와 아구찜 홍성한우 등 향토 음식들이 좋다.

◆붕장어와 낙지의 고장 태안반도

①진국집:서산시 구 군청 앞 로터리 근처 (041)665-7091. 서산지역의 토속음식인 게국찌개백반을 10여년 간 끓여내오고 있다. 게장을 담근 뒤 게를 다 건져먹고 남은 간장국물에 묵은 김치 우거지를 우려넣고 끓인 찌개로, 섬뜩하리만큼 짜지만 뒷맛이 개운하다. 계란탕 등 4~5가지의 찬을 곁들여 1인분 4000원.

②원이식당:태안군 원북면 학암포 해수욕장 입구 (041)672-5052. 태안반도의 명물인 박속낙짓국을 25년간 끓여내 원조집을 자처한다. 서산 갯벌낙지에 박속과 대파 등을 넣고 끓이는 낙지탕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별미. 탕에 들어가는 한 마리 5000~7000원인 낙지 수로 가격이 정해지고 수제비와 칼국수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

③인천회관:태안군 근흥면 안목항 (041)675-1155. 우럭과 광어·농어 등 틀림 없는 자연산 횟감을 매운탕과 곁들여 제맛나게 선보인다. 본래는 꽃게집으로 이름났지만 7~8월은 꽃게의 산란기여서 일반 횟감만을 낸다. 활어회 1㎏기준 5만~6만원선.

④반도회관:태안군 모항리 모항어항 (041)672-2626. 모항은 만리포해수욕장 남단으로 이어지는 바다경관이 뛰어난 어항이다. 해안 단애가 발달해 송림을 이고 선 기암들이 절경이고, 앞바다에서 나는 붕장어가 제철을 맞고 있다. 산째로 토막내 굵은 소금을 뿌리며 숯불에 굽는 붕장어 통구이(1㎏ 2만5000원)와 탕을 비롯해,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⑤천리포식당:태안군 의항리 천리포어항 (041)672-9170. 만리포해수욕장 북단 3㎞쯤에 있는 어항이다. 가오리의 일종인 자연산 간재미를 즉석에서 회를 떠, 초장에 무쳐주거나 그냥 회로 내는데, 오돌오돌한 물렁뼈와 담백한 회맛이 양념발을 받아 별미를 내준다. 밥을 곁들여 1접시 2만원(2~3인분으로 충분하다).

⑥한국관:태안군 태안읍 (041)675-2415. 회나 해산물 말고 깔끔하게 차려낸 백반이나 냉면·탕국 등 한식을 먹고 싶을 때 찾으면 좋다. 정갈하고 쾌적한 대형 한식전문점이다. 산채비빔밥과 돌솥밥·냉면 등이 5000원. 꼬리와 우족탕 1만원.

⑦현대회관:태안군 모항리 모항 (041)672-9596. 모항 선창가에 자리잡고 있어 바닷냄새가 물씬 풍기는 맛이 있다. 서해 갯벌에서 나는 각종 조개류를 수집해 조개모듬구이를 별미로 낸다. 홍합과 키조개·모시조개·맛·생합 등에 소금을 뿌리며 즉석에서 굽는다. 조개모듬구이(3~4인분) 1접시 3만원.

◆안면도의 청정한 바다먹을거리

⑧복음횟집:안면읍 창기리 백사장어항 (041)673-5349. 대하파시로 이름난 백사장어항은 한여름 안면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이름 높다. 규모는 작지만 고운 모랫발과 백사장어항의 갖가지 먹을거리들로 피서객들이 몰린다. 겨울에 산째로 급랭보관했던 대하를 조개탕을 곁들여 구이로 낸다. 대하소금구이 1kg(25~30마리) 4만5000원.

⑨오복횟집:안면읍 교남2구(영목항) (041)673-6771. 안면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영목항의 이름난 횟집이다. 자연산 회와 굴물회·꽃게탕이 전문. 주인이 직접 떠내는 회와 초밥이 신선하고 양이 푸짐하다. 자연산 광어 1kg 6만원, 우럭 1kg 4만원.활어초밥(10개) 1만원.

⑩뮤즈(Muse):안면읍 중장리(롯데오션캣슬) (041)671-7150. 꽃지해수욕장에 자리잡은 롯데오션캣슬과 이어지는 해변 레스토랑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가에 앉아, 분위기 있게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커피 4400원, 스테이크류 2만3000~3만원선.

⑪외도활어회센터:안면읍 승연리(꽃지해수욕장) (061)674-0208. 꽃지해수욕장을 내다보고 앉은 활어횟집이다. 외도에 살고 있는 주인이 외도 앞바다에 그물을 놓아 잡아온 자연산 활어회와 조개구이 등을 낸다. 활어회 1kg기준 5만~6만원, 조개구이(1접시) 3만원.

3)대천해수욕장과 여름 별미

⑫대천농원식당:보령시 신흑동 대천해수욕장 입구 (041)933-8542. 대천해수욕장과 대천어항으로 이어지는 구 도로의 중간쯤에 있다. 송림에 가린 야산자락에 콘도급 민박시설을 갖춰놓고 있다. 제철에 급랭해 놓은 꽃게로 탕과 찜·간장게장을 내고, 생아구찜과 아구탕도 별미다. 꽃게탕(1인분) 1만6000원, 일반식사 1인분 6000원.

⑬화현가든:보령시 화산동(보령~공주 방향) (041)933-9952. 1인분 1마리를 기준으로 꼬득하게 구워내는 장어구이가 입안에 녹는 맛이 해물 이상으로 감칠맛이 나, 여름철 보양식으로도 나무랄 데 없다. 장어구이 1인분 1만2000원.

⑭해변횟집:보령시 신흑동 (041)933-7023. 대천어항 내 내력이 가장 오랜 횟집이다. 어항에 들어오는 횟감들을 수시로 들여와 가장 신선한 회를 해수욕장보다 1만~2만원은 저렴한 가격으로 낸다고 자부하고 있다. 곁들이는 덤안주가 넉넉하다. 광어와 우럭 1kg 4만~5만원, 농어1kg 4만5000원, 우럭 1kg 3만원.

4)장항항과 춘장대해수욕장

⑮온정집:서천군 장항읍 (041)956-4860. 장항어항을 안고 있는 장항읍에서 15년 내력을 쌓고 있는 아구전문집이다.

향토식당:서천읍 화금리(서천여상 앞) (041)952-4186. 해안에 닿아있으면서도 금강줄기를 따라 부여군으로 이어지는 서천군은 농산물도 풍부하게 난다. 지역에서 나는 토종콩을 이용해 손두부와 순두부찌개를 맛깔스럽게 끓여낸다. 순두부찌개백반 1인분 4000원, 모두부 2000원, 파전 4000원.

바다횟집:서천군 장항읍(하구둑 횟집촌) (041)956-7932. 장항읍에서 금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횟집촌에서 고객층이 가장 두터운 집이다. 젊은 시절 장항읍과 군산항 횟집촌의 유명 업소들을 고루 거치며 솜씨를 닦은 주인이 직접 주방을 지키며 고객을 맞는다. 다양한 횟감과 넉넉한 덤안주로 누구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 경영방침이다. 활어회 1kg 5만~7만원.

5)덕산온천과 수덕사

중앙식당:예산군 덕산면(수덕사 관광단지) (041)337-6677. 수덕사 관광단지에서 내력이 가장 오랜 한식집이다. 주인의 넉넉한 인심과 오랜 솜씨가 엮어내는 소박하면서도 풋풋한 한식의 상차림이 고향의 향수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산채정식(1인분) 8000~1만원.

소복식당:예산읍 예산리 (041)331-2401. 예산읍에서 50년 내력을 쌓고 있는 한우갈비집이다. 나들이를 마감하며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내력있는 별미집이다. 숯불에 구워 돌판에 얹어내는 한우갈비와 갈비가 넉넉하게 들어간 갈비탕이 별미다. 갈비구이(1인분) 1만6000원, 갈비탕 6000원.

향수가든:서산시 해미면(해미읍성) (041)688-3757. 서해고속도로를 이용해 서해안 나들이를 계획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해미IC다. 해미IC를 중심으로 가족이 함께 부담없이 들를 수 있는 집으로 향수가든이 가장 알맞다. 뜸이 푹 들어 푸근하게 퍼진 보리밥과 직접 재배해낸다는 싱싱한 쌈감이 고향집 밥맛 같다. 보리밥쌈밥(1인분) 6000원.

(김순경·음식 칼럼니스트 mailto:fooddoctor@hanmail.net )

23 평창-정선 별미기행[ | ]

비는 궂게 내리고, 날씨는 무덥다. 여름철은 입맛이 떨어지기 십상. 맛있는 음식이 있는 시원한 여행이라면 어떨까. 해발 700m 고지대에 위치한 강원도 평창, 산과 계곡의 마을 정선은 여름철 평균 기온이 서울·중부 지역에 비해 4~5℃ 낮다. 평창의 특산 메밀 음식은 더워진 몸을 차갑게 해준다. 정선의 향어백숙은 인삼·황기·대추·밤 등 22가지 재료를 넣은 보양음식이다. 입도 즐겁고 여름도 이기는 별미기행, 평창·정선지역의 맛집을 찾아 나선다. 시원한 여름은 덤이다.

◆ 현대막국수 : 평창군 봉평면은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 생가가 있어 막국수가 더 유명해졌다. 봉평에서 봉평막국수 (033-335-9622)와 더불어 손에 꼽는 막국수 집. 메밀국수 3500원, 비빔국수 4000원. 밀가루를 섞지 않은 순메밀국수는 5000원. 동동주·더덕막걸리(각 5000원)와 수육(1만원)도 낸다. 봉평면 창동2리. (033)335-0314

◆ 미가연 :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자랑하는 주인 오봉순(여·38)씨가 지난해 3월 개발한 ‘메밀싹’ 요리를 선보인다. 메밀싹나물비빔밥(5000원)과 메밀싹 묵무침(9000원)이 주요 메뉴. 막국수의 유명세를 능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콩나물보다 가늘고 긴 메밀싹은 입안에서 아삭거리며 씹히는 맛이 좋다. 메밀전에 야채를 넣고 말아 만든 메밀 전병(5000원)도 독특하다. 봉평면 창동1리. (033)335-8805

◆ 일송정 : 95년 11월 문을 열어 입소문을 통해 유명해진 집. 24시간 이상 냉동한 돌판 위에 산 송어를 가지런히 썰어 낸다. 오렌지색 빛이 도는 송어회는 잔 맛이 없고 담백하다. 기호에 따라 각종 야채·콩가루·참기름·초고추장과 송어회를 비벼 먹는다. 주인 이병곤(47)씨는 “양식 송어를 1주일 정도 굶기다시피 하면 육질이 쫄깃쫄깃 좋아진다”며 “모든 재료는 평창지역에서 나는 것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방충망을 쳐놓고 창문을 다 열어 놓은 한옥집은 에어컨이 없는데도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분다. 돌송어회 1㎏ 2만원, 송어회무침 1㎏ 1만8000원. 봉평면 면온2리 (033)333-7043

◆ 산촌순두부 : 일반적인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뭉쳐 있지 않고 계란찜 같은 모양을 한 독특한 순두부가 일품이다. 반찬은 소박한 편. 비지찌개를 함께 식탁에 올린다. 주인 이상용(49)씨는 “10시간 이상 생콩을 불리는 과정에 노하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감자전은 지름 25㎝ 정도로 크다. 순두부정식 5000원, 감자전 4000원. 봉평면 무이2리. (033)333-5661

◆ 황소고집 : 평창은 횡성과 더불어 한우고기가 유명한 지역. 가장 맛있는 고기를 낸다며 평창군청이 소개한 집이다. 살치살(2만원)은 붉은 고기에 흰 지방이 고르게 박혀 있어 부드럽게 씹힌다. 안창살 2만원, 생등심 1만8000원. 평창도서관 옆에 있다. 평창읍 하3리. (033)333-1818

◆ 할머니회집 : 정선군 전통향토음식 5호로 지정된 향어백숙은 20여년 전 전영진(76) 할머니가 개발한 보양식이다. 인삼·황기·대추·생강·밤·버섯 등 22가지 재료를 넣어 1시간 이상 끓여 낸다. 향어 맛은 푹 고아낸 닭고기 맛 비슷하다. 전혀 비리거나 느끼하지 않다. 전 할머니는 “외국인들도 닭고기 수프 맛이 난다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수년 전 향어백숙을 맛본 임권택 감독은 웬만해선 내놓지 않는 명함을 할머니에게 내밀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음식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라며 극찬했다 한다. 뽀얗고 진한 국물은 사뭇 감동적. 몸이 좋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대(4만5000원)·중(3만8000원)·소(3만원)가 있다. 정선군 동면 석곡2리. (033)562-2785

◆ 동광식당 : 후루룩 먹다보면 메밀 국수 가락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여진 메밀콧등치기국수를 낸다. 된장 국물에 뜨겁게 끓여 내는 점이 차게 내놓는 막국수와 다르다. 면발도 막국수에 비해 굵다. 주인 송계월(여·58)씨는 “남기면 용서하지 않는다”며 밥도 덤으로 주었다. 정선읍 봉양5리 (033)563-3100

◆ 심순녀 안흥찐빵 : 평창·정선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러 한 박스 산 뒤 차 안에서 먹으면 여행이 즐겁다. 혹은 돌아오는 길에 한 아름 사가지고 집에 와서 냉동실에 넣어둔 후 조금씩 쪄 먹으면 달콤한 팥이 여름철 입맛을 살린다. 쫄깃쫄깃한 빵 표면이 일품. 40여년 쪄낸 찐빵 기술 하나로 개그맨 심형래와 함께 ‘신 지식인’에 선정된 바 있는 심순녀(여·58)씨는 최근 친척과 ‘찐빵 분쟁’이 있어 그동안 주문 받아온 전화번호를 바꿨다며 꼭 바뀐 전화번호를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20개들이 5000원, 50개들이 1만2000원. 횡성 안흥면. (033)342-4462

24 살살녹던 최고의 그 맛 불고기[ | ]

요즘은 불고기 잘하는 집이 별로 없다. 그동안 내 입이 고급으로 변해 같은 맛이라도 예전만 못하게 느껴는 이유도 있겠지만, 식당에서도 다른 고기요리에 비해서 손도 많이 가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불고기를 홀대하는 추세다.

게다가 고기의 질이 떨어져도 양념으로 이를 덮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좋은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불고기가 점점 맛없는 음식으로 전락하다 보면 언젠가는 고구려시대에서부터 맥을 이어왔다는 우리의 전통음식 불고기가 우리의 메뉴판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여기 소개하는 식당들은 옛날 먹던 불고기의 그 맛을 생각나게 해주는 몇 안되는 불고기집들이다.

우래옥(02-2265-0151)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불고기. ‘입에서 녹는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맛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 한 젓가락 분량인 불고기 150g에 2만원이나 하니 맛보기에 만족해야 한다. 우래옥 불고기 한번 양껏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이 많다. 불고기를 먹은 후에는 불고기 육수에 메밀 사리를 넣고 끓여 먹는 불사리도 잊지 말자. 을지로 4가와 청계천 4가 사이 주교동 골목.

언양불고기(02-548-2684) 질좋은 고기만을 골라 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살짝 버무린 후,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굽는다. 고기에서 떨어진 양념과 기름이 숯불이 타며 자아내는 훈연이 고기에 배어들어 혀를 녹인다. 불고기를 참기름에 찍어 먹는 맛도 독특하다. 200g에 1만3천원. 친절한 서비스는 기대하지 말자. 영동시장 골목안.

사리원(02-3473-5005) 양식당 같은 깔끔한 분위기의 불고기 전문점. 와인을 죽 늘어놓은 식당의 분위기가 이 집의 컨셉을 말해준다. 한우 등심만을 사용하는데, 설탕 대신 파인애플즙·배즙 등으로 단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최고의 맛은 아니지만 여느 불고기집들 같이 어수선하지 않아 점잖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서초동 삼성 쉐르빌 옆.

역전회관(02-793-2019) 역 부근의 식당으론 흔치 않게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식당이다. 모든 음식의 맛이 훌륭하지만 특히 소의 뱃살인 치마살을 다져 주걱으로 두들겨 가며 빈대떡 같이 구워 내는 바싹불고기는 이 집의 명물이다. 육수 없이 바싹 구웠다 하여 바싹 불고기라고. 안주로도 좋고 식사로도 그만이다. 용산역 앞.

25 광양 전어축제[ | ]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다. 전어는 벼가 익을 무렵 가장 살이 통통해지고 맛 또한 최고에 오르는 생선이다. 28~29일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일대에서 열린다. 섬진강 끝자락 망덕포구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하며 전어회, 전어구이를 맛본다. 1998년 시작된 이 축제는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콜레라가 발생해 열리지 못했다. (061)797-2363 그리고, 충남 서천 서산군 서면 홍원항에서 열리는 전어 축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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