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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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Lucia 움베르토 솔라스 l 1968 | 160min | 35mm | 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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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를 보다. 거의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영화를 스크린에서. 1968년에 만들어진 영화. 쿠바의 역사를 세명의 루시아를 통해 드러낸 작품. 1895년의 루시아. 식민지 시대. 쿠바가 스페인과 독립전쟁이던 시대. 1932년의 루시아. 미국의 후원아래 군사 쿠데타로 나라를 장악한 마차도의 독재시대. 1960년대의 루시아. 1959년의 카스트로 입성으로 혁명을 완수한 시대. 하지만 뿌리박힌 쿠바의 전근대적 남성 마초이즘(마치스따들의)이 혁명의 걸림돌로 작용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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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솔라스의 세 는 각기 다른 영상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에는 바로크적 과잉, 심리적 표현주의 양식의 연극적 전개, 지배계급과 거리의 사람들 사이의 명백한 계급적 차이의 도저한 시각화(벨 에포크 시대를 예고하는 화려함과 흰색 / 디킨즈 소설 속의 산업화와 근대화의 희생양들), 내러티브 진행의 연극적 장치, 끊임없이 주저하게 되고 망설이고 유예되는 순간들, 과다 노출 안에 심리적 공황 상태의 표현 등. 거리의 미친 여자 에피소드. 교수대의 병사들과 간호사 복장을 한 수녀들-중세적 혼란과 악다귀의 시각화. 흑백의 선명한 콘트라스트. 그 질감.(대강의 줄거리-스페인에서 온 남자 라파엘과 사랑에 빠지는데, 이 남자는 교묘하게 루시아가 그녀의 남동생도 그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쿠바 독립군의 숨은 본거지를 알려주게 만든다. 이 남자의 뒤를 따라온 군대는 독립군 본거지를 초토화한다. 루시아는 라파엘을 찔러 죽인다.)

두번째 는 부르주아 여성인 루시아가 마차도 독재 타도에 앞장서는 애인 알도를 따라 공장 노동자로 근무하며 그의 길을 함께 가고자 한다는 내용. 루시아는 알도에 종속적인 인물로 보이고. 도 그랬으니. 첫번째 루시아라고 해서 독립적인 여성은 아니었다. 선명하게 각이 진 얼굴의 루시아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인물로 그려졌으니. 첫번째 가 시각적으로는 가장 라틴 아메리카의 시각적 표현양식 안에 영화적 장치를 펼친 실험적 화면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의 후반부에는 알도네가 마차도를 타도하고(이후 바티스타가 정권을 잡는다), 자신들의 이상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데카당스한 성적 향연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도입부에 부르주아 루시아를 표현해내는 방식은 거의 제국주의자들의 유유한 산책과 같은 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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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 쿠바의 마치스모들이 실제로 피델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가장 큰 사회적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고 한다. 루시아의 남편인 토마스는 루시아가 집단농장에 일하러 가는 것도 못하게 하고, 집안에 가둬놓고 자신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한다고 소리친다. 결국 루시아는 토마스에게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다. 중간중간에 극의 진행을 설명하는 '관타나메라Guantanamera'(다들 아는 유명한 그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데(실제로 1930년대에 호세이토 페르난데스가 불렀던 곡들이라고 한다), 이 노래 가사에 담긴 유머와 통렬한 풍자는 세번째 에 대단한 힘을 실어준다. 세번째 루시아는 쿠바의 미래에 대해 가장 희망적인 꿈을 가진 루시아이다. 움베르토 솔라스는 각 시대의 루시아에 걸맞는 촬영 스타일로 찍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고, 심리적 상태를 비주얼에 전가시키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없는 세번째 가 가장 기억에 남음. (5월 24일) -- Sonimage 2004-6-10 5:08 pm

소이 쿠바( I am cuba | Soy Cuba 미하엘 카라토조프 Mikhail Kalatozov | 1964 | 140min | 35mm | 흑백)

딸기와 초콜렛( Strawberry and Chocolate | l Fresa y Chocolate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Tomas Gutierrez Alea | 1993 | 110min | 35mm | 컬러)

(단편)신기원과 세기말의 매혹(The Epoch and the Enchantment of Fin de Siecle | La epoca, el encanto y fin de siglo 후안 카를로스 크레마타 말베르티 Juan Carlos Cremata Malberti | 1999 | 27min | Video | 컬러)

(단편)79 봄들(79 Springs | 79 Primaveras 산티아고 알바레스Santiago Alvarez | 1969 | 25min | Panoramic 35mm | 흑백 ㅣ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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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의 섹션 중 하나였던 이번 쿠바영화제는 비단 쿠바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사람이 포함되어있다.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산티아고 알바레스, 움베르토 솔라스가 그들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영상집단 이후의 대학 영화동아리들에게는 제3세계 영화로서 라틴 아메리카 영화는 대단한 모범이었다. 그 영화들을 그때의 분위기 속에서 필름으로 다시 보는 것은 89년 이후의 우리에게, 6.15 선언 이후의 우리에게 영화사적 의미 이상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상영 사수대가 조직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때와, <상계동 올림픽>과 <닫힌 교문을 열며>의 눈물어린 상영이, 오늘의 이 거둬들이는 주류 언론으로부터의 주목과는 천지간 차이를 느끼게 할 정도이다. 어쨌든 쿠바영화제를 앞두고 이런 생각들이 든다는 게 참...

일단 <소이 쿠바>는 1964년 영화로서 바티스타 정권이 카스트로의 입성으로 무너진 직후의 이야기이고, <딸기와 초콜렛>은 의료와 교육의 공공복지를 이루었으나, 사회주의 정권 하의 자유와 개성에 대한 열망들이 충족되지 못하고, 도리어 억압되어 내부적 비판이 시작된 이후인 1993년의 영화이다. 바티스타 정권의 압제에 대항하여,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소이 쿠바>, 동성애자 지식인을 통해 프로파간다화된 예술과, 경직된 사회 풍토를 비판하는 <딸기와 초콜렛>. 이 두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바로 각기 다른 두 시기의 시대적 과제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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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 쿠바>는 소련의 감독 미하엘 카라토조프가 쿠바 혁명 승리의 기쁨에 관한 네개의 에피소드를 쿠바 정부의 협력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혁명 초기의 과제들, 무엇으로 인해 혁명이 촉발되지 않을 수 없는가의 문제들을 다루는 이 영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이다. <소이 쿠바>는 프로파간다적인 특징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데, <딸기와 초콜렛>의 주인공인 동성애자 지식인 디에고가 '예술과 프로파간다는 분리되어야한다'는 주장하는 점에서 서로 다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소이 쿠바>의 프로파간다적 특징은, 우습게도 얼마 전에 본 <밴드 웨건>을 연상시켰다. 빈센트 미넬리와 프레드 아스테어의 정말 대단히 화려한 이 뮤지컬에서 원래의 제작자는 의 현대적 각색을 무대에 올리는데,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당하자,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완전히 무시된다. 그리고 프레드 아스테어가 나서서 '복잡한 것 싫어하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 맥베드나 파우스트가 아닌' 이런 노래를 부르며, 금발의 미인이 범인인 삼류 탐정 소설을 근사한 뮤지컬로 변모시키는 작품을 올려 흥행에 성공을 하고, 이런 프레드 아스테어에게 모든 사람들이 그의 예술적 성공을 축하하는 박수를 보낸다. <소이 쿠바>나 <밴드 웨건>이나 자신들의 체제가 주장하는 것을 역설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이 쿠바>는 확실히 초기 소비에트 시기의 소련영화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일관된 광각렌즈의 사용과 앙각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거의 모든 프레임이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그 화면과 내용이 명확히 하나의 목표를 향해나가는 구성이다(이걸 누군가는 점진적 구성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정반합이라고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 형식 미학의 완성도는, 에이젠슈타인 이후 소비에트 영화의 견고한 출발에 빚진,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초기 소비에트 영화는 헐리웃 영화와 더불어 이 계통의 형식을 완성해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딸기와 초콜렛>은 국내에도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저개발의 기억>으로 더 유명한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의 이 작품이 담아내는 시기는, <소이 쿠바>의 등장인물들에게 혁명을 꿈꾸게 했던 독재와 폭압이 다른 얼굴을 하고 등장한 혁명 쿠바이다. 몇년 전에 개봉했던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나이든 뮤지션들이 다 젊었을때 대단한 음악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그만두고, 아니 금지당해 몇십년 동안 음악을 안 하고 살다가, 라이 쿠더의 수소문으로 겨우 한명씩 재발견되는 과정이 나온다. 이 나이 든 뮤지션들은 카스트로의 혁명 쿠바가 등장하면서, 구시대의 소산인 '퇴폐문화'의 금지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딸기와 초콜렛>은 바로 이러한 자각들이 이루어진 시대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비포 나잇 폴스>가 그려냈던 그 시기의 억압에 맞서 자유를 찾아나서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성적 소수자의 권리와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에 대한 옹호, 종교적 자유 등의 문제들이 나온다. 디에고를 통해 다비드라는 젊은 청년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갖게 되는 사회적 각성과 성장소설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진짜 재미있다. <비포 나잇 폴스>보다 훨씬 삶에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이 있으므로,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구티에레즈 알레아 인터뷰로

1999년에 구겐하임 기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단편 <신기원과 세기말의 매혹>은 고다르의 의 발끝에도 못 따라가는 꽝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호치민의 생애를 통해 베트남 민중의 열망을 담은 산티아고 알바레스의 <79 봄들>은 정말 놀라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무수히 등장했던 민족지도자들, 여운형에서 장준하까지의 모든 이름들이 떠오르며, 그들 대부분이 암살당하여 결국 이승만 정권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종속적 처지에 이른 우리나라에 대한 비감을 느끼게 한다. 정말 누구 한명만 살아있었어도. 이 영화에는 베트남 전에서 미군이 베트남 양민 시체 앞에서 기념 사진 찍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네바 협정이 있으나 마나. (5월21일)

-- Sonimage 2004-5-21 11: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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