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의 스펙트럼 - 괴담에서 마타도어까지

1 개요[ | ]

음모론의 스펙트럼 - 괴담에서 마타도어까지
  • 저자: Jjw
  • 2014-06-22

음모론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 표면적으로 설명되는 것 이외에 비밀스러운 다른 원인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유사과학이나 괴담류도 일종의 음모론으로 치부된다. 음모론은 늘 있어왔고 억지로 누른다고 없어질 것도 아니다. 음모론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음모론의 영향력은 그 사회의 분위기에 크게 좌우된다. 정보의 소통이 제약을 받을 수록, 그리고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 사태가 클 수록 음모론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그냥 뭉뚱그려서 음모론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 사이에는 많은 편향이 있고, 제기하는 질문과 추측의 질 역시 차이가 있다. 어떠한 것은 마땅히 의문이 들 수 있는 '합리적 의문' 수준을 넘지 않으며, 어떠한 것은 정치적 입장에 의해 매우 계산된 선동에 가깝다. 이것들은 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음모론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본다. 물론 순전히 '내 나름'의 기준이기 때문에 무슨 출처나 그런 거 없다.

2 유사과학[ | ]

유사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비이성적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평평한 지구 학회"의 주장과 같은 것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지구의 실재 모습은 평평한 쟁반 모양이지만 과학자들이 대중을 속이고 있다고 믿는다. 아마 십중팔구는 이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들의 '믿음'은 굳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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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지구 학회가 주장하는 지구의 모습. 출처:위키미디어 공용

어떤 사람들에게 달착륙은 연출된 것일 뿐이며, 모든 생물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모습일 뿐 진화란 건 허구일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 하건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차라리 종교의 영역에 가깝다. 종교적 교리는 반론이 허용되지 않기에 모든 토론은 의미가 없어지고 결국 "어떻게 믿건 당신 맘이니 더 뭐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걸 다른 사람도 믿으라 강요하지는 말라"는 걸로 정리되기 마련이다. 몇년 전 미국에서 생물시간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 또는 지적설계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국 법원이 내린 판단의 의미가 정확히 이것이다. 즉,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므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미국 헌법의 취지에 따라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지적설계론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사과학은 우리 사이에 널렸다. 혈액형별 성격론, 점성술, 타로 카드 등등에서 부터 '물은 살아 있다'류의 좋은 물-나쁜 물 주장, 모든 천연물질은 좋은 것이라는 주장... 사람들은 이 가운데 몇 가지는 허무맹랑하다 코웃음 치면서 또 다른 몇 가지는 진지하게 믿는다. 얘기가 좀 옆으로 세지만, 주역의 단사, 효사나 사주팔자 풀이, 토정비결과 같은 것을 옹호하면서 이른바 통계적 사실을 운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명백한 오류이다. 말이 길어지니 간단히 줄이면, 우선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인과관계라 단정할 수 없다. 서울 시청에서 시계가 12시를 알릴 때 마다 부산의 신발 공장에선 점심을 먹지만, 서울 시청 시계가 울렸다는 것이 신발 공장 노동자가 점심 식사 줄을 서는 이유는 아니다. 그리고, 동전을 열번 던져 뒷면이 계속해서 나왔다 하더라도 (그럴 확률은 매우 적지만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다음 번 던진 동전이 뒷면일 확율은 언제나 50%이다. 즉, 반복되어 나타난 사건이라고 해서 다음 번에 그러리라는 또는 뒤집어지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각설하고, 오늘날 주역을 보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전체를 아우르는 세상을 보는 눈과 삶의 지혜이지 점치는 법이 아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유사과학이 계속해서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까닭가운데 하나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에서 어르신들모시고 건강보조식품을 만능통치약인양 선전하며 팔아먹는 사람들에서부터 도시 한 구석에서 실연의 상처에 마음이 헛헛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넘치니 공급이 계속된다. 그 중엔 물론 매우 악의적인 사기꾼도 암약하기 마련이다. 내가 기억하기에 가장 대담한 사기는 컴퓨터공학에서 일어났는데 2000년 1월 1일이 되면 모든 컴퓨터가 오작동할 수 있다는 "Y2K 버그" 주장이 그것이다.

3 괴담[ | ]

사람들은 괴담에 열광한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남들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거나... 이런 괴담은 유행을 타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도 한다. 빨간 마스크 괴담의 핵심 모티브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밤늦게 혼자 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선 요즘도 자정까지 책가방 매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저 불쌍...

의사과학만큼이나 괴담 역시 끊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그 옛날의 유관순 괴담은 아직도 돌아다닌다. 그러나, 괴담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저 '공포감'을 주려는 것일 뿐 실재와는 거의 무관한 일이란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다. 마치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듯이 괴담을 전파하며 즐기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안도감을 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혹 괴담이 소재가 되어 왕따나 괴롭힘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냥꾼-사냥감 관계에 괴담이 끼어든 것일 뿐이다. 폭력성 게임을 한다고 폭력적이 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좀 지겹다.어떤 괴담은 사회적 터부와 결부되기도 한다. 동양의 4 공포증, 서양의 13 공포증과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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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미공군 에어리어 51에 외계인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 정부가 어떠한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정치적이기도 하다. 에어리어 51의 경고표지판.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4 정치적 음모론과 마타도어[ | ]

유사과학이나 괴담과 달리 정치적 음모론은 비밀스런 권력을 상정하여 그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파악한다. 예를 들면 존 F 케네디의 암살 배후에 비밀스러운 정치조직이 있다거나, 911 사건은 사실 미국 (특히 그 안의 유대계 세력)의 자작극이었다거나 하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들 역시 한 번 그렇게 믿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과학/유사종교 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보다 세속적이고 정치적 지향에 따른 판단이 우선한다는 특징이 있다.

정치적 음모론은 다른 것에 비해 매우 다양한 층위를 구성한다. 그 중엔 합리적인 의심, 여러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판단 등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꿰어 맞추는 것은 언제나 음모론이 제기하는 어떤 정치 집단에 대한 비난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사람들은 수 많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왜 아이들을 가만히 있으라 하였나? 그 사이 구조를 책임졌어야 할 국가기관은 도대체 무엇을 했나? 어째서 선원들은 제일 먼저 배 밖으로 나왔나? 대통령과 정부는 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나? ...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음모론은 이러한 질문들 위에 자신의 의도를 덧씌운다. 제일 처음 제기되어 지금까지 돌아다니는 괴물체설, 잠수함설을 보자. 그게 무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음모론이 비난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무엇이 되었건 그게 군사행동과 관련이 되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 외에도 "특별한 화물"이 실렸다는 주장 등도 마찬가지 이다. 그나마 이런 주장은 어떻게든 실체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그 후에 그걸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또 생기지만.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음모론으로 정권이 자신들의 실정을 덮기 위해 최소한 구조를 방기하였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사고를 유발했을 것이란 주장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지금의 정권이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라는 주장이다. 이 경우엔 실체 확인이 참으로 난감한데, 사고의 발생과정과 사후 대응의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음모론이 주장하는 '의도'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장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주장이 철회될 가능성이 없게 된다. 전형적인 정치적 음모론이다.

나는 이러한 음모론이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머지 걸림돌은 무책임한 현 정부와 무능력한 야당이다. 이러한 음모론은 정상적인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오히려 책임당사자들이 합리적인 의심마저 음모론이라 치부할 변명거리를 던져준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되지 못하는 정치적 주장 뿐이다.정치적 음모론 안에는 은연중에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가 조리퐁 판매를 금지하려 했다는 음모론엔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남성우월주의가 들어있다. 나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식에는 정상적인 정권 교체를 자신하지 못하는 깊은 패배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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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가 조리퐁 판매를 금지하려 했다는 주장엔 비뚤어진 남성우월주의가 들어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의 현대사는 온갖 마타도어(흑색선전)으로 얼룩져 있다. 그 중에 몇몇은 실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반탁운동을 들 수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동아일보의 왜곡 보도 덕분에 우리 사회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고, 결국 동족 상잔의 전쟁마저 치르게 되었다. 내 기억에 음모론과 마타도어가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적은 한 번도 없다.지금 상황에서 누구보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유가족들이다. 쓸데 없는 음모론을 퍼뜨리기 보다 부디 유가족의 주장을 다시 한 번 공유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에 대해서는 슬로우뉴스의 정리를 소개한다.

  • 슬로우뉴스: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에는 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 없다 ( http://slownews.kr/28079 )

5 같이 보기[ | ]

6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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