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로 살기

1 개요[ | ]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로 살기
  • 저자: Jjw
  • 2015-06-16

2 설명이 멈추는 곳에서[ | ]

전 우주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생물인 생쥐는 지름 12,756.270 km 질량 5.9736 x 1024 kg 짜리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을 제작하고 질문을 입력하였다.

문: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컴퓨터는 750만년의 연산 끝에 답을 제시하였다.

답: 42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 하이웨이 공사로 인해 컴퓨터는 철거되었고 그 바람에 그 위에서 태어나 살던 인류도 그만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그 컴퓨터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인류는 그것을 지구라고 불렀다.

-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

세상엔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제 좋다 저게 좋다 하는 수 많은 가치 체계가 있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분명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이지만 많은 경우 상호 보완적이다. 하나의 금언 또는 하나의 명언만으로는 그 것이 왜 그리되어야 하는 지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많은 가치 체계에서 지지 받는 금언이지만 왜 그리하여야 하는 가에 대한 설명은 각각의 가치 체계 전반을 이해하고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왜 어떤 것은 하여야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해 일관된 가치 체계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을 윤리관이라고 하자. 윤리관은 세계에 대한 전반적 이해 즉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와 행동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가치관이다.

윤리관은 매우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해답에는 서로 다른 수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끝 지점에 혹은 신의 명령이 있고, 혹은 본성이 있으며, 또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일에 중립적인 것은 없거나 매우 드물기 때문에 신의 명령이든 본성이든 법칙이든 그것이야말로 객관적이라고 하는 순간 윤리관은 거스를 수 없는 명령으로 작동할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일에 사람 아닌 것으로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는 몹시 회의적이다.

3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 ]

기독교가 천년 왕국의 도래를 예언하듯이 마르크스는 진보의 사다리를 타고 인류가 이상향에 도달하리라고 예언하였다. 기독교의 근거가 '말씀'이라면 마르크스의 근거는 '법칙'이었다. 그러나 말씀은 지난 2천년 간 툭하면 현세의 권력에게 무기가 되어 주었고 법칙은 소비에트의 이상과 함께 붕괴하여 버렸다. 그 사이 수 많은 비판과 재해석은 잠시 접어두고 질문을 하나 던진다. 굳이 무슨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가?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 입각하여 결국 개인에게 있어 덕행이란 평온과 온유의 추구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지금의 나는 세상에 있던 원자들이 어쩌다 모인 결과물이고 결국 다시 흩어져 어디론가로 사라질 것이기에 내것이라 생각하는 것들 역시 일시적일 뿐이며 인생을 돌아오지 않는 단 한 번 뿐인 경험들의 집합일 뿐이다. 부처는 한 번 가서 다시 오지 말라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가면 어차피 다신 못온다고 한다. 그의 생각이 개인의 온유에 머물러 결국 혼세를 살 방편으로 각자도생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몹시 아쉬운 부분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가짐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라면 에피쿠로스의 대답은 지금도 몹시 훌륭하다.

4 개인과 사회[ | ]

한편, 사람은 사회 관계를 이루지 않고는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 내가 먹고 쓰고 입은 것 가운데 내가 직접 지은 것이 몇 개나 되겠는가? 사람은 사회 관계라는 구조와 그 구조가 작동하는 양식인 문화 속에서만 자신이 알고 있는 '나'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은 늘 함께 있으면서도 어디까지가 개인의 독자적인 영역이고 어디부터는 사회적인 영역인지 늘 갈등을 빚어왔다.

지금까지의 여러 주장들을 살펴보면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으라는 전체주의적 사고(그런면에서 계급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도덕'은 전체주의적 사고에 가깝다)에서 부터 '단독자로서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을 달리는 수 많은 가치체계가 존재한다.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은 생쥐가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을 750만년 돌려도 답이 나오기 쉽지 않다. 썰렁한 농담을 덧붙이자면, 글쎄 추측 가능한 답은 17 쯤 되려나...

앞서 이야기한 객관적 윤리는 강자의 편이라는 입장에 서서 살펴보면 보호받아야 할 쪽은 분명 개인의 영역이다. 체제는 개인을 24시간 CCTV 앞에 세울 수 있지만 개인은 체제의 작은 부당함도 거부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치관에 대해선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당위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칭송받을 수 있지만, 당위를 내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폭압일 뿐이다.

5 히치하이커[ | ]

칼 세이건의 말처럼 문자 그대로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우리의 몸 하나 하나를 이루는 원자는 수소를 제외하곤 모두 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지구는 태양에 실려 오늘도 대충 초속 220 Km로 은하계를 여행중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자그대로 은하계를 여행하고 있는 히치하이커인 셈이다. 최소한 지구가 우리 자가용은 아니니까. 먼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우리 종 자신의 생존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아니, 자주 '지구를 구하자'느니 '하나뿐인 지구'와 같은 말을 듣는데 몇 번 이야기 했듯이 참 오만한 말이다. 지구는 인간이 다 멸종하더라도 별 티도 안나고 가던 길 계속 갈 것이다. 대충 7억년 뒤면 태양은 점차 부풀어 오를 것이고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뒤로도 50억년은 더 지구가 태양을 돌겠지만, 그때의 지구는 마치 지금의 수성처럼 물도 공기도 없는 행성일 뿐이다. 그 사이 우리는 은하계를 세 바퀴 반 정도 돌아다닌다.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를 바라면서, 이 긴 글의 두서 없는 끝을 맺으면...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다.

6 같이 보기[ | ]

7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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