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민족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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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생각 - 민족의 실체
  • 저자: Jjw
  • 2018-01-05

춘천박물관의 예족 유물 특별전시가 왜 맥족은 빼냐는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뭐랄까 앵글로하고 색슨이 잉글랜드 원조를 놓고 싸우는 느낌이다. 이 허무한 뉴스의 뒤에 "민족의 연원"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잉글랜드로 이주한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연원이 분명하기라도 하지 예맥을 딱잘라 나눌 수 있다는 건 뭔가? 뉴스를 전하는 기자는 그것이 관동과 관서의 갈등인양 말하고 있다. 관동은 맥이요 관서는 예란 건가? 무슨 근거로?

오늘날 많은 한국인이 기대하는 것과 달리 한국인을 구성하는 혈연적 관계는 간단하지 않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 동쪽의 최초 거주지를 벗어나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겪은 변화를 연구하는 것은 고인류학, 유전자인류학, 고고학 등의 주요 주제이다. 이 가운데 직접적으로 혈연을 따지는 것은 유전자인류학의 몫이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분석된 이래 각지의 선사 시대 유골들의 유전자가 분석되고 있으며, 현대 인류에 대한 분석도 끊임 없이 이루어 지고 있다.

유전자인류학은 중립진화이론이 적용되는 하플로 그룹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인류 유전자가 어떻게 나뉘어 왔는 지를 설명한다. 사람의 유전자 중엔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와 부계로만 유전되는 y 염색체 DNA가 있다. 이들 DNA는 자손에게 넘겨질 때 다른 상염색체의 DNA와 달리 유전자 재조합을 하지 않는다. (글이 길어지니 유전자 재조합에 대한 설명은 생략) 개체에 유익하지도 않고 해롭지도 않지만 그저 우연히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중립적인 돌연변이라고 하는데, 중립진화이론은 이러한 중립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생긴 대립형질이 그저 개체수와 확률의 문제로 종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이것도 설명은 여기까지) 하플로 그룹은 우리 DNA 안에서 같은 자리를 놓고 나뉘는 다양한 돌연변이 유전자들이다. 한 번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그것은 그대로 자손에게 유전되기 때문에 서로 얼마나 다른 하플로 그룹을 가지고 있는 지를 알면 대략 얼마 전 쯤에 갈라져 나왔는 지도 알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인간은 끊임 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하플로 그룹을 분석하면 어떤 유전자가 어떤 경로를 거쳐 전파되었는 지를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몽골을 기원으로 하여 동서양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하플로 그룹 유전자엔 "징기스칸 유전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인에 대한 하플로 그룹 분석 결과를 보면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은 특별히 유전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서로 간에 인적인 이동이 아주 오래 전부터 많았다는 뜻이다. 한국인만 놓고 보면 북방계 유전자와 멀리는 남아시아 여러 지역에 이르는 남방계 유전자가 섞여 있다. 예전에 어떤 학자가 이를 놓고 어떤 얼굴은 북방계 어떤 얼굴은 남방계 하며 골상학을 늘어 놓았지만 그건 많이 오바고. 우리 게놈 안에는 수 많은 기원을 달리하는 유전자들이 섞여 있다. 또한 2012년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만 갖고 있는 특정한 유전자 그룹은 단 한 개도 없다. 그러니 한국인을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일 뿐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예와 맥을 놓고 보면 그들 사이에 무슨 특별한 혈연적 구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문화적 차이점 정도일 것인데, 그 마저도 예맥은 늘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하였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하긴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이는 백제-신라 사이의 문화도 남들이 보기엔 비슷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확인 할 수 있는 유적에서 딱 잘라 이건 예의 것 저건 맥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삼한 시대의 국가들인 마한, 변한, 진한에 속한 국읍의 크기는 대략 오늘날의 군 단위에서 면 단위 사이를 오락 가락 했다. 오늘날 처럼 무슨 행정구역이 딱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와 맥도 단일한 중앙 집권 국가는 결코 아니었으니 이러 저러한 국읍들의 연합체였을 것이고, 그 들 중엔 분명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고 예로 갔다 맥으로 갔다 했던 곳도 있으리라. 그러니 문화적 차이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다.

문화 역시 일종의 유전자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도킨스는 그걸 밈이라고 했는데,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 개념을 적용해 문화를 살펴보면 밈 역시 하플로 그룹을 형성한다. 유전자에 비하면 너무나 순식간에 변형되고 전파나 단절이 쉽기는 하지만 중국과 한국, 일본의 문화를 지구적 관점에서 비교하면 차이점 보다는 유사점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게다가 문화의 특징적인 양식을 구성하는 면면을 살펴보면 어떤 것은 정말 그 기원이 어디인 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전파된 것들도 있다. 문화의 이동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그 문화 양식을 지닌 사람들이 이주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 양식만이 전파된 경우이다. 대개는 이 둘이 적당히 섞여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예전에 특정한 어떤 문화적 양식을 놓고 한국만의 고유하고 우수한 것(!)으로 추앙하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자리잡은 문화는 그 지역에 맞도록 어떤 것은 수입하고 어떤 것은 변형하며 이루어진 우수한 문화이기 마련이다. 특별히 한국만이 우월한 문화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오늘날 전통 문화라고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18세기말에서 19세기에 걸쳐 형성된 극히 근래의 문화일 뿐이다. 나는 전통 문화의 보존과 발전을 적극 지지하지만, 동시에 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전통문화 진흥이 혹시나 19세기 어디쯤의 문화를 박제화하여 전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닌 지 우려스럽다.

흔히 민족을 말할 때 혈연적 무엇과 문화적 고유함을 거론하지만, 실상을 보면 혈연도 문화도 확고한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민족의 실체는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은 상상일 뿐이다. 좋게 말하면 한 사회가 갖는 문화적 정체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체제 유지의 수단일 뿐이다. 문화적 정체성의 건강한 발전은 중요한 일이겠으나 현실에서 민족은 늘 국가와 엮여서 선전의 도구가 되기 쉽상이다. 내가 민족적 무언가를 늘 경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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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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