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슈타인바흐

에리카 슈타인바흐
출생 1943년 7월 25일
폴란드 라멜(현 루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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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독일
직업 정치인
배우자 헬무트 슈타인바흐 (1972년 결혼, 2019년 사망)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2022~), (이전: 독일기독민주연합(CDU), 1974~2017)

1 생애[ | ]

에리카 슈타인바흐는 1943년 나치 독일 점령 하 폴란드의 라멜(현 루미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프트바페 하사관, 어머니는 국방군 보조원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족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으로 피난했다. 슈타인바흐는 하나우에서 성장했고,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나 손가락 부상으로 음악가의 길을 포기하였다. 1972년, 헬무트 슈타인바흐와 결혼하였다.

2 정치 경력[ | ]

2.1 CDU 시절[ | ]

1974년 기독민주연합(CDU)에 가입하여 1977년부터 1990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시의회 의원, 1990년부터 2017년까지 독일 연방의회(Bundestag) 의원으로 재직했다. 연방의회에서는 인권 및 인도적 지원 위원회 의장을 지냈으며, CDU 중앙 집행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했다. 슈타인바흐는 낙태 및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사회보수주의 성향을 지녔다. 2003년에는 "추방 반대 센터"(Zentrum gegen Vertreibungen)를 설립하였다.

2.2 추방자 연맹(BdV) 활동[ | ]

1998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 추방자 연맹(Bund der Vertriebenen, BdV)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 단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추방된 독일계 체류민의 권익을 옹호하며, 슈타인바흐의 대표 시기에는 폴란드 등 동유럽과의 정치적 갈등이 빈번했다. 슈타인바흐는 1990년 독일-폴란드 국경조약에 반대하고, 2010년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폴란드 정치인 블라디슬라프 바르토셰프스키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2.3 CDU 탈당 및 AfD 활동[ | ]

2017년, 앙겔라 메르켈의 난민 정책에 반발하며 43년간 몸담았던 CDU를 탈당했다. 이후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2017년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AfD 산하의 정치교육재단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재단(Desiderius-Erasmus-Stiftung, DES)의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2022년 2월 AfD에 공식 입당하여 우익 포퓰리즘 정치 노선을 표명했다.

3 정치적 입장 및 평가[ | ]

슈타인바흐는 보수주의와 사회보수적 가치(낙태·동성결혼 반대, 가족 중심주의, 혼인 성폭력 범죄화 반대 등)를 고수했다. 국제 인권과 대외정책에 적극적이었으며, 독일-이스라엘 협회를 오랜 기간 지원하였다. AfD 입당 이후 극우 성향을 강화했으며 난민 정책과 다문화주의, 이슬람, 동성애 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4 주요 논란[ | ]

슈타인바흐는 추방자 연맹 회장 시기에 폴란드 및 체코와 여러 갈등을 겪었다. 2016년 난민 이슈 관련 인종차별적 트윗으로 비판받았으며, 2025년에는 AfD 및 극우 단체들과의 접촉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에라스무스 재단에서는 독일 정부의 국고지원(보조금)을 요구하며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5 저서 및 출판[ | ]

  • Flucht und Vertreibung – Das letzte Tabu (2005, 편저자)

6 참조[ | ]


7 바깥 고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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